(7-8)

2150년에는 과연 인류가 살고 있을까요? 물론 저는 그때도 인류가 살아남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은 지금도 있으니까요.하지만 우리가 바뀌지 않고 지금처럼 산다면, 그래서 지구가 꾸준히 더워진다면 2150년 지구에는 인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32)

직립은 커다란 뇌, 넓은 시야와 더불어 인류에게 한 가지 선물을 더 주었다. 바로 자유로워진 손이다. 걷는 데는 두 발이면 충분했고, 더 이상 나무에 매달라는 데 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손이 자유로워졌다. 예민한 감각이 모여 있는 손은 물건을 쥐고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자유로운 손은 노동을 탄생시켰다.

인간으로서의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뇌의 변화라기보다는 노동이며, 노동은 직립보행의 결과 손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똑바로 선 인간은 자유를 얻었고, 자유를 얻은 인간은 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동은 다시 인간의 진화를 촉진해 마침내 슬기 인간(Home sapiens)’으로 발전시켰다.

(70)

포경으로 고래가 사라지자 철분을 이동시키는 펌프로 망가진 셈이 된 것이다. 고래 똥이 사라지면 바다의 생산력이 감소한다. 수염고래는 매년 똥을 통해 약 1200톤의 철분을 바다에 공급했다. 이건 펭귄이 공급하는 521톤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수염고래와 펭귄의 똥이 사라지면 결국 식물성 플랑크톤도 급격히 줄어든다.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75)

인간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할 때마다 빙하가 녹아서 굶주리게 된 동물들을 걱정한다. 참 재밌다. 펭귄 걱정해 주고, 바다표범과 우리 범고래 걱정을 해준다. 고맙다, 그런데 우리는 당신들이 더 걱정이다. 빙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인간은 조금은 별난 존재다. 최고 포식자이면서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명. 자연사에서 유일한 존재다. 아마 당신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버틸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도 영원할 수는 없다. 끝이 바로 앞이다. 나를 주연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준 인류에 대한 내 마지막 경고이자 애정 표현이다. 우리가 사라지면, 펭귄과 바다표범과 범고래가 사라지면 그 다음은 당신들 차례다.

(175)

, 인간들이 왜 우리의 하인 노릇을 그렇게 열심히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아이러니가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기후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위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입니다. , 현대인들이 그걸 아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들이 잘 버텨야 우리도 편히 오래 살 텐데 걱정이네요. 요즘 하는 걸 보면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어쩌면 우리 펠리스 카투스도 선배님의 길을 따라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에잇, 잘 좀 하지!

(249-250)

지구에서 일어난 멸종 사건 가운데 세 번째 대멸종처럼 처참한 사건은 전무후무하다. 이때 생명의 95퍼센트가 멸종했다. 95퍼센트가 멸종했다는 뜻은 100마리 가운데 95마리가 사라졌다는 게 아니다. 100종의 생명이 살고 있었다면 이 가운데 95종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싹 다 죽어 사라졌으며, 나머지 5종만 살아남았는데 잘 살아남은 게 아니라 겨우 몇 개체씩만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학교에 100개 학습이 있다면 95개 학급은 모두 전학하고 5개 학급만 남았는데 온전히 남은 게 아니라 한 반에 두어 명만 남은 상태다.

(264)

해안선이 줄고 해수면이 낮아지면 해양생물에게는 재앙이 닥쳐 온다. 바다가 넓은 것 같아 보여도 대부분의 해양생물은 깊이 200미터의 대륙붕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산소의 3분의 2는 바다에서 만들어진다. 숲이 아무리 많아봤자 그 넓은 바다에서 활동하는 시아노박테리아와 식물성 플랑크톤의 맹활약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래저래 산소 농도는 줄 수밖에 없다.

(264-265)

그렇다. 이게 문제였다. 우리에게 높은 산소 농도를 제공한 숲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숲이 울창해진 덕분에 내가 커질 수 있었지만 울창해진 숲은 더 이상 나를 살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숲이 나를 추위로 내몰았다.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이 이산화탄소가 식물로 들어가면 산소가 되어 나오고 온실 작용으로 기후를 유지하는 엄청난 역할도 한다. 그런데 우리 시대 숲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기만 할 뿐 그걸 다시 세상으로 돌려놓지 못했다. 그 대신 땅 깊은 곳에 석탄으로 저장해 버렸다.

(267)

석탄기가 남긴 유산은 역시 석탄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간이 제일 잘 안다. 오죽하면 우리 시대의 이름을 석탄기라고 지었겠는가? 하지만 인간들이 애써 모른 척하려는 게 있다. 석탄이랑 우리가 누려야 할 열이 땅속에 갇힌 결과다. 이 열을 3억 년 후에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이 등장했을 때는 대기에 없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흘러들어간다. 우리는 더운 세상이 좋았지만 인간들에게도 그럴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보통 자신이 출현한 그 환경이 유지되는 게 생존에 가장 좋다. 그 환경에 적합해서 선택되었을 테니 말이다.

(308)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 또 어떤 놀라운 진화가 일어날지 궁금하다. 눈의 진화는 생명의 긴 여정에서 한 단계에 불과할 것이다. 생물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동안 또 어떤 혁신이 등장할까? 미래의 생명체는 계속해서 감각을 개선해 주변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눈이 발달해 더 선명한 시야를 제공하거나 다양한 빛이 닿지 않는 심해를 탐험하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도록 진화하는 생물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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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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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 해 줄 책은 아빠가 얼마 전에 읽은 <제노사이드>의 지은이 다카노 가즈아키의 데뷔작 <13 계단>이라는 책이야. <13 계단>은 블로그와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노출이 되어 이미 그 전부터 제목은 알고 있던 작품이야. 그런데 지은이는 누군지 모르고 있었는데, <제노사이드>를 읽을 때 지은이의 약력을 보다가 <제노사이드>를 지은 사람이 쓴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제노사이드>를 읽고 나서, 지은이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13 계단>이 괜찮겠다 싶어 읽게 되었단다.

이 책은 일본에서 2001년에 출간되었는데, 신인이었던 다카노 가즈아키가 데뷔작으로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추리 문학의 큰 상인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라고 하더구나. 첫 작품부터 큰 상을 수상해서 놀랠 만했지만 그 전에도 영화와 텔레비전 각본가로 활동을 했었다고 하더구나. 내공이 쌓여 있던 거지. 작가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바로 <13 계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3이라고 하면 서양에서 불길한 숫자로 알려져 있잖니. 그래서 그것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의미더구나. 이따가 이야기를 하다가 책 제목의 의미가 나올 것 같구나.

 

1.

주인공은 25살 미카미 준이치. 2년 전 시비를 걸어온 취객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상대방을 밀쳤는데 그만 상대방이 뒤로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죽고 말았단다. 고의성은 없었지만 상해치사에 해당되어 2년형을 선고 받았고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하게 되었단다. 준이치로서는 억울할 만한 사건이었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살인자 딱지는 영원히 뗄 수 없는 것이었어. 비록 상해치사이지만 자신도 속죄하면서 살아가기로 했어. 그 일로 준이치의 집안도 무너졌단다. 피해자 배상으로 큰 돈을 지불해야 해서 부모님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어. 집도 조그마한 집으로 옮겼어. 하지만 준이치의 부모님은 형기를 마치고 집에 온 준이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단다.

준이치는 피해자의 아버지 사무라 미츠오를 찾아가 잘못을 빌었단다. 아들을 잃은 사무라 씨는 준이치의 사과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단다. 여전히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어느날 교도관 난고가 찾아와서 준이치는 깜짝 놀랐어. 자신이 무슨 잘못한 일이 있나 싶었지. 난고는 준이치 사고 파일을 보고 준이치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도와주면 갱생할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온 거야. 난고는 어떤 독지가로부터 한 사형수의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의뢰 받았는데 조력자로 준이치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 사건은 대략 이랬어. 사형수의 이름은 사카키바라 료. 10년 전 한 해변 마을에 노부부가 살고 있었어. 노부부 중 남편은 우츠기 고헤이라는 사람인데 중학교 교장 출신으로 당시 보호사 일을 하고 있었어. 보호사는 감옥에서 출감된 사람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도 하고 그들의 행적으로 평가하기도 하는 사람이야. 그 노부부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었단다. 그런데 그 집 밖 도로에 우츠기 고헤이의 보호감찰대상자 중 한 명인 사카키바라 료라는 사람이 오토바이 사고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어. 그 주변에는 노부부의 물품들이 발견되었단다. 그로 인해 료는 노부부의 살인 혐의로 체포 당하게 되었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료가 오토바이 사고의 충격으로 사고 전 4시간 동안 기억을 잃어버린 버린 거야. 그래서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했어. 하지만 사건의 모든 정황은 료가 범인이라고 가리켰고, 료의 기억상실증은 재판에서 오히려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였지. 결국 료는 사형 선고를 받았단다.

료는 사형 선고를 받고 7년 동안 수감이 되었는데 이제 언제 사형 집행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단다. 책 제목 13계단은 일본에서 사형수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실제로 사형 집행할 때까지 13단계의 승인 절차가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쓴 것이란다. 료는 그 13단계에서 12단계까지 승인이 난 상태이고, 마지막 승인 도장이 찍히면 사형 집행이 되는 것이었어. 그러니까 난고와 준이치는 료의 사건을 조사하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던 거야.

난고는 이 사건을 중개해준 스기우라 변호사를 만났단다. 료의 사건을 재조사를 요청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과 실체를 밝히기 싫어하는 독지가라고 했어. 이 조사를 잘 하고 나면 거금의 사례금을 준다고 했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준이지의 집은 큰 빚을 지고 있어서 이 일은 준이치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단다.

 

2.

난고와 준이치는 료를 면회 가서 만났단다. 료가 그날의 기억을 잃어버린 했지만, 단편적인 장면들이 기억난다고 했어. 계단이 기억난다고 했어. 하지만 살해당한 노부부의 집에는 계단이 없었단다. 료가 본 계단을 찾기 위해 난고와 준이치는 주변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어.

난고와 준이치는 료의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너무 빨리 료를 살인자로 단정지었다고 생각했어. 사건을 조사 하다 보니 다른 의심 가는 사람들도 있었어. 노부부가 살해당했던 두 달 전 비슷한 수법으로 죽인 살인 사건이 있었어. 그 사람의 범인은 현재 수감 중이라서, 난고와 준이치가 면회를 갔는데 자신은 노부부를 죽이지 않았다면서 누군가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했단다. 또 한 명 의심 가는 사람이 있었어. 희생 당한 우츠기 고헤이가 보호사였다고 했잖아. 료 말고 또다른 보호감찰대상자가 그날 방문했다고 했어. 그래서 이 사람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단다.

사실 난고가 준이치를 조력자로 선택한 이유는 료의 사건이 일어났던 그 동네에 그 시간대에 준이치도 그곳에 있었던 이유도 있었단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준이치는 여자친구와 그곳에 여행을 왔던 거야. 그런데 난고가 조사를 하다 보니 준이치가 당시 손에 흉기에 베인 듯한 상처가 있었고, 예상보다 많은 큰 돈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잠깐 난고는 자신이 준이치를 잘못 보았나? 이런 생각을 했단다. 혹시 준이치가 노부부 살인 사건과 연루된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

난고는 노부부의 집 인근에 산사태로 묻힌 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 절에 계단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 난고와 준이치는 덮여 있던 흙을 파내고, 계단을 찾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범행에 사용되었던 손도끼와 우츠기의 인감도장이 담긴 비닐 봉지를 발견하게 되었단다. 드디어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거야. 난고는 손도끼와 인감도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지문 감정을 의뢰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남아 있는 지문은 준이치였던 것이다.

준이치는 갑자기 강력한 용의자가 되었어. 하지만 난고는 준이치를 믿었단다. 지금까지 함께 생활한 준이치를 보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은 거지. 그렇다면 왜 거기에 준이치의 지문이 있었을까. 준이치는 인감도장에서 자신이 지문이 나온 줄도 모르고 도서관에서 그 절에 대한 자료를 뒤져 보았어. 그리고 그 절에 불상이 하나 있는데, 그 불상 속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안에 사라진 통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그 절로 향했단다. 다시 절에 가서 흙을 파헤치다가 불상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불상 안에서 준이치가 예상했던 통장을 찾았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미 계단에서 발견했던 손도끼와 인감도장도 또 그 안에 있었던 거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런데 그때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어. 준이치는 당연히 난고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준이치를 찾아온 이는 사무라 미츠오였어. 사무라 미츠오 기억나니? 준이치가 상해치사로 죽인 이의 아버지…. 사무라 미츠오가 이 사건에 깊게 관여되어 있던 거란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준이치를 복수하기 위해서

사무라 미츠오가 한 일들을 이야기해볼게. 미츠오가 료의 사건을 재조사를 의뢰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준이치의 지문이 묻은 인감도장과 손도끼를 절의 계단에 갖다 놓은 이도 미츠오였어. 료의 사건을 재조사하다 보면 계단에서 손도끼와 인감도장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준이치가 노부부의 살인범이 되어 사형을 선고 받게 계획을 짠 것이란다. 그런데 사건의 의뢰를 맡은 난고가 준이치를 끌어들여 일이 꼬이게 된 것이었지. 그래서 직접 준이치를 죽이기 위해서 준이치를 미행하여 절에 찾아온 것이란다. 미츠오는 산탄총으로 준이치를 공격했는데, 총으로 오래된 절의 목재를 쏘아서 절이 무너져 내리면서 준이치는 부상은 당했지만 목숨을 살릴 수 있었어.

그렇다면 노부부를 죽인 실제 범인은 누구였을까. 그것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을게. 마지막 진범까지 이야기하면 너무나 큰 스포일러니까.^^ 그리고 준이치가 10년 전에 손이 베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10년 전 있었던 일 중에 준이치가 이야기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단다. 준이치는 난고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난고가 이 일을 맡았던 이유는 교도관으로 있으면서 사형 집행에 두 번 참여를 하고, 자신이 마치 살인자가 된 기분이 들어 무척 괴로워했다고 했어. 사형 집행을 하지 않으려고 이곳 저곳 전근을 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내와도 사이가 안 좋아져서 별거를 했단다. 난고의 괴로워하는 심정이 이해가 갔단다. 난고는 잘못된 사형 선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사건을 맡게 된 거였어. 아무리 법의 이름을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지만, 법에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권한을 주는 것이 맞냐는 의견이 요즘도 분분하단다. 또 어떤 이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법이 그런 강력함을 흉악한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단다.

우리나라도 사형이 선고되지만,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다고 한단다. 그래서 가끔씩 사형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도 이루어지곤 한단다. 이 소설도 그런 사형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 그런 소설인 것 같구나.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살인을 당할 뻔했던 소재를 다룬 것으로 보아 지은이 다카노 가즈아키는 사형제  반대편에 선 사람인 것 같구나.

….

소설이 여러 복선과 트릭과 반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짧게 이야기해주기가 쉽지 않구나. 그래서 아빠가 한 이야기가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앞뒤 문맥이 어색한 부분도 있을 것 같구나이해해 주렴.. 나중에 뭐, 재미있는 책 없나? 이런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저승사자는 오전 9시에 찾아온다.

책의 끝 문장: 이는 상해 치사의 전과를 지닌 미카미 준이치와 평생 동안 범죄자 세 명의 목숨을 빼앗은 전 교도관 난고 쇼지, 두 사람이 해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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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4-09-10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걸 지금보고있습니다

bookholic 2024-09-11 06:38   좋아요 0 | URL
^^ 즐독하세요~~ 닷슈 님 취향에도 맞는 책이길~~^^
 
















(19)

모리스는 전쟁에 찬성했고, 그것이 불가피하며 심지어 두 나라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양과 학식이 있는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진화론적 사상에 몰두한 이래, 그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삶이란 매 순간 전쟁이 아닐까? 자연의 조건 그 자체가 지속적인 전투, 가장 강한 자의 승리, 행동으로 유지되고 쇄신되는 힘, 죽음에서 늘 새롭고 신선하게 부활하는 생명이 아닐까? 그는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입대해 전선에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그때 자신을 사로잡았던 뜨거운 조국애가 떠올랐다. 아마도 국민투표를 했더라면 프랑스는 황제에게 충성해도 전쟁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자신도 일주일 전에는 이 전쟁이 유해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독일왕자에게 스페인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현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문제가 복잡해지고 혼란이 증폭되자 누구 할 것 없이 오류에 빠진 듯 보였다. 도대체 어느 쪽에서 도발을 시작했는지조차 불분명했고, 분명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한 민족으로 하여금 다른 한 민족을 공격하게 하는 불가피하고 숙명적인 법칙뿐이었다. 한순간 거대한 전율이 파리를 관통하였다. 모리스는 불타오르는 밤의 광경이, 모든 대로에서 횃불을 흔들며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하고 외치던 군중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26)

낡은 제정(帝政)은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긴 했지만 뿌리까지 썩어 있었다. 자유를 말살함으로써 애국주의적 이념을 약화시킨 제정은 다시 자유주의적 기치를 내걸었지만 이미 늦었다. 자기 스스로 풀어놓은 끝없는 환락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제정은 금세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 크림전쟁, 이탈리아전쟁의 무훈으로 빛나는 군대는 확실히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전통을 가졌으나 돈으로 사람을 사는 대리복무제로 망가졌고, 군사훈련도 타성에 젖어 있었으며, 승리를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현대 과학의 새로운 기술 도입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군들은 쓸데없는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몇몇은 전쟁에 대해 가공할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황제는 괴로움과 망설임 속에서 이제 막 시작되는 전쟁을 맞아 잘못된 보고를 받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테면 모두가 까막눈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떼처럼 두려움 속에서 지리멸렬하게 전쟁터로 나아갔다.

 

(82)

문득 높다란 황색 담장에 쓰인 나폴레옹 만세!”라는 글귀가 꿈을 꾸는 듯 멍한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좌절감과 가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전설적인 승리를 구가하며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가 안중에도 없었던 약소국의 일격에 쓰러졌다는 게 사실일까? 반세기 만에 세상천지가 변했다. 뼈저린 패배감이 영원한 승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모리스는 매형 바이스가 일전에 뮐루즈 앞에서 고통스럽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오직 그만이 사태를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를 서서히 약화시킨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고, 젊음과 활력이 담긴 새로운 바람이 독일에서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패권 시대가 끝나고 또다른 패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뜻할까? 하기야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라에서 불행이 닥치고, 미래를 향해 가는 나라,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강고한 나라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잖아!

 

(152-153)

모두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병사들을 재미삼아 이리저리 돌리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나! 헐벗은 들판에 펼쳐진 주름진 대지를 통해 병사들은 길 양쪽 가장자리로 열을 지어 걸었고, 장교들이 두 대열 사이로 지나갔다. 랭스에서 야영한 다음날 샹파뉴에서 병사들이 했던 즐거운 행군, 농담과 노래로 떠들썩했던 행군, 프로이센군을 따라잡아 격퇴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들어올렸던 행군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분노와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소총과 배낭을 저주했고, 지휘부를 더 이상 믿지 않았으며, 절망에 사로잡힌 채 채찍질을 두려워하는 가축떼처럼 천근만근 발을 그저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이 가련한 군대는 자기들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227)

그러나 많이 배운 모리스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이 삶 자체요,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을 도립한 자는 불쌍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냉혹한 자연이란 끝없는 살육의 장일 뿐이니까.

 

(367-368)

그러나 불굴의 투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세번째 돌격이 이루어졌을 때, 프로스페르는 경기병과 프랑스 기병대 틈에 있었다. 여러 연대라 끊임없이 부서졌다. 다시 생성되는 거대한 파도일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의식이 없었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피르, 귀를 다쳐 더 빨리 달리는 제피르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중앙에 있었다. 주변의 말들이 뒷발로 섰고, 거꾸러졌다. 병사들은 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말 위에서 죽은 몇몇 병사가 안장에 앉은 자세 그대로 동공이 풀린 채 계속 돌격했다. 새로이 진격한 200미터 후방으로 시체들과 빈사자들로 뒤덮인 그루터기 밭이 보였다. 그중에는 머리가 땅에 처박힌 병사들도 있었다. 밭에 쓰러져 누운 또다른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툭 튀어나온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교의 말로 보이는 거대한 검정말은 배가 터진 채 다시 일어나려 발버둥쳤고, 그 때문에 두 앞발이 쏟아져나온 창자에 뒤엉켰다. 적의 포화가 더욱 거세지며 양쪽 날개가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자, 기병들은 뒤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했다.

 

(456)

스당에서는, 황제의 거추장스러운 짐이 주민들의 저주와 비난이 이는 가운데 군청 정원의 라일락 뒤에 놓여 있었다. 비참한 고초를 겪는 불쌍한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것을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짐에 어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운, 그 짐이 자극하는 뼈아픈 패배의 기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이 깊은 어느 밤이었다. 수많은 은냄비, 꼬치 회전기, 고급 포도주 바구니와 함께 말들, 마차들, 화물 마차들이 극비리에 스당에서 빠져나갔고, 도둑질할 때처럼 살금살금 불안한 걸음으로 캄캄한 도로를 통해 벨기에로 넘어갔다.

 

(568-569)

전투가 끝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여기저기서 잊히고 버려졌던 부상병들이 계속해서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중 네 명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발랑의 빈집에 누워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의아했는데, 아마도 이웃 주민들이 도와준 것 같았다. 그들의 상처에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결국 그들은 상처가 오염되어 죽고 말았다. 병상에 스며들어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는 바로 그 화농균이었다. 입구에서 괴저 내새가 코를 싸쥐게 했다. 배농관에서 역한 고름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수술 부위를 다시 열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뼛조각을 집어내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뒤이어 농양이 생겼고, 점점 부풀다가 터졌다. 얼굴이 흙빛이 된 지치고 야윈 불쌍한 환자들이 온갖 고통에 시달렸다. 어떤 환자들은 벌써 반쯤 해체된 시체처럼 꼼짝하지 않고 누워 숨소리도 없이 며칠을 보냈다. 또 어떤 환자들은 병세가 광증을 유발한 듯 땀에 흠뻑 젖은 채 불면으로 잠도 못 이루며 연신 헛소리를 했다. 어쨌든 조용한 환자든 시끄러운 환자든 간에, 염증에 생기면 만사가 끝이었다. 세균이 이 환자에서 저 환자로 옮겨다니며 그들 모두를 똑 같은 부패의 물결 속으로 휩쓸어갔다.

 

(658-659)

모리스가 이 광적인 꿈에 젖은 것은 코뮌 자체에 대한 은근한 불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위협이 가중될수록 코뮌이 너무나 모순된 요소들로 서로 충돌하고, 쉽게 흥분하고, 일관성을 상실한 채 어리석은 짓만 거듭하는 것 같았다. 코뮌이 약속한 온갖 개혁 가운데 실현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고, 훗날까지 지속될 과업도 전혀 없으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특히 코뮌의 가장 큰 잘못은 서로를 찢어발기는 경쟁심과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벌써 온건한 의원들, 불안을 느끼는 의원들이 더 이상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의원들은 그날그날 터지는 사건의 추이에 따라 움직였고, 독재가 들어서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급진적인 혁명 분파들이 조국을 구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클뤼즈레, 돔브로프스키에 이어 로셀이 의심의 대상이 될 참이었다. 전시(戰時) 시민 대표로 임명된 들레클뤼즈조차 대단한 권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비쳤던 위대한 사회적 시도는 무능하고 절망에 빠진 이 의원들 주변에 시시각각 확대되는 고립감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705-706)

그때 장은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땅거미가 지는 이 시각. 불타는 도시 위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가차없는 운명과 감당하기 힘든 재앙 속에서 분명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했다. 프랑스는 그처럼 엄청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 지방 영토의 상실, 수십억 프랑의 배상금, 피로 물든 참혹한 내전, 사방에 널린 시체와 파괴의 잔해물, 돈도 명예도 없는 궁핍, 한마디로 다시 건설해야 할 하나의 세계! 그 자신도 찢기는 가슴을 거기에 묻었다. 그가 사랑한 모리스도 알이에트도, 그가 꿈꾸었던 행복한 내일의 삶도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맹화 너머로, 싱그러운 희망이 더없이 맑고 고요한 하늘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자연, 영원한 인류의 신선한 소생이었다.그것은 희망을 품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새로운 청춘이었다. 그것은 수액이 오염되어 잎을 노랗게 물들이는 썩은 가지를 잘랐을 때 푸르른 줄기를 힘차게 내뻗는 생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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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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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우연히 정희원이라는 분의 강연을 보게 되었는데, 말을 조리 있게 잘 하시고, 그 분이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 마치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할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심각하지는 않지만 건강의 이상 신호가 하나 둘 나타나기 때문에 건강에 좀 유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희원 님이 느리게 나이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보고는 아빠도 더 늦기 전에 습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정희원이라는 분은 그 강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검색해 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시는 유명한 분이더구나. 서울아산병원에서 노년내과 의사로 재직 중이라고 했어.

그냥 내과가 아니고 '노년내과'라는 분과는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좀더 전문적으로 보이더구나.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나라에 맞게 노년내과는 더욱 성장할 텐데, 그런 점에서 정희원 님은 전공도 잘 선택하신 것 같구나. 전문의 자격증 이외에 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에서 이학박사도 취득했다는구나. 책도 여러 권 쓰셨는데, 좀더 건강한 노년의 생활을 대비해야겠다고 아빠도 한 권 사서 읽어보았단다. 그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이라는 책이란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는단다. 하지만 똑같이 늙지는 않지. 어떤 사람은 나이 팔십에도 일상생활을 누리는데 문제가 없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같은 나이에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어. 그런 결정이 젊은 시절에 어떻게 먹고 어떻게 운동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먹고 싶은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몸을 혹시 시킨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얼마나 탓할까? 아빠도 더 늦기 전에 느리게 늙는 생활습관을 가져보려고 마음 단디 먹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단다.

 

1.

먼저 노화가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 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정의하고 있단다. 하지만, 숫자 나이는 의미 없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오늘날 65세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단다. 지난 50년간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젊게 오래 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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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0이 새로운 20”, “50~60대는 신()중년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이 헬스용 고무밴드를 잡아 늘인 것처럼 오른쪽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2005년 프랑스에 살고 있는 40세 여자는 향후 44.7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1952년에서는 30세 여자가 44.7년을 더 살 수 있었다. ‘40이 새로운 30’은 지난 50년간 우리가 건강하고 젊게 살 수 있는 10년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중년은 지금의 60대가 과거의 50대처럼 건강하고 사회적 활력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기대수명(한 시점에 태어나는 사람이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이 꾸준히 증가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건강수명도 늘어나면서 개개인의 생애 주기 자체가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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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노화는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란다. 그러므로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야. 단순히 오래 사는 수명보다 건강수명이 중요하단다. 이 책에는 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건강한 노년을 위한 방법들을 제시해준단다. 그 방법들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들이라기 보다는 건강 상식에 포함되어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들이란다.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으키고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꼼꼼히 읽어보았단다.

먼저 잘 먹기.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은 보통 먹는 것도 신경을 쓴단다. 현미밥을 먹고, 단백질 보조제를 먹고, 닭가슴살을 먹곤 하는데, 그것도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먹어야 한다고 해... 저탄수화물, 저지방, 고단백질의 식단이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몸에 맞는 식사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했어. 특히 줄여야 하는 것 중에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줄어야 한다고 하는구나. 잘 먹기는 아빠뿐만 아니라, 너희들과 엄마도 함께 알아두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하니, 쉽지 않겠구나. .. 쉽지 않은 "잘 먹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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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3)

단순당과 정제 곡물에 의해 혈당이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는 즐거움의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머릿속에서 분비된다. 이 때문에 많은 현대인이 탄수화물에 중독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기에 흔히당이 땡긴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당 중독 회로는 생활 습관 개선으로 사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게 우선 일주일만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멀리하라고 권한다. 이렇게만 해도 오후에 늘 느끼던 머릿속의 안개가 사라지고 서너 시면 어김없이 당기던 단 음식이 어느 순간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한 실천이 동반되면 1~2주 이내 부종이 개선되고, 저장돼 있던 글리코겐이 분해되어 체중이 3~4kg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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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먹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제대로 운동하기란다. 무작정 운동하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운동해야 하는 거야. 잘못된 방법과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하면 오히려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운동으로 즐겨 하는데 걷는 것도 올바른 자세로 제대로 걸어야 한다고 했어. 이 책에는 각 운동방법에 대해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단다. 마치 체육 교과서처럼 말이야.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의자에 앉아서 생활을 한단다. 회사에 다니는 아빠나 학교에 다니는 너희들도 많은 시간 앉아서 지내잖니. 그렇다 보니 앉아있는 자세가 무척 중요하대.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로 앉아 있으면 근골격계에 이상이 온다는 거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아빠의 자세도 엉망이라서, 다시 각성하고 올바른 자세로 앉았단다.

나이 들수록 근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 책에서도 코어와 둔근, 그러니까 엉덩이 근육을 힘써야 한다면서 그림과 함께 소개해 주었단다. 역시 실천이 문제지. 아빠가 예전에 홈트레이닝을 한다고 앱을 깔았다가 한 달을 못 채우고 만 적이 있단다. 이 책을 보니, 다시 한번 홈트레이닝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더 이상 늦게 않게 말이야.

….

마지막으로 뇌건강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하면 뭣하니.. 뇌가 망가져서 치매라도 걸리면 신체 건강도 아무 소용 없지. 뇌 건강을 지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수면이라고 했어. 우리 식구들은 충분한 수면 시간을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잠이 부족하면 운동을 해도 근육이 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그 외에 수면 부족은 만병의 원인이고, 충분한 수면은 만병의 양약이란다. 그리고 명상과 호흡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라고 하는데, 명상이 좋다는 것은 알아서 아빠도 몇 번 해 본 적은 있지만, 그 짧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더구나. 꾸준함이 그렇게 힘든 일이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지 예비능이라는 필요하대.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몸으로 따지자면 근육과 비슷한 거야. 나이 들면 근육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나이 들면 인지 예비능을 높여야 한대. 이 책에서는 인지 예비능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

강연은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 들었는데, 책은 그 만큼은 아니었단다. 익히 알았던 건강 상식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고 중요한 것은 결국 실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게 했어. 그동안 아빠가 건강에 대해 너무 소홀히 한 것에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단다. 너희들과 함께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더 늦기 전에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여야겠구나. 그리고 먹는 것도 무작정 맛있는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잘 먹어야겠구나.

그럼, 잘 자려면 그만 독서편지를 마쳐야겠다.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매일 많은 분이 약과 처방전, 영양제 묶음을 들고 나의 진료실을 찾는다.

책의 끝 문장: 한 해 한 해 가장 소중한 1년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과학자들은 노화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점수화해서 연구에 사용한다. 뉴질랜드의 젊은 성인들을 관찰한 연구에서, 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반적으로 더 나쁜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동년배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 또한 좋지 않았다.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은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을 쓴 예일대의 베카 레비(Becca Levy) 교수팀이 장년기의 미국인 660명을 23년간 관찰했더니, 노년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보다 7.5년 더 생존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수명을 7.5년 줄이는 효과는 평생 하루 한갑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 P10

노화의 정의는 ‘유전자와 환경이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세포, 조직, 기관, 개체에 일으키는 구조와 기능의 변화’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으로 정의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많은 질병은 그 자체가 생물학적 노화의 결과인 경우가 많으므로 원인을 별도로 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생물학적 기전이 때에 따라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하므로 생체 구조와 기능이 꼭 ‘쇠퇴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시간과 유전,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벌어지는 무척이나 광범위한 변화를 노화로 묶을 수 있다. 단, 태어난 시점부터 생식이 가능한 연령대까지의 변화인 ‘성장과 발달’ 과정은 통상적으로 노화에 포함하지 않는다. - P33

7만 8천 명의 캐나다 인구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더니 흡연, 신체 활동, 음주, 식사 네 가지 요인에 따라 20세기에 기대할 수 있는 여명이 남자는 16.8년, 여자는 18.9년까지 달라질 수 있음이 나타났다. 12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50헤를 기점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여명의 차이가 흡연 적정 체중, 신체 활동, 음주, 식사의 적절성에 따라 남자는 14.0년, 여자는 12.2년까지 달라짐을 보였다. 최근에 미국의 성인 72만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낮은 신체 활동, 마약 중독, 흡연, 스트레스, 과음, 나쁜 식사, 나쁜 수면위생, 부족한 사회관계의 8가지 생활 습관을 합쳤을 때 40세를 기점으로 남성은 24년, 여성은 21년의 수명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 P82

순서를 바꿔 혈당 상승을 느리게 만드는 방법이다. 흰쌀밥을 먹기 전에 채소를 먼저 먹는 방법인데, 정제 곡물을 채소와 배합해서 복합 탄수화물처럼 만드는 것이다. 채소를 포함한 식이섬유  고기, 생선 등 단백질 -> 탄수화물의 순서로 먹는 것이 혈당을 느리게 올린다. - P121

기초대사량 계산하는 법
남자 : 88.362+(13.397 x 몸무게kg) + (4.799 x 키cm) – (5.677 x 나이)
여자 : 447.362+(9.247 x 몸무게kg) + (3.098 x 키cm) – (4.330 x 나이)
- P135

걷기는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바르게, 그리고 긴장 없이 걷는 과정에서 여러 관절의 부드럽고 율동적인 움직임을 자각하며, 풍경과 소리를 느끼고,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살피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음챙김 명상이 된다. 실제 숲속을 걸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활동을 할 때 우리의 뇌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엔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운동, 특히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은 뇌 유래 신경성장인자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수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뇌의 BDNF 수치가 높아지면 신경 세포의 성장과 생존이 촉진되며,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강화되어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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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09-07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사이에 여기저기 아픈데가 생기더라구요. 노화가 왔다고 생각하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요.ㅜㅜ 노화는 내 삶의 결과란 문장이 확들어 옵니다.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네요. bookholic님의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초대사량 계산해보니 1561.931 인데 정상인가요? ㅎㅎ )

bookholic 2024-09-07 22:11   좋아요 1 | URL
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미래의 몸은 지금 바꿀 수 있습니다..^^
마힐 님도 함께 노력해요...
기초대사량은 나이 대와 신체 조건에 따라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랑 비슷하신것 보면 정상이신 것 같습니다..ㅎㅎ
주말 잘 보내시고요~~
 
















(30)

번영하고 발전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바로 그러한 계급 사이의 불균형이 날카롭게 의식되었다.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키지 않는다. 부유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이 무시되고 멸시당한다고 느낄 때 모순된 제도를 타도하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킨다. 바르나브(Antoine Barnave)가 열렬한 혁명가가 된 동기는,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을 때 클레르몽 통네르라는 귀족에게 자기들의 좌석을 내주어야 했던 억울하고 불쾌한 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부르주아들이 품고 있었던 불평불만과 자존심의 훼손이 그들로 하여금 앙시랭레짐을 미워하게 하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혁명으로 치닫게 하였던 것이다.


(52-53)

루이는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사람이었다. ‘사람 좋은사람이라는 개념에는 유능하다든가 흑백이 분명하다든가 의지가 꿋꿋하다든가 책임감이 강하다든가 혹은 믿음직하다든가 하는 따위의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어디로 보나 호인형 남자였다. 미식가이고 무도회와 사냥을 즐기고 특히 열쇠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취미를 취미 삼아 즐기는 정도라면 골치 아픈 정무에 휴식을 제공하는 오락거리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루이는 골치 아픈 정치는 아예 질색이고 사냥과 열쇠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편이었다. 그는 국왕 참의회에서 골치 아픈 일이 논의되면 곧 피곤해져서 회의석상에서도 졸곤 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이었으니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한들 무슨 유익한 일을 과단성 있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에 직면하여 어찌 일을 제대로 판단하여 책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75)

파리의 공기는 날로 험악해졌다. 국민회의 결의해도 불구하고 왕이 군대를 비밀리에 이동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빵값은 매일같이 폭등하고 있었다. 파리의 빈민은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빵집을 습격할 기세였다. 통계에 의하면 당시의 파리 시민 65만 중 10만이 갖가지 형태의 빈민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거지이거나 거지에 가까운 가난뱅이들이었다. 이 최하층 빈민이 아니라도 파리 시민은 대부분 극소수의 부자 말고는 곡가의 앙등을 견디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파리 시민은 곡가 앙등의 원인이 불황이나 흉작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일부 부유층의 사재기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하는 반사회적인 인간들이야말로 왕을 지지하고 국민의회를 반대하는 자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108)

바스티유를 함락시킨 지 2 2개월 사이에 프랑스 국민은 새 국민으로 변하였다. 그 새 국민의 마음속에 지난 6월 이후 3개월 사이에 갑자기 분노와 불만이 쌓였다. 지금까지 왕당파를 노려보던 프랑스 민중의 눈은 혁명을 반역하고 민중을 배신한 푀양파로 돌려지고 있었다. 민중의 분노와 불만은 막 제정된 결함투성이의 헌법을 그대로 두지 않을 태세였다. 그 헌법을 진정한 민주주의 헌법으로 새로 만들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는 앞으로 1년이면 족하였다. 혈통의 특권적 지배를 무너뜨린 민중은 이제 돈의 특권적 지배를 오래 참고 견딜 생각이 없었다. 푀양파와 같은 보수적 부르주아는 헌법의 제정으로 혁명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민중은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혁명은 계속 민중의 힘에 의해 추진되어 갔다.


(128)

파리 코뮌이란 무엇일까? 그 뜻은 파리 시의회(City Council)라는 뜻이었다. 파리는 본래 행정구역이 60구로 나뉘어 있었는데, 1790 5월에 48개의 섹시옹(section)으로 개편되었다. 섹이옹마다 1800명 정도의 능동 시민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표자들이 시 코뮌을 구성하는 반혁명 세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8 10일 사건을 계기로 각 섹시옹이, 특히 노동자들의 섹시옹이 그들의 코뮌 대표자들을 수동 시민으로 교체하여 코뮌의 능동 시민을 압도하게 되었다. 수동 시민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었으므로 압력에 의하여 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의 차별을 없애고 보통선거에 의하여 새 국회인 국민공회 소집을 가결하였으므로 코뮌의 불법성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합법성의 기분은 이미 개정하기로 선포한 낡은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될 것이 아니라 새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 헌법의 원리에 보통선거의 원리였다. 그런데 이 보통선거의 원리를 입법회의로 하여금 승인케 한 것은 파리 코뮌이었으니, 입법회의는 파리 코뮌의 실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74)

로베스피에르의 연설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공회는 연설문을 인쇄하여 전국 코뮌에 배포하기로 가결하였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였다. 그 실수란, 그가 비난한 의원들의 이름을 밝히라는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비난은 정곡을 찌른 것이고 시의적절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비난은 정곡을 찌른 것이고 시의적절한 것인 만큼 그의 비난에 대하여 뭔가 양심이 찔리는 데가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비난에 대하여 뭔가 양심이 찔리는 데가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비난이 자기를 향한 것이라는 위협을 느꼈다. 만일 로베스피에르가 비난의 대상자들 이름을 밝혔더라면 위협을 느낀 자가 그리 많지 않았을 터인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 반대파의 수를 늘리고 그들의 위기의식을 더욱 격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로베스피에르가 무서웠다. 그가 손을 쓰기 전에 재빨리 선수를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협을 느낀 자들은 온건한 평원파 의원들을 회유하여 다음 날 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를 칠 계획을 세웠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회의 과반수 획득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선수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실수였다.


(179)

따라서 자코뱅의 세 번째 전통은 참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평등주의적 민주의의이며,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자코뱅이 제정한 1793년 헌법의 제5조는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 봉기는 인민 전체에게도, 인민 각자에게도 가장 신성하고 불가결한 의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 수호의 최후 수단으로서의 민중 봉기를 국민의 권리를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코뱅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민주주의의 이상이 어느 정도의 것이었던가를 말해 주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29)

나폴레옹이 왕이 아니라 황제간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르봉 왕가의 왕족들이 루이 16세의 어린 아들을 루이 17세라고 칭하였고, 그가 일찍 죽자 루이 16세의 큰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루이 18세라고 자칭하면서 왕정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그들의 왕정을 부정하면서 다른 왕정을 창업한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스스로 혁명의 아들로 자처하고 있었는데, 혁명이 낳은 왕이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역사상 프랑스인 최초의 군인 황제인 샤를마뉴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사당을 참배했을 뿐만 아니라 샤를마뉴처럼 가톨릭교회의 성별을 필요로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229-230)

그는 교황 피우스 7세에게 제관의 대관(戴冠)을 교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피우스는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을 교회 앞에 무릎꿇게 함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드높일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주재하기 위하여 파리로 향하였다. 1804 12 2일 노트르담 성당에서 성대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대관식은 교황이 제관을 나폴레옹의 머리 위에 씌어주려는 극적인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나폴레옹은 관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일반 관중 쪽으로 돌아서서 제 손으로 관을 제 머리에 위에 얹었다. 그의 제관은 다른 어느 누구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라는 것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자기 손으로 황비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관을 씌워주었다. 이제 나폴레옹의 제위는 이중으로 성별되었다. 하나는 국민투표의 인민의 소리에 의하여 또 하나는 종교의식의 신의 소리에 의하여. 피우스 7세가 나폴레옹에게 걸었던 기대는 하나밖에 실현된 것이 없었다. 그것은 혁명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다시 사용한 것이었다. 1806 1 1일부터 옛 역서가 다시 사용되었다. 이는 혁명의 종결을 알리는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58)

나폴레옹 제국은 족벌 제국이었다. 황제의 형제들과 친척 및 부장들을 위성국가의 통치자로 봉하였다. 그러한 그가 1810년에는 가장 사랑하는 막내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왕위에서 몰아내고 네덜란드를 프랑스에 합병하였다. 루이가 네덜란드의 밀무역을 철저히 단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봉쇄의 성패가 나폴레옹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폴레옹 제국의 모든 정책은 대륙봉쇄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해안 지역들을 프랑스에 합병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고, 심지어 교황령이나 일리리아 지방까지도 무리하게 합병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런데 영국해에 접해 있는 가장 중요한 네덜란드에서 밀무역을 막지 못한다면 대륙봉쇄의 운명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305)

샤를도 형 루이처럼 67세의 홀아비였으나 형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활동적이고 정렬적이고 명쾌한 성격만이 형과 다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력과 사상도 매우 달랐다. 샤를은 왕당파의 두목으로서 헌장을 우습게 여기고, 프랑스 혁명을 악마의 장난으로 믿고, 왕권신수설을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이제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헌장을 준수해야 하는 입헌군주가 되었으니 과연 그가 얼마나 헌장에 충실한 것이며 정당정치의 군주로서의 임무에 성실할 것인가는 매우 의심스러웠다.


(329-330)

그런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경험한 선진 산업국가들은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원인을 미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의 눈에도 명백히 나타난 빈부의 격차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줄이긴 해야 했다. 이런 생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실천에 옮기려는 운동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는데, 이를 사회주의라고 하고 그 운동을 사회주의운동이라 한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은 갖가지 이론과 형태로 19세기 선진 산업국가들의 역사를 색칠한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그렇다.


(341)

이제 국민은 공화정을 확정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는 1815년 이래 한번은 보수적인 또 한번은 자유주의적인 입헌주정을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 자체를 부정하려다가 실패하고, 후자는 프랑스 혁명은 인정하였으나 상층 및 중층 부르주아의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실패하였다. 오를레앙 왕가는 프랑스 혁명이 내세운 국민주권의 원리를 시인하면서도 신흥 부르주아에 의한 권력 독점을 위해 지나친 제한선거를 고집하다가 무너졌다. 복고 왕정은 정통파를 만들어내고, 7월왕정은 오를레앙파를 만들어내어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정치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들이 프랑스의 정치 무대를 차지하는 일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431-432)

파리 코뮌 기간 중 벌어진 공전의 참변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문화와 현대 문명의 중심지 파리에서 어떻게 하여 그런 끔찍하고 야만스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코뮌 직후부터 거기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학의 생명은 해석에 있다고 하지만 파리 코뮌에 대한 해석만큼 오늘날까지 극심한 대립을 보이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파리 코뮌의 해석이 처음부터 유달리 현저한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농후하게 띠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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