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6)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여러 언론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죄를 감추려는 마음 따위 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당시의 감정을 현재 시제를 사용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정확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할 때도 있다. <아담과 이브>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할 때는 야구 모자와 가짜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나사를 뺀 방식과 작품을 감상하는 척할 때 취했던 자세 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다른 절도 사건도 비슷하게 재연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경철 보고서가 수백 건이다.

 

(37)

브라이트비저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성적으로 자극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침대가 가까이에 있으면 좋다. 기둥이 네 개 달린 침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파트너도 옆에 있다면 타이밍이 절묘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빼면 그는 방에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금지옥엽 보살핀다. 온도와 습도가 괜찮은지, 빛은 적절한지, 먼지가 많지는 않은지 세세히 살핀다. 그는 자신의 방이 박물관보다 작품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를 야만적인 다른 도둑들과 하나로 묶는 것은 잔인하고도 불공평한 처사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 도둑이 아닌 조금 색다른 방식의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도 아니라면 예술 해방가라 불려도 좋다.

 

(72-73)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도 처음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8개월 동안 수리공으로 일했다. 1911 8월 어느 월요일 오전 7, 빈센초 페루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작업복을 입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대청소 때문에 박물관은 폐장했고 보안 요원도 대부분 쉬는 날이었다. 페루자는 특별히 중요한 몇몇 작품에 추가로 안전 장치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덕분에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를 들고 나선형으로 된 직원용 계단 아래에 있는 방으로 재빨리 숨어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림을 액자에서 분리한 뒤 백양목 화판(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무 화판에 그림을 그렸다)을 천으로 감싸서 밖으로 들도 나왔다. 페루자는 <모나리자> 말고 다른 작품은 훔친 적이 없다.

 

(102-103)

이처럼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고 브라이트비저는 이야기한다.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초창기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도굴꾼을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역시 예루살렘에서 언약궤를 빼왔고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또 로마는 그리스를 약탈했다. 반달족은 로마의 부를 탐했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에르난 코르테스는 각각 잉카와 아스테카를 파괴하고 강탈하지 않았는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1648년 프라하에서 그림 1,000점을 빼앗아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하사했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훔쳤고 스탈린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훔쳤다. 히틀러는 야심만만한 수채화가였으나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했고 나중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직접 박물관을 지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모두 모아놓고자 했다. 1759년 계몽 시대에 개관한 세계 최초의 국립 미술관인 영국 박물관은 어떠한가. 영국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인 베닌 브론즈와 로제타석은 각각 나이지리아와 이집트에서 약탈했고 엘긴 마블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왔다.

 

(139)

브라이트비저가 내부 액자를 한번 잡아당겨 보니 벨크로 몇 개로 고정한 게 전부다. 벨크로를 뜯어내는 소리가 커다란 전시관에 울려 퍼졌지만 그림은 금세 느슨해졌다. 브라이트비저는 망설임 없이 액자채로 바지 안에 밀어 넣고 셔츠로 덮어 가린다. 바지 앞쪽이 툭 튀어나와 어색하지만 경비원이 이쪽을 쳐다본다 해도 브라이트비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제 재빠르게 몇 걸음만 걸어 타일 바닥을 지나면 마법처럼 바로 문이 나온다.

 

(149)

그럼에도 지구상의 어느 문화에나 예술이 존재하며, 그 형태는 실로 다양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이론가들은 예술이 이토록 널리 퍼진 것이 인류가 자연선택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사실 예술은 짝을 유혹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다윈주의에 부합한다. 예술은 생존의 압박과는 거의 무관하며 여가 시간에 나오는 부산물이다. 인간이 더는 포식자를 피해 도망 다니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도구라고 알려진 대뇌를 이용해 상상력을 펼치고 탐구하며 깨어 있는 동안에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신의 생각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은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고, 진화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151)

많은 도둑이 눈독 들이는 피카소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현대 미술은 예술을 느끼기보다는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티치아노와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슈퍼스타들의 작품 역시 훌륭하고 강렬하긴 하지만 브라이트비저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심지어 다빈치의 작품조차 그저 그렇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가들이 돈 많으 후원자에게 종속되어 그들이 원하는 작품 스타일과 구도, 색감을 구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이 위대한 화가들이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일깨우지 않고 재능에만 의지하는 바람에 작품을 망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재능을 좀 덜하더라도 감정적으로 깊이가 있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197)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브라이트비저가 작품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술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라고 늘 주장해왔지만, 그뤼예르성의 섬세한 융단을 창문으로 던지고 침대 밑에 처박아두는 것은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들은 어떠한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벽에서 잡아채 급하게 액자에서 빼내고 차 트렁크에 실어 덜컹거리는 길을 이동한다. 보안 카메라를 등지고 훔쳤던 약제상 유화는 나무판 세 개가 결합되어 있는데, 다락에서 이미 화판 사이가 벌어지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198-199)

앤 캐서린은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는 브라이트비저의 미학적 안목을 존중했지만, 이 시점부터는 그가 더러운방법을 써서 병적으로도둑질을 했다고 말한다. 한때는 아름다움을 숭배하며 작품 하나하나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던 브라이트비저였지만, 이때부터는 마치 사재기를 하듯 그저 무엇이든 끌어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집에 가져오는 물건 대부분은 앤 캐서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추하기까지 했다.

 

(232)

어미는 다락으로 올라간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들이 도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락을 직접 볼 마음의 준비가 된 건 아니다. 제정신인 사람이 모았다고 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 다행히도 아들과는 달리 다락에 들어서자마자 색감에 취하거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나이만 먹었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애 같은 아들 덕에 인생을 망친 듯하다. 그녀는 방을 보며 전부 훔친 물건이겠구나생각한다. 장물을 은닉해주는 것 역시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300개가 넘으니 시소도 300건 이상일 수 있다. 모욕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결국 파멸할 것이다. 스텐겔은 다락에 있던 예술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을 향한 화살처럼 느껴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235-236)

성 밖으로 던져서 갖고 나온 융단은 독일 국경 옆 84번 국도 도랑에 버려져 있었다. 며칠 수 소변을 보려고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발견했다. 보기에도 귀한 융단인 것 같아 해당 구역 경찰서에 갖다 주었지만 경찰은 융단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가 갖다 버린 값싼 카펫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색이 화려하니 경찰서 휴게실 바닥에 깔아두었다. 융단 위에 당구대를 올려놓고 몇 주 동안이나 밟고 다니다 운하에서 예술품이 대거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프랑스 경찰과 폰데어뮐에게 알렸다. 17세기 융단은 운하에서 나온 물건들을 보관 중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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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은우의 이야기는 우리 몸의 디톡스 시스템이 마비되면 생기는 일을 한번에 보여준다. 안 좋은 식습관이 을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장의 변화가 아이의 컨디션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장 건강이 악화되어 변비가 생기면, 우리 몸속 디톡스 시스템의 출구가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종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되고, 빠져나가지 못한 독소들로 인해 온몸의 세포들에 매연이 많아진다. 매연이 많아지면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세포 중 하나가 면역세포뇌세포이다. 그래서 장 건강이 나빠졌을 때 은우가 감기에 자주 걸리고 멍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한참 발달 중이기 때문에, 성인보다 독소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55-56)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이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공통적인 후기를 전해줄 수 있었을까. 생리통의 발생 기전은 아직 완벽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원인으로 생각되는 물질이 있다. 바로 포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이하 PG)이라는 염증 물질이다. 생리를 할 때 PG는 자궁과 자궁의 혈관을 수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PG가 너무 많을 경우 자궁벽과 혈관이 지나치게 수축하고, 자궁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이 바로 생리통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PG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물질이 존재한다. 바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르겐이다. 그렇다면 생리통을 줄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첫 번째, PG가 생성되는 것을 줄이고, 두 번째, 에스트로겐이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74-75)

세상 뭐 별거 있니.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면 되지라는 메시지가 첫술을 뜨게 만들고, 그 첫술이 뿜어내는 도파민이 우리를 중독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음식 중독을 악화시키는 엄청난 요인이 늘상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바로 현대인의 고질병, ‘스트레스와 바쁨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래를 준비하고 생각하는 고차원의 뇌, 전전두엽의 기능이 급격하게 저하된다. 본능에 충실한 뇌 영역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나에게 도파민을 가져와!’라고 명령한다. 이런 뇌의 작용 앞에서 활기찬 내일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는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다.

 

(119-120)

디톡스를 할 때 물을 충분히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독소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소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소 배출 길 중에 조금 더 흔히 막히는 길이 있다. 바로 을 통하는 길이다. 수용성 독소들이 나가는 소변 길은 신장이 아주 나쁜 사람이거나, 결석이 생기는 환자 외에는 막히는 경우가 잘 없는 반면, 장은 그렇지가 않다. 간에서 장으로 가는 통로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간에서 해독한 물질을 장으로 이동시키는 물질인 담즙이다.

 

(137-138)

현재 장에는 간의 해동 과정을 통해 수용성 물질이 붙은 상태의 독소가 담즙과 함께 흘러와 도착한 상태다. 이때 장이 존재하고 있던 장내세균은 처음으로 이 독소들과 만나게 되는데, 장내세균 중 일부는 아주 기막힌 효소를 가지고 있다. 간이 열심히 해독해서 붙여둔 수용성 물질을 똑 떼어버릴 수 있는 효소다.

이 효소를 가진 균이 많아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장내세균들이 분비한 이 효소들은 독소들을 해독 전 상태로 되돌려버린다. 해독 전으로 돌아간 독소들은 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앞서 말한 담즙의 재활용 통로를 통해 다시 간으로 돌아간다. 실컷 변비까지 해결해서 독소들이 나갈 길까기 다 뚫어놨는데, 장내세균이라는 복병이 독소를 우리 몸으로 되돌려보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193)

우리 몸이 분업화를 통해 이룩한 세포들의 총합임을 배웠다. 가장 작은 생명의 단위인 세포에서 인간의 몸에 이르기까지, 산소와 영양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생명의 법칙을 따르며 산다. 모든 생명의 에너지 발전소가 바로 세포마다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에너지 공장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되는 부산물, 즉 활성산소라 불리는 매연이 나온다. 이 활성산소라는 매연은 단백질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노화를 발생시키는 근간이 된다. 여기서 세포 디톡스의 목표를 세워볼 수 있다.

 

(237)

하지만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 수준만큼이나 다른 유전자를 타고난다. ‘어떤 사람은 평생 콜라와 햄버거를 먹어도 90세까지 건강하게 잘만 살더라’, ‘어떤 사람은 곱창을 한 끼에 10kg씩 먹어도 49kg의 날씬한 몸을 유지하더라라는 특이한 케이스들을 보고 나면 합리화하고 싶은 대한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먹는 정도는 그에 비하면 약과지하며 배달 음식을 시키고, ‘에이, 뭐 꼭 오래 살아야 하나, 적당히 즐겁게 살다 죽으면 도지하면서 오늘의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진다.

이 마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에게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마음들이다. 우리는 내일의 안녕보다 오늘의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눈앞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찮음을 물리치고, 내 몸을 위한 양치질인 디톡스를 시작하려면 이 엄청난 합리화의 유혹을 떨쳐내는 게 필수적이다.

 

(293)

또한 건강한 삶이란 아니면 라는 흑백 논리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을 인지하길 꼭 부탁드린다. “이건 먹으면 안 되나요?”, “이건 이래서 나쁘다는데,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밀가루, 유제품, 설탕, 튀김, 가공식품이 몸에 안 좋다고 해서 평생 이걸 안 먹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를 때 수육과 돈가스 중에 수육을 고르는 것 정도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앞에서 가능하면 육류는 목초육을 선택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돼지고기를 살 때 독소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지방을 적게 섭취하도록 삼겹살보다 목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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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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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은 작년 말부터 유시민 님께서 적극 추천해 주는 책이라서 알게 되었단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읽으시다가 누군가 연상이 되었다면서, 그 누군가의 생각을 알고 싶을 때 침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똑 들어맞는다고 하셨어. 그래서 그 누군가에 대한 책을 출간하셨을 때 책 표지에 침팬지 모양의 심벌을 넣으신 것 같더구나. 그만큼 이 책을 무척 좋게 읽으신 것 같았어. 유시민 님의 추천이다 보니 아빠도 이 책을 리스트에 추가해두고 이제서야 읽게 되었구나.

침팬지라고 하면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어. 그래서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도 지능 높은 침팬지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들도 인간보다 지능이 낮지만, 사회 조직을 이루고 살고 있단다. 제인 구달 같은 분들도 평생 침팬지 등 유인원들을 연구하셨는데 이 책의 지은이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연구에 있어 친밀감을 빼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회성을 연구하였단다.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침팬지들을 연구하면 좋겠지만 이것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그래서 지은이가 선택한 것은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는 동물원에서 연구를 했단다.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어. 우리가 가본 동물원과 차원이 다르게 아른험 동물원은 무척 넓은 곳에서 침팬지들이 무리를 지내고 살기 때문에 정글에서 살고 있을 때의 습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 겨울에만 날씨문제로 좁은 우리에서 지내는 것이 다르지만, 나머지 계절은 밖에서 지낸다고 하는구나.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들이 일 년 중 가장 기쁜 날은 겨우내 우리에 있다가 봄에 우리 밖으로 나가는 날이라고 하더구나. 그 심정 이해가 갈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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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1년 중 침팬지들이 가장 기쁜 날은 바로 겨울 주거지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날 아침이 되면 사육 담당자가 야외 사육장으로 통하는 문을 통보 없이 열어젖힌다. 침팬지들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는 없지만, 건물에 있는 모든 문의 움직임을 소리만으로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집단 전체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반응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집단 별로 나뉘어 야외로 나간다. 비명과 후우후우하는 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광장 여기저기서 침팬지들이 서로 포옹하거나 키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세 마리, 또는 그 이상의 침팬지들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거나 서로의 등에 올라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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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침팬지들은 다툼도 잘하지만 이내 화해도 잘 한다고 하는구나. 화해하는 방법이 영장류마다 다른데, 침팬지는 키스를 통해 화해의사 표시를 한다고 했어. 아른험 동물원에는 23마리의 침팬지들이 있는데... 초창기에는 암컷 중에 우두머리 마마가 리더 역할을 했어. 영장류들 중에 일부는 암컷이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침팬지는 대부분이 힘 센 수컷이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한대. 초창기에는 나이 많은 암컷 마마가 리더 역할을 했지만, 성인으로 성장해서 힘이 세진 수컷 중에 이에룬이라는 침팬지가 조직의 리더가 되었단다.

그들 무리 중에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수컷들은 4마리가 있는데 이들이 나중에 리더를 놓고 권력 다툼을 하게 된단다. 이에룬, 라윗, 니키, 단디가 그들이란다. 그리고 암컷 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는 침팬지들은 앞서 이야기한 마마가 있고, 동성애 기질이 있고 암컷보다 수컷들과 잘 어울리지만 사랑은 나누지 않는 파위스트가 있단다. 그리고 호릴라라는 암컷이 있었어. 호릴라는 젖이 적어 안타깝게도 아기가 몇 번 죽었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개입하여 젖병으로 아기를 키우는 법을 알려주고, 그 이후에는 젖병으로 아기 침팬지를 잘 키웠다고 하는구나.

...

본격적으로 수컷들의 권력 다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한동안 이에룬이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라윗이 조금씩 도전을 해봤단다. 다른 암컷과 이에룬 앞에서 교미를 하는 등 리더인 이에룬 앞에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이런 행동을 이에룬이 용납하지 않아서 싸우게 되었지. 라윗은 아직 이에룬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다 보니, 이에룬 눈치를 보면서 다툼이 있어도 먼저 화해 체스처를 보였어. 라윗의 권력 도전은 두 달 동안 이어졌어. 다른 침팬지들도 이에룬과 라윗이 권력 다툼을 하는 것을 알고 어디로 줄을 서야 하는지 망설이는 모습도 나타났어. 그런 와중에 수컷 서열 3위였던 니키가 라윗 쪽에 붙으면서 권력 중심의 추가 라윗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고, 결국 72일간 이어진 권력 다툼은 라윗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그래서 서열 1위가 라윗, 라윗을 도와준 니키가 서열 2, 이에룬은 서열 3위로 밀려났어. 이에룬이 서열 3위로 밀려나면서 억울해하며 울부짖는 듯한 사진이 책에 있는데, 침팬지들도 권력에 대한 탐욕은 대단한 것 같구나. 권력에 대한 탐욕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서열 순으로 인사를 하는 침팬지 사회의 특징상 이제 이에룬이 라윗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 했어. 조직의 리더가 된 라윗은 스스로 보호자임을 자청했단다. 암컷들도 모두 라윗을 지지했어. 라윗은 누가 보더라도 리더처럼 보였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동물원 견학을 온 학생들에게도 누가 일인자인지 물어보았는데, 라윗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하는구나.

=======================

(185)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 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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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권력은 영원하지 않단다. 니키가 권력을 노리고 있었어. 니키 혼자 힘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 이에룬과 연합하려고 했어. 이에룬도 자신의 권력을 빼앗은 라윗을 좋게 생각할 수 없었지. 이에룬과 연합을 한 니키가 라윗에 도전을 했고, 결국 일인자의 자리에 올랐단다. 하지만 니키는 암컷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대. 암컷들은 여전히 라윗을 지지했다는구나. 민심을 얻지 못한 리더는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없지. 인간 세계나 침팬지 세계나. 리키가 권력을 잡았지만, 지지를 받지 못했어. 그렇게 되자 리키는 공포 정치를 시작했단다. 민심을 얻지 못하는 리더는 강압적으로 군림하려는 것도 인간세계와 비슷하구나. 자꾸 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유시민 님이 이 책을 읽고 왜 그 사람을 떠올렸는지 알겠구나. 리키보다 전직 대통령, 아니 전직 리더인 이에룬에게 존경 표시를 하는 침팬지들이 더 많았어. 리키는 자신이 권력을 빼앗은 방법이 다른 침팬지와 연합했던 거잖니? 그래서 리키는 이에룬과 라윗이 가깝게 지내지 못하도록 철저히 간섭을 했다는구나. 그들의 연합은 곧 자신의 권력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

 

2.

이 책은 수컷들의 권력 다툼 이외에는 침팬지의 사회 생활과 성생활 등 인간으로 따지자면 풍습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어. 각자 뚜렷한 개성을 자기고 있다고 했는데, 그들은 다른 동물들과 같은 취급을 하면 안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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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침팬지들은 각기 나름대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얼굴 생김새의 특징으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듯 침팬지들도 서로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각자 걷는 법, 잠자는 자세, 그리고 앉는 모양새에도 특징이 있어 머리를 돌린다거나 등을 만지는 것만 보고도 어떤 놈인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각각의 침팬지들이 집단 내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이런 차이는 사람들을 특징 짓는 데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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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은 수컷들과 달리 서열 정리가 간단했다는구나. 암놈의 서열 구조는 일반적으로 나이에 의해서 정해지고 충돌도 적다고 했어..

그들의 사회성에 대해 이 정도로 책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으나, 에필로그에서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충격이라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어. 아직 수컷들의 권력 투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란다. 니키가 이에룬과 연합해서 권력을 잡은 이후 니키는 이에룬과 라윗 사이를 간섭하여 연합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늘 감시를 할 수 없었는지 이에룬과 니키의 갈등이 고조되다가 이에룬은 니키의 지지를 철회했단다.

이제 니키는 라윗과 일대일을 해야 하는데, 라윗이 니키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라윗은 다시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어. 니키는 라윗에 굴복하고 라윗은 다시 일인자가 되었단다. 하지만 라윗의 권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10주 후 니키와 이에룬이 재결합 했단다. 이러고 보면 이에룬이 권력의 키를 잡고 있는 것 같구나.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 힘이 세지 못해 일인자가 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자를 일인자로 만들 수는 있는 킹 메이커 같았어. 니키는 이에룬과 재결합하자마자 일을 벌였어. 니키와 이에룬은 라윗을 힘을 누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야밤에 잔인하게 죽이고 말았단다. 쿠데타를 일으킨 거야.

이 쿠데타는 밤에 일어났기 때문에 동물원 관리인도 알 수 없어서 막을 수가 없었어. 아침이 되자 다른 세상이 된 거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파위스트는 니키를 공격했지만, 죽은 라윗이 돌아올 수는 없었단다. 이때 그 동안 조용했던 단디도 이 권력 다툼에 끼어들 만큼 성장했단다. 단디는 이에룬에 접촉하려고 했고, 니키는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했단다. 둘이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거지. 시간이 흐르고, 단디와 이에룬은 결국 반니키 연합을 구성했단다. 그리고 또 다시 권력다툼이 일어났고, 니키가 도망가다가 그만 물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니키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었다는 거야.

앞서 이야기했듯이 니키는 공포 정치를 했었잖아. 아무도 그를 살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지. 결국 단디가 일인자가 되었단다. 권력 다툼으로 두 마리의 수컷 침팬지가 목숨을 잃었단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죽인 것을 역사에서 심심치 찾을 수 있잖니..  침팬지들의 권력 다툼을 보니, 인간의 정치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지은이도 침팬지의 정치도 인간만큼 건설적이라고 평가했단다. 침팬지와 인간은 동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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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313)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 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른험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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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침팬지 폴리틱스>를 이야기해 보았단다. 책에는 침팬지들의 많은 사진들이 담겨 있단다. 침팬지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상당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어. 그들을 다른 동물들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고, 사람과 같은 취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앞서 이야기했던 침팬지가 주인공인 <혹성탈출> 시리즈 중에 보지 않은 시리즈를 한 편 보고 싶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동물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챔팬지를 보고 즐거워한다.

책의 끝 문장: 정치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주장에 의문을 던지게 해준 한 편의 정치적 드라마를 볼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올바른 시공간에 내가 존재했던 것에……



집단생활의 역학은 아른험 집단에서 일어난 지도력의 변화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변화 과정은 수개월에 걸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리더십의 변화가 단 몇 차례의 투쟁으로 결판나지 않았다. 내 연구는 결코 눈에 띄지 않게 계속되는 사회적 책략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최종적으로 리더의 추방으로 이어진다. 집단의 안정성은 그 토대부터 천천히 무너진다. 개체들은 제각기 음모에 찬 감시망 속에서 자기가 완수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리더는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단독으로 자기의 리더십을 집단에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지위는 부분적으로 다른 침팬지에 의해 주어진다. 리더, 즉 우두머리 수놈도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감시망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P36

침팬지의 표정은 각각의 특정한 기분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즐거운 기분과 불안한 기분 사이의 차이는 이빨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로 추측할 수 있다. 침팬지는 놀라거나 괴로울 때면 즐거울 때보다 훨씬 길게 이빨을 드러낸다. 보통의 구경꾼에게 입을 크게 벌린 표정이 즐거워서 웃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침팬지의 경우는 웃을 만한 일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엄마가 제멋대로 방치해서 외톨박이가 된 새끼가 집단 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구성원과 싸우게 된 제법 나이든 침팬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서열이 높은 침팬지는 좀처럼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 P49

이런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인 창의성은 부차적인 발전이다.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재주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인 능력도 그렇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 P76

큰 소란이 순식간에 시작된 것처럼 평화도 그렇게 찾아온다. 이에룬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침팬지들이 서둘러 그의 곁으로 와 인사를 한다.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집단적 경의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신하 몇쯤은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무시한다. 이 같은 ‘의례(formalities)’가 끝나면 모두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고 새끼들도 어미에게서 떨어져 멀리 돌아다니며, 이에룬은 편안한 자세로 암놈들의 털고르기에 몸을 맡기거나 요나스나 바우터 같은 새끼들과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 새끼들은 늘 두목과 장난 싸움을 할 태세가 되어 있다. 새끼들은 이에룬에 대한 경의는 까맣게 잊어버린 양 그를 쫓아다니며 모래를 뿌리거나 나무 막대기를 집어던진다. - P127

내 경험에 의하면 장성한 수놈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난 위협 과시의 경우, 열 번 중 네 번 정도가 이에룬이 비명을 지르고 라윗이 빰을 강하게 후려치는 것과 같은 실제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이 같은 사건은 대개 위협, 추적, 비명 같은 일련의 행동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놈들 사이에서 서로 때리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한 번 가격을 했다고 그 자체로 싸움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다툼일 때는 실제로 맞수끼리 서로 붙잡고 물어뜯는다. 백 번의 충돌 가운데 한 번 이하, 정확하게는 수놈까리의 대결 중 0.4퍼센트만이 진짜 결판을 내는 결투에 이른다. 빈도는 낮지만 결투의 위협은 늘 상존하고 있고, 바로 이런 점이 우위 다툼 과정의 긴장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 P142

털고르기, 눈길 맞추기, 평화 협정, 중재 등을 생각하면 화해라는 주요 테마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행동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분명 집단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여러 세력에 대한 건설적인 균형추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화해 행동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인간이나 동물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여되었지만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무심했다. - P171

서열을 결정짓는 원리를 성별에 따라 다르다. 수놈 사이에서는 연합이 우열을 결정한다. 수놈이 암놈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주로 육체적 우월성에 기인한다. 한편, 암놈끼리의 서열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성격’과 ‘나이’다. - P270

다른 침팬지들을 위해 가지를 붙들고 있어주는 행위는 연합 형성 행위 그 이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도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뭇잎과 고기를 나눠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가 성적 특권을 양보한다거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보다는 선뜻 이뤄질 수 있는 관용적 행위라고 여긴다. 물론 이 두 가지 형태의 협력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침팬지 수놈은 물질적인 것을 나눌 때에는 놀랄 정도로 너그럽다. 자기 손에 있는 물건을 암놈들이 낚아채는 것조차 용인할 정도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적 행동에서도 나타난다(라이벌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지만). 그들은 도움을 줌으로써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이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그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아내는 것이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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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 - 나의 이야기로 우리를 노래하다
테일러 스위프트 지음, 헬레나 헌트 엮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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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에는 팝송을 들어도 예전 팝송을 듣곤 하지만, 아빠도 한 때는 최신 팝송도 찾아 듣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뜸해지고, 거의 마지막으로 최신 팝송을 찾아 들었을 때 알게 된 가수가 테일러 스위프트가 아니었나 싶구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데뷔한 지 비교적 얼마 안 되었을 때 발표했던 노래들을 즐겨 들었던 것 같아. 아직도 아빠 핸드폰에 스위프트의 노래들이 저장되어 있단다. 가끔 차에서 랜덤으로 나오는 노래 리스트 속에 흘러나와서 너희들도 들어봤을 거란다. Love story, Begin Again,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등등그리고 라이브 공연에서 부른 리바이벌 곡 Bette Davis eyes…

그 이후에 발표한 노래들은 잘 모른단다. 예전에 나이 드신 분들이 왜 옛날노래만 듣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나이를 먹게 되면 추억이 담긴 노래들을 찾아 듣는 것 같구나. 다행히 너희들이 즐겨 듣는 최신 음악을 같이 듣곤 해서 가요는 아직 시대를 따라 갈 수 있을 것 같구나.. ㅎㅎ

아무튼 예전에 테일러 스위프트를 즐겨 들었기 때문에 가끔 매체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뜨게 되면 잘 지내나? 하는 생각에 영상을 보기도 한단다. 몇 년 전에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정치적 성향도 우리 편인 것 같아서 다행이더구나. 이 정도면 약간의 팬심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약간의 팬심이 오늘 소개해 줄 책도 읽게 만든 것이란다.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책이 인터넷 서점 초기 화면에 떴을 때부터 관심을 갖던 책이었단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단다. 말도 똑부러지게 잘 하잖니

 

1.

이 책을 위해서 따로 쓴 것은 아니고, 데뷔 이후 많은 매체에서 진행한 인터뷰나 콘서트 등 행사에서 했던 말들을 한데 모은 책이란다. 그래서 지은이 옆에 엮은이가 따로 있었구나. , 아빠는 이런 형태의 책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데단편적인 말들과 생각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보니 연결성도 없고 말이야. 지금은 엄청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겠지만,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런 짜깁기 책 말고 정식 자서전 같은 책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것 같구나. 12살에 작곡을 했고, 13살에 계약을 했대. 그 나잇대와 어울리지 않는 컨츄리 음악으로 데뷔를 했는데, 아빠가 음악을 잘 모르지만 정통 컨츄리 음악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음악 장르와 섞인 퓨전 스타일의 컨츄리 음악 같았단다. 아무튼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어. 그렇다 보니 어린 나이의 천재성으로 홍보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는지,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런 점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실력으로만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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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 나이를 홍보 수단으로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걸 제가 남보다 뛰어난 점이라고 내놓고 싶지 않았죠. 홍보는 음악에 맡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열일곱 살이라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헤드라인에 오르기를 바란 적도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음악이 승리를 따내길 원했거든요. 실상은 열일곱 살이라는 게 장애물에서 가까웠어요. 라디오방송국에, 또 그 라디오를 듣는 중년 청취자들에게 실력을 입증해야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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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가장 많은 주제가 사랑이잖니. 직접 작사도 하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단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아니라고 했어. 자신의 삶 자체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어. 말하기 연습도 따로 했는지, 말도 멋있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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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제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실연이 아니에요. 제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사랑도 아니에요. 제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제 삶에 들어오는 고유한 개인이에요. 저에게 정말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도 왠지 그에 대해 노래 한 곡조차 쓸 수 없던 적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제 인생에 2주일만 들어왔다 나간 사람을 만나고 앨범 한 장을 통째로 쓸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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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정말로 그냥 제 삶에 대해서만 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내놓으면 그 노래가 바로 다른 여자아이의 방에서 울려 퍼지고 제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차 안에서 재생된다는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까…… 인간으로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타인과의 연결이라는 실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음악이 바로 그런 궁극적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연결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든 음악을 틀면 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가 있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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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서 정치적 발언이나 인권에 대한 발언도 하는데 올바르면서도 시원하게 이야기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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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예전에는 공공연하게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일은 삼갔어요. 그렇지만 지난 2년간 제 인생과 세계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거치고 나서 지금은 생각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저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인권을 옹호하는 후보에게 제 표를 던질 거예요.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인권을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LGBTQ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고, 성적 지향이나 젠더를 근거로 어떤 형태의 차별도 가해져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 눈앞에서 이 나라의 유색인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계적 인종주의는 소름끼치고, 역겨우며, 사방에서 횡행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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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생각나는구나. 책도 보고 영상도 찾아보고 그랬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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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저에게 아름다움은 진지함이에요. 아름다움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외모와 무관하게 너무 웃겨서 아름다운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남을 웃기는 일에 진심이라서요. 아니면 정말로 감정적이라서, 우울하고 사려 깊고 금욕적이라서, 그런 자기 자신에게 진지해서 아름다운 사람도 있어요. 군중 속 어떤 사람이 너무 행복해서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면, 빛나는 진심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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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두려울 게 없다는 건, 인생이 예측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는 뜻이에요. 대처하는 방식이 모든 걸 좌우해요. 나에게 던져지는 것과 주어진 것과 빼앗긴 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리고 두려울 게 없다는 말은 겁을 모른다거나 상처로부터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두려울 게 없다는 건 무서운 것이 있더라도 꿋꿋이 자기 삶을 살아내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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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터뷰나 발언을 모아 놓은 책이다 보니, 좋았던 문장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구나. 오랜만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한번 찾아 들어봐야겠구나. 최근에 발표한 곡으로…^^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열한 살 아니 열두 살 때쯤, 부모가 운영하던 펜실베이니아의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에서 처음 기타를 배운 그 순간부터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미지 메이커이자 스토리텔러였다.

책의 끝 문장: 이제 저는 6년 전보다 더 사람들을 신뢰하게 됐어요.



작곡을 시작한 이유가 뭐냐면,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거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마다 그냥 혼자 이런 말을 하게 됐어요. "괜찮아, 언젠가 이걸로 곡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뇌를 훈련시켰던 것 같아요. "아파? 아픔에 대해서 노래를 쓰자. 뭐야, 주제 못 할 감정? 그걸로 노래를 만들자." - P27

음반 계약을 따내려고 할 때는 절대로 "제 목소리는 유명한 누구누구와 꼭 같아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절대로 레이블에 그 말은 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쪽에서는 "글쎄, 뭐, 우리한테는 어차피 그런 거물 아티스트가 많이 있어요-그러니까 그쪽과 계약할 필요는 없겠네요"라고 할 거예요. 젊은 아티스트라면, 독창적인 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야 해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소리 말이에요. - P39

저는 구제 불능 낭만주의자로 분류될 거라 생각하는데, 여러분도 그럴 것 같아요. 여기 계시잖아요.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제, 그러니까 답이 없는 낭만주의자들의 난제는 뭐냐 하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안녕, 하고 첫인사를 할 때는 마술에 걸린 것 같아서 언젠가 그 첫인사가 작별 인사가 되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누군가와 첫 키스가 마법처럼 근사할 때도 마지막 키스로 변할 날이 올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요. - P61

제가 잘못한 일이 있거나 저한테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찾아내면 얼마나 비싼 값으로 팔릴까,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서워져요. 그러니까 어떤 순간에는 정말로 겁이 날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제 호텔방 창문으로 누가 사진으로 찍으려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럴 때요. 방에 들어가면 무조건 블라인드를 치고 살아야 해요. 그런 부분이 가끔 실감나서 울컥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잡지 <TMZ>의 누군가가 제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제가 뭘 잘못 했나 찾고 있을 거예요. - P164

삶을 살아가며 모든 인간과 사물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려는 욕구가 우리에게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단순화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냥 선하거나 그냥 악하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최악의 자아와 최고의 자아, 깊디깊은 비밀과 디너파티에서 즐겨 떠벌리는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짜인 모자이크입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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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

하기 좋은 말로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노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돌지는 않는 것 같다. 봉사라는 게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봉사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한 관계로 그만하면 내가 해야 할 봉사활동은 다했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32-33)

요즘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주목받고 있는 모양인데, 도서관에 가면 틀림없이 아직 갖추어놓지 않았거나 있어도 누가 냉큼 빌려갔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같은 작가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빌려올 작정으로 쪽지에다 써놓는다. 책을 사기에는 이미 내가 버린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가능하면 책을 사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알 수 없다. 나는 아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할머니가 되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 이 시기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기 마련인지라 나의 독서 생활 역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41)

이 내용은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윤철희 옮기, 을유문화사)에 나온다. 이 책에 의하면 <두 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증 그 외의 많은 작품에서 하느님 찜쪄먹을 것처럼 기독교적 신앙심을 강조했던 톨스토이가 사창굴에 자주 드나들고 하녀들을 수시로 추행하고도 언제나 남녀 교체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으며 여자들을 남자들과는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 이런 재수탱이 똘쓰또이. 내가 그 두꺼운 <전쟁과 평화>를 모조리 다 읽고, 수많은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성 반듯하고 인격이 아주 높을 거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보냈는데, 자기 어린 아내하고도 매일 불화하고 죽을 때도 기어이 집을 나와서 기차역에서 죽었던 것이다. 아이를 열셋이나 낳아놓고 자기 잘난 맛에 농지를 농노에게 배분해야 한다고 난리치니 어느 마누라가 좋아할까?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 없네.

 

(73-74)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이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자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

 

(90)

비단 부부간의 신의만이 의리가 아니다. 부모 자신 간의 관계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정말 철없는 부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방치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발생하지만,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자식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면 내 부모의 안부를 묻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까지는 안 하더라도 근황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게 사람됨의 근본일 터이다. 요새는 부모가 장수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식도 나이들어가다보면 부모 자식 간의 감정적 정은 줄어들지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리가 있는 것이다. (사실 노노(老老) 케어 현상은 사회적 문제이다.) 이렇게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가 중요하다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의리에 있다 하겠다.

 

(96)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이들어갈수록 모든 면에서 무심해지는 것 같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 빼고는 일상생활에서 여자보다 잘하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오죽했으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남자가 늙으면 두부 만 모보다 쓸데가 없다했을까.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언제나 대우받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보이고, 늙어서도 서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자기들끼리 가진 술자리에서도 끝에는 다툼으로 끝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여자들의 모임에는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있고, 서로 돌보고 위로하는 관계가 되어가기에 나이든 지금이 여자들의 모임이 훨씬 더 좋다. 의리를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유능해야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고 서로를 돌보는 면에서도 여자들이 유능하다. 알고 보면 의리라면 여자인 것이다.

 

(113)

나는 이제 할머니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40 중반을 넘고 50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유능하지 않으면 평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115-116)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같이 죽거나 아니면 둘이 동반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한 자연사로 같이 죽는 일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죽고 며칠 사이에 다른 한쪽이 죽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때는 둘 다 아주 연로하여 실제로 더 딱한 경우일 수도 있다.

 

(158-159)

길을 지나다니면서 보면 할아버지들은 뚱뚱한 사람들이 드문 편이다. 그런데 목욕탕에 온 할머니들은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기에 좀 답답하다. 다리와 팔은 보통인데, 복부가 숨쉬기도 어려워 보이는 분들이 많다. 이것은 아무래도 호르몬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살이 찌면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경우가 많고 관절염 약을 먹으면 살이 더 빨리 찐다. 게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체질이 바뀌어 알레르기라도 발생하면 피부과 약을 먹게 되고, 이 피부과 약이 또 비만을 불러온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87)

내가 어렸을 때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없었던 것 같다. 길을 지나다가 이웃이나 친구 엄마를 만나면 숙이 저어메~!”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 인사였다. 그러면 그분은 오냐~” 이렇게 인사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우스운 생각이 든다. 숙이 저어메라니(그러니까 이것은 누구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렀던 것이다). 집에 손님이나 친척이 오면 고개만 숙여서 절하거나 친척의 호칭(‘삼촌~’이라거나 이모~’ )을 한번 불러보는 것으로 인사가 끝났다. 그러니까 호칭이 곧 인사였던 것을 알 수 있겠다.

 

(193-194)

따지고 보면 여자들이 아가씨에서 아줌마로 불릴 때쯤 얼마나 심정적 갈등이 많았을까. 당연히 결혼도 했고 적당히 나이들었으면 아줌마로 불려도 그러려니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왜 이게 또 쉽게 받아들여지질 않는 겐지. 게다가 요즘엔 나이는 제법 들었는데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모르는 사람을 불러야 할 때는 꽤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결혼하고도 아이를 안 낳은 사람도 있는데, 장사하는 사람 중에 손님에게 무조건 어머니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도 엄청 바뀌어서 아무나 어머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예전에는 당연히 저 정도 외모를 가졌으면 아주머니나 어머니로 불려도 될 것 같은, 시대가 인정하는, 요즘 애들 말로 국룰적 호칭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면에서 이게 맞나?’ 자신의 상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213-214)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의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235)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다 평온하고 별일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정도의 소소한 불편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 사는 집에 수해나 화재가 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가 크게 나거나 갑자기 심각한 질병의 선고를 듣거나 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러니까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제발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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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0-13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의리에 있다는 말씀 깊이 공감합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bookholic 2024-10-13 23:33   좋아요 1 | URL
^^ 고맙습니다... 주말이 휘리릭 가버렸어요..ㅠㅠ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