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1)

취리히는 늙어가기에 좋은 도시다. 죽기에도 좋다. 유럽의 나이 지형도 같은 게 있다면 분명 다음과 같이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은 젊음을 위한 곳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위기, 어디선가 풍겨오는 대마초 냄새, 마우어파크에서 맥주를 마시고 풀밭에서 뒹굴거리는 사람들, 일요일의 벼룩시장, 가벼운 섹스…… 그 다음에는 빈이나 브뤼셀의 원숙함이 자리한다. 느려지는 박자, 안락함, 전차, 적절한 건강보험,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약간의 경력 쌓기, 유럽연합의 지루한 행정직 일자리. 그래, 좋다, 아직 늙기 싫은 사람들을 위해서는-로마,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맛있는 음식과 훈훈한 오후는 교통, 체증, 소음, 약간의 무질서를 상쇄할 것이다. 젊음의 막바지에 이른 이들에게는 뉴욕을 추가하겠다. 그렇다. 나는 그곳을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대서양 너머로 건너간 유럽 도시로 간주한다.

 

(73-74)

향을 기록하는 장비가 없다는 사실이 진정 놀랍지 않은가? 실은 하나가 있긴 하다. 기술보다 앞서 존재한 단 하나의 도구,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도구. 그것은 물론 언어다. 당분간은 언어 말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향기를 말로 포착해 또다른 노트에 추가해야 한다. 우리는 묘사해봤거나 배교해본 향기만을 기억한다. 놀라운 점은 이런저런 냄새에 대한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혹은 아담은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등의 이름이 있는 색깔과는 다르다. 향기는 언제나 비교를 통해, 묘사를 통해 인식된다. 제비꽃 냄새가 난다. 토스트 냄새가, 해초 냄새가, 비 냄새가, 죽은 고양이 냄새가…… 하지만 제비꽃, 토스트, 해초, , 그리고 죽은 고양이는 향기의 이름이 아니다. 이 얼마나 부당한가. 아니 어쩌면 이 불가능성 아래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징조가 숨어 있는지도……

 

(79)

가만히 앉아서 인생 끝자락에 여기에 온 사람들과 함께 흘러가는 나의 불가리아 과거를 바라본다. 노인들은 언제나 나를 매혹한다. 나는 어렸을 때 노인들과 함께 살았다. 조부모와 더불어 자란 우리는 그들과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다른 한 세대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바로 우리 부모들. 이제 나도 그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했음을 깨닫는 지금, 나의 매혹에는 또다른 동기도 있다. 죽음을 직면하고 삶에서 계속 멀어지면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구해낼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기억으로라도, 그러고 나면 그 개인적 과거는 다 어디로 가는가?

 

(169-170)

인생(과 시간)이란 얼마나 도둑 같은가, ? 얼마나 강도 같은가….. 평화로운 카라반을 매복 공격하는 악랄한 노상강도보다 더 악랄하다. 그런 노상강도들은 돈 가방과 숨겨둔 황금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당신이 유순하여 실랑이 없이 재물을 내놓으면 다른 것-목숨, 기억, 심장, 생기-은 빼앗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이나 시간이라는 이 강도는 어느덧 다가와 모든 것-기억, 심장, 청력, 생기-을 앗아간다. 심지어 고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손에 넣는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그 와중에 당신을 조롱하기까지 한다. 가슴을 축 늘어지게 하고, 엉덩이엔 뼈만 남게 하고, 허리를 굽게 하고, 머리칼을 성긴 백발로 변하게 하고, 귀에서 털이 자라게 하고, 온몸에 점을 뿌려놓고, 손과 얼굴에 검버섯을 돋게 하고, 앞뒤 안 맞는 말을 지껄이지 않으면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게 하고, 모든 말을 빼앗아 아둔하고 망령 든 사람이 되게 한다. 그 개자식은-인생, 시간, 노년 다 똑같다, 똑 같은 쓰레기, 똑 같은 깡패다. 그 개자식은 처음에는 적어도 공손해지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솜씨 좋은 소매치기처럼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도둑질하는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작은 것들을 훔쳐간다-단추 한 개, 양말 한 짝, 가슴 왼쪽 윗부분의 미세하게 찌릿한 통증, 몇 밀리미터쯤 두꺼워진 안경, 앨범 속 사진 세 장, 얼굴들,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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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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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에 강인욱 님의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이란 책을 읽고 예상했지만 고고학이라는 분야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숨겨져 있던 옛 이야기를 읽는 것은 어렸을 때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 그래서 강인욱 님의 책 두어 권을 더 구입했는데, 그 중에 한 권을 이번에 읽었단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어떤 것에 대한 기원을 찾는 것. 그것이 고고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것에는 유형적인 것도 있고, 무형적인 것도 있고지은이 강인욱 님이 그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알게 된 어떤 것들의 기원과 유래를 정리해서 이 책을 냈다고 하는구나. 세상 모든 것이라고 것이 한편으로 산만하고 주제가 일관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 다룬 것은 모두 우리 인간들이 즐기고 사용하고 먹던 것들이니 인류라는 공통점이 있구나.

 

1.

이 책에서는 잔치, 놀이, 명품, 영원 네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이야기해주었단다. ‘잔치에서는 먹거리에 대한 기원을 이야기해주었어. 주로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음식과 술을 소개해 주었단다.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 상어고기, 해장국을 이야기 주었단다. K-Food라는 말로 한식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요즘이라 더 알맞은 주제인 것 같구나. 그런 김치를 맛있게 즐기면 되는 거지이웃나라 중국은 자신이 원조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그러면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미움이나 받지. 김치는 남한과 북한이 각각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더구나. 그것은 원조가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치를 저장음식으로 만들어 겨울을 나는 지혜를 높이 평가했다는구나. 인류문화유산은 누가 원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를 따지는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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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

한국김치는 2013년과 2015년 각각 남한과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선정 심사를 위해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는 김치라는 무형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려서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보고서에는 김치의 역사가 1,000년 정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기간은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원조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다. 이는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붙인 타이틀, ‘김장 :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따지지 않았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를 나누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승자는 불명한 원조를 큰 소리로 주장하는 자가 아니었다. 세계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치를 재발견해는 자가 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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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먹거리에 진심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한단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데, 해장국도 그렇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가 다른 나라의 해장국이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는 해장국도 참 다양하고, 해장국을 먹으면 뜨거운 것을 먹으면서도 속이 시원하고 편안함이 느껴지거든요즘 아빠가 술을 거의 먹지 않아서, 숙취를 깨우는 해장국을 먹은 지 오래되었지만,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 식사로 먹어도 아주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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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해장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만큼해장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아예해장국이라는 음식이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에서 해장국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사회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회식을 한 다음날이면 으레 함께 술자리를 한 이들 중 한 명이오늘은 해장국이나 할까?” 하며 전날 멤버들을 다시 불러내어 합동으로 숙취 해소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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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놀이에서는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 고양이를 이야기해주었단다. 축구의 기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중국의 3200년 전 유적에서 공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중국이 축구의 기원이라는 것이 통설이라고 하는데, 왜 오늘날 중국은 그리도 축구를 못하는지…^^

반려 동물의 대표격인 개와 고양이에 대한 기원도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야생 늑대가 개로 진화하는 것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1950년대 러시아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라는 사람은 온순한 여우들을 교배하여 20년만에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여우들이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그러니까 늑대들도 그런 식으로 짧은 시간에 온순한 개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고양이는 자신이 집주인양 행동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대에도 고양이를 숭배하곤 했다는구나. 고양이들의 도도한 행동이 그 때부터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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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인간의 숭배 대상이었다. 이집트 선왕조인 기원전 3700년경의 무덤에서는 고양이 뼈가 발견되었는데, 무덤에 묻히기 4~6주 전에 부러진 뼈를 치료받은 흔적이 있었다. 살아생전에 인간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뜻이다. 수많은 이집트인들의 무덤에서는 무덤 주인의 미라와 더불어 수많은 고양이 미라가 함께 발견되었다. 심지어 쥐 미라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양이의 먹잇감인 쥐를 함께 묻은 것으로 그만큼 고양이를 극진히 대우했다는 뜻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바스테트가 고양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역시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숭배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죽이면 사랑에 처한다는 법이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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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명품에서는 석기, 실크, 황금, 신라 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 지구의 기후 변화가 고고학에서 악영향을 주는지 처음 알게 되었단다. 하기야 어디에 좋은 영향을 주겠니.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정말 걱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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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하지만 사정이 급변 중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영구동결대 얼음이 녹아버리면서 알타이 지역 문화유산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황처럼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후나 환경오염으로 해서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역사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문화유산은 비단 발굴이 완료된 것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깊은 땅속에 매장되어 있어 언젠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물들도 우리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말없이 사라지는 유물들이 많아질수록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밝혀줄 증거들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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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번째 영원에서는 벽화, 추모, 미라, 발굴 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이번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좀더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고고학에 대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책인 것 같았어. 기억력만 좋다면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보따리를 갖게 되는 것이지만,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이미....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19년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러시아 동료 고고학자가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책의 끝 문장: 앞으로도 흥미진진한 고고학자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야생 늑대는 어떻게 개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0년대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시베리아에서 사나운 은여우를 길들이는 실험에 착수한다. 그는 일군의 은여우 중에서 비교적 온순한 여우들을 골라 교배를 했다. 그 결과,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인 20년 만에(6세대를 거친 후)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행동을 하고, 형태적으로도 꼬리가 위로 말리는 오늘날의 개와 비슷한 모습을 한 여우를 키워냈다. 20년 정도의 짧은 기간 안에 유전자 수준의 변화가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다만 길들여진 은여우의 호르몬은 야생의 은여우와 차이를 보였다. 벨랴예프의 연구로 늑대의 유전자에는 이미 인간의 반려동물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인간을 만나면서 발현되었음이 밝혀졌다. - P163

미라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부패하기 쉬운 내장을 빼내고 피부는 탈수를 시켜서 보존 처리를 하는 것이다. 먼저 콧구멍으로 갈고리를 집어넣어 뇌 속을 긁어 뇌수를 빼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 다음으로는 갈비뼈 밑에 구멍을 내서 장기를 빼내어 카노피라고 하는 별도의 단지에 넣는다. 단 저승에서 심판을 받을 때 필요한 심장은 부적과 함께 제자리에 다시 넣어둔다. 그 다음에는 몸에서 수분과 지방 성분을 빼내는 탈수 작업을 거친다. 단순한 탈수가 아니라 몸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길고도 세심한 작업이다. 얼마 전 3,45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35일간 건조를 하고 35일 간 군대를 감는 등 총 70일 뒤 소요된다고 했다. <창세기> 1장에도 이집트 정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죽자 40일간 미라를 만들고 70일동안 애도를 했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파피루스 속 기록과도 대략 비슷하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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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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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은 <나의 돈키호테>라는 책이란다. 몇 년 전에 Jiny도 재미있게 읽은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님의 최신작이란다. 책 표지가 화사하고 밝은 표정의 청소년들의 모습이 책의 성격을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듯하구나. 책의 제목이 <나의 돈키호테>인데, 돈키호테는 너희들도 어렸을 때 동화로 각색한 것을 읽었을 거야. 아빠는 10년 전쯤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완역본을 읽었단다. 엄청나게 두꺼운 책 두 권짜리였는데, 읽고 나서 뿌듯함이 아직 기억에 있구나. 돈키호테는 완역본으로 한번 읽어볼 만하니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의 제목을 왜 <나의 돈키호테>라고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펼쳤단다.

 

1.

주인공 진솔. 나이 서른. 방송국 PD를 그만두고 엄마가 살고 있는 고향 대전에 내려왔단다. 그냥 대전이 아니라 노잼대전이라고 자학하듯 이야기했단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특별히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하여 노잼 도시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단다. 오죽하면 빵가게가 가장 유명하겠냐는 말도 본 적이 있는 것 같구나. 성심당이라는 빵가게인데, 이 책에서도 성심당이 소개되었어. 아빠도 두어 달 전 대전에 결혼식에 갔다가 성심당에 한번 가보았단다. 너희들과 함께 먹을 빵을 사기 위해여전히 엄청난 대기줄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기차 시간 전에 간신히 사 올 수 있었지. 아무튼 주인공 진솔이 대전에 오면서 소설이 시작한단다. 대전에 머물면서 유튜브를 하려고 하는데, 방송국 PD의 경험이 있지만 유튜브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어.

학창 시절을 대전에서 보낸 진솔은 15년전 중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단다. 동네 비디오 가게의 주인 아저씨 돈 아저씨와 일당들이 만든 라만차 클럽. 라만차는 돈키호테가 살던 스페인의 동네 이름이란다. 돈 아저씨가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 이름은 돈키호테 비디오. 지금은 카페로 변하고 없어졌지만, 그곳은 진솔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곳이었어. 중학생이던 솔은 돈키호테 비디오에서 일도 도와주었고, 친구 선후배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곳이야. 돈 아저씨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되길 꿈꾸었고 그 두꺼운 돈키호테 소설을 모두 필사하기도 했단다. 진솔은 그런 돈 아저씨를 잘 따라서 산초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어.

….

대전에 내려온 소리 우연히 라만차 클럽의 멤버이자 친구이자 돈아저씨의 아들인 한빈을 만났어. 한빈은 자신도 아버지가 어디를 가셨는지 모른다고 했어. 돈키호테 같은 돈 아저씨. 돈 아저씨가 돈키호테 비디오를 운영할 때도 이미 이혼한 상태라서 아들 한빈과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 사이였어. 한빈은 부동산 문제로 아버지를 찾고 있다면서 솔에게 도와달라고 했단다. 문득 솔은 이제 막 시작한 유튜브에서 돈 아저씨를 찾는 것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돈 아저씨 공개 수배. 채널명도 돈키호테 비디오로 정했어.

 

2.

우선은 비디오로 영화 보던 시절의 옛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시작했단다. 한빈이 홍보를 좀 도와주었는데, 옛 라만차 클럽의 멤버들도 하나씩 연락이 되었단다. 돈 아저씨의 정체는 무엇인가. 돈 아저씨의 본명은 장영수. 서강대 법대 출신. 학생 때 학생운동 하다가 옥고도 치름. 이후 1990년대 초반 대치동에서 영어 강사를 시작했는데 실력을 인정 받아 인기 있는, 잘 나가는 영어 강사가 되었지만, 학원장과 갈등을 겪고 학원계를 떠났단다. 학원장이 가난한 학생의 부모를 꼬득여서 안 들어도 되는 강의를 듣게 하는 것을 보고 대판 싸우고 나서 사교육에 환멸을 느끼고 학원계를 떠난 거야. 일타 강사의 길을 스스로 차버린 것인데, 평범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기 쉽지 않았을 거야.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돈키호테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지.

학원계를 떠난 장영수는 벽해출판사라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도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대리 번역을 시킨 어떤 교수의 뻔뻔함 때문에 대판 싸우고 또 출판계를 떠났단다. 이렇게 사고(?)를 쳐서 그런지 이혼도 당하게 되었어. 이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를 차리게 되었단다. 진솔은 돈 아저씨가 지냈던 학원가, 출판계 사람들은 인터뷰하면서 돈 아저씨의 행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식으로 하여 유튜브에 업로드 하였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독자 수도 늘어나고, 응원의 댓글도 늘어났어.

….

돈 아저씨 장영수는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 영화 시나리오도 썼단다. 어떤 독립영화사의 대표 석명환이라는 사람과 함께 했는데, 그 영화사가 운좋게 대박 작품이 하나 나오면서, 장영수와 관계는 흐지부지 되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표와 사이가 틀어져서 민주영 PD라는 사람과 함께 영화사를 나와 독립을 했대. 그러나 자금부족으로 끝내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다는구나. 진솔은 수소문하여 민주영 PD를 만나 장영수의 행적을 물어보았지만,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했어.

 

3.

동네에 오랫동안 살았던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장영수가 제주도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주도 중산간에 바리타리아라는 곳을 만들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진솔은 한빈, 민주영 PD와 함께 제주도로 향했고, 그곳에서 돈 아저씨를 십 수 년 만에 재회하게 된단다. 빼빼 마른 돈키호테의 체형이었던 돈 아저씨는 뚱뚱한 산초의 체형으로 변해 있었어. 체형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이제 산초가 되었다고 했어. 소설 돈키호테를 완역본을 일고 보면, 산초가 참 매력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나온단다. 돈키호테 옆의 감초 같은 조연으로 끝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지. 그렇게 다시 만나면서 소설이 끝나는 것이냐고? 아니야

이제 또 다른 출발이 있단다. 산초가 된 돈 아저씨는 또 다른 꿈이 있단다. 한빈이 제주도에 내려가 바리타리아를 카페로 개조를 하고 인기를 끌게 되었어. 그러던 어느날 돈 아저씨는 또 사라지고 말았단다. 그리고 얼마 후 비행기 티켓이 배송되었어. 스페인 행돈 아저씨는 세르반테스의 고향 스페인에 가 계신 거지진솔을 비롯한 라만차 클럽을 위한 비행기 티켓을 보내준 것이란다. 라만치 클럽의 마지막 행선지는 과연 스페인일까? 돈 아저씨의 꿈은 이루어질까? 아빠가 독서편지를 쓰면 기억력 보조를 위해 보통 결말까지 다 적지만 이 소설은 안 그대로 될 것 같구나. 어느 정도 예상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니까 말이야.

김호연 작가님의 이번 <나의 돈키호테>는 밝고 희망적이고 유쾌함을 주는 그런 소설인 듯 싶었어. 아주 조금 식상하면서 예상되는 줄거리 라인이 흠이라 흠주인공의 중학생 시절의 회상 장면이 많이 나와서 너희들이 읽어도 좋을 소설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꿈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백 퍼센트 닮으면 안되겠지만, 늘 자신의 꿈을 가슴 속에 품었으면 좋겠구나 하는 교훈적인 내용도 얻게 되었어. 너희들뿐만 아니라 아빠도 말이야. 아빤 지금 어떤 꿈이 있을까? 막 떠오른 것은 얼른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확정을 했으면 좋겠구나. 다시는 우리 국민들이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기를

 

PS,

책의 첫 문장: “돈 아저씨, 왜 서울이 세비야예요?”

책의 끝 문장: 무차쓰 그라씨아쓰, 나의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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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의문을 갖지 말아라. 회의도 하지 말아라. 미래를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가망 없는 미래를 예상해서 현재의 삶에 불충실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다. 공부에 열중해라.”

 

(66)

시어머니는 해방 전해에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는 해방되고 4년 만에 돌아가셨지요. 고문당하고 해서 감옥에서 얻은 병은 자꾸 깊어가고, 살림은 쪼들려 병 다스릴 돈은 없고, 나라가 섰대도 독립운동한 분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시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말예요. 이승만이가 시아버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새 나라가 서고 장관들이 임명되는데, 그중에 소문난 친일파들이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그걸 보시고 시아버지께서는 한바탕 통곡을 하시더니 그 다음부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런데 글쎄 다음날 보니까 베갯잇에 눈물 젖었던 자리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지 않겠어요. 처음엔 그게 뭔가 했는데, 그게 글쎄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었어요. 그 뒤로 시아버지께서는 말 대신 한숨만 땅이 꺼지게 쉬시고, 병세는 날로 심해지다가 결국 한 달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어요.”

 

(81-82)

이봐, 술도 아직 안 취하구선 그런 순진한 소리 하지 말어. 케네디가 뭐 별거야? 그는 충실한 미국 대통령일 뿐이야. 미국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쏘련과 대적하는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고, 케네디는 그 총사령관으로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반공주의자야. 그러니까 그가 가장 환영하는 건 반공을 내세우는 나라의 지배자들이지. 박정희는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거야. 그런데, 박정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중대성이야. 미국의 입장에서 남한이 적화된다 하면 어떻겠어? 그거야말로 눈 뒤집힐 끔찍한 일인 거야.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는 곧바로 일본의 공산화로 확대되고, 그렇게 두 겹의 방화벽이 무너지면 미국은 자기네 호수처럼 독차지하고 있던 태평양을 반이나 잃으면서 쏘련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지.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태평양으로 진출한 쏘련의 승리는 중공을 자극해서 대만을 단숨에 손아귀에 넣게 되고, 월남이나 라오스같이 지금 불안한 상태에 있는 나라들까지 금방 중공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말야. 그럼 어떻게 되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연쇄적으로 적화 위험에 빠지게 되고,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잃게 되어 마침내 세계 2대 강국에서 탈락하는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거야.”

 

(214)

한 번 배신한 자 두 번 배신한다는 말 있잖아. 만군으로 독립군 등뒤에 총질한 친일파가 또 한 짓이 쿠데타 주동이야. 자네 알지? 만군의 만행을. 자네와 내가 광복군으로 임정에 있지 않고 만주에서 활동했더라면 그자가 우리의 등뒤에 총질을 한 거라고. 그런 자가 일으킨 쿠데타에 야합해 뭘 해? 국회의원? 맙소사, 그것들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그자들 수뇌부에 만군과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한둘이 아닌 걸 자네도 잘 알지? 난 그자들과 맞서 싸우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어.”

 

(255-256)

! 그거 꽤 논리적인 지적이군.” 신준호는 민경섭을 빤히 쳐다보며 담배를 빼들고는, “그게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군사정권에서 추진한 그런 일들은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권에서나 해야 했고, 국민들이 원하고 호응하는 일이었어. 4.19, 그 혁명의 상황 속에서 정권을 수립한 장면정권은 그런 일들을 처리할 강한 의지를 세웠어야 했고, 국민의 불신으로 경찰력이 무력화된 상황이었으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인들을 동원했어야 해. 그런 권한은 엄연히 법이 보장하고 있었거든. 그랬으면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도 대환영이었을 거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장면정권은 나라를 바로잡을 국가적 문제점도 투시하지 못했고, 국민적 요구를 파악할 능력도 없었고, 혁명적 정치를 추진할 의지도 없었어. 그러니 주어진 권한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권력을 잃은 거지. 너무 가혹했나?”

 

(281)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으며 수없이 불렀던 노래. 전우는 사라졌지만 분단은 험상궂은 얼굴로 남아 있었다. 빽 없이 내던져진 사병 신세는 당연히 향해 총부리를 겨눈 분단의 험악함이었다. 무수히 생각해 보았지만 왜 그러고들 있어야 하는지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이념 때문에라고 하기에는 민족의 상처와 손실이 너무나 컸고, 민족의 비극을 외면한 어리석음을 탓하자니 이념의 벽은 너무 완강했다. 자신이 2년 넘게 젊은 세월을 바친 것은 분단을 지속시키는 데 실낱 같은 힘을 보탠 것일 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땅에 사나이로 태어난 죄로 할례를 하듯 병역의무라는 통과의례를 치른 것뿐이었다. 그 의무이행이 아버지 때문에 의심받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인생의 한 고비를 넘겼는데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변함없이 막막하고 오늘의 날씨처럼 먹구름만 가득했다. 이런 상태에서 임채옥은 감당하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감정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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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어
천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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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감성적이고 사람 향기 풀풀 나는 SF 소설을 쓰셔서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천선란 님의 신간 소설집이 나와서 읽어 보았단다. 아빠가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천선란 님의 단편소설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이번에도 큰 기대와 함께 책을 펼쳤단다. 너무 큰 기대였는지^^ 지난 소설들보다 약간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SF소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단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미래의 지구는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한 마음을 살다 보니, 미래 세계를 상상할 때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그려지더구나.

요즘처럼 기후 변화의 위기를 몸소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빠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래서인지 천선란 님의 소설도 미래를 배경을 한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많이 있었단다. 이번 소설에서도 소설의 중심에는 인간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 소설에 비해 몽환적인 요소도 좀 곁들인 느낌이 들었단다. 그래서 가볍게 읽다 보면 소설 속 배경을 머릿속에 그려보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단다.

첫 번째 소설 <얼지 않는 호수>도 그런 측면이 있었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지구는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눈보라에 휩싸인 곳에 되어 있었어. 주인공이 어려움에 빠졌을 말하는 산양 이 구해주었단다. 산양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산양은 머릿속에 칩이 있어 말을 할 수 있었단다. 주인공은 산양과 오랜 세월 단 둘이 보냈는데, 어느날 야자라는 아이가 나타나 얼지 않는 호수로 간다고 했어. 그러면서 품 속에는 친구 이 있다고 했는데, 품 속에 있는 것은 친구 의 심장이었어. 꽁꽁 얼어버린 지구에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야자는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길을 떠났단다.

 

1.

두 번째 소설 <모우어>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모우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소설을 시작했단다. 인류는 점점 진화하여 더 이상 개체를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단다. 몸의 젊은 세포들이 늙은 세포들을 먹어 치우면서 계속 젊음을 유지했어. 1년에 한번 특정 시기에만 다른 지역의 인간들을 받아들였어. 그리도 또 하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어. 그동안 사용했던 인간들의 언어는 인간에게 해악만 준 실패한 것으로, 더 이상 언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어. 대신 의음이란 것으로 소통을 하는데 이 의음이라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으로 바로 소통하는 것이란다. 초우라는 사람이 어떤 호수에서 우는 아이를 발견하는데 그 아이는 진화가 덜 되어 입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어. 초우는 그 아이를 숨겨서 보살피면서 모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모우에게 의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쳤지만, 모우는 자라면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생기는 갈등을 이야기해주었단다.

….

<너머의 아이들>이란 소설은 외계 생명체의 침입했는데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외계에서 온 우주선에 타게 된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죽었지만, 죽음 너머의 곳에서 다시 깨어나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실제 세상. 그들이 실제라고 살고 있던 곳은 프로그램 속 세상. 영화 매트릭스를 비롯하여 비슷한 소재의 SF가 떠올랐단다.

<뼈의 기록>이란 소설은 천선란 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AI 나온단다. 이번 소설에서는 장의사 역할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의 이야기. 주로 고독사하는 노인들의 장례를 맡곤 하는데 가끔은 자살한 젊은이, 사고로 죽은 아이도 장례를 맡는단다. 장례를 하면서 장례식장의 미화원 모미와 친해져 우정을 쌓게 돼. 그런데 로비스는 안드로이드이다 보니 늙지 않잖아.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세월은 모미마저 데리고 가고, 로비스는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어기고 모미가 꿈꾸었던 우주로 보내주게 된단다. 이 일로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로비스는 계속 장례 업무를 하는데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모두 자기 손으로 보냈단다. 자신이 녹이 슬어 무릎이 고장 날 때까지 말이야. 미래는 인공지공이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니, 이 소설은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점점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있는데 안드로이드에게도 감정이 있고 영혼이 있을까? ChatGPT나 빅스비와 이야기할 때도 보면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말이야.

<서프 비트>는 이 소설집에서 실린 작품 중에 재미로만 봤을 때는 가장 재미있었단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지. 그런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았는데 작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무빙>이 많이 떠올랐단다.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어둠에서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그리고 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서프 비트>에 담겨 있단다.

그 외에 <사과가 말했어>, <입술과 이름의 낙차>, <쿠쉬룩> 이 실려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천선란 님의 소설 속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나라도 작년 말부터 갑자기 디스토피아가 된 기분이구나. 역사 속에서만 들어본 비상계엄과 내란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듣게 되다니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많다는 것이 섬뜩하더구나. 그들이 아빠가 꼬박꼬박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열 받는지얼른 이 상태가 마무리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봤으면 좋겠구나.

….

아빠가 천선란 님의 소설들을 여럿 읽어보았는데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나은 것 같았단다. 신간을 내고 인터뷰를 한 것을 봤는데, 장편을 한편 계획하고 계신다고 했어. 그 장편을 기대하면서 오늘 독서편지는 이만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그녀는 그 일대의 파수꾼으로 삼십삼 년을 보냈다.

책의 끝 문장: 햇빛 가림막 아래서 불을 피우고 있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연은 반복돼, 모우. 소멸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탈각(脫殼)을 집어삼키며 재생하고,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거야. 자연의 시간은 우리가 달라. 유한한 시간에 갇힌 건 인간뿐이야. 인간은 자연에서 떨어져나왔어. 아주 한때 하나였겠지만,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된 거야. - P33

초우, 현혹되지 마. 실패한 것에는 이유가 있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봐. 언어가 장착되고, 그리하여 많은 것은 정립되고, 끊임없이 전달되면서 세상은 전쟁과 빈곤, 파괴와 몰살, 멸종의 길을 걸었어. 시야는 좁아지고 감각은 둔해졌지. 언어에 지배당한 인류의 끝은 자멸이었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탈락시키며 발전했어. 언어가 통제했던, 최초의 인류가 가졌던 감각을 다시 깨웠다. 우리의 소리는 언어에 정복되지 않기 위한 저항이다. 언어가 생겨나고 규칙이 정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지. 지켜라. - P49

"언어를 알게 되면서 엄마도 나와 같은 같은 시간을 살게 되겠지. 느려지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힘겨워지겠지. 이건 저주야. 맞아, 저주가 맞아. 기껏 자연이 인간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주문이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영원히 말의 미로 속을 떠돌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길 바라."
모우가 초우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의음으로 초우에게 속삭인다.
엄마, 영원의 없어. 가려진 세상을 제대로 봐.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어. 그의 말이 맞아. 나는 인간의 저주야. 그러니 우리의 만남부터 언어로 새겨보자.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시작은 엄마의 말이 좋겠어.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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