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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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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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었단다. 클라우드 시리즈는 시대를 앞서 살아간 거장 100명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시리즈란다. 기행문과 평전의 콜라보라고 할 수도 있지. 아빠는 그 동안 세 편을 읽어보았는데, 그 인물에 대해 알게 되어 좋고, 책에서 소개된 곳을 가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단다. 모두 100권을 출간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 38권까지 출간되었더구나. 그 클라우드 시리즈의 시작인 1권이 오늘 이야기할 <셰익스피어>란다.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를 거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1권을 셰익스피어로 정하지 않았나 싶구나. 아빠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어보긴 했지만, 그리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구나셰익스피어 작품이 대부분이 희곡인데, 아빠에게는 희곡 읽기는 소설보다 쉽지 않거든. 그래서 다른 고전보다 손이 적게 가더라구. 조금씩 천천히 찾아서 읽어는 볼 생각은 있단다.

 

1.

클라우드 시리즈 1 <셰익스피어> 2018년 출간되었고, 지은이 황광수 님이 셰익스피어를 발자취를 여행한 것은 2014년이었단다. 2014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50년 되던 해로 많은 행사들이 있었던 해라고 하는구나.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 스트랫퍼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대. 그의 생가는 여전히 잘 보존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대. 그의 생가가 잘 보존된 것은 후대 작가들이 돈을 기부하여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는 존 셰익스피어는 장갑 장인이자 지방 최고 행정관이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어려운 일들이 계속 겹쳤어. 윌리엄 이전에 태어난 형제들은 모두 흑사병으로 죽고 말았대. 어렸을 때의 기록들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데, 18살에 결혼을 하고 26살에 연극무대에 짠 하고 나타날 때까지 약 8년 간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셰익스피어 평전을 쓰는 작가들이 이 시절을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채운다고 하더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꽤 있어서 셰익스피어가 그 시절에 이탈리아에 갔었다는 설도 있지만,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에 간 적은 없다고 하더구나.

….

18살에 윌리엄은 26살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을 하는데, 과속을 해서 결혼을 서두른 것 같다고 했어. 결혼한 지 6개월만에 첫 딸을 출산했대. 그런데 아내의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배우의 이름과 똑같구나.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의 이름이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지 궁금하더구나.

지은이 황광수 님은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을 떠나 런던으로 이동했어. 그리고 런던을 배경으로 작품인 <헨리 6>, <심벌린> 등을 이야기를 했어. 이렇게 지은이의 여행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곳들이었어. 그 많은 작품들의 모든 배경지를 갈 수 없었지. <멕베스>의 경우는 스코틀랜드가 배경인데, 그곳을 못가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면서 <멕베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런던을 떠나 파리로 향했어. 너희도 좋아하는 도시 파리. 파리에는 셰익스피어 관련된 서점이 하나가 있단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인데, 우리가 간 날은 하필 쉬는 날이라서 닫힌 문만 보고 왔잖니. 언젠가는 문을 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가 볼 수 있겠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유명한 작가들도 즐겨 찾던 서점을 유명해져 지금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된 서점이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 <끝이 좋으면 다 좋다>를 소개해주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의 집으로 이동했어. 괴테의 집에 방문한 이유는 괴테가 셰익스피어를 극찬해서

시로 남길 정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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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성, 즉 외적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내적 감각에 호소하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우리의 내적 감각을 향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상상의 그림 세계가 활성화되며, 완벽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덧붙일 수 없다. 정확하게 여기에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환상의 바탕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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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라하, 부다페스트, 빈을 거쳐서 이탈리아로 넘어갔단다. 셰익스피아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썼어.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오셀로>, 로마를 배경으로 한 <페리클레스>를 설명해주었어. 아빠가 셰익스피어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 처음 들어보는 작품들도 참 많더구나. 페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지도자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인물을 그린 작품이래. <페리클레스>는 서아시아와 지중해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를 엮은 희곡이라고 하는구나.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라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배경으로 썼다는구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실수연발>이라는 작품은 고대 시라쿠사 사람들의 이야기, <한여름 밤의 꿈>은 네 남녀의 사랑싸움 이야기, <아테네의 티몬>은 몰락한 자본가의 이미지를 통해 돈의 속성을 비꼬는 희곡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나중에 읽을 책을 고민할 때 이 책의 차례를 보고 하나 골라서 읽어도 좋을 것 같구나. 오늘은 독서편지가 밀린 것도 있으니 이렇게 짧게 마치련다. 양해 바람.

 

PS,

책의 첫 문장: 어스푸레한 방 안에 한 소년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셰익스피어 문학의 불멸성에 관해 이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알지 못한다.



안내판 뒤쪽으로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폭풍>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고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16년 몸져누웠다. 그의 생애와 함께 흘러왔던 모든 것, 그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절대적 단절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 쓰고 고치는 법이 없었던 창작과 달리, 고칠 때마다 새로 작성한 유서가 무려 134통이나 되었다. - P83

로마인들이 배스를 건설한 것은 기원후 60년이었으니, 그들의 열정은 거의 2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를 불가항력적인 감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대략 기원전 50년부터 5세기 동안 브리튼을 지배했다. 그들이 로마의 군대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산과 들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제국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샘의 족장들은 제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브리튼에 일곱 개의 왕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앵글로 색슨 7왕국’이다. 브리튼 사람들이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양가적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 P107

로미오는 자신을 순례자로, 줄리엣을 성자로 비유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하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베일일 뿐이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자연적 세계관이 더 깊이 침투해 있다. 이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의 욕망은 자연의 의지 또는 본성일 뿐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던 이 세계관은 심리적 층위와 제도 및 관습적 층위 사이의 충돌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역설과 모순을 주입한다. - P200

전쟁 속의 사랑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참담한 역사적 현실 속에 던져두고 냉정하게 관찰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극’이라는 미학적 전형까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투철한 현실주의와 빛나는 실험 정신이 런던의 극장가에서 환영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난파될 수밖에 없는 사랑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P238

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대담한 말장난, 비유와 생략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적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발화되는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는 글쓰기의 행위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불화하는 인식론(또는 지식이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다수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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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품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아야 하고, 의로운 기상은 언제나 얼굴에 드러난다.” 그렇다. 손톱을 보면 그 사람의 청결함이 드러나고, 체형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드러나고, 성격은 얼굴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작은 습관과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24)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화가들이 그리는 용은 마치 귀신 그림 같아서, 머리는 무섭고 꼬리는 뱀처럼 묘사된다. 그런데도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다 보니 사람들은 그럴 듯 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이미지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청나라 화가 정공이라는 사람은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 용의 모습을 그리고자 애썼다. 비늘 하나, 눈동자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은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것처럼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밀실에서 조용히 그려야 할 정도로 귀했다. 그림이란 작은 기예일 뿐이지만, 그 곳에 진실과 정신이 담겨 있다면 세상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30-31)

정약용은 말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안타깝도다. 주머니 속처럼 좁고 막힌 곳에 살아 삼면은 바다, 북쪽엔 높은 산택이 가로막혀 몸도 마음도 늘 펼 수 없다. 개인이 가진 뜻이나 이상도 펼치기 어렵고, 공자 맹자 같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현실과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줄 이는 누구인가.” 정약용은 조선 시대의 현실에 대한 탄식과 함께, 그 안에서 도덕과 이상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글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옛날에는 정말 몰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오늘날은 새로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옛날이나 현대나 미래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누군가는 비난하고 또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나만의 기준과 그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고, 물러나야 할 자리가 있다.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그릇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35)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모든 것이 제때를 만나 기쁨을 누리는데, 나만은 어쩐지 앞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이렇게 멈춰 있는가? 물질적 욕심이나 세상의 기준을 벗지 못한다면, 어찌 뜻을 크게 품고 분발할 수 있겠는가. 백 년 인생 안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 몸 하나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데, 결국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 성장하는 사람은 탓하는 대신, 자신의 태도와 삶을 먼저 다스린다.


(43)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산에서 연못을 파고 대를 쌓으며 밭농사에 마음을 다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디 내가 그 일을 좋아해서였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내 것’, ‘네 것의 구분은 없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47)

정약용은 말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용광로의 불에 들어가고, 망치질을 여러 번 견뎌야 하는 법이다.” 쉽게 만들어진 그릇은 쉽게 깨지는 법이다. 반면에 불과 망치를 견뎌낸 그릇은 단단하고 오래 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흘러가던 일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그 고비가 길어지면 마음은 쉽게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련이 곧 나를 단련하게 시간일 수 있다. 단지 결과가 늦게 오는 것일 뿐,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55-56)

정약용은 말했다. “마음속 뜻이 천박하고 저속하면, 아무리 억지로 그럴듯하고 고상한 말로 꾸미려 해도,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조리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생각이 편협하고 비루하면, 아무리 화려한 말로 치장한다 해도 사물의 진실한 정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를 배우는 사람이 그 안에 담긴 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것이며, 악취 나는 가죽나무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얻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자세로 평생을 시에 힘쓴다 해도, 얻을 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이 인간 사이의 이치, 그리고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목숨, 운명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인간 안에 있는 바르고 순수한 마음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생긴 혼탁하고 거친 감정이나 욕심들을 깨끗이 비워내, 본래 맑고 참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66-67)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과소평가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긴다. 그래서 말이 막 나가거나, 아무렇게나 사람을 칭찬하거나 헐뜯고, 생각 없이 억누르거나 부추기면서, 결국 그로 인해 사람의 명예와 이익이 크게 엇갈리게 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지위를 허락하면 그 책임은 나 혼자만 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자격 있는 사람을 배척하면 그 해악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더구나 은혜와 원한은 한마디 말에서 생기기도 하고, 재앙과 복도 때로는 단 한 글자의 문장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리에 밝은 선비라면 이 점을 깊이 새기고 늘 경계해야 한다.”


(77)

정약용은 또 이렇게 말했다. “예전 친구들 가운데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 친구를 부귀해진 사람으로 여기고 괜히 주눅이 들어 그 집을 찾아가는 것조차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부끄럽거나 그 사람을 나쁘게 여겨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간사한 자들의 이간질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혹은 설사 지위가 높다 해도 결국은 조용히 살아가는 늙은 선비일 뿐이다. 그런 우리라도, 어떤 이의 글과 말이 본받을 만하다면 어찌 그를 찾아가 교류하지 않겠는가? 결국 중요한 건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다.”


(89)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비방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법이다. 경솔하고 무지한 무리들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면 잠시 떠들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그 비방을 듣고 일일이 사람들에게 해명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수백, 수천 명에게 전해질 것이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는가? 또한 한 숟갈 밥으로 사람이 살이 찌거나 마르리라 믿는 이는 없다. 그런데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는 자리에서, 단지 미친 자가 퍼뜨린 한마디 험담에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한다면, 어떻게 기틀을 바로 세우고 큰 뜻을 펼 수 있겠는가?


(98-99)

정약용도 이렇게 말했다. “혀 때문에 죽고, 혀 때문에 살며, 혀끝에서 싸움이 일어나 소리도, 자취도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절제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되풀이되어 온 잘못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고도 한다. 칼은 상처를 내도 시간이 지나면 흉터로 아물 수 있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보이지 않아 더 오래 간다. 그래서 말은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진심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내가 옳다는 확신만으로 말의 칼날을 휘두를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날카롭게 내뱉는 순간 진실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만 남는다.


(99-100)

정약용은 말했다. “사람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공손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옳은 말이라도 남이 기분 나빠하고 듣지 않게 된다.” 정약용의 말처럼 말의 방식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은 상태의 마음을 열게 하지만, 날 선 말은 마음을 닫게 한다. 늘 이쁨을 받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안다. 그래서 말에 날을 세우기보다 다정함을 품는다.


(110)

그래서 정약용은 허물을 고치는 자는 허물이 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누구나 허물을 고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제로 행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났는가 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태도,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담히 고쳐나가자.


(115-116)

정약용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좁은 세상만을 본다면, 항아리 속 쉬파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짐승이 사람을 볼 때 모두 비슷하게 보이듯이, 대체 누가 어리석고 누가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기 나는 두 마리 백로를 보게나, 그들 사이에 누가 더 낫고 못한지 어찌 알겠는가. 한마디 말로 사람을 정하고,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버리는 일, 어리석도다.”


(134)

정약용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와 자신과 비교하지 마라. 모기나 풀과 나무도 모두 한 생애를 산다. 인생이 굽이치고 돌아간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잡한 산세도 깊은 골짜기를 품기에 적당하듯, 모든 일에는 제자리가 있다. 본질 없는 자랑은 허망하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니 비교하고 칭찬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자. 본질이 없는 자랑의 끝에는 허망함만 남을 테니 말이다.


(153)

정약용은 이런 말을 했다. “나아가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는 것을 공손함으로 삼고, 나아가지 않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지 않는 것도 공순함으로 삼아라.” 그러면 그 옳은 곳이 곧 공손함이 맞는 곳이다. 공손함이란 단지 겸양하거나 비굴한 태도가 아니라, 바른 판단을 기준 삼아 신중하게 행동하거나 멈추는 태도라는 말이다.


(188-189)

정약용은 비밀을 지키는 방법과 근신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있으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세상의 재물과 근심거리, 또는 천지를 뒤흔들 만큼 크고 무거운 죄악은 사람의 몸을 해치고, 가문을 망하게 할 일들은 대부분 몰래 감추고 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만약 이 글이 사거리의 번화가에 떨어져 있어 원수진 사람이 열어보더라도 나에게 죄가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이 편지가 수백 년 뒤까지 유전되어 허다한 식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져도 나에게 비난이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한 뒤에 쓰고 밀봉해야 하니, 이것이 군자가 근신하는 태도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글씨를 빨리 썼으므로 이런 실수를 많이 했다. 중년에는 뒷일이 두려워 점차 이 법도를 지켰더니, 매우 유익하였다. 이 점을 명심하라.”


(201)

삶의 깊이는 겪은 만큼 깊어지고, 앎의 밀도는 직접 부딪힌 만큼 단단해진다. 큰 뜻을 품었다면 남의 말로는 세상을 배우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다 넘어질 수도 있고, 진흙탕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을 진짜로 만들어준다. 두려움은 해보지 않아서 생기고, 용기는 해본 사람에게만 생긴다. 삶은 결국, 맛본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


(222)

정약용은 말했다. “잡념이 생기면 휘저어 보내라. 다시 떠오르면 또 휘저어 보내라.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억지로 쫓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것이 곧 다스림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잡념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 보내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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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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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심윤경 님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아빠가 심윤경 님의 소설은 <설이>, <위대한 유산> 이렇게 두 권을 읽어봤어. 오늘 이야기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심윤경 님의 대표작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란다. 200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이 작품으로 심윤경 님은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는구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은 이미 유명한 작품인데, 아빠는 이제서야 기회가 되어 읽어보았단다. 소문대로 재미있더구나.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들었어.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소설이었어.

이야기는 1977년 인왕산 자락 윗동네에서 시작한단다. 그 윗동네까지 와서 산다는 것은 다들 가난한 사람들이었어. 한 집만 빼고 말이야.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삼층집이 하나 있었거든. 그런 마을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란다. 주인공은 8살 한동구로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 그 해는 7살 터울 동생 영주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어. 동구는 동생인 영주를 무척 사랑했단다. 하지만 집안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어린 동구에게도 욕을 거침없이 날리는 할머니가 있었고, 그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증오하는 사람이 동구의 엄마였단다. 고부간의 갈등이 장난 아니었어. 며느리가 하는 모든 것에 간섭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아버지는 고부간의 갈등을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늘 할머니의 편에 섰단다. 어느 때는 선을 넘어 엄마한테 손찌검까지 했어. 영주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딸이라고 큰 실망하며 엄마한테 잔소리를 할 정도였어. 첫째 동구가 아들인데 말이야. 동구는 영주를 무척 아끼고 잘 보살펴주었어. 어린 영주를 업어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재미있었어.

….

시간이 흘러 영주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어 돌잔치가 되었어. 엄마는 영주의 돌잔치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할머니가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이날도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어. 결국 생일상은 미역국만 간단히 차리는 것으로 끝냈어. 아버지는 여느 날처럼 출근을 하고 할머니는 목욕탕에 갔단다. 그렇게 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에 없자, 엄마는 잽싸게 영주의 돌잔치 음식을 준비했어. 생일떡, 잡채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마을 사람들에도 돌렸어. 그러면서 할머니한테 이야기하지 말라고 입단속도 시켰단다. 물론 동구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단다. 그렇게 엄마와 동구와 영주만의 돌잔치를 마치고,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다 치웠단다.

 

1.

시간이 흘러 1979, 동구는 3학년이 되었어. 원래 담임이던 선생님이 일이 있어 그만두시고, 중간에 박은영 선생님이 새로 오셨어. 동구는 3학년이지만 여전히 한글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어. 그래서 학기초 엄마는 학교에 불려갔고, 동구가 글을 못 읽는 것 때문에 집에서는 또 아버지와 엄마가 싸웠어. 이번에도 박은영 선생님이 엄마를 호출해서 학교에 가셨어.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선생님과 달랐어. 박은영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동구는 셈을 잘하는 것을 보면 머리는 좋은데, 난독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러면서 특수 학교를 소개해 주셨단다. 하지만 동구네 집안은 특수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되었지.

동구가 한글을 제대로 못 읽는 와중에 아직 세 돌도 안된 동생 영주가 한글을 정확히 읽었단다. 영주가 한글을 읽는 것을 본 식구들은 깜짝 놀랐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은 영주를 구경하러 와서 다들 신동이라고 천재라고 한마디씩 했단다. 동구도 그런 영주를 자랑했어. 자신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상관없어.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이 한글을 척척 읽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거야.

동구가 특수학교에 갈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된 박은영 선생님은 동구를 불러 방과 후 한 시간씩 같이 공부하자고 했어.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같이 한 시간씩 공부하자고 하니 신이 났단다. 그렇게 몇 달을 공부를 하고 나니 동구는 이제 글을 읽을 수 있었단다.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을 짝사랑하며 선생님과 결혼하는 꿈이 생겼단다.

….

지금이 1979년이라고 했잖아. 1979년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란다. 길고 긴 군사독재가 측근의 총에 의해 끝난 해이고, 그로부터 두 달도 안되어 군사반란이 일어난 해이기도 해. 이 소설의 배경인 인왕산 자락은 청와대와 가까운 동네이다 보니, 이 역사적인 사건이 삶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단다. 1979 12월 어느 날 엄마는 동구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단다. 동구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친구들로부터 동네에 탱크와 군인들이 잔뜩 있다고 했어. 동구는 말로만 듣던 탱크를 처음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친구와 함께 탱크로 보러 갔단다.

가는 길에 주리 삼촌을 만났어. 주리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사람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합격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 고시에서 여러 번 떨어지고 지금도 고시 공부를 하는 고시생이었어. 주리 삼촌은 동구와 친구를 붙들고 포장마차에서 먹을 것을 좀 사주고 집으로 돌려 보냈단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박은영 선생님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 멍하게 창 밖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어.

 

2.

동구는 4학년이 되는 것이 싫었어. 박은영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니까.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 1980년 동구는 4학년이 되었고 4학년 담임은 오준근 선생님이었어. 오준근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어. 귀 물기, 머리카락 뽑기, 겨드랑이 냄새 맡게 하기 등 변태 같은 짓을 하는 선생님이었어. 박은영 선생님은 6학년 2반을 맡았어. 그런데 이 변태 같은 오준근 선생님이 박은영 선생님을 좋아해서 작업을 걸려고 했어. 동구가 박은영 선생님과 친했다는 것을 알고 수업이 끝나고도 동구를 집에 보내지 않고 동구를 이용해서 박은영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어.

동구는 이 일을 주리 삼촌한테 이야기하자 주리 삼촌은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면서 학교에 왔어. 주리 삼촌은 자신을 동구의 친삼촌이라고 소개하면서 오준근 선생님을 은근히 압박하면서 동구를 집에 일찍 보내달라고 했단다. 오준근 선생님은 꼼짝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동구는 고마운 마음에 주리삼촌을 박은영 선생님께 소개시켜주었어. 동구가 주리 삼촌을 소개하면서 공부 잘하고 고대 법대 나왔다고 하니, 박은영 선생님은 주리삼촌에게 이태석을 아냐고 물어봤고 주리삼촌은 잘 아는 후배라고 이야기했어.

이 인연으로 주리 삼촌, 박은영 선생님, 이태석, 그리고 박은영 선생님의 제안으로 동구도 함께 자리를 했단다. 박은영 선생님은 대학교 시절 이태석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박은영 선생님이 이태석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그들은 당시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계엄령이 계속 될 것 같은지군부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은지쿠데타가 또 일어날 것 같은지등등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았어. 옆에 앉아 맛있는 안주 먹는 것도 좋았어. 근데 주리 삼촌이 권한 술을 먹고 그만 취하고 말았지. 그것도 아주 심하게... 박은영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취중진담까지...

..

그것이 박은영 선생님과 마지막일 줄이야. 박은영 선생님은 휴가를 쓰고 할머니 생신 잔치를 위해 광주에 간다고 했어.. .. 설마 그날? 그 다음 주부터 박은영 선생님은 학교에 나오지 않으셨어. 동구는 엄청 걱정을 했지. 여름방학이 되어도 여름방학이 지나 새로운 학기가 되어도 오시지 않았어. 어느 날 주리 삼촌이 동구를 불러서 이야기하기를 선생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광주에 가셨다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셨다가 그만 변을 당하셨던 것 같아. 광주 민주화 운동은 늘 슬픈 이야기를 담게 되는구나. 동구는 주리삼촌의 말을 믿지 않았어. 그 이후로도 계속 선생님을 기다렸단다. 아빠도 그 소문이 헛소문이고 소설이 끝나기 전에 박은영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시길 바랬단다.

....

동구의 집에도 어둠이 드리웠어...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빚쟁이한테 돈을 빼앗겨서 살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엄마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버지한테 대들기 시작하면서 부부싸움도 전보다 더 잦아졌어. 이웃에 어떤 할머니가 이사 왔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의 고향 사람이었어. 할머니보다 2살 어리셔서 둘은 금방 친해져서 자매처럼 지내고 같이 여행도 갔단다. 어느 날 할머니는 여행가시고 아버지와 엄마는 여느 때처럼 부부싸움을 하고 있을 때 동구와 영주는 감나무 아래서 놀고 있다가 감을 딴다고 동구가 영주를 무등 태웠다가 그만 잘못 떨어져서 영주가 그만 죽고 만 사고가 일어났어. 지은이가 어린 주인공에게 너무 가혹한 벌을 주는 것 같구나. 선생님과 이별의 아픔도 아직 치유하지 못했는데 어려서부터 그렇게 예뻐했던 동생이 죽다니.. 그것도 자신이 무등을 태워주다가 말이야. 동구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 일로 집안은 거의 풍비박산. 여행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엄마한테 더욱 욕지거리를 날리고.. 결국 엄마는 안방에다 항아리를 깨뜨리고 실성한 듯 집을 뛰쳐나가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하셨어. 엄마의 식구들, 그러니까 외가 식구들은 할머니가 집에 계속 계시면 집에 안 보내겠다고 했어. 동구는 할머니에게 이야기했어. 할머니와 단둘이 할머니의 고향 노루더미에 가서 살자고.. 동구 자신도 여기에 있으면 영주 생각이 자꾸 나서 괴롭다고 했어. 엄마를 한동안 볼 수 없지만, 엄마가 나아질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렇게 동구와 할머니는 할머니의 고향으로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결국 박은영 선생님도 돌아오시지 않았구나. 책을 읽을 때도 찡했는데 지금 독서편지를 쓸 때도 또 찡하구나.

소설 제목이 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일까? 생각해 봤어. 소설 초반부에 잠시 언급되었던 삼층집에 있는 커다란 정원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정원은 주인공 동구와 큰 인연이 없었단다. 그저 동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일 뿐이었어. 소설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정원은 마음 속의 정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 동구가 가장 행복했던 3학년 시절이 동구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 행복했던 시간이 너무 짧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기에는 동구 나이는 너무 어려서 너무 안타까웠단다.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동생은 성질이 급한 아기였다.

책의 끝 문장: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 그동안 권력은 군부의 손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 권력자에게나 국민에게나 독재는 지겹도록 신은 낡은 구두 같은 거란 말이야. 반면 민주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새 구두지. 언제까지나 낡은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장은 새 구두보다 편안해. 군부는, 우리에게 다시 헌 구두를 내밀면서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신으라고 말할 거야. 지금 민주의 희망을 꺾고 다시 군부독재의 시절로 돌아가도록 강압한다면 사람들은 새 구두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가 쓸리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할 테지. - P255

"선배의 눈빛을 보자마자 못마땅해하는 거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나, 선배의 그런 눈빛 때문에 선생님이 되려는 꿈도 접고, 평생 구겨진 바지만 입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있었어요. 기억나요? 영등포의 인쇄소에 선전 문건 초안을 받아 들고 갔던 날, 내가 면바지를 다려 입고 왔다고 선배는 화를 냈잖아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얘야? 아까 다섯 시 전에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다들 양치질도 못하고 며칠씩 날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는데 너는 집에 가서 바지나 다려 입고 왔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었지요." - P259

문득, 지금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들도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권위가 오늘날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할머니가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책임지지 못하고, 아버지가 한 번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끔찍한 무력함일 것 같았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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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겨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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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6-02-09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디죠?

bookholic 2026-02-09 19:38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태백산 다녀왔어요~~~^^
 
















(43-44)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수년 전 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가 닥친 것, 그 때문에 아버지가 기약 없이 입원한 전문 클리닉에 매일 찾아가야 했던 것이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끝나지 않는 기나긴 시련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녀가 스무 살에 결혼한 이래 무언가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에 처음으로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홀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어머니는 나이 들어 신체가 쇠약해짐에 따라 거동의 자유를 새로 방해받기 전까지 얼마 동안 되찾은 자율성을 여유롭게 누렸다.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난 그 손님이 자기 남편의 요양원 입소를 유사한 감상으로 환영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내 자유다!’라는 감상 말이다.


(58-59)

어머니 자신도 틀림없이 이런 쇠락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심 확신하고 인정했다. 해결되지고, 개선되지도 않을 문제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가 나아지면…” 또는 내가 회복되면…”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마치 생물학적인 사태의 추이를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쫓아버리려는 듯 말이다. 어머니는 무력감에 굴복하기 힘들어했지만 건강 상태가 좀처럼 저항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 , 어머니가 괜찮아지시면…” 또는 그래요, 어머니가 다 나으시면…”하고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자기 어머니에게 아뇨. 어머니는 회복 못 하실 거예요. 낫지 못하실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60)

우리는 집으로 되돌아가길, 혹은 진짜 자기 집을 되찾길 기다리며 다소 긴 기간 동안 임시 체류하러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영구히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죽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서인지는 안다. 블라디미르 장켈베비치는 이 라틴어 격언을 즐겨 인용했다. ‘죽음은 확실하나, 시간은 불확실하다.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적시할 수 있다. 일단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장소는 확실하다, 설령 시간이 아주 머지않은 듯 보인다 해도, 시간보다 훨씬 확실하다고.


(74)

엘리아스는 계속해서 말한다. “해로하는 노부부를 제외하면,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오랜 감정적 유대가 최종적으로 끊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어떤 긍정적 정서적 관계도 맺은 적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건강을 돌봐주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격리되고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것은 개인에게는 외로운 일이다. 내가 여기서 걱정하는 점은, 아주 고령이 될 때까지도 매우 활발하게 지속되는 성적 욕구의 문제뿐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같이 있으면서 정서적 만족을 느끼는 인지상정의 문제다.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런 종류의 인간관계 역시 줄어들고 거기에서는 대체물을 찾기 어렵다.”


(100-101)
우리는 공공서비스 관할의 모든 부문에서 그랬듯, 돌봄 인력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의해 프랑스의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감축되었는지 안다. 그 정책들은 언제나 강력한 비용 절감 계획을 작동시켜왔고, 지금도 그렇다. 병원 근무자들이라면 직종에 관계없이 프랑스의 보건 공공서비스가 파산 상태(다른 나라들이라고 썩 사정이 낫진 않다)에 다다랐다고 자주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고-반대로 사정은 계속 악화해, 프랑스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위기 동안 병상 폐쇄라는 살인적인 정책을 추진했다-우리는 그런 상태를 거의 정상으로 받아들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듯 보인다. 기필코 이런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지치지 말고 계속 분노해야 하며, 이 분노를 소리 높여 강하게 외쳐야만 한다.


(117)

전체주의적성격은 매일매일 두드러져만 갔다.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


(119-120)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는, 말하자면 고령, 노년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 존재론적 관계를 수정하고 무화하며 파괴한다.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수많은 인잔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 존재의 실존과 관련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늙는 것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한 말이다. 정치 담론과 행정보고서에서 이야기되는 기대 수명의 상승과 이른바 인구 고령화는 나이가 아주 많고 의존적인 사람들의 수가 계속 엄청나게 증가할 것임을 함축한다.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 하다.


(131-132)

이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본다.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였고, 열네 살에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 가정부로, 공장노동자로 위치지어졌다그녀는 스무 살에 결혼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55년 동안 함께 살았다그리고 이제 여든 살이 넘어서 자유를 발견했고, 모든 순간을 즐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녀를 책망할 권리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


(149)

난 죽음-지워짐에 관한 푸코의 말을 좋아한다. 그는 아리에스의 탄식과 힘 있게 결별하는 발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죽음은 사건 아닌 것이 되었다. 대개 사람들은 사고사가 아니라면 약품들의 덮게 아래 죽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주간 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지워진다. 우리는 의료와 제약이 죽음과 동반하면서 죽음으로부터 고통과 극적 성격을 앗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난 무언가 통합적이고 극적인 거대 의례로 되돌려지는 죽음의 정화에 관한 온갖 이야기를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관 주변의 소란스러운 눈물들이 언제나 모종의 냉소주의에서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상속의 기쁨이 뒤섞일 수도 있다. 난 이런 종류의 예식보다는 사라짐의 부드러운 슬픔을 더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죽음을 맞는 방식은 내계는 오늘날 통용되는 어떤 가치 체계, 어떤 감수성을 명확히 나타내는 듯 보인다. 향수 어린 충동 속에서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관행들을 되살리고자 하는 데는 몽상가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죽음-지워짐에 의미가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181-182)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암묵적이든 잠재적이든 어머니를 통해 유지되어온 내 과거와의 연속성이 이제 끊어져버렸다. 혹은 몹시 느슨해져버렸다.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청소년으로 자라났는지에 얽힌 일화들을 앞으로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가족의 지형도, 조상의 계보도를 누가 내게 그려줄 수 있을까? (중략) 내 젊은 시절의 기록 보관자이자 역사가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


(195-196)

자기 어머니를 애도하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잃어버린 젊음을 애도하는 것이라고 알베르 코엔은 쓴다. 내게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망각되거나 부인된 모종의 면모들, 구체적으로 우리가 수치스러워했던 것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을 소개한다.” 코엔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동양식 억양을 자랑스러워하며, 당신은 프랑스어 오류를 자랑스러워하며, 고상한 예법에 대한 당신의 무지를 미치도록 자랑스러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 “약간 뒤늦은, 이 자부심.” 그는 모두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당신의 어머니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만일 당신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내 죽음의 노래를 읽고 어느 날 저녁 어머니에게 더 부드럽게 대한다면, 나와 내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내 글쓰기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 말들은,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신 아들들이여, 내가 나 자신에게 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의다. 아들들이여, 시간이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이다, 서두르시라. […] 하지만 난 당신들을 안다. 그 어떤 것도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오래도록 당신들의 그 끔찍한 무관심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어떤 아들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아들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이 바보들은 곧 벌을 받는다.


(237)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공장을 다시 보러 갔다. 외벽은 국민전선의 포스터와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었다. 내부는 모든 것이 황폐한 인상을 주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바닥엔 짙은 녹색의 깨진 병 조각들,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병뚜껑을 고정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금속 링을 거는 빨간 고무 패킹들 또한 오렌지색으로 바랜 채 흩어져 있었다. 이 황량한 무대를 두고 나는 어머니의 것이었던 세계에서 어머니의 실존이 어떠했을지 생각했다. 오늘날 바람이 쓸고 간 텅 빈 공간을 한때 가득 채웠던 유기체들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격렬했을, 물론 [유리 제품] 제조용 가마들에서 내뿜던 열기에 대해. 지옥같이 참기 어려운 소음에 대해, 온갖 직무의 극단적인 난도에 대해, 자재들에서 나오는 분진의 위험성에 대해, 떄로는 심각했을 숱한 노동 재해에 대해지나간 과거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를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 난 생각했다. , 이것이 어느 서민 여성의 삶이었고, , 이것이 그녀의 노년이다. 난 그렇게나 빨리 세번째 단어를 덧붙여야만 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263)

엘리아스가 쓴 이 말을 틀렸다고 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직도 활기차고 가끔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한 자신의 몸이 느릿해지고 쉬 피로하며 어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다시 말해 노인들,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는 다른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죽을 것이라는 관념을 극구 부정하려 하며 그에 저항한다.”


(299)

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 또는 어쩌면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또는 그들에게 이제는 없는, 아니면 의존적인 고령자들의 경우처럼, 그들이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그 목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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