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품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갈고닦아야 하고, 의로운 기상은 언제나 얼굴에 드러난다.” 그렇다. 손톱을 보면 그 사람의 청결함이 드러나고, 체형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드러나고, 성격은 얼굴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작은 습관과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24)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화가들이 그리는 용은 마치 귀신 그림 같아서, 머리는 무섭고 꼬리는 뱀처럼 묘사된다. 그런데도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물다 보니 사람들은 그럴 듯 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이미지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청나라 화가 정공이라는 사람은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 용의 모습을 그리고자 애썼다. 비늘 하나, 눈동자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은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칠 것처럼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보다 밀실에서 조용히 그려야 할 정도로 귀했다. 그림이란 작은 기예일 뿐이지만, 그 곳에 진실과 정신이 담겨 있다면 세상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30-31)

정약용은 말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안타깝도다. 주머니 속처럼 좁고 막힌 곳에 살아 삼면은 바다, 북쪽엔 높은 산택이 가로막혀 몸도 마음도 늘 펼 수 없다. 개인이 가진 뜻이나 이상도 펼치기 어렵고, 공자 맹자 같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현실과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줄 이는 누구인가.” 정약용은 조선 시대의 현실에 대한 탄식과 함께, 그 안에서 도덕과 이상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을 안타까워했다. 글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옛날에는 정말 몰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면, 오늘날은 새로운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옛날이나 현대나 미래나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누군가는 비난하고 또 누군가는 좋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나만의 기준과 그만한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있고, 물러나야 할 자리가 있다.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그릇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35)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모든 것이 제때를 만나 기쁨을 누리는데, 나만은 어쩐지 앞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며 이렇게 멈춰 있는가? 물질적 욕심이나 세상의 기준을 벗지 못한다면, 어찌 뜻을 크게 품고 분발할 수 있겠는가. 백 년 인생 안에서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 몸 하나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데, 결국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 성장하는 사람은 탓하는 대신, 자신의 태도와 삶을 먼저 다스린다.


(43)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산에서 연못을 파고 대를 쌓으며 밭농사에 마음을 다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디 내가 그 일을 좋아해서였다.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내 것’, ‘네 것의 구분은 없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47)

정약용은 말했다. “큰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용광로의 불에 들어가고, 망치질을 여러 번 견뎌야 하는 법이다.” 쉽게 만들어진 그릇은 쉽게 깨지는 법이다. 반면에 불과 망치를 견뎌낸 그릇은 단단하고 오래 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흘러가던 일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그 고비가 길어지면 마음은 쉽게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 시련이 곧 나를 단련하게 시간일 수 있다. 단지 결과가 늦게 오는 것일 뿐,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55-56)

정약용은 말했다. “마음속 뜻이 천박하고 저속하면, 아무리 억지로 그럴듯하고 고상한 말로 꾸미려 해도, 그 안에서 제대로 된 조리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한 생각이 편협하고 비루하면, 아무리 화려한 말로 치장한다 해도 사물의 진실한 정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시를 배우는 사람이 그 안에 담긴 을 헤아리지 않는 것은,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것이며, 악취 나는 가죽나무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얻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자세로 평생을 시에 힘쓴다 해도, 얻을 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이 인간 사이의 이치, 그리고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목숨, 운명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인간 안에 있는 바르고 순수한 마음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생긴 혼탁하고 거친 감정이나 욕심들을 깨끗이 비워내, 본래 맑고 참된 마음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66-67)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과소평가라고, 스스로를 업신여긴다. 그래서 말이 막 나가거나, 아무렇게나 사람을 칭찬하거나 헐뜯고, 생각 없이 억누르거나 부추기면서, 결국 그로 인해 사람의 명예와 이익이 크게 엇갈리게 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지위를 허락하면 그 책임은 나 혼자만 질 수 있지만, 오히려 자격 있는 사람을 배척하면 그 해악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더구나 은혜와 원한은 한마디 말에서 생기기도 하고, 재앙과 복도 때로는 단 한 글자의 문장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니 사리에 밝은 선비라면 이 점을 깊이 새기고 늘 경계해야 한다.”


(77)

정약용은 또 이렇게 말했다. “예전 친구들 가운데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어떤 사람들은 그 친구를 부귀해진 사람으로 여기고 괜히 주눅이 들어 그 집을 찾아가는 것조차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부끄럽거나 그 사람을 나쁘게 여겨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간사한 자들의 이간질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혹은 설사 지위가 높다 해도 결국은 조용히 살아가는 늙은 선비일 뿐이다. 그런 우리라도, 어떤 이의 글과 말이 본받을 만하다면 어찌 그를 찾아가 교류하지 않겠는가? 결국 중요한 건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다.”


(89)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비방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법이다. 경솔하고 무지한 무리들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면 잠시 떠들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그 비방을 듣고 일일이 사람들에게 해명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수백, 수천 명에게 전해질 것이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는가? 또한 한 숟갈 밥으로 사람이 살이 찌거나 마르리라 믿는 이는 없다. 그런데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는 자리에서, 단지 미친 자가 퍼뜨린 한마디 험담에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한다면, 어떻게 기틀을 바로 세우고 큰 뜻을 펼 수 있겠는가?


(98-99)

정약용도 이렇게 말했다. “혀 때문에 죽고, 혀 때문에 살며, 혀끝에서 싸움이 일어나 소리도, 자취도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말이 절제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되풀이되어 온 잘못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고도 한다. 칼은 상처를 내도 시간이 지나면 흉터로 아물 수 있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보이지 않아 더 오래 간다. 그래서 말은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진심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내가 옳다는 확신만으로 말의 칼날을 휘두를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날카롭게 내뱉는 순간 진실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만 남는다.


(99-100)

정약용은 말했다. “사람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공손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옳은 말이라도 남이 기분 나빠하고 듣지 않게 된다.” 정약용의 말처럼 말의 방식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은 상태의 마음을 열게 하지만, 날 선 말은 마음을 닫게 한다. 늘 이쁨을 받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안다. 그래서 말에 날을 세우기보다 다정함을 품는다.


(110)

그래서 정약용은 허물을 고치는 자는 허물이 없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누구나 허물을 고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제로 행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났는가 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쳐나가는 태도,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담히 고쳐나가자.


(115-116)

정약용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좁은 세상만을 본다면, 항아리 속 쉬파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짐승이 사람을 볼 때 모두 비슷하게 보이듯이, 대체 누가 어리석고 누가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기 나는 두 마리 백로를 보게나, 그들 사이에 누가 더 낫고 못한지 어찌 알겠는가. 한마디 말로 사람을 정하고,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버리는 일, 어리석도다.”


(134)

정약용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와 자신과 비교하지 마라. 모기나 풀과 나무도 모두 한 생애를 산다. 인생이 굽이치고 돌아간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잡한 산세도 깊은 골짜기를 품기에 적당하듯, 모든 일에는 제자리가 있다. 본질 없는 자랑은 허망하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니 비교하고 칭찬을 받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자. 본질이 없는 자랑의 끝에는 허망함만 남을 테니 말이다.


(153)

정약용은 이런 말을 했다. “나아가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는 것을 공손함으로 삼고, 나아가지 않는 것이 옳다면 나아가지 않는 것도 공순함으로 삼아라.” 그러면 그 옳은 곳이 곧 공손함이 맞는 곳이다. 공손함이란 단지 겸양하거나 비굴한 태도가 아니라, 바른 판단을 기준 삼아 신중하게 행동하거나 멈추는 태도라는 말이다.


(188-189)

정약용은 비밀을 지키는 방법과 근신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있으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세상의 재물과 근심거리, 또는 천지를 뒤흔들 만큼 크고 무거운 죄악은 사람의 몸을 해치고, 가문을 망하게 할 일들은 대부분 몰래 감추고 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거나,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만약 이 글이 사거리의 번화가에 떨어져 있어 원수진 사람이 열어보더라도 나에게 죄가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고, 이 편지가 수백 년 뒤까지 유전되어 허다한 식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져도 나에게 비난이 없을 것인가?라고 생각한 뒤에 쓰고 밀봉해야 하니, 이것이 군자가 근신하는 태도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글씨를 빨리 썼으므로 이런 실수를 많이 했다. 중년에는 뒷일이 두려워 점차 이 법도를 지켰더니, 매우 유익하였다. 이 점을 명심하라.”


(201)

삶의 깊이는 겪은 만큼 깊어지고, 앎의 밀도는 직접 부딪힌 만큼 단단해진다. 큰 뜻을 품었다면 남의 말로는 세상을 배우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다 넘어질 수도 있고, 진흙탕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을 진짜로 만들어준다. 두려움은 해보지 않아서 생기고, 용기는 해본 사람에게만 생긴다. 삶은 결국, 맛본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다.


(222)

정약용은 말했다. “잡념이 생기면 휘저어 보내라. 다시 떠오르면 또 휘저어 보내라.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억지로 쫓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것이 곧 다스림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잡념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 보내거나 그대로 둘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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