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왕자 - 갱상도 (Gyeongsang-do Dialect) 이팝 어린 왕자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자, 최현애 역자 / 이팝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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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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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그인 알라딘서재에서 알게 된 책을 읽었단다.

애린 왕자.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분명 겉표지는 어린 왕자이고, 지은이도 생텍쥐페리라고 써 있는데, 번역본의 제목은 어린 왕자가 아니고 애린 왕자였어. 왜 그런가 궁금해서 책 소개를 봤더니, 이 책은 어린 왕자의 경상도 사투리 버전이라고 써 있다고 하더구나.

미리 보기를 통해 어떻게 번역되어 있나 봤더니, 억세고 사나이 냄새 잔뜩 나는 경상도 사투리로 적혀 있더구나. 눈으로 읽어도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 듯 했어. 재미있겠다 싶어 주문했단다. 그런데 좀 알아 보니, 전라도 사투리 버전인 에린 왕자도 있다는 구나. ㅎㅎ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 버전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고

<애린 왕자> <에린 왕자>를 같이 주문했어. 집에 왔을 때 앞에 몇 페이지만 보고, 큭큭거렸던 기억이 있구나. 얼마 전에 독서 앱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애린 왕자가 오디오 북으로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책장 속에 잠자고 있는 <애린 왕자>를 꺼내 들고, ‘밀리의 서재의 오디오북과 함께 읽어보았단다. ‘밀리의 서재 <애린 왕자> 오디오북을 녹음하신 분이 경상도 네이티브인지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듣기에 나쁘지 않았단다. 1배속보다는 1.5배속 정도로 해서 들어야 경상도 사투리의 제맛을 느낄 수 있었단다.

경상도 사투리로 읽고 들어도 어린 왕자의 순수함은 변하지 않는 것 같구나. 좀더 정감 어린 것 같더구나. 어린 왕자의 내용은 아빠가 재작년에 표준어 번역본 <어린 왕자>를 읽고 이야기해준 내용이 있으니 따로 하지는 않을게. 이 책을 기획하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밀리의 서재를 검색해 보니 <에린 왕자>의 오디오북도 있더구나. 그것도 기회가 될 때 들어봐야겠구나. 충청도 버전의 <어린 왕자>도 출간되었는지, 검색해 보니 충청도 버전은 소문만 있었고, 출간은 안 된 모양이더구나. <어린 왕자>뿐만 아니라 유명한 고전들을 사투리 버전으로 번역 출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잘 찾아보면 어울릴 만한 고전이 있지 않을까 싶구나.

오늘은 아주 간단히 소감만 이야기하고 마치련다.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보아뱀이라 카능 기 정글에서 젤로 무서븐 기라꼬 생각했데이.

책의 끝 문장: 구란데 어느 으른도 이게 이마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지는 몬 할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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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13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투리 버전, 괜찮은 아이디어같네요.ㅎㅎ

bookholic 2024-02-15 09:43   좋아요 0 | URL
네.. 사투리로 번역하면 어울리는 책 선정해서 시리즈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꼬마요정 2024-02-1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오디오북 들어보고 싶어요!! 재밌겠어요^^

끝문장 웃깁니다. 구란데... 구라래... ㅋㅋㅋㅋㅋㅋㅋ

bookholic 2024-02-15 09:45   좋아요 1 | URL
직접 낭독하면서 녹음해 보셔도좋을 것 같아요~~~^^ 지인들한테 선물~~
 
















(43)

당시 피렌체를 지배했던 가문이자 역사상 가장 힘센 시민 가문 가운데 하나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빛을 못 보던 작가들을 적극 후원해 르네상스 예술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가문이기도 합니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데 쏟은 거액의 출처가 바로 환어음을 활용한 은행업에서 나온 이윤이었어요. 메디치 가문이 유럽 경제의 큰손으로 성장하도록 기초를 놓은 인물은 조반니 데 메디치입니다. 국제무역을 하며 결제의 어려움을 절감한 조반니는 가장 먼저 유럽 전역에 지점망을 구축해 일종의 환전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상인들은 메디치 가문의 환어음만 가지고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됐죠. 덕분에 귀금속 화폐를 운반하는 비용과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201)

플랜테이션이란 서구 유럽인이 돈과 기술을, 노동자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규모 농장을 말합니다. 사탕수수와 면화가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재배되는 대표 품목이죠.

거대한 규모보다 더 중요한 건 플랜테이션의 운영 방식이에요. 서구 유럽인이 돈과 기술을 제공했다고 했죠? 이들은 토지와 생산시설, 그리고 노동력을 제공해줄 노예를 잔뜩 사들여 대규모로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설탕을 내다 팔아 처음 투자한 돈의 몇 배를 벌어들였죠. 이때 처음 토지와 생산시설을 사들이는 데 들어간 투자금이 바로 자본입니다.


(245-246)

당시 미국이 사회주의 진영을 이기기 위해 택한 전략 중 하나가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이었거든요. 미국의 도움을 받아 경제성장을 경험한 국가라면 사회주의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을 테고, 다른 국가들에도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함을 과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해방 이후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된 우리나라에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각종 원조도 받고, 미국이 허용하는 수준에서 보호무역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일본과 유럽 등 다른 자본주의 진영 국가들도 미국의 외교 전략에 발맞추어 한국의 보호무역을 용인해주었습니다.


(301)

유독 이해관계가 잘 맞는 국가들이 있다면 WTO가 일률적으로 정한 조건보다 더 장벽을 낮추는 게 좋겠죠. 예컨대 WT) 8% 관세를 적용하라고 할 때, 두 국가끼리 자체적으로 관세를 완전 철폐하는 등 특혜에 가까운 조건으로 시장을 열어둘 수 있어요. 이렇게 이해가 맞는 국가끼리만 특별한 조건으로 협력하는 경우를 지역주의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지역주의 협력체가 바로 유럽연합, 다시 말해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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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8권 -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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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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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 근대사 산책 8권의 이야기를 할게. 8권의 부제는 만주사변에서 신사참배까지란다. 만주사변은 1931년이고, 신사참배는 1930년대 중반부터 많이 강요했으므로, 8권의 다룬 시대는 193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라고 보면 돼.

그럼 바로 시작해 볼게. 일제의 강압과 폭력을 피해 많은 우리나라 동포들이 만주 지역에 가서 터를 잡았단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만주 지역의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 간의 다툼이 있곤 했어.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지. 그런데, 일본이 이것을 사악하게 이용하려고 했어. 일본은 일상적이 이 사소한 마찰을 허구로 왜곡하여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렸어. 국내에도 이 소식이 전해지고, 조선일보는 이 소식을 호외까지 내면서 대서특필했단다. 이 소식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했던 동아일보와 다른 행보였어.

조선일보를 통해 전해진 이 소식은 국내에 있는 백성들을 열 받게 했어. 분풀이 하겠다면서 국내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공격하였고, 이 사건으로 100여 명의 화교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런데 이것도 알고 보니, 혼란의 틈을 타서 일본인들이 죽인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식은 다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는 중국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졌단다. 완전히 일본의 음모에 말려든 거지. 일본은 중국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중국인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군을 대거 투입하였고, 이 군대를 이용하여 그대로 만주를 점령하였단다. 이것이 바로 만주 사변이란다. 때는 1931 9 18일이었어.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조선일보의 이 소식을 접하는 자세였단다. 일본의 앞잡이 신문이 다 되었다고는 하지만, 신문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했을 때, 좀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한 후 기사를 썼어야 했어.

근현대에 와서 신문은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넘어 권력까지 갖게 된단다. 1930년대에도 그런 신문의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한 이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 당시 신문을 비판하는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 신문에도 딱 맞는 글 같더구나. 많은 매체들이 생겨나서 옛날보다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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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17)

당시 신문이 누린 권력과 신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월간 <동광> 1931 12월호에 실린 <신문 비판 특집>은 주목할 만하다. 이 기사는 대화형식으로 신문에 대한 세평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선의 신문계에 사장이면 판서 격은 되고 중역이면 참판 격은 된다는 말을 못 들었나? 그 밑에 국장도 있고 부장도 있으니까 벼슬 못한 조선 민간 유지에게는 이것이나마 훌륭한 벼슬자리인 줄을 모르는가? …… 연전에 모 신문에서 수재금을 모집하니까 푼푼이 들어온 것이 5만여 원이요, 또 요새 이충무공 성금모집도 2만 원을 돌파했으니, 이 돈 없는 조선에서 그만한 돈을 모은다는 것은 신문의 위력이 아니고는 못할 일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시골 가서 보면 석유 등잔 희미한 불빛 밑에서 동리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신문지가 해지도록 돌려가며 읽고, 신문에 난 말이면 만고의 진리로 듣는 형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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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대 들어서면서 독립운동은 한풀 꺾이게 되었단다. 일본 침략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이들이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도 그 열정을 이어가기 힘들었나 봐. 이때 다시 독립운동의 횃불을 켠 이들이 있으니, 바로 김구 선생이 만든 임시정부 의열 투쟁 단체인 한인애국단이란다. 1932 1, 이봉창 의사가 일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에서 일왕 암살 시도를 했단다. 폭탄이 안타깝게도 불발이라서 실패를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어. 그리고 1932 4월에는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전승기념 및 천장절 기념식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요인들을 죽인 사건이었단다. 윤봉길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1932 12 19일 총살형으로 삶을 마감하셨단다. 아직 100년도 채 안된 시절이었구나.

1920년대부터 유행하던 사회주의 노선의 국내 활동은 193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탄압에 의해 더욱 힘들어졌단다. 국내 공산당을 이끌던 이들은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 등이 있었어. 이들은 경성 트로이카로도 불렀는데, 국내에서 공산당 재건을 위해 노력했단다. 이들의 이야기는 아빠도 오래 전에 안재성 님의 <경성 트로이카>라는 책들 통해서 읽어본 적이 있구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일제의 탄압에 의해 이재유는 여섯 번 체포 당하고 여섯 번을 탈출했대. 대단하시구나.

상해에서 체포되어 국내 감옥에 수감 중인 여운형은 가출옥하게 되었는데, 그 후에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대. 당시 신문 시장은 동아일보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금광으로 떼돈을 번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동아일보의 인력을 빼오면서 조선일보가 성장하게 되었대. 그때 빼온 인력들 중에 밉상 이광수도 있었단다. 이광수는 조선일보 부사장을 비롯하여 다섯 가지 직책을 맡으면서 조선일보를 동아일보와 함께 양강체제를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는구나. 당시 신문 구독자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가 연재 소설을 싣는 것이었어. 그래서 1930년대는 신문 연재 소설의 전성기였다고 하는구나. 많은 작품들이 신문에 연재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은 홍명희의 <임꺽정>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은 그 이후에 오랫동안 인기를 끈 역사소설이 되었지.

1920년대 사회주의 문학예술문학운동단체로 번성했던 카프도 일제의 탄압으로 몰락했다는구나. 카프 멤버 중 안막이라는 작가가 있어. 물론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야. 그런데 왜 이 사람을 이야기하냐면, 안막의 아내가 엄청 유명한 무용가인 최승희라는 사람이란다. 최승희라는 사람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일제 시대 유명한 무용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거든. 이 책에서 잠깐 최승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분이 전세계로 활동하는 무용가였더구나.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줄은 몰랐네.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무용이라는 재능을 펼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변론하는 이들도 있었어. 해방 후에는 남편 따라 북한으로 갔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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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39)

167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졌던 최승희는 1937년부터 5년간 세계 공연을 나섰으며, 이때에 반도의 무희’ ‘동양의 진주’ ‘동양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전성기 당시 최승희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 예술인들과 교류를 맺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 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 소설가 존 스타인벡, 루이스 레에나, 존 그로프,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 로버트 테일러, 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 소설가 로맹 롤랑, 미셀 지몽, 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녀와 친교를 맺었다. 파리 공연 때 파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았는데,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나중에 안씨 집안(시댁)과 최씨 집안(친정) 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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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학 단체로 구인회가 있었는데 이효석, 이무영,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도 이 단체의 멤버였대. 이상과 김유정이 비슷한 시기에 폐결핵을 사망했다고 하네. 창단 멤버는 아니지만 나중에 박태원이라는 분도 구인회 멤버가 되는데, 박태원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분이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읽어봤으면 하네. 몇 년 전에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수상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로 박태원 작가가 소개된 적도 있어.


2.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엄청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시작인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제시대에도 교육열이 엄청 높았대. 보통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나서 1 1교제라 하여 한 개 면에 한 개 보통학교를 세웠대. 보통학교를 6년제로 바꾼 것도 이 시기였다고 하고과학이나 우생계몽운동도 일었는데, 지금은 우생학이 잘못된 학문이라서 폐기처분 당했지만, 당시에는 많이 유행했나 보구나. 우리나라에도 1933년 조선우생협회가 생겼대. 우생학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빠가 작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 세계대공황과 히틀러가 우생학을 악용하면서 우생학은 쇠퇴했다고 하는구나.

1930년대에 조선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 조선학이 등장했다는구나.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책들을 쓰셨어. 신채호도 합류하여 <조선상고사> 등 많은 역사책을 쓰셨단다. <조선상고사>는 여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쓰셨다고 하는구나.

당시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 운동이 유행했단다. 브나로드 운동은 아빠가 학창 시절에도 시험문제에 자주 출제되었던 기억이 있구나. 브나로드라는 말은 러시아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래. 이 운동의 취지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문자보급운동을 하였고, 이광수의 <>,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상록수> 등이 출간되었어. 사실 심훈의 <상록수>라는 책은 브나로드가 끝난 1935년에 출간하긴 했지만, 농촌 계몽 소설로 브나로드 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었어. 이런 좋은 운동을 변절자 이광수가 주도한 것을 보면,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어떤 평론가는 이광수의 <>은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이 담겨 있다고 평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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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브나로드운동을 주도한 것은 편집국장 이광수였으며, 그 운동의 시범작으로 쓴 것이 <>이다. 지수걸은 <>에 대해 이광수가 <>에서 표방한 하면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아는 것이 힘’ ‘티끌 모아 태산등의 헛구호는 제국주의 지배모순을 은폐하기 위하여 일제가 선전한 자력갱생운동 구호와 거의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이러한 구호는 안 해도 이미 되어 있는 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될 사람들에게 안주 삼아 내뱉는 비아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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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이 발표한 <상록수>는 동아일보 공모전에 당선되었는데, 상금으로 야학당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야학당은 해방 후에 이름을 상록초등학교(충남 당진에 있는 학교)로 바꾸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우리나라 선수로써 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금메달을 딴 사람은 손기정이라는 분이란다. 비록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참가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1등은 손기정, 3등은 남승룡이 차지하면서 시상대에는 조선의 젊은이들이 두 명이나 있었어. 심훈은 당시의 감격을 글로 쓰셨는데, 지금 읽어봐도 감격이 전해지는 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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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시인 심훈은 8 10일 새벽 <조선중앙일보>가 발행한 신문 호외를 받아들고 그 뒷장에 그대들(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들의 심장 속에 솟음치던 피가 2300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 외치고 싶다. 인제는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라고 갈겨썼다. 감격에 몸을 떤 심훈은 그 즉흥시를 들고 <조선중앙일보>의 편집실을 찾아가 한바탕 읽어 들려주고는 사라졌는데, 그 이튿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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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에서 손기정 선수의 소식을 전하면서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실었단다. 일본은 크게 격분했지. 이후 동아일보는 일제의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되는데, 탄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함께 일제 어용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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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동아일보>는 일장기 말소 사건 후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친일 어용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조선일보>의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일보>는 일제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1937 1 1 <조선일보>는 일왕 부부의 사진을 1면에 크게 싣고 같은 지면에 총독의 새해 기념사와 휘호를 실었다. 이후 해마다 1 1일자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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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37 7월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켰어. 승리한 일본은 중국 난징을 공격하여 민간인들을 포함한 수십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난징대학살도 이 시기에 일어났단다.

김구의 한인애국단 활동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독립운동의 침체기는 이어졌단다. 독립투쟁에 있어서 분열과 연합이 이어졌는데, 우파는 김구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단다. 김원봉은 김구의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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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김원봉은 1937 12월 초에 김구 중심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가담하지 않은 중간파, 좌파세력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한상도는 이로써 1930년대 후반기, 중국 관내 지역 한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구의 우파그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가던 김원봉 중심의 중간좌파그룹으로 양극화되어갔다.”고 했다. 1938년엔 장제스가 직접 나서 한인세력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구하게 된다. 끝없는 분열! 당시 독립군세력이 처해 있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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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1938년에는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이끌면서, 반대로 김구의 한국광복운동단체 연합회에 조선의용대 합류를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김구가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1937년 연해주에서도 아픈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단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고려인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 했어. 그 먼 길을 좁은 기차 칸에서 빽빽이 이동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뿐만 아니라 소련은 반역죄의 명목으로 2000여 명의 고려인이 총살 당했다고 하는구나. 나라 잃음 설움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우리 백성들의 희생으로 돌아왔단다. 왜 소련은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정권을 잡게 되었는지,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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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1934년 사할인에서 출생해 <고려일보>의 사장을 지낸 조영환은 러시아는 한인 이주민을 교묘히 이용하여 연해주 일대의 미개간지를 개척한 후에는 이 개간지에 러시아인을 이주시킨 다음 한인들을 다시 오지인 미개간지대로 추방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35년 이후 연해주에 상주하는 한민족 수가 근 30만 명이었는데 그 후에도 인구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조국이 인접한 이 지대가 장래에는 한민족의 자치지역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탈린 체제는 1932년부터 한민족 중 인텔리, 기술자, 농업전문가, 당 관리요원, 군무자 등 민족의 두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일제 스파이라는 것이다. 한평생 조선의 독립을 위해 반일투쟁에 몸바쳐온 연해주 한민족들에게 역사의 철천지원수인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는 만인의 단죄를 받는 야수적인 행위였다. 그 때문에 1932~1937년까지만해도 한민족의 핵심 지식인 2000여 명이 학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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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에도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이민 가는 백성들이 많았는데, 1930년대도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만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한편 1930년대 국내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갑부가 되려는 이들이 많았어. 그로 인해  금광과 부동산 열풍이 일었고, 주식 투기꾼들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여러 큰 기업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경성방직이 대표적인 기업이라고 하는구나. 경성방직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졌는데,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이 기업을 이끌었는데, 이들 또한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단다. 친일이 아니고 자본주의 흐름을 탔을 뿐이라고 핑계를 대신 해하는 이도 있다는구나.


4.

일본은 193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황국식민화 운동을 하였고, 그 일환으로 한글 교육을 중단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단다. 1938 6월에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을 만들어서 언론사가 주도하는 국민총동원도 했어. 이것의 목적은 내선일체를 강화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일본군에 지원하도록 언론사들이 앞장서 독려했단다. 지원병에 대한 대우로 좋게 해주다보니 지원병이 증가했는데, 이것은 먹기 살기 위한 생계형 지원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일제는 역사에 있어도 식민사관을 주입하려고 했어. 단군조선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태워버렸단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한 자료가 적게 되었나 보구나.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단다. 이 조직에 최남선도 참여하여 일선동조를 주장하는 만행을 저질렀어. 일본은 우리나라 역사를 식민사관으로 서술한 <조선사> 35권을 펴내기도 했어. <조선사>는 박은식이 1915년에 쓴 <한국통사>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자 식민사관으로 기획하여 만든 책이라고 하는구나. 이젠 완전히 조선을 식민지가 아닌 자신의 나라로 끌어들이려고 한 거야.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여 <조선사> 제작에 참여한 대표적인 식민사관 사학자 이병도라는 사람이 있단다. 이 사람은 아빠도 알만큼 유명한 식민사관 역사가란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후에도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이 한국사를 주도했다는 거야.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사는 식민사관 역사를 배워 온 것이라고 예전에도 들었어. 이런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되니, 오늘날 정치판에도 아직도 친일파들이 많은 것 같구나. 된장.

1937 6월 수양동우회라는 사건이 있었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란다. 무려 181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었는데, 4 5개월 재판 끝에 다행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대. 그런데 그동안 감옥에 있으면 대부분 전향을 했고, 모진 고문으로 죽은 이들도 있었어. 그 중에 도산 안창도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감옥에서는 죽지 않았지만, 투옥 중에 병을 얻어 병 보석이 되었고,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1938 3)

의아한 것은 안창호의 제자였던 이광수는 안창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일본에 자신이 전향할 테니 동우회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무죄를 받게 해달라고 했다는구나. 이것은 이광수가 자신이 친일 하게 된 변명으로 많이 이야기를 한대. 자신의 말대로 친일이 동우회 사건의 무죄를 받기 위한 위장 친일이었다면, 그 이후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지. 그는 이 사건 이후 주요한 등과 함께 철저하고 악랄한 친일파가 되었단다.

신사 참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국 곳곳에 신사를 지었다고 하는구나. 1943년에는 무려 854개를 지었대. 신사 참배를 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유일신을 믿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이나,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신사참배를 허용했다고 하는구나. 종교도 결국 강자의 편이구나. 개신교도들 중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2000여 명이 투옥되고, 200여개의 교회가 폐쇄되고, 50여 명이 순교했다는 아픈 역사가 있구나.

….

여기까지 8권의 이야기란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글이 엄청 길어졌네. 그 만큼 아픈 역사가 많던 시절이라서 그랬나 보구나. 이제 두 권 남았구나. 아빠가 부지런을 좀 떨어서 얼른 이야기해줄게. 말뿐일 수도 있지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또는 재즈 시대(Jazz Age)’라고도 할 만큼 번영과 즐거움이 솟구친 시대였다.

책의 끝 문장: 1940년대 들어 그 전쟁기계 국가의 광란은 극을 치닫게 되며, 그 와중에서 조선인의 신음 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간다.


1929년의 대공황은 인류 문명사에도 한 가지 큰 변화를 몰고왔으니, 그건 바로 소비(consumption)라는 개념의 재탄생이었다. "소비"는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단어로 ‘consume’이라는 동사의 본래 뜻은 파괴하고, 약탈하고, 정복하고, 소진시킨다는 의미였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비(consumption)’라는 단어는 낭비, 약탈, 탕진, 고갈 등과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며, 심지어 폐병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대공황 이후 대중광고와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긍정적 이미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소비’라는 단어는 ‘선택’과 동일시되면서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다. - P11

"반민생단투쟁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광으로 전개되어 심지어 4살짜리 어린애까지도 죽였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고 적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문, 타살까지 자행했던 것이다. …… 자기보호 혹은 지나친 불안감이나 과시욕에서 나온 적극성의 과잉표현으로 중국인들 앞에서 조선인을 믿을 수 없음을 고백하며 조직에 자신의 청백함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심리가 민생단 적발과 비판투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혁명성을 나타내기 위해 조그만 일도 큰 문제로 고발하고 또 거짓진술을 해댄 것이 반민생단투쟁을 확대, 지속시킨 중요한 원인이라고 인정된다." - P74

그러나 1929년 주식시장 붕괴는 우생학의 기본 사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제레미 리프킨에 따르면 "이탈리아계, 폴란드계, 유태계 이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금융 엘리트들의 실직사태가 벌어지고, 중산계층 전문가와 학자들도 이들과 나란히 실업자 대열에 들어서게 되자,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대공황은 수백만 미국인들을 평등하게 하여, 북유럽계 인종이든 남유럽계 인종이든,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들이건 유태인이건 모두 똑같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 P161

"첫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사회진화론의 내적 모순을 해결하는 이념으로서 수용되었다기보다는, 시대적 조건의 변화와 독립 이후의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저항적 민족주의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목표를 심화하는 발전적 계기로서 수용되었다. 둘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그의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채호에게 있어서 무정부주의가 민족주의의 방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정부주의는 민족주의의 발전된(혹은 민족주의가 지양되는( 단계로서 간주함이 타당하다. 셋째, 신채호의 무정부주의는 좌우 양쪽을 모두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종합하여 지양하는 제3의 가능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P181

김원봉은 1937년 12월 초에 김구 중심의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에 가담하지 않은 중간파, 좌파세력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했다.
한상도는 "이로써 1930년대 후반기, 중국 관내 지역 한인들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구의 우파그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성향으로 가던 김원봉 중심의 중간좌파그룹으로 양극화되어갔다."고 했다. 1938년엔 장제스가 직접 나서 한인세력의 단결과 재편성을 촉구하게 된다. 끝없는 분열! 당시 독립군세력이 처해 있던 최악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겠다.
- P249

<한국통사>는 대원군시대부터 한일합방까지 50여년의 뼈아픈 망국사로, 국가는 비록 망하였지만 국혼(국가의 정신적인 힘)인 국교, 국가 등을 보존하고 교육과 독립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결국 국백인 국가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정신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어 박은식은 1920년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쓴 독립운동사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고무되어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까지의 독립투쟁사를 서술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선 민중의 힘과 민의의 결집이 독립실현의 중요수단임을 강조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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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일정수준 이상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을 대해 윤석열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가뜩이나 쌀농사가 위축되고 있는 판에,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식량이 무기화되고 있는 이런 중대한 시기에 돈많은 정부가 가난한 농부의 주머니를 더욱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요, 졸렬한 시책일 뿐이다. 본시 비토라는 것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농민은 아무리 눌러봐야 끽소리 못한다는 안도감이 있기 때문에 비토권 행사의 최적대상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내가 시골에 강연 나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농사짓는 사람들은 나의 비토비판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응원한다. 그런데 비극적인 사태는 농민의 대다수가 보수적으로 투표를 했다는 사실에 있다. 뻔히 자기를 죽일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자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즉 자기를 억압하는 자를 지도자로 모시는 것이다. 무지의 광란일까? 도대체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민주라는 이상은 인간세에 있는 것일 것? 벼라별 생각이 드는 것이다.


(46)

일본의 강점(强占)은 과거지사, 지나간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50년의 역사일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민족의 모든 역사를 지배하는 현존사(現存史)인 것이다. 끊임없이 역사의 의미를 묻게 만드는 현존재의 역사인 것이다. 일본의 강점통치가 없었더라면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등장한 미소 양숙의 분할점령도 없었을 것이고, 빨갱이색출도 없었을 것이고, 반공이념도 국시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6.25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의 냉전질서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요, 오늘날 소위 말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쓰레기이념도 이 역사에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태극기부대니 뭐니 하는 보수이념은 결국 반민특위의 좌절로 살아남은 친일파세력이 대간을 이루는 비극적 흐름일 뿐이다. 이런 떳떳치 못한 슬픈 몸부림도 일본의 강점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55)

일본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것은 인류보편사의 정신이 요구하는 도덕성이다. 그 도덕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인류사의 양심이 바로 우리 역사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요, 일제강점기의 만행이 우리 민족에게 남겨놓은 과제상황이다. 이 인류사의 성스러운 과업을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이 뭉개버리고 또다시 일본에 굴종하며, 일본의 편에 서서 일본의 모든 편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 국운의 책임을 지고 있는 최고권력자가 이 나라의 성스러운 세계사적 과업의 명운을 무시하고 또다시 일본의 강점과도 유사사한 사태를 재발시키고 싶어하는 형국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너무도 엉뚱하게 들이닥친 허무맹랑한 정황이래서 도무지 이해의 틀을 잡을 수가 없다.


(79)

케네디는 말한다: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 취임연설문 중-

너무도 유명한 명언이지만,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다! 그 조국이 어떤 조국인데, 무엇을 하려는 조국인데! 우리 조선땅에서만해도 미군정시기에 정의롭지 못한 족적을 남겼고 또다시 월남땅에 100만톤이 넘는 폭탄을 투하하려는 조국을 위하여 먼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달라구? 초기에는 영장을 받으면 서로 가려고 다투었다.


(111)

방사성 오염수의 방류는 코로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구원한 해악을 이 지구 온생명에게 끼칠 것이 분명한데, 지금 윤석열은 키시다의 손을 잡고 아무 대책 없이, 걱정 말라고 하면서 시찰단만 보내면 끝나는 문제라고 웃음짓고 있는 형국이다. 시찰단의 명단조차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잊었는가? 19세기 말, 일본 시찰한다고 파견된 신사유람단 사람들이 결국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을!


(234)

나는 묻는다:”아니 민중이 민중 스스로를 구원한다고 안 선생님(안병무)은 말씀하셨는데, 어째서 민중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그런 인물을 이 험난한 세파를 헤치고 나아가야 할 이 위태로운 시기에 지도자로서 뽑는단 말이오?"


(308)

백제의 멸망을 두고 의자왕 말년의 사치와 타락을 운운하는 것은 사가들의 상투적 근인(近因) 지어내기에 불과한 짓이다. 그렇게 국민의 사랑을 받고 영민한 결단으로 국력을 신장시켰던 해동증자 의자왕이 갑자기 타락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실상에 와닿질 않는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적대해서는 아니 되는 국가를 적대하여 패망일로로 직입하는 오늘날의 꼴과도 같다.


(315)

풍류는 하나의 로칼한 종교단체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고유한 현묘한 도, 즉 길(way)이다. 그 도는 그렇다고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종교와 같은 조직적 힘을 가지며,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유•불•도라는 종교철학의 핵심내용을 다 포섭하는 우리민족 원래의 철학이요, 문화요, 삶의 방식이다. 외래종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풍류는 이 민족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343)

일본의 민중은 자민당화되어 있습니다. 자민당을 객체화 시켜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민당의 정치세력은 근원적인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없습니다. 자민당은 이렇게 큰 원전사고를 치른 후에도 원전을 계속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문제에 관해 도덕적 통찰이 없습니다.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은 언론이 죽어 있습니다. 언론이 국민에게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직접선거도 없지요. 그러니 자민당에 맞서는 사회세력이 없는 셈입니다.”


(344)

키시다는 아베보다 훨씬 더 악랄한 인물입니다(여기 번역을 악랄하다라고 했는데 그가 쓴 표현은 히도이였다). 아베는 순진한 데라도 있어요. 이념적인 경직성은 있어도 그렇게 교활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키시다는 매끄럼하게 생겼지만 악랄합니다. 도덕적 판단이 없이 가지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취하고 마는 인물이지요. 일본인들은 그의 영도 아래 더욱더 타락하게 생겼습니다. 소수의 입장에서 일본의 대세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기력하게만 느껴집니다. 저도 답답하게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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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 해방 - 병 없이 오래 사는 사람들의 비밀
정세연 지음 / 다산라이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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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나이가 들면서 이유도 없이 몸 이곳 저곳이 아픈 경우가 있어. 참다가 낫질 않아서 병원에 가 보면, 비슷한 말들을 하곤 해. 염증이 있다고. 그리고 염증을 없애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받아 먹는단다. 그래서 좀 나아지고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곳이 아프고나이 탓을 해야 하나, 운동 안 한 탓을 해야 하나.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유튜브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건강에 관련된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도 몇 달 전에 유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된 정세연 님의 <염증 해방>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란다. 정세연 님은 한의사로 유튜브도 운영하신다고 하더구나. 지은이 정세연 님은 식치라는 단어를 쓰더구나. 식치란 음식으로 병을 치유하는 개념이래.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염증을 해방을 하려면 먹는 것을 잘 먹어야 한다는 거야.

이 책은 1부는 염증의 정체와 염증을 없애는 생활 습관 등을 알려주고, 2부에서는 염증 식치라고 해서 염증을 없애고 내 몸을 살리는 음식 처방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2부에서 소개된 음식들을 보면,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 별로 없더구나. 그러니 아빠의 몸에 염증이 생길 수 밖에나이를 먹은 만큼 몸을 생각하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더 늙으면 단짠단짠 음식을 못 먹으니 먹을 수 있을 때 먹자는 괴상한 논리를 갖고 있으니, 음식에 대한 아빠의 자세부터 바꿔야겠구나.


1.

염증은 왜 생기는 걸까. 염증은 몸을 살리기 위해서 생기는 거란다. 아빠는 이유 없이 염증이 생겨서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염증은 파괴된 조직과 괴사된 세포를 제거하고 조식을 재생하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염증을 미워하지 말고, 염증을 생기게 한 아빠를 미워해야 하는구나.

========================

(25)

염증의 목적은 세포의 손상을 초기 단계에서 억제하고, 파괴된 조직 및 괴사된 세포를 제거하며, 동시에 조직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붓고 아프기에 나쁜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무조건 해로운 것은 아니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입니다. 그렇게 발생한 염증은 약을 먹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몸을 지키기 위해 발생한 염증이 오래 이어진다면 정상세포에도 손상을 입히게 될 테니 우리 몸은 스스로 적당한 시점에 제동을 거는 겁니다.

========================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반응이 이 염증과 관련이 있대. 아빠가 놀란 것은 뱃살의 원인도 염증이라는 거야. 뱃살은 그냥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생긴 거지, 그게 염증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데 뱃살 중에서 특히 내장지방에는 염증 물질을 분비하고 있대. 그러니까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은 염증도 많이 갖고 있다는 거야.

========================

(106)

내장지방의 세포에서 아디포카인이라는 염증물질을 분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뱃살을 계속 달고 있으면 만성염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뱃살은 만성염증 그 자체입니다. 만성염증은 혈관을 공격하는 성질이 있어서 혈관벽에 상처를 내고, 혈액을 탁하게 해서 소위 피떡이라고 말하는 혈전을 생기게 합니다. 면역계를 교란시키고 암 발병률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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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을 좀더 열심히 해야겠는데그렇다고 무턱대고 운동만 하면 안되고,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 거야. 염증에 가장 큰 주범은 설탕이라고 하는구나. 달콤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 설탕은 염증의 주범이고, 뇌신경도 갉아 먹는 주범이라서 치매를 부르는 음식에는 당독소가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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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당독소가 혈관에 쌓이면 혈관 내피세포에 염증을 일으켜 동맥경화를 유발합니다. 뇌신경에 축적되며 신경독성을 일으켜 파킨슨질환이나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퇴행성질환을 촉진하고요. 피부에 축적되면 피부세포의 염증반응을 촉진해 주름살을 늘리고 노화를 앞당깁니다. 특히 당뇨 환자라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혈당 검사 항목 중의 하나인 당화혈색소는 혈색소라는 단백질을 당화시킨 당독소 중 하나인데, 이 수치가 너무 높으면 눈과 콩팥에 만성염증을 일으켜 당뇨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자주 쓰고, 손을 자주 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보다 먹는 것을 먼저 신경을 써야 하는구나.


2.

2부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염증을 줄이는 음식들을 한방 의학으로 설명하고, 간단한 레시피도 포함하고 있단다. 이 책을 보고 간단하게 요리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눈의 염증을 다스리는 구기자 차, 코의 염증을 다스리는 파, 목의 염증을 다스리는 도라지, 뇌신경의 염증을 다스리는 달걀, 자율신경을 다스리는 대추 등이 있어. 감기 걸렸을 때 배도라지 차를 먹곤 하는데 도라지가 목의 염증에 좋아서 그런 거구나. , 고지혈증과 지방간을 다스리는 키위, 췌장의 염증을 다스리는 우엉, 위식도의 염증을 다스리는 양배추, 장의 염증을 다스리는 밤과 목이버섯, 내장지방 염증을 다스리는 황태가 있단다. 예전에 목이버섯은 방사능을 흡수를 잘 해서 몸에 안 좋다고 본 것 같고, 황태는 일본의 방사능 바다 유출로 믿고 먹고 찜찜한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음식의 장단점이 있을 경우 말이야. 그런 점은 설명이 없어서 조금 아쉽네.

, 통풍을 다스리는 레몬, 신우신염을 다스리는 옥수수수염, 방광염을 다스리는 복분자, 질염을 다스리는 연꽃, 전립선 염증을 다스리는 토마토가 있단다. 과일이나 야채의 경우 생으로 먹는 경우가 몸에 더 좋은 경우가 많은데, 토마토의 경우는 익혀서 기름과 먹어야 더 좋다고 하는구나. 좀 특이하네. 아빠도 토마토를 좋아하는데, 익힌 것보다 생으로 먹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데, 역시 건강하게 먹는 것은 쉽지 않구나.

========================

(274-275)

다음의 세 가지가 중요한데 껍질째, 익혀서 그리고 기름과 함께섭취해야 식치 효능이 증대됩니다. 라이코페 함유량이 가장 높은 부위는 과육보다는 껍질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토마토를 생으로 많이 먹지만 생식할 경우 좋은 성분의 소화흡수율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라이코펜은 선 모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트랜스 라이코펜이라 하는데, 열이 가해지면 구부러진 모형인 시스 라이코펜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의 장에서 흡수하기 훨씬 용이한 구조가 바로 이 시스 라이코펜이지요. 항산화 효능 역시 88도 정도의 온도에서 2, 15, 30분 가열했을 때 각각 28%, 34%, 62%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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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 건강을 다스리는 멸치, 근육 염증을 다스리는 바나나, 말초신경 염증을 다스리는 김, 혈관의 염증을 다스리는 호두, 림프의 염증을 다스리는 공심채가 있어. 우리가 근육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면 근육도 붙고 그러거든. 그런데 근육 운동을 하면 근육에 미세한 염증이 생긴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근육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 회복을 위해 먹기도 잘 먹어야 한대. , 아빠가 운동을 하고, 그에 맞게 먹질 않아서 근육이 없나? 근육 회복에 좋은 대표적인 음식이 바나나라고 하는데, 의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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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근육에 염증이 생기게 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근육운동입니다. 대부분 운동을 하면 근육이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반대지요. 근력운동을 하면 근육에 상처가 생기고 미세한 염증이 발생합니다. 운동은 근육을 손상시키지만 운동 후 잘 먹고 쉬는 과정을 통해서 건강한 근육이 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육 건강을 지키려면 꾸준한 운동과 함께 반드시 근육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근육에 좋은 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사시사철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으로 바나나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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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성염증을 다스릴 때는 자신의 체질을 잘 알아야 한대. 열이 많으면서 습한 체질인 사람은 콩을 먹고, 열이 많으면서 건조한 체질인 사람은 자두를 먹고, 냉하면서 건조한 체질은 잣을 먹고, 냉하면서 습한 체질은 생강을 먹으라고 하는구나.

...

그런데, 몸의 각 부위에 짝이 맞는 음식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무척 궁금하네. 이제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어떤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늘 그렇지만 실천이란다. 2부에서 소개된 음식 중에 진짜 안 좋아하는 음식들도 있는데, 이것을 건강을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먹어야 하는가. 맛있게 먹으면 그게 보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먹고 싶은 거 맘대로 먹고 싶은 사람이 지어낸 말인가.

아빠도 아빠가 먹은 것이 아빠를 만든다는 것은 동의해. 그러니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알겠고너무 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좀 식생활 개선을 하도록 노력해야겠구나.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다시 되새기면서, 오늘은 이만 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오래 전 일입니다.

책의 끝 문장: 또 생강은 귤껍질과 함께 먹으면 수독 배출에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귤껍질은 진피라는 약재를 검색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장은 장내 미생물이 일하는 공장입니다. 미생물은 장 공장에서 먹고 자고 활동하면서 건강에 매우 유리한 물질을 만들어주는데요. 이들이 생산하는 주된 물질은 대부분 짧은 사슬로 연결된 모양이라 단쇄지방산(SCFA, Short Chain Fatty Acid)이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뷰티르산이 면역을 조절하고, 염증을 줄여주고, 식욕을 조절하고, 인슐린 감수성을 증가시켜서 혈당 조절이 잘되게 하고, 손상된 장 점막을 복구하는 등 놀라운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을 비롯해 인체 건강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미생물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먹이를 먹고 난 후 분해해서 만들어낸 단쇄지방산이라는 것이지요. - P37

여기서 포드맵은 장내 가스를 많이 생성시키는 음식을 뜻합니다. 정확하게는 소화나 흡수가 잘되지 않고 장에 남아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기 쉬운(Fermentable) 올리고당(Oligosaccharides), 이당류(Disacharides), 단당류(Monosacherides) 그리고|(And) 폴리올(Polys)을 포함한 음식들인데, 이들의 영문 앞글자만 따서 ‘포드맵(FODMAP)’이라고 부릅니다. - P58

교감신경은 하루 중 양의 구간에 해당하는 아침부터 오후 시간대까지 활성화됩니다. 해가 지는 음의 구간에 들어서면 반대로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지요. 이렇듯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세력이 변화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또 협응합니다.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섬세하게 반응하면서 우리 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염증을 조절하는 작용을 합니다. - P80

<꿀벌 호흡법 따라 하기>
1> 앉거나 누운 상태에서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2> 평소대로 자연 호흡을 몇 번 들이쉬고 내뱉는다.
3> 입을 다문 상태에서 코로 숨을 마신다.
4> ‘훔(Hum)’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숨을 천천히 내쉰다. 소리가 사그라들 때까지 진행한다.
5> 5회 반복한 뒤 평소의 자연 호흡으로 돌아와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느껴본다.
- P97

웨이트 같은 근력운동을 한다는 것은 근육에 상처를 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후 근육 회복과 성장을 위해 식단에 몇 배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단백질만 챙겨 먹고 탄수화물과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해주지 않으면 근육은 어떻게 될까요? 육포처럼 수분이 다 빠진 상태로 뻣뻣해지고 돌처럼 딱딱해지겠지요. 이런 근육은 염증을 달고 살고, 통증이 자주 생기며, 부상에도 매우 취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가의 보충제나 값비싼 음식을 챙겨 먹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 P248

사람 몸의 70%는 근육도 뼈도 아닌 물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경이롭게도 우리 몸엔 상하수도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혈관이 상수도라고 하면, 림프관은 하수도의 역할을 합니다. 림프액은 혈액에서 각종 염증물질과 노폐물을 수거해 말초에서부터 쇄골까지 천천히 순환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혜부(사타구니), 액와(겨드랑이), 귀밑 등 중간중간 림프절이라는 정거장을 지나게 되는데요. 면역세포 중 하나인 킬러 T 세포들이 림프액 속에 있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 세포 등을 직접 파괴합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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