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우리는 돌, 나무, 흙 같은 자연 속의 재료를 가지고 건축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건축물이 부산물로 만들어 내는 빈 공간 안에서 생활한다. 그 공간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그 공간은 또 다시 우리를 만든다. 이처럼 건축물을 만든 사람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공간을 통해서 다른 시대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건축물은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건축물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건축물은 삶의 일부가 된다.


(44-46)

걷고 싶은 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얼마나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는 거리인가, 어떠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는 거리인가, 어떠한 자연환경이 있는 거리인가, 어떠한 사람들은 만날 수 있는 거리인가 등이 그 요소들이다. 마지막 요소인 사람은 나머지 요소들이 구성되는 것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결정 난다. 보통,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갖추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사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거리를 완성하는 요소이지만 만들기 시작하는 요소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거리의 상황이 사람들이 걷고 싶은 환경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이 책의 답은 다음과 같다. 걷는 환경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다. 너무 느려도 사람들은 걷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점의 입구가 자주 나오는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


(66-68)

20세기 초반에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을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기계라고 정의 내렸다. 건축에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기능은 건축이라는 자전거의 두 바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전거가 굴러가려면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듯 건축은 기능 이외에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퀴가 필요하다. 현대 도시의 건축에서 부족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빠른 자동차를 위한 길과 넓은 집들을 추구했지만 정작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깨우는 공간을 놓쳐 온 것이다. 계절에 어울리는 한 곳의 노래가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 같은 감성을 울리는 건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건축은 대중음악이 팔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축이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건축이 많아질 때 현재 도시는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116)

건축은 오브제(object)의 성격이 강한 도자기나 그림과는 다르다. 건축은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재료가 교체되고 복원되고 사용되면서 보존되는 것이 옳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남대문이 불타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된 나무가 불에 탔다고 통곡하면서 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194)

그 이유는 마당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에 아무리 넓은 거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실의 인테리어가 매일매일 시시각각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당은 때로는 비도 오고, 햇살도 비치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침의 동편 햇살을 받은 마당과 저녁노을의 마당이 다르고, 밤이 되어 어두운 달빛을 담은 마당은 또 완전히 다르다. 그 밖에도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이벤트는 다양하다.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바비큐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벤트와 날씨가 마당의 얼굴을 항상 바꿔 준다. 마치 마당은 매일매일 벽지와 가구가 바뀌는 거실이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고정되어 있고 매일 TV 보는 행위 외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220)

우리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필자가 있는 사무실에는 책상 앞에 책을 쌓아 두는 직원이 있었다. 이는 그 직원이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개방된 책상이 불안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서 책과 서류로 벽을 치는 것이다. 보통 사무실에는 큰 모니터가 벽의 역할을 해 준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업무용 데스크탑 컴퓨터까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벽처럼 쓰고 있단. 요즘에는 듀얼 모니터로 작업을 해서 모니터를 두 대 사용하는데, 그 두 대의 모니터를 이용해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나타나는 풍경이다.


(229)

선사 시대 때 사람들은 동굴에서 살았다.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 앉아 움직이는 불을 쳐다보고 그 위에서 밥도 해 먹었을 것이다. 최초의 집, 동굴에서 집의 중심은 모닥불이었다. 세월이 지나서 현대인의 집의 중심은 TV이다. 가족들은 모두 거실에 모여 앉아 움직이는 불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TV 화면을 바라본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과거 남자들은 밖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을 했고 집에 돌아오면 멍하게 불을 쳐다보면서 밖에서의 긴장감을 풀었다고 한다. 불을 쳐다보는 시간은 사냥 모드에서 휴식 모드로 바꾸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한 현대 사회에서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남편은 최소 30분은 멍하게 TV를 보아야 정신 모드가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들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TV 보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291)

철학자 강신자의 말처럼, 기억할 감정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벤트가 많이 일어나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성공적인 거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뜨는 거리가 되려면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이벤트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쇼윈도의 다양한 상품이거나 혹은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거나,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이거나 어떠한 것이든 좋다. 건축가는 이런 이벤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무대장치를 디자인하는 연출가이다.


(332)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고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충()이나 효() 같은 관계를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극동아시아 건축은 땅과 연결된 개미처럼 관계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사후 세계를 중시했고, 이데아의 세계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원칙을 중요시 하였다. 땅에 기초를 두지 않는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 때문에 공중에 집을 짓는 벌처럼 기하학적인 건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서양에서 피라미드, 황금비율, 판테온 같은 건축 문화가 나오게 된 문화적 배경일 것이다.


(333)

서양에서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 이 단어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영어 단어는 universe, cosmos, space 이 세 단어가 혼용되어서 쓰인다. 따라서 ‘space=cosmos’라는 결론이 나온다. cosmos라는 단어의 의미는 혼돈이라는 뜻의 chaos의 반대어로 수학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space=수학적 규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단어를 통해서 살펴보면 서양인의 의식 속에서 비어 있는 우주, 공간, 수학적인 규칙을 내재하고 있는 cosmos 등의 의미가 상호 연결되어져 있으며, 공간을 수학적 규칙을 가진 비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과 사이라는 뜻의 ()’이 합성된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듯 단어만 살펴보더라도 동양에서는 단순히 비어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보는 비움과 상대적 가치인 관계로서 공간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82)

과거에 건축은 과학이었다. 한 나라의 최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건축이 있었다. 건축은 어느 시대나 지구의 만유인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과학적 도구이자 결과물이었다. 반면 의술은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가까웠다. 지금도 오지에서는 무당들이 병을 고친다. 건축과 의학 이 둘은 19세기에 운명이 바뀌었다. 의학은 과학을 택해서 지금의 MRI와 각종 첨단 시설을 이용한 기술의 서비스가 되었다. 반면 건축은 예술을 택해서 지금껏 사회적 대접이라는 면에서 퇴보해 왔다. 반면 건축이 예술이 되면서 질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이루어진 의학과 건축의 선택의 결과는 지금 의사와 건축가의 평균 연봉이 말해 주고 있다. 필자는 건축이 예술이라는 관념이 깨졌으면 한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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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폭이 좁고 어둡고 뾰족한 독일의 글자들과 달리, 이탈리아의 글자들은 햇빛을 받아 몸을 활짝 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변화해 가는 풍광 그대로, 글자들의 풍경도 마치 검고 빽빽하며 수직성이 강한 침엽수의 숲이 점차 사라져 가면서, 둥글고 넓은 활엽수 잎들이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돋아나는 듯한 모습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72)

라이프치히에서 학위논문을 쓰던 시절에, 한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자료를 청하는 문의를 영어로 써서 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얼마 후 우편함에 답신이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꺼내어 보니 답신과 자료들이 온통 프랑스어였다. 아시아식 이름에 독일 주소를 가진 지구상의 누군가가 고급 프랑스어를 번역없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일까, 그들은? 그때도 문득 깨달았다. 프랑스인에게든 독일인에게든 영어란 국제공용어이기 이전에 불편한 외국어일 뿐이란 사실을. 사람에게 그가 처한 지역과 그곳의 풍토, 언어, 공동체는 생각보다 깊숙이 개입한다. 세계화의 시대에도 지역의 실체는 공고하다.


(109)

유니코드라는 체계에의 영감은 이런 시적인 문장으로 기술되어 있다. 유니코드는 현재 13만 여개에 이르는 글자들을 포괄하고, 포함된 글자의 수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유니코드의 모든 글자에는 16진법의 고유번호가 주어진다. 유니코드는 인류를 거쳐간, 알려진 모든 문자들을 포용하고자 한다. 사용인구가 소수라고, 심지어 더 이상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제하는 법은 없다. 쐐기 문자에서 이모티콘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고 존재했던 모든 글자들이 지금도 유니코드의 자리들을 차곡차곡 채워 가며 바벨탑을 쌓아 나가고 있다.


(136)

사람과 닮은 사랑이 나타나, 그 동적인 ㅇ받침이 정적인 ㅁ받침을 돌돌 밀고 가는 이미지였다. 그때 깨달았다.

, ‘사람을 돌돌 움직여 살게 하는 동력은 사랑이구나!’

살아가고() ‘을 이루고 사람이 되고 사랑을 하는 것은 언어학적 근거로 따지면 모두 어원이 분분하지만, 우리는 이 서로 비슷한 소리와 모양으로부터 즐거운 상상을 누릴 수가 있다.


(137)

한국어 음성 상징에서 긍정적인 측면의 심상만 보자면, ‘사랑의 ㅅ은 생()을 연상시키고 ㄹ은 활력()을 일으킨다. ㅅ은 에너지이고, ㄹ은 운동을 떠오르게 한다. 양성모음 ㅏ는 내적으로 수렴하는 음성모음 ㅓ와 달리 외부를 향해 확장되고 열려 있다. 마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에너지처럼. 사람은 멈춰 있고, 사랑은 굴러간다. 사랑이 사람 사이에 흘러 들어 서로를 연결한다. ‘사랑이라는 한국어 단어 속에는 소리와 뜻과 모양조차 이렇게 서로 사랑을 한다.


(166)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명조체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1916~1988). 최정호는 궁체 중 정체의 필법을 바탕으로 명조체를 설계했다. 즉 한글 글씨체인 궁체를 인쇄용 활자체인 명조체로 연결한 것이다. 20세기 중반, 최정호는 모눈종이에 한글 글자체들을 하나씩 설계해 나갔다. 이 설계용 도안을 활자 혹은 폰트의 원도라고 한다. 최정호는 명조체의 원도를 설계하려면 붓글씨에 대한 기본 지식과 이를 써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명조체는 궁극적으로 인쇄용 글자다운 면모를 가져야 하므로 서예와 달리 더 체계적이고 고른 모양새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따라서 작은 크기로 긴 텍스크에 적용해도 충분히 잘 읽히도록 명조체는 궁체보다 속공간을 크게 설계했다.


(179)

세계의 다양한 문자문화권에 정체와 흘림체가 있다. 인간에게는 글씨를 또박또박 단정하게 쓰고 싶은 마음빨리 쓰고 싶은 마음이 모두 있어서 그렇다. 흘림체에서는 손의 빠른 운동성이 글자의 형태에 그대로 실린다. 흘림체에서는 손의 빠른 운동성이 글자의 형태에 그대로 실린다. 그래서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유연한 흐름과 고유한 리듬이 글자 구조와 세부에 영향을 미쳐서 흘림체만의 독특한 형태가 나타난다.


(227)

대개의 붓은 한 번에 약 10밀리리터 정도의 먹물을 머금는다. 먹물은 탄소와 아교와 물의 혼합물이다. 색을 내는 탄소입자가 종이에 자국을 남기고 물은 증발한다. 그러나 눈이 녹은 맑은 물은 색을 내는 입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붓은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대신, 마른 천에 물기가 닦이고 말려졌을 것이다. 얼음이 녹은 물은 붓털에서 그대로 증발했을 터다.


(293)

순우리말 그림은 어원이 같다. ‘긋다에서 왔다고도 하지만, ‘긁다에서 왔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글과 그림은 그 자리에 부재하는 화자, 소리, 대상이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부재하는 것들은 그리움을 일으킨다. 흔적과 자국이 마음에 남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른다. 그리움도 글과 그림과 어원이 같다. ‘그림도 본질적으로 부재하는 무언가와 더 잘 연결되고 싶고 더 잘 소통하고 싶은 그리움을 동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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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리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서로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고,

 저마다 하는 일을 바로 하게 되고,

 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고,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와 남의 것 부러워하여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


(52)

말이 어려우면 그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고 쉬운 우리 말을 써야 한다. 어려운 말을 쓰기 위해 어려운 글자를 배우는 바보 같은 짓을 왜 우리가 해야 하나. 더구나 한문글자를 쓰게 되면 한문글자로 된 어려운 말을 자꾸 쓰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래서 우리 말은 버림받고 죽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말이 죽으면 우리 겨레 얼이 어디 깃들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말 우리 글을 없애고 우리 겨레를 죽여 없애려던 간악한 일본제국에서 해방이 된 지 53, 그동안 그대로 우리 말 우리 글 문화를 이 정도라도 꽃피워왔더니. 이제 웬일로 그 옛날로 돌아가 한문글자를 쓰고 어려운 한자말을 써서 반민주의 글문화를 만들어 교육이고 학문이고 사회생활 전체를 어지럽게 하고 나라와 겨레를 망치려고 사는 사람들이 설치게 되었는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59)

정말이지 나는 내 방에 가득 차 있는 이 책들, 그 가운데서도 지식인들, 학자들이 써놓은 책들이 싫다. 우리 글로 썼다는 이 책들이 철학이고 역사고 사회고 경제고 문학이고, 문학에서 소설이고 수필이고 시고 아동문학이고 모든 책이 잘못된 한자말, 잘못된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법 투성이로 되어 있다. 책이 이렇고 신문이 이렇고 방송말이 이러니 우리 말 우리 얼은 자꾸 죽어간다. 그래서 대낮에 나타난 도깨비 같은 한자말을 쓰자, 한자말을 알 수 있도록 한문글자를 쓰고 가르치자고 하는 미친 소리까지 나올 판이 됐다.


(69)

이것은 우리가 온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말과 글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 말과 글을 죽이는 한문글자를 숭배해왔기 때문이고, 한문글자로 언제까지나 이득을 얻어가지고 싶어하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백성들을 바보로 만드는 최면술에 우리 모두가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우리는 깨어나, 우리 말과 글을 더욱 보잘 것 없이 만들고 우리 문화를 아주 싹 쓸어 없애고 우리 백성을 영원히 종살이로 묶어두려는 흉계에 맞서서 싸우기 위해 일어나야 할 때다.


(116)

그런데 우리 말과 우리 글자를 쓰자고 하는 것은 취미가 아닌가?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것은 다르다.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의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고, 우리 민족의 말을 적는 글자를 쓰자고 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밥을 같이 먹고 물을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 말 우리 글은 우리가 먹는 밥이고 마시는 물이고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176)

왜 문인들의 글이 잘못되었는가? 삶이 없이, 방 안에서 글만 쓰기 때문이다. 책만 일고 글을 쓰니 그 글이 살아 있는 지식으로, 책에서 읽은 이론으로, 방에 앉아 떠올리는 생각만으로 글을 쓰니 그 글이 저절로 글에서만 쓰는 말로 될 수밖에 없다. 글로만 쓰는 말은 거의 모두 우리 말이 아니다. 어려운 한자말이거나 일본말, 일본말법이거나 서양말, 서양말법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잘못된 문인들의 글은 시인이란 사람들이 쓰는 시와 평론가들이 쓰는 글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나고, 소설이 그다음이고, 그래도 좀 낫다는 아동문학과 수필조차 아주 깨끗한 우리 말로 쓴 작품은 거의 없다.


(240)

바로 며칠 전에 어느 일간신문에서, <애국가>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윤치호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신문은 윤치호가 자신이 지은 <애국가>를 손수 붓으로 써서 윤치호 작사라 해놓은 것을 사진으로 공해했다. 이래서 지금까지 누가 지었는지 확실히 몰랐던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윤치호라면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로 우리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하필이면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가 지은 노래를 의식 때마다 불러야 하나? 지금까지는 몰라서 불렀지만, 그 사실을 안 다음에는 부를 수가 없다.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내 감정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281)

아무튼 밖에서 들어오는 말을 모조리 다 버리고 순 우리 말만 쓸 수가 없는 것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더구나 요즘은 그러하다. 어떤 이가 무슨 말이든 다 우리 말로만 쓰기를 고집해서 어설픈 말을 만들어내거나 일반 사람들도 모르는 옛말을 쓰는데, 이런 사람은 우리 말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조금도 안 된다. 남들이 쓰지 않는 말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고, 뒤집어보면 어려운 외국말을 써서 가지가 유식함을 자랑하는 것과 똑 같은 심리에서 그렇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도로이라 하고, ‘차로찻길이라 하고, ‘계곡골짜기라 하는 것은 옳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앉는 걸상, ‘의자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날틀이라거나 학교를 배움집이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303)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글쓰기로 이뤄져 있고, 글로 움직이는 글 세상이 되어 있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이 글로 되어 있고,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 글로 적혀서 그 표적을 남긴다. 관공서의 모든 일이 글로 시행되고, 모든 정보가 글이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글이다. 학문이 글이고, 문학도 바로 글이다. 모든 종교의 경전과 교리가 역시 글이다. 언론은 말인데, 말이 곧 글이다. 옛날에는 글이 말을 따랐지만 이제는 거꾸로 말이 글에 끌려나는 판이 되었다. 세상에 글 아닌 것이 없고, 글이 전부다 .그래서 글이 잘못되고 글이 병들면 모든 자리가 잘못되고 병드는 것이다. 글은 바로 쓴다는 것은 모든 자리에서 그 맡은 일은 올바르게 하는 것이 된다. 감사원에서 감사문장을 바로 쓴다는 것이 감사라는 일을 올바르게 하는 일로 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글을 바로 쓰는 일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사회를 바로잡는 가장 으뜸가는 일, 밑뿌리가 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310)

방송인들이여, 책에서 말을 배우려고 하지 말라! 학생들이여, 제발 방송을 멀리하라! 책도 보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 속에 빠져버리지는 말라!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 말을 잡아먹고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이 아주 엄연한 현실이다! 말은 언제나 삶 속에, 자연과 어울린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쉬운 말 하는 사람은 마음도 고와요!


(386)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 잣대는 결국 삶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물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은 참고가 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삶을 키워가는 데 참고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 그것만 따라가려 하고 거기에 기대어서는 그만 자기 것을 잃어버린다. , 그것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되게 하고,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 되게 하는 길이다. 이래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아이들을 참되게 키우는 교육에 될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다시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387)

사람이나 문학을 보고 생각하는 바탕을 저울이나 잣대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의 눈이나 생각의 잣대(저울)과 실제 어떤 물건을 재고 다는 잣대와 저울이 다른 점은, 물건을 재고 달고 하는 자나 저울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들이 아주 기계처럼 똑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사람의 삶에서 나온 생각의 잣대나 저울은 사람마다 다른 체질과 삶과 세상 탐구에서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이 있고 나타내는 모양이 다르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가진 그 생각이 반드시 충돌하거나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착하고 올바른 것이면 그럴수록 서로 어울리고 서로 채워주는 것으로 되고,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는 것으로 된다고 보아야 옳다. 문학에서 글쓰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착하고 올바른 좋은 생각,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잣대를 얻기 위한 삶을 가꾸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51)

이 진검승부(眞劍勝負)란 말은 일본어사건이나 일본 역사책을 찾아볼 것도 없이 그 옛날 일본의 무사(사무라이)들이 서로 원수가 되었을 때, 마치 서양사람들이 권총으로 서로 쏘아 죽이는 판을 벌이듯이 진짜 일본칼로 마주서서 사생결단을 내던 야만스런 풍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째서 이런 말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자꾸 쓰이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471)

본래 일본말에는 우리 말에서 받침에 해당되는 말소리가 없어서 부드럽고 곱기만 하지 힘찬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힘차게 내세우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김씨(관형사)로 만드는 토씨(조사) ‘’()만을 자꾸 써서 이름씨(명사)를 줄줄이 꿰어놓자니 답답할밖에 없다 .이러던 터에 ()이란 말이 나오니까 이 말소리 테끼’ ‘테키가 힘찬 받침소리가 효과가 나서 ' 대신에 이 말은 너도나도 하고 다투어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이 테키’()란 말이 자기들 말에서 모자란 점을 채워주는 말로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말에는 예사소리와 된소리, 열린소리와 닫힌소리, 부드러운 소리와 힘찬소리가 고루 있기 때문에 조금도 이런 말을 꾸어다가 쓸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쓰면 도리어 우리 말에서 닫힌소리나 거친소리가 더 많아져서 말이 사납게 되고 어설프게 되고 만다.


(513-514)

이 축제란 말은 일본말이고 일본사람들이 하는 행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사람들은 마쓰리’(祭り)라고 하여,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신령을 맞아들여 음식물을 차려 위로하고 비는 한편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떠들썩한 판을 벌인다. 그래서 무엇을 축하하거나 기념하거나 선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행사를 가리킬 때도 마쓰리’ ‘오마쓰리라 하고, ‘祝祭란 말도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일본말 사전>에도 祝祭축하하고 제사하는 것” “축하는 제가라고 풀이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제사를 지낼 때 조용하고 엄숙한 마음과 태도로 지내는 것이지, 노래하고 떠들고 춤추는 일은 없다. 노래하고 떠들고 춤추는 것은 굿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잔치판을 벌리는 것을 일본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 축제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고, 얼빠진 짓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말 사전>에도 축제란 말을 올려놓고 축하의 제전” “축하하고 제사지냄이라 풀이해놓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601)

부른다를 입음꼴(피동형)로 만들어놓은 불린다란 말은 경찰서에 불려갔다.” “어느 학생이 교무실에 불려 갔다고 할 때 말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 말로 바르게 쓰는 말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예사로 쓰고 있다. 다음에 들어놓은 보기글은 좀 양이 많은데,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많이 오염되어 있는가를 알리고 싶었고, 또 혹시 어쩌다가 이런 글에서는 이대로 써야 하지 않겠나싶은 경우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싶어 눈에 띄는 대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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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는 여태껏 영웅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런 찬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콜럼버스가 했던 일에 대해서 영웅답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땅에 도착해서 황금을 찾기 위해 광란의 폭력을 휘두른 게 그가 했던 일인데 말이다. 왜 우리는 앤드루 잭슨이 인디언들을 살던 곳에서 내몬 일을 영웅답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영웅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는 미국-스페인전쟁을 일으켜서 스페인 세력을 쿠바에서 축출했지만, 그것이 실상 쿠바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서 했던 일인데 말이다.


(26)

우리는 포와탄(인디언 추장)이 했다는 말에서 자기 영토에 침입한 백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 부족 그 누구보다도 평화와 전쟁 간의 차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사랑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을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먹을 것을 제공한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가?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경계하는가? 우리는 무기도 들지 않았고, 당신들이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면 원하는 것도 기꺼이 내줄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조용히 생활하면서 영국인들과 웃고 즐기며 동존과 도끼를 교환하는 것이, 영국인들을 피해 도망쳐 숲 속에서 도토리나 풀뿌리 등을 먹고 추적을 당하며 춥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29)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야생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다를 바 없이 번화한 곳도 있었다. 인디언들은 고유의 역사와 법률, 문학이 있었다. 그들은 유렵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평등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과연 진보라는 말에는 그들의 사회를 파멸시켜도 될 명분이 충분히 있는 것일까? 인디언들의 이러한 운명은 정복자나 지배자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가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74)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그런 봉기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여겼다. 그는 이따금 일어나는 작은 반란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약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75)

1935년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가 발표한 헌법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다. 찰스 비어드가 헌법 작성을 위해 모였던 55인에 관해 연구한 결과 그들 대부분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사체업자들이었고 대부분은 변호사였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 시스템을 유지해줄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연방정부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찰스 비어드는 여성, 흑인, 계약 노동자, 빈민들의 헌법 작성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헌법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120)

에이브러햄 링컨은 경제적인 요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화당과 정치적 야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뛰어난 화술로 도덕적인 차원에서 열정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동시에 그는 노예제 폐지론이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여 정치적으로도 신중을 기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가 옳지 못한 제도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흑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가장 좋은 해결책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144-5)

사회주의란 농장, 광산, 공장과 같은 모든 생산 수단들이 국가 또는 국민 전체의 소유가 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는 공동 이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사적 이익을 추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더 치밀하게 사유재산 자체와 재산에 근거한 계급 구분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물건이 모든 사람의 소유이며,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즘은 정부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였다.


(205)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아리안이나 노르딕이라고 불렀던 백인 게르만 민족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민족우월주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틀림없이 미국의 흑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군대는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혈액은행조차도 백인의 혈액과 흑인의 혈액을 따로 보관했다. 혈액은행의 시스템을 만든 흑인 의사 찰스 드루는 혈액 분리에 반대하여 해고당했다.


(241-2)

여성운동에서 최초이면서 최대의 영향력을 갖는 저서는 베티 프리던이라는 중산층 가정주부가 쓴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였다. ‘신비라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즉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내로,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데 완벽하게 만족하는 여성상을 의미한다. 그런 이미지에 맞추어 살기 위해 여성들을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베티 프리던은 여성이 남성들처럼 자아를 찾고 자신이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만의 일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88-9)

빌 클린턴은 자신이 내린 결정들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사람들 모두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으며, 정부가 빈민들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고, 군사 예산을 감축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화, 민주 양당에는 이런 일을 추진하는 정치가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로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국민이 독립선언서에 적힌 대로 모든 사람들의 생활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단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려 깊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부를 분배하는 경제체제의 요청이 될 것이며, 젊은이들이 탐욕을 숨긴 채 성공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 문화를 의미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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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우리의 작은 도시에서는 기후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이 이곳 사람들은 권태로워하고, 습관이라도 가져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시민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것은 대개의 경우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거래에 특히 관심이 많고,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보다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단순한 기쁨에 대한 흥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와 영화, 해수욕을 좋아한다. 그러나 매우 합리적인 사람들이어서 이런 쾌락들은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을 위해 아껴두고 주중의 다른 날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서 모이거나 늘 같은 대로를 산책하고, 아니면 집에 가서 발코니에 자리잡는다. 젊은이들의 욕망은 격렬하고 짧은 데 반해, 나이든 사람들의 취미 생활은 공굴리기 모임이나 친목회 회식, 큰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하는 동호회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53)

몇 가지 사례만 보고 전염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예방책을 잘 세우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알고 있는 사실들에 집중해야 했다. 마비와 탈진 증세, 눈의 충혈, 구강 오염, 두통, 사타구니의 명울, 극심한 갈증, 정신착란, 전신에 돋는 반점, 몸안에서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통증, 그리고 마침내는이런 것들에 이어서 어떤 문장이 리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학서적은 이런 증상들을 열거한 뒤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맥박이 실낱같이 약해지고 무의미한 몸짓을 하고는 사망한다.’ 그렇다. 이런 증상들이 모두 나타난 후에 환자는 한낱 실에 매달린 형국이 되고, 그들 중 4분의 3-이것은 정확한 수치였다-은 죽음을 재촉하는 그 미미한 몸짓을 서둘러 해버리는 것이다.


(82)

그 사이에도 봄은 주변 교외 지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인도를 따라 늘어선 꽃장수들의 바구니에서 수천 송이 장미꽃들이 시들어가면서 풍기는 달콤한 향이 온 시내에 떠돌았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전차는 러시아워에 여전히 만원이었고, 낮에는 텅 비고 더러웠다. 타루는 그 작달막한 노인을 관찰했고, 노인은 고양이들에게 가래침을 뱉어댔다. 그랑은 수수께끼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저녁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코타르는 쳇바퀴 돌 듯 맴돌았고, 수사검사 오통 씨는 여전히 자신의 동물원을 이끌고 다녔다. 늙은 해수병 환자는 콩을 옮겨 담았고, 신문기자 랑베르도 가끔 눈에 띄었는데 태연하면서도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게다가 전염병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며칠 동안 사망자 수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사망자 수가 다시 삼십 명 선으로 늘어난 날, 베르나르 리외는 도지사가 건네준 전보 공문을 읽으며 이 사람들이 겁을 먹었군요.”라고 말했다. 전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89)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던 감정, 더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미 말했듯이 오랑 시민들은 단순한 열정의 소유자들이다)에서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배우자를 전적으로 믿어온 남편들이나 연인들은 자기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던 남자들은 다시 성실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들이 기억 속에 자꾸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살 하나에도 염려하고 후회했다. 완벽할 정도로 갑작스러운데다 언제 끝날지 예견할 수도 없는 그 이별에 망연자실한 채, 우리는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토록 멀어진 존재,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 하루하루를 다 차지해버린 존재에 대한 추억에 저항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이중의 고통-우리 자신의 고통 그리고 집에 없는 사람들, 즉 자식, 아내 또는 연인이 겪는 고통을 상상 속에서 함께 겪고 있었다.


(95)

사실 냉정을 잃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시민들의 생각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뇌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들은 사랑의 이기적인 성격 덕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고, 페스트를 생각할 때도 페스트 때문에 이별이 끝도 없이 계속될까봐 염려스럽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전염병이 한창일 때도 그들은 건전한 여유 같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침착함으로 착각했다. 절망감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불행에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 중에서 누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대개의 경우 그 병을 조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유령 같은 존재와 나누던 기나긴 마음속 대화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대지의 가장 무거운 침묵에 내던져졌던 것이다. 그가 뭔가를 할 시간적 여유는 전혀 없었다.


(138)

그 늙은 경비원은 타루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142-3)

새벽이면 아직 인적 없는 도시에 산들바람이 분다. 밤의 죽음과 낮의 고통 사이에 있는 그 시간에도 페스트도 잠시 쉬고 숨을 돌리는 것 같다. 가게의 문은 모두 닫혀 있다. 그러나 그중 몇 곳에 붙어 있는 페스트로 인해 폐점이라는 게시문은 다른 가게와 달리 이 가게의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신문팔이들은 조느라 뉴스를 외쳐대지는 않지만, 길모퉁이에 등을 기댄 채 몽유병자처럼 신문을 가로등 앞으로 내밀고, 잠시 후 첫 전차 소리를 듣고 깨어나면 도시 전역으로 흩어져 페스트라는 글자가 도드라진 신문들을 내밀고 다닐 것이다. ‘가을에도 페스트가 유행할 것인가? B교수는 부정적으로 대답.’ ‘페스트 발생 94일째, 사망자 124.’


(212)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없고, 큰 불행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페스트 치하에서 보낸 끔찍한 날들을 화려하고 잔혹한 커다란 불길처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아래 놓인 모든 것을 짓밟아버리는 끝없는 답보 상태로 기억하는 것이다.


(213)

우리 시민들, 적어도 이별로 인해 가장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을까? 익숙해졌다고 말하면 그것은 결코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헐벗음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페스트 발생 초기만 해도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어떤 날,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하게 기억났지만, 그들이 그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이제는 그렇게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그 시기에 그들은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페스트가 둘째 단계로 접어들자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져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관련해 초기 몇 주 동안에는 환영만 상대한다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그후에는 추억 속에 간직해온 희미한 색깔마저 잃어버림으로써, 환영도 예전보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나긴 이별을 겪자 그들은 전에 누렸던 친밀감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고, 언제라도 손을 얹을 수 있었던 존재가 어떻게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었는지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다.


(214-5)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페스트와 보조를 맞춰, 꼼꼼하긴 하지만 생기라곤 전혀 없는 태도로 일을 해나갔다. 모두 겸손해졌다. 처음으로 헤어진 사람들은 헤어져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말투를 쓰기도 하고, 자기들의 이별을 전염병의 통계수치와 연결해 검토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고통을 집단적 불행과 완강히 분리해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억도 희망도 없이 현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로 변했다. 페스트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나눌 힘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 앗아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미래가 요구되는데, 우리에게는 순간들만 남은 것이다.


(218)

어쨌든 이 도시에서 이별한 사람들이 처해 있던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남녀가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동안 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시 위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 자욱한 황금빛 석양을 다시 한번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 자욱한 황금빛 석양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도시의 일반적인 언어였던 차량 소리와 기계 소리가 사라진 가운데, 아직 해가 비치는 테라스 쪽으로 올라오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발소리와 둔탁한 목소리가 빚어내는 거대한 웅성거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겁게 덮인 하늘에서 들리는 재앙의 휘파람 소리에 리듬을 맞춰 수많은 구두창들이 고통스럽게 미끄러지는 소리, 저 끝없고 숨막히는 제자리 걸음 소리가 온 시가지를 차츰 가득 채우며 당시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대신했던 맹목적인 고집에 저녁마다 가장 충실하고 가장 음울한 목소리를 부여했던 것이다.


(245)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나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있죠.”


(276)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 보급 문제가 악화됨에 따라 또다른 걱정거리들이 생겨났다. 거기에 투기까지 끼어들어, 부족한 생활필수품들이 일반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렸다. 그 결과, 가난한 가정은 무척 괴로운 상황에 놓인 반면, 부유한 가정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다. 페스트가 가져온 공평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이 강화될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기심 때문에 페스트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의의 감정만 심화시키고 말았다. 물론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식량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자신들이 떠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구호가 퍼져나가 벽보로 나붙기도 하고, 도지사가 지나갈 때 소리 내어 외치기도 했다. “빵 아니면 공기를.” 이 풍자적인 구호를 계기로 데모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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