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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말한다. 

"의가에서 남북의 명칭이 있어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에 치우쳐 있으나 의약의 도는 면면히 이어졌으니

우리나라의 의학교 '동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천하의 중심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세계' 그 자체였다.

중국의 북쪽과 남쪽은 도저히 같은 나라라고 하기엔 기후와 음식이 너무 달랐다.

당연히 체질과 질병 및 치법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북의와 남의의 전통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 역시 동쪽을 담당해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동의라는 명칭에는 북의와 남의에 견줄 만한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루겠다는 야심찬 안목이 깔려 있는 셈이다.

아, 그렇다고 여기에 민족주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당시 세계는 중화문명권이었고, 의학의 목표란 어디까지나

보편지의 추구에 있었지 조선적 특성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한편 '보감'은 거울에 비친 듯 명료하다는 의미다.

"거울에 만물을 밝게 비추어 형체를 놓치지 아니"한다.

하여, "환자가 책을 펼쳐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에 비친 듯이 명확하니

함부로 치료하여 요절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문장의 주어가 의사가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이다.

즉, 아픈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은 최고의 지성을 집대성해 놓았지만,

결코 전문가나 고급 인텔리들만을 위한 저서가 아니었다.(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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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 육극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고,

하늘에 팔풍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팔절이 있다.

하늘에 구성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구규가 있고,

하늘에 십이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십이경맥이 있다.

하늘에 이십사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24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5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내경편>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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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단 이쯤해서 정리를 해보자.

정(精)은 생명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토대를 의미한다.

기(氣)는 이 질료를 움직이는 에너지다.

그리고 신(神)은 정기의 흐름에 벡터를 부여하는 컨트롤러 역할을 한다.

이 셋은 서로 맞물로 돌아가면서 변전을 거듭한다.

"정(精)은 신(神)을 낳고 신은 정(精)을 기른다.

서로가 서로를 낳는 이 기묘한 관계. 

그런데 이 둘의 관계를 적절하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 그것이 바로 기(氣)다.

정(精)과 신(神)을 생성한 기(氣)가 다시 정(精)과 신을 매개한다.

이로써 기(氣)는 정(精)과 신(神)의 모태이면서 동시에 정(精)과 신(神)을 매개하는 실제적인 에너지로 작동한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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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병은 기에서 생긴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내면 기가 거슬러 오르고, 기뻐하면 기가 느슨해지며,

슬퍼하면 기가 사그러지고, 두려원하면 기가 내려가며,

추우면 기가 수렴되고, 열이 나면 기가 빠져나가며,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지고, 피로하면 기가 소모되며,

생각을 하면 기가 맺힙니다." (15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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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뻐하면 심이 흔들려 혈을 만들지 못한다.

갑자기 성내면 간이 상하여 혈을 간직하지 못한다.

근심이 쌓이면 폐가 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비가 상하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이 상하는데, 이것은 모두 혈을 움직인다. 

...... 갑자기 기뻐하여 심을 상하면 기가 늘어져 심장이 피를 내보내지 못해

간은 받을 것이 없게 된다. 갑자기 성내어 간이 상하면 기가 거슬러올라 

간으로 혈이 못들어와서 피가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

또 성생활이 과도하여 음화가 끓어오르면 혈이 화를 따라 올라가

경맥을 벗어나 마구 돌아다닌다. (25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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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일상의 희로애락을 엿보게 하는 처방전들도 있다.

* 부부를 서로 아끼게 하는 방법 : 부부간에 불화가 있을 때는

원앙 고기로 국을 끓여서 몰래 먹이면 서로 아끼게 된다.

5월 5일에 뻐꾸기를 잡아 다리나 머리의 뼈를 차고 다니면

부부가 서로 아끼게 된다.

* 질투를 하지 않게 하는 방법 : 의이인, 천문동, 붉은 기장쌀을 모두

같은 양으로 가루 내고 꿀로 반죽하여 환을 만들어 남녀가 모으면

모두 질투하지 않는다. (8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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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꿈이 없이 푹 잘 수 있을까?

"동의보감"에선 그 방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잘 때 모로 누워 무릎을 굽히고 자면 심기를 도울 수 있다.

일어날 때 기지개를 켜면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반듯하게 누워 자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낮잠을 자면 안 되는 것은 기가 빠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때는 하룻밤에 늘 5번씩 돌아누워야 한다." 

결국 침대 광고에 나오듯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로운 셈이다.

하긴 아이들의 경우 자면서도 얼마나 왕성하게 움직이는가?

그런 맥락에서 "손을 가슴 위에 얹으면 가위에 눌릴 수 있다" (19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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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은 내 몸과 외부의 기운이 어긋나서 발생한다. 

따라서 그 책임은 일단 나에게 있다. 

따라서 아프다는 건 내가 내 몸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약과 의사는 도우미일 뿐, 치료는 전적으로 환자의 몫이다.

어디 병뿐이랴. 인생사 전체가 그렇지 않은가.

통과의례나 성장통, 그리고 연령별 주기마다 찾아오는 문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번뇌와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무망한 노릇도 없다.

미봉책으로 피하고 나면 그것은 무시무시하게 성장하여 문득 내 앞을 가로막는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마취나 진통제가 발달해도 통증 자체를 없애 버릴 수는 없다.

생명이 창조되면서 질병이 탄생했듯이, 질병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고,

동시에 통증이 없는 삶 역시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겪어야 할 건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352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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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다. 내 아이의 인생 역시 길다.

유년기와 10대의 성취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내 아이 역시 중년과 노년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의 핵심은 생로병사의 마디를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힘이다. 

무의식이나 직관, 영성, 그리고 카리스마 등이 다 거기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교육상품으로 기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일단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치겠다는 그 마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 마음이 확 쏠리는 것을 일단 멈추는 것, 

나아가 속도 위주의 교육적 욕망과 배치를 바꾸는 것, 그게 더 일차적이다. 

일단 부모들이 먼저 그런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특히 엄마와 아이는 신체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엄마가 호흡을 길고 평화롭게 하는 공부를 한다면 

아이 또한 자연스럽게 그 리듬과 강밀도에 접속하게 된다. 

길은 그 다음에 절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여, 느긋하게 기다리시라. 

큰 그릇은 천천히, 늦게 이루어지는 법이니. (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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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임금이고 혈(血)은 신하이고 기(氣)는 백성이니, 

몸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백성을 아끼면 나라가 편안해지듯이 기가 고갈되면 사람은 죽는다.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고 망한 나라는 보전할 수 없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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