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지붕 갈면 참새고 구렝이고 굼벵이고 노래기 웂어지는 것만 알았제 그놈으 스레튼지 신식 양철인지 허는 지붕이 삼동에는 사람 고드름 맹글게 외풍이 일어 춥고, 삼복에는 사람 숨맥히고 찜쪄죽이게 후꾼후꾼 더운 것 워째 몰르시오. 고것이 보기만 뺀드르르혔제 사람 잡는단 말이오. 사람이 삼동에는 뜨뜻허니, 삼복에는 시언허게 살아야 몸도 풀리고 일도 지대로 되고 허는 법인데, 공연시 그 존 초가지붕 걷어내고 쌩돈 딜여감시 그 못쓸 스레트로 바꾸라고 물이 못 나게 잡져대니 요것이 무신 얄랑궂인 일인다요? 글고, 저 생생헌 탱자나무 울타리가 우리 실림을 가난허게 맹그는 것도 아니겄고, 무신 손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디 워째 싹 쳐내뿔고 그 멋대가리 웂는 쎄멘트 담으로 바꾸라고 욱대기고 그래 싼다요. 저것도 다 살아 있는 목심인디. 워디 그뿐이당게라? 철 따라 잎 피고 꽃피고 탱자 익어가는 운치가 꽃밭이 따로 웂고, 잘 익은 탱자는 아그덜 입맛 돌게도 허고 한약방에 약재로 폴기도 안 허요. 근디 쎄멘트 담은 주는 것이 머시가 있소.

 

(84-85)

이규백은 필터가 타들도록 담배를 빨며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박정희정권은 벌써 16년이었다. 유신 반대 데모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고,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살고, 풀려나고, 또 잡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4.19 때처럼 군중의 물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일까……? 그만큼 무섭게 탄압하기 때문일까? 중정과 쌍벽을 이루며 군 수사기관까지 빈틈없이 감시를 해대기 때문일까? 중정과 쌍벽을 이루며 군 수사기관까지 빈틈없이 감시를 해대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무슨 정치 기술이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말대로 국민들이 잘사는 것에 정신팔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저 잘살 수 있기를 바라는 절대다수의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정치의 부자유가 별다른 불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이 이승만정권과 다른 점일 수 있었다. 군중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은 정치투쟁, 그것은 개인의 희생일 뿐이었다. 동생과 그의 동료들은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경솔일지 몰랐다.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나섰을 수도 있었다. 자기들이 먼저 싸움에 나서서 대중을 자극하고 불러일으키려는 계책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외친 역사가 이 법정을 심판할 것이다라는 구호는 허망한 것 같으면서도 의미심장했다. 역사……, 그것은 얼마나 모호하고 막연한 것인가. 현실에서 볼 때 모양도 형체도 없는 것이 역사였다. 또 역사의 힘이 있다한들 그 힘이 발휘될 때는 오늘의 현실은 이미 과거가 된 다음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역사의 힘을 믿고 독재의 폭력 앞에 몸을 내던진 것이다. 그건 오늘 당하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결의가 없이는 못할 일이었다.

 

(217)

더 이상 개발독재에 순응해선 안 돼. 정치와 경제가 결탁해서 전체 민중들을 갈취하는 이런 구조는 하루빨리 부셔야 해. 신흥 재벌들이 생겨나는 걸 경제 기적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그거야말로 고등사기 선전술이야. 그건 권력의 비호와 노동자 착취가 얼마나 극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야.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단 몇 년 사이에 신흥 재벌들이 생겨나는 일이란 없어. 지금부터 노동자들을 조직화해서 개발독재의 구조를 깨고, 노동자의 몫을 제대로 찾아야 할 때야.”

 

(236-237)

한국사람들이 쇠로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뚜렷한 땅에서 나고 자랐으니 더위에 강할 수 있는 체질도 아니었다. 더위에 강하기로는 더운 나라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일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구덩이를 서너 개 팔 때 태국사람은 구덩이를 한 개밖에 파지 못하고, 한국사람들이 일하는 식으로 필리핀사람들에게 시키면 하루 일하고 사흘을 앓아눕는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태국이나 필리핀사람들은 대개 대만 회사들에 고용되어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오로지 가난을 면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우디사람들조차 피하는 살인적인 더위를 무릅써가며 사생결단 일에 나서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허약해져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비행기에 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석회 성분 많은 물 때문에 담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305)

내가 정말 다혈질이고 돈키호테였던가? 우리가 언론자유를 위해 나섰지만 이루어진 것은 무엇인가?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신문사에서 내쫓겼을 뿐 독재는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어이없고 비참하게도 자신들의 행동은 독재자들에게 독재를 강화하도록 자극하고 깨닫게 해준 역할을 한 셈이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자신들이 내쫓긴 자리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며칠이 못 가 이런저런 사람들이 메우고 만 일이었다. 그들도 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사리분별을 할 능력을 갖춘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음 얼마 동안은 슬슬 피하고 몸을 사리는 눈치더니 차츰 해가 바뀌어가자 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맞대면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았고, 술 한잔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내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어차피 누군가는 채워야 할 자린데 그나마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가 선배님들 뜻 지키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하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한한 논리에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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