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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6
백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425/pimg_7351811963392121.jpg)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에서 서핑하다가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시리즈를 알게 되었단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시리즈야. 괜찮을 것 같았고,
그 시리즈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아빠가 그 전부터 전기문을 읽어보고 싶어 했던 분들이었어.
그래서 알아보다가 얼마 전에 읽은 <노인과 바다>의
지은이 헤밍웨이에 관한 클라식 클라우드 시리즈 6권 <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백민석이라는 처음 본 분인데, 소설과 산문을 많이 쓰신 작가시더구나.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워낙 유명해서, 헤밍웨이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빠는 잘 모른단다. 그가 스페인 전쟁에
참여를 하고 나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을 썼고, 삶의 마지막은 비참하게도 권총 자살을 했다는 정도 밖에 아는 것이 없었어. 살아서도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은 그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궁금하구나. 자 그럼 아빠와 함께 헤밍웨이 여행을 떠나보자꾸나.
1.
헤밍웨이는 한 곳에 정착한 삶을 살지 않았고, 한 여성에 장착한 삶도
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무려 20여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살았고, 결혼과 이혼도 네 번이나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
경험들이 다양한 소재로 소설을 쓰는데 바탕이 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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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헤밍웨이는
한 장소에 붙박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4대륙 20여개 나라에 삶의 흔적을 남겼고, 창작도 온갖 도시의 온갖 호텔을
옮겨 다니며 했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팜플로나가 배경이고 스위스에서 마감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배경이고 마조레 호숫가의 호텔에서 쓰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의 전장이
배경이고 쿠바의 아바나에서 주로 쓰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가 배경이고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가
배경이다. 한 여성에게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 때마다 굵직한 작품들을 써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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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였대. 그 무서운 전쟁에 직접
참여도 했대.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스페인 내전 등 현대사에 굵직한 전쟁에 직접 참가를 했다는구나.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상을 입어 죽을 뻔 했대. 그런데도 또 전쟁을 나가다니 대단한 사람이네. 자신을 스스로 죽지 않는 불사조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1차 세계
대전에서 중상을 입고(그가 1차 세계 대전에서 부상을 입은
첫 번째 미국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병원에 입원에 있으면서 아그네스라는 간호사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트레사를 배경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대작을 썼다고 하는구나.
…
지은이 백민석 님의 헤밍웨이 발자취 따라가기 첫 번째 여행지는 파리였단다. 1920년대
헤밍웨이가 파리에 머물렀는데, 당시 파리에는 파리지엥이라고 해서 세계 곳곳에서 많은 예술가, 소설가들이 모여서 활동을 했단다. 아빠도 재미있게 본 <미드나잇 인 파리>가
1920년대 파리지엥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영화에 헤밍웨이도 조연으로 출현했었단다. 이 책에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더구나.
…
헤밍웨이의 소설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원래 뜻은 수면
아래 두고 짧고 함축적인 글만 수면 밖에 내놓은 빙산처럼 쓰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런 걸 빙산이론에
의한 글쓰기라고 한대. 수면 아래에 읽는 속 뜻을 읽기 쉽지 않지. 아빠는
반대다. 빙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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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7)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는 않는 부분입니다.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생략하면, 그때는 이야기에 구멍이 생겨요. (…) 하지만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이 수면 아래의 빙산을 만드는 겁니다. -
<헤밍웨이의 말> 57~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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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밍웨이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대. 그래서
남성성이 강한 소설들을 많이 썼고, 여러 여자들과 만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어.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젊었을 때는 나이차이가 많은 연상의 여인을 만났을 것이라 추측하더구나. 앞서 병원에서 만난 아그네스, 첫 번째 부인, 두 번째 부인 모두 나이 차 많은 연상이었대. 세 번째 부인부터
연하의 여인이었다고 하더구나.
…
헤밍웨이가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그 중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곳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스페인의 팜플로나라고 하는구나. 팜를로나에는 거의 매년 갔다고 했어. 그곳에는 투우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라는 것이 있었어. 지은이 백민석
님도 직접 산 페르민 축제를 가셨는데, 생생한 사진과 함께 그 축제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단다. 헤밍웨이는 이 축제를 경험하고 나서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와 <오후의 죽음>을
썼는데 아빠는 다 모르는 작품들이구나.
그리고 그가 또 좋아하는 장소는 아프리카. 그가 아프리카에 자주 간
것은 그가 좋아하는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대. 사냥뿐만 아니라 헤밍웨이는 스포츠 광이었다고 하는구나. 아프리카 여행을 경험을 <킬라만자로의 눈>이라는 소설을 썼다고 하는구나.
…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고 했잖아. 그는 그곳에서 겔혼이라는 여기자와
사랑에 따지고 결혼을 했다는구나. 겔혼과 사랑을 다룬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라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어서, 겔혼이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구나. 영화를 보지 않았고 헤밍웨이의 삶을 몰라서 <헤밍웨이와
겔혼>이라는 영화가 헤밍웨이의 유일하고 운명적인 사람, 뭐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세 번째 부인과의 이야기였구나. 유일한
사랑은 아니어도 운명적인 사랑이었나? 이것도 기회 되면 한번 보고 싶은데, 봐야 할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
아무튼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가 독재가 시작되어 스페인을 떠났다가 독재와 반파시즘이 계속 되면서 스페인에 가지
못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의 라틴 사랑이 대단해서 스페인을 가지 못하는 대신 그와 유사한 라틴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쿠바에 가서 정착을 하게 되었대. 이미 이 때는 겔혼과 헤어졌고, 넷째 부인 메리 웰시와 결혼을 했다는구나. 스페인에서의 스페인 내전의
경험과 산 페르민 축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을 썼단다. 지금도 쿠바에 가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던 헤밍웨이의 집을 관람할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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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하지만
헤밍웨이가 무슨 이데올로기적인 확신이 있어서 참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가 뒤섞여 이데올로기의 각축장 같았던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어느 이데올로기도 공식적으로 두둔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는 로버트 조던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정치적인 입장이 없을 강조한다. 그의 참전은 다큐멘터리 해설에서 보듯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는 이미 스페인이 배경인 책을 두 권 펴냈고 거의 해마다 스페인에 놀러가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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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쿠바에 정착한 이후 주로 쿠바에서 생활을 했단다. 네 번째
부인 메리 웰시와도 17년이나 같이 살았다고 하는구나. 쿠바에서
쓴 작품들에 가장 성공적이고 유명한 작품은 바로 <노인과 바다>란다. 쿠바에서의 삶은 1960년 쿠바 혁명이 일어난 이후 마무리되었단다. 그는 그 이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대. 전쟁터에 여러 번 나아가서도 살아 돌아왔고, 크고 작은 사건과 수 많은 질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겼던 헤밍웨이,
심지어 죽지도 않았는데 사망 기사가 세 번이나 났었다고 하더구나. 그런 헤밍웨이가 우울증에
빠져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니 안타깝구나. 그것도 그가 그렇게 따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죽었단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
헤밍웨이에 모든 것을 적은 전기문은 아니었지만, 헤밍웨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던 것 같구나. 칼라풀한 사진들이 많아서 좋았고 말이야. 그로 인해 가격이 좀 셌지만 말이야.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에 아빠가 관심을 두었던 예술가들 몇몇은 또 읽어보고 싶구나.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헤밍웨이는 초인의 삶을 살았다.
책의 끝 문장: 오히려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었다.
1920년대 문학을 말할 때 가장 널리 이야기되는 것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다. 어쩌면 이 이름이 그 뒤를 잇는 여러 세대론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 이후로 1950년대의 ‘비트족’, 1960~1970년대의 ‘히피족’이 뒤를 잇는다. 이 ‘잃어버린 세대’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것이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였다. ‘잃어버린 세대’는 그의 창작이 아니었지만, 그가 소설에 써서 유명하게 되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 작가를 일컫는 공식적인 세대 이름이 되었다. - P67
헤밍웨이가 대화문을 쓸 때 현실성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소설이고 따라서 극한 상황에 처한 군인들이 내뱉는 욕설과 비속어 ‘cocksucker’가 등장한다. 결국 저급한 단어들이 문제가 되어 보스턴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가 금서 목록에 오른다. 편집자 맥스 퍼킨스는 출판사 사장에게 이런 편지를 섰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게 헤밍웨이의 원칙입니다."(<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검열 소식을 듣고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구해 헤밍웨이에게 보내준다. 당연히 그 소설에서도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는다. 남성들뿐인 전장의 막사에서 군인들이 조곤조곤 우아하게 존댓말로 대화한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장면도 또 없을 것이다. 결국 헤밍웨이와 맥스 퍼킨스는 한동안 설전을 거듭하다가 비속어를 빼기로 한다. - P104
헤밍웨이는 삶의 경험도 많고 어디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단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고 단조로웠다. 그런 여성들과 그 자신의 반영인 남성 주인공들은 대개의 경우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무르익은 밀고 당기는 연애 과정은 짧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내면의 모든 곳이 뒤집혀버렸다."(<무기여 잘 있거라> 126쪽)라고 말하면서 프레더릭은 캐서린과 병실에서 다짜고짜 사랑을 나눈다. 이런 관계에서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더 순종적이게 되는 편은 항상 여성이다. 캐서린은 프레더릭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체온까지 멋지군요. (…) 당신 체온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무기여 잘 있거라>, 139쪽) 프레더릭이 "당신은 나의 착한 여자야."라고 하지 캐서린은 "난 정말 당신의 여자예요."(<무기여 잘 있거라>, 205쪽)라고 답한다. - P142
내가 보기에 이 점이 헤밍웨이의 삶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비행기 사고도, 자살도, 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들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는 말하자면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똑 같은 행위를 다시금 반복했고, 비슷한 위험한 상황을 반복해 만들었다.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낚싯대를 타고 나갔다가 한 번 큰 부상을 입었으면 또다시 낚싯대에 오르기를 꺼려할 것이다. 전장에 나가 다리에 200개가 넘는 파편이 박혔다면, 전쟁은 소문만 들어도 치라 떨릴 것이다.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냈으면 다시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낚싯배를 타고 청새치를 쫓아다녔고, 늙어서도 주먹질 싸움을 그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만 전쟁에 다섯 번 참전했고 음주 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 P274
헤밍웨이는 죽기를 욕망했다. 죽음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원인이었고, 그가 쫓아다닌 위험한 장소들은 죽음에 그를 가까이 데려다주기는 하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는 욕망의 틀린 대상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사고와 질병, 비행기 사고, 자살까지 이어지는 그의 기나긴 ‘육체적 고난의 연보’는 이렇게 해서 연속성을 얻게 되고 조금이나마 이해 가능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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