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나무뿌리에는 살아있는 세포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런 만큼 신선한 산소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토양 속 틈은 뿌리들에게 생명의 공간이다. 제주도나 울릉도에 가서 숲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이 편한 것은 화산석이라 뿌리들이 숨 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 산천단의 천연기념물인 곰솔을 보면 탐방객 때문에 길옆은 답압이 심할 텐데오 싱싱하게 잘 자란다. 화산석에 숭숭 뚫린 공기구멍 덕분이다. 나무의 뿌리 분포는 대부분 지표면 15센티미터 안에 물려 있다. 뿌리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숨 쉬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가로수는 늘 어두운 땅속에서 물과 양분, 신선한 산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부족함을 벗 삼아 느린 숨을 쉬며 길 위에서 수행한다.


(21)

도시 빌딩숲은 광합성을 방해한다.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숲,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빌딩을 처음 만난 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흔들린 만큼 빛이 뿌려지는 공평한 숲이 아니다. 그나마 햇빛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건 다행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당시 최고 권력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우쭐대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무는 디오게네스와 달리 우쭐대는 빌딩 숲 사이에서 나무 큰 나무들 사이로 이사 온 것 같구나. 나도 얼른 커야겠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빛을 향해 달린다.


(34)

나무는 사람을 닮고 사람은 나무를 닮는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이 겪었을 홍수와 가뭄, 추위와 더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옹이 박힌 나이테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사람은 갔지만 나무는 살아남아 사람의 삶을 증언하기도 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에 살다간 조상들과 닮아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선했던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주며 스스로 신이 된 신목들을 만나 본다.


(63)

토머스 파켄엄의 말을 들어보자.

오래된 나무들의 크기는 수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신 나무의 장수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같았다. 가장 오래된 브리슬콘소나무는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열악한 환경을 선택했다. 겨울에는 눈보라에 시달리거나 폭설에 파묻혔고 봄여름에는 뙤약볕에 바짝 말라 버렸다. 눈 녹은 물 이외에는 마실 것도 없었고 생장이 가능한 시기는 1년에 고작 몇 주에 불과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생장이 느려졌다.”


(80)

흙이 발효되는 냄새와 얼굴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습기, 들뜬 꽃들의 분 냄새, 나는 그것들을 내 몸 안에 가두어 두려고 큰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질 못했다. 며칠 전만 해도 인쇄소에서 잉크 냄새에도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밤에는 기계 위에 걸쳐 놓은 마루에서 잠을 자야 했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꽃향기와 흙 내음 속으로 격렬하게 내몰았다.


(130)

바람은 빛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만약 바람이 없다면 잎의 온도는 엽록소가 파괴될 만큼 올라갈 것이며, 증산작용을 하지 못해 대사활동이 떨어진다. 맛있는 과일과 곡식과 맺지 못한다. 바람은 나무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꽃가루를 옮겨 주기도 하고, 씨앗을 멀리 보내 주며, 뿌리의 발달을 돕는다. 나무를 옮겨 심고 지주목을 받쳐 주어야 하는 것도 바람에 흔들려 새롭게 태어나는 뿌리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지주목이 오래도록 나무가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면 뿌리는 깊고 멀리 뻗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으므로 자기 뿌리가 그만큼 든든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너무 강한 바람은 나무를 넘어트리거나 가지를 부러트리기도 하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처럼 한쪽 가지를 몽땅 빼앗아 가기도 한다. 특히 외따로 자라는 나무에게 바람은 가혹하다.


(150)

아름다운 감정은 외롭지 않음이다.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름알음이자 앓음이고, 앓음은 아픔이다. 혜곡 최순우는 앓지 않은 아름다움은 없다고 했다. 백양사의 고불매가 아름다운 것은 오랜 세월의 상처를 감추고 꽃을 피우는 데 있다. 솜씨 있는 장인은 흔적을 남기지 않듯, 나무는 상흔을 교묘히 감춘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한다. 세월에 삭박된, 더 이상 생명이 자라나지 못할 것 같은 삭은 줄기에서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운다. 하나 됨으로 아픔을 알게 되는 아름다움이다.


(182)

멈춤이 자람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어서다. 나무의 생장을 멈추게 하는 상태를 스트레스 상태라고 하며, 생장하기에 적절치 못한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를 뜻한다. 나무는 고온과 저온, 동해와 냉해, 바람, 대기오염, 수분 등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때 생장을 멈추기 못한다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 나무는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므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나무는 상대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0)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이라는 두 개의 젖꼭지를 물고 양쪽에서 자양분을 취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가지는 하늘에 근본을 두고 뿌리는 땅에 근본을 둔다. 두 개의 근본을 가지며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룬다. 속이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다. 노자는 비어 있음으로써 유용하다고 했다. 마차 바퀴통은 중심이 비어야 살을 끼워 저항을 줄이며 구를 수 있고, 그릇은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사람도 어딘가 비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듯이, 나무는 속을 비워 냄으로써 많은 생명체를 품는다. 나무의 텅 빈 속은 아늑하며 따뜻하고 숨기 좋으므로 하룻밤 쉬어 가는 동물이 번갈아 드나드는 공간이 된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이다.


(204)

나무에게 바람은 어떤 존재일까? 만약 나무가 태어나자마자 학교에 들어갔다면 바람은 무서운 훈육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 청년기에는 연인, 사회에 진출하면 질서와 규율,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지 못하게 하는 추억이다. 숲속에서 태어난 어린 나무에게 바람이란 큰 나무나 겪는 일이지만, 가끔씩 큰 나무도 감당 못하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어린 나무에게도 무서운 존재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아놀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이제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장성해 숲의 주인이 되어 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한다. 노년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 사이로 바람마저 피해 간다.


(255)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오래된 숲일수록 소소해지며,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생물학 용어에서 개체거리란 어떤 생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개체와 유지해야 할 거리를 말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경쟁관계가 되며, 너무 떨어져 있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개체거리가 중요하다. 풍매화의 꽃가루나 곤충을 이용해 수분하는 나무도 개체 간 거리가 필요하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근친관계가 이루어지기 쉽다. 따라서 무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서로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집단적으로 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에 신경 쓰지 않는 풍매화는 바람이 부는 봄날 일시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 한다. 나무에게는 부부라는 개념이 없고, 정자에 해당하는 꽃가루를 무작위로 방출해 암술의 주두에 닿으면 수정되는 방식, 즉 물고기처럼 체외사정으로 성교하는 셈이다. 그런 일은 분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291)

걷기는 끊임없이 몸과 타협해야 한다. 기계를 돌보는 엔지니어처럼 몸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쓰지 않아서 퇴화한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가슴에 있어야 할 영혼은 발바닥에 머무르며 온몸은 발바닥의 지시를 받는다. 걷기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이다. 잔잔한 고통을 통해 몸과 마음이 화해하는 행위다. 그동안에 잊었던 몸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하며 서로가 고마움을 느낀다.


(292)

걷기란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수단이다. 걷기란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가는 과정이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의문점들이 떠오른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잘 있었니, 미안해, 주로 마음이 몸에게 일방적으로 화해를 청하는 모습이다. 몸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그런 경지는 걷기를 통해 잠시 맛볼 수 있다.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한 그의 말처럼 걷기에서 내 몸과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 됨을 느낀다.


(354)

죽음은 서서히 진행되며, 깊은 상처를 남기고, 상처는 계속 진행되어 아래로 내려온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굵은 가지라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무가 골다공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건강한 나무는 좀에 부쩍 성장하고 여름부터는 단단한 목질부를 만든다. 이에 비해 노쇠한 나무는 봄에 짧게 생장한 뒤 생장을 멈추어 연약한 재질로만 이루어지게 된다. 속은 비어 가고 나머지는 연한 재질이어서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온다. 원주민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나무는 개발 논리 앞에 속수무책이다. 상수도와 하수도가 뿌리를 자르고 지나가는 것은 기본이고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며 일조권을 침해당해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401-402)

나무 진단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나무의 껍질은 나이와 환경을 대변한다. 세월에 따라 변하는 시간의 지문이다. 젊은 껍질과 늙은 껍질이 공존한다. 해쓱한, 까칠한, 촉촉한, 검은, 검버섯, 푸른, 이끼, 거칠고 부드러움, 질감과 색감이 조응아며 언어로 드러난다. 본질은 그 언어 속으로 숨는다. 마침내 나무의사는 언어를 뒤지며 원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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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5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시 속 빌딩 숲에 갇혀 있는 나무의 생-노-병-사가
도시속 인간의 모습과 생노병사랑 흡사하네요 ,,,

bookholic 2021-10-25 23:3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나무든 사람이든 건강하려면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