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적은 외국의 문화권에서 오는 것이지 나와 같은 민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대시종장. 상대라는 말이 더 낫겠군. 일반적인 표현에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단어니까. 아니, 나는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보복 대상으로 보지 않소.” 카이사르는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으나,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차가운 응어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관용을 방침으로 삼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관용의 입장을 고수할 거요. 내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직접 찾으러 온 까닭은 진실한 우정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서요. 아첨꾼들만 우글거리는 원로원으로
들어가는 건 딱한 노릇일 테니까.”
(203-204)
“인색하게 굴지 마시오, 클레오파트라! 당신 돈을 써서 백성들을 먹이시오. 가난한 자들에게 비용을 떠넘기지
마시오! 로마가 무산자들과 별 갈등이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전차 경주 입장료를 받지 말고, 아고라에 무료로 몇 가지 구경거리를 오릴 생각을 하시오. 그리스인 배우들로 이루어진 극단을 데려다가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같이 유쾌한 희극작가들의 작품을 공연하게
하시오. 일반 민중은 자기네 삶 자체가 비극에 가까워서 비극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한나절 잠깐이라도 웃으면서 걱정근심을 잊어버리고 싶어한다오. 공공
분수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설치하고 공중목욕탕도 몇 개 만드시오. 로마에서는 목욕탕에서 한 번 마음껏
즐기는 데 4분의 1세스테르티우스 밖에 들지 않소. 그 돈이면 사람들은 몸도 깨끗해지고 기분도 좋아져서 나가는 거요. 여름
동안 저 망할 새들을 관리하시오! 남녀 몇 명을 고용해서 거리 청소를 하고, 오물을 내보내는 하수구가 있는 곳마다 제대로 된 공중변소를 설치하시오.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는 관료들로 꽉 차 있으니 귀족은 물론 다른 인구까지 포함하는 시민 명부를 마련하시오. 또 빈민들에게
매달 밀 1메담노스를 받을 자격을 주는 곡물 목록을 작성하고 맥주를 빚어 마실 수 있게 보리 배급도
포함하시오. 당신이 소득으로 받는 돈은 썩어 없어지게 처박아두지 말고 고루 분배해야 할 것이오. 그 돈을 쌓아두면 경제가 붕괴하는 거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제 길들었지만, 계속 그 상태로 있을지는 당신 하기에 달렸소.”
(207)
“나는 군주가 아니오! 로마에는
집정관과 법무관과 다수의 정무관이 있소. 독재관은 임시방편일 뿐, 다른
의미는 없소. 독재관으로서 로마를 바로 세우는 일이 끝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물러날 거요. 술라가 그랬듯이. 내게 법적으로 로마를 지배할 특권은 없소. 그런 게 있었다면 로마를 벗어나지 않았을 거요. 당신이 이집트를
떠나선 안 되는 것처럼 말이오.”
(340)
브루투스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카이사르는 내전의 승자로서 권리가
있어. 이봐, 카시우스, 이번
전쟁이 로마 최초의 내전도 아니잖나. 우린 가이우스 그라쿠스 이후 최소 여덟 번 내전을 치렀고, 승자들은 고난을 겪는 법이 없었어. 물론 패자들은 그 반대였고, 지금까지는 말이네. 그런데 이제 카이사르라는 사람이, 과거는 과거로 기꺼이 묻어두려는 승자가 나타났어. 이런 승자는 처음이네, 카시우스, 처음이라고! 사면을
받는 게 어때서 그래? 사면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부르게. ‘과거는 과거로 묻기’도 괜찮아.
카이사르는 자네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자넬 벌레처럼 본다는 인상도 주지
않을 거야! 그는 내게 더할 수 없이 친절했네. 내가 잘못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조차 않는 것 같았다니까. 그가 나를 위해 사소한 무언가라도 해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정말이지 카이사르는 그랬다네, 카시우스! 마치 폼페이우스의 편에 선 게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각자 서야
하는 편에 서는 것이 모두의 권리라는 것처럼 말이네. 카이사르는 지극히 예의바른 사람이야. 그는 남들을 하찮게 보이게 하거나 그렇게 느끼게 해서 본인을 드높이겠다는 필요를 전혀, 조금도 느끼지 않아.”
(383)
베니, 비디, 비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말을 모토로 삼을까 생각중이네. 이 말에 들어맞는 상황이 걸핏하면
생기는데다 간명한 표현이기까지하니 말이지.
(386)
내 말이 무정하고 다소 경박하고 답답하게 들린다는 것 아네. 하지만
난 몰라볼 정도로 변했어, 마티우스. 한 사람이 반드시 필적할
자가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갈 필요는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네. 나와 치열하게 경쟁할 만한 사람들은 다 죽었어.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가이우스 쿠리오. 마르쿠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파로스의 등대가 된 기분이야-자기의 반만큼 높은 것조차 전혀 없는 등대 말이지.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내겐 선택권이 없었어.
(532)
게다가 <파이돈>은
또 뭔가? 스타틸로스한테서 이야기를 듣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카이사르가
스타틸로스를 곧 브루투스한테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낌새를 보이자 그 끔찍한 자살의 전모를 샅샅이 듣게 되었다. 아, 카토의 그 담금질할 강철 같은 불굴의 페르소나가 속으로는 완전히
부스러졌다는 걸 알게 되니 기분이 무척 좋은걸. 죽을 때가 되자 카토는 죽기를 두려워했어. <파이돈>을 읽어 자신이 영원히 살 것임을 스스로에게
확신시켜야 했던 거지. 거참 흥미롭군.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아름답고 시적인 저서 중 하나지만, 그 책을 쓴 사람은 제삼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 저자도,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논리와 합리성, 상식에 있어 타당하지 않아. <파이돈>, <파이드로스>, 그 밖의 책들도 궤변으로 때로는
순진한 거짓으로 점철되었고 케케묵은 철학적 죄를 저지르고 있어. 다시 말해 그들은 진실이 아니라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결론에 도달한다. 스토어 철학보다 더 편협한 철학이 어디 있겠나? 그 외의 어떤 정신적 강령이 그렇게 완벽한 미치광이를 그토록 성공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533)
아, 하지만 카이사르의 인생은 갈수록 고독해지고 있다. 카토, 비불루스, 아헤노바르부스, 렌툴루스 크루스, 렌툴루스 스펜테르, 아프라니우스, 페트레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쿠리오까지 다 죽었다. 로마는 과부들의 도시가
되었고 제대로 된 카이사르의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에게 동기부여가 될 반대 없이 그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하지만 절대, 절대로, 그의 군대로부터 반대를 당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