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3 -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 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았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3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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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서양 역사에서 화려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가 저문 이후 수백 년 동안을 암흑기라고들 한단다. 이번에 읽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3권에서 다루는 그 시대도 그 시대의 이야기란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미술이라는 것에 아빠는 소질도 없고, 감상 능력도 없기 때문에 뭐가 잘했고 뭐가 못했는지 잘 구분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이 시대의 미술 작품들이 확실히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술 작품들보다 못하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오긴 하더구나.

이번 3권에서는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 당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주고 있으며, 그런 암흑기에서도 우리가 관심 가져볼 작품들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미술 작품만 쭉 이야기하면 다소 따분할 수도 있는데, 역사 이야기도 함께 해주는 것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시리즈의 장점이 아닌가 싶구나.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질문과 답변의 강의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어서, 읽기도 편했단다.


1.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로마 제국의 영화도 끝이 나고 말았단다. 로마 쇠퇴의 원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연구도 하고, 추측도 했는데이 책에서는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으로 간단히 설명해 주었단다. 로마제국이 번성했던 요인은 영토를 점점 확장하면서 얻은 재화가 큰 이유였는데, 영국에 세운 하드리아누스 방벽 건축 이후 영토 확장을 멈추게 되었단다. 그렇다 보니 국가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단다.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지배층의 탐욕과 부패일 것 같구나. 그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고 시민들은 소작농과 빈민층으로 전락했어. 희망이 없어진 현실에서 그들에게 한줄기 빛을 준 것은 약자를 돕고 부활의 메시지를 던진 기독교였단다. 그렇게 로마의 쇠퇴와 함께 기독교는 널리 퍼지게 된 거야. 삶이 피폐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시절의 미술도 함께 퇴보하였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려했던 로마 조각상들에 비해 많이 퇴보하였단다. 이 시절 작품들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 이어지던 시간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었단다. 이 당시 미술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지배층의 탐욕이 커지면서, 자신들을 우상화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고 하는구나. 그러면 뭐하나, 작품성이 떨어지는데 말이야.

기독교가 로마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고 하지만,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탄압을 받아왔단다. 그러다가 4세기 그 유명한, 기독교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는 합법적인 종교가 되는 것은 물론, 로마의 국교가 되었단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서, 기독교 교리를 정리하기도 했다는 구나. 이후 기독교 관련된 미술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구나.

이 시대 대표적인 미술작품은 5세기에 만든 크베들린부르크 이탈라라는 작품인데,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최초의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으니, 이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 바로 교회를 짓는 일이란다. 기독교가 합법화되기 전에서는 집이 교회 역할을 하곤 했는데, 합법화된 이후에는 신도들이 함께 예배를 들일 수 있는 교회를 지었단다. 그 양식은 직사각형의 교회와 원형의 교회 두 가지가 있었는데, 이 양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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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의 성지가 된 곳이 있는데, 바로 예루살렘이란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기독교만의 성지가 아니고, 이슬람교의 성지, 유대교의 성지도 예루살렘이란다. 그래서 오늘날도 늘 종교의 분쟁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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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34)

그래서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분쟁의 땅이기도 합니다. 뒤 페이지 지도를 보세요. 일단 이 도시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구역이 있고, 여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이 사는 지역도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왔던 소수 민족입니다. 이렇게 사방 1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지역 안에 각자 이곳이 자기 종교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옹다옹 모여 있으니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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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예루살렘에 지은 유명한 교회로는 예수 성묘 교회란 것이 있단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의 주도로 지어진 교회라고 하는데,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 예수가 부활하기 전 안치되었던 묘가 교회 안에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어서 알려줄게. 예수 성묘 교회에는 움직일 수 없는 사다리가 하나 있다고 하는구나. 예수 성묘 교회 외벽에 놓여 있는 평범한 사다리인데, 1757년 이후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러 기독교 세력들이 예수 성묘 교회를 소유하고 있다 보니, 누구 하나 섣불리 그 사다리를 옮길 수 없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하는구나. ‘움직일 수 없는 사다리란 이름을 붙인 채 말이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해 준 것뿐만 아니라, 로마 역사에 또 하나의 큰 사고(?)를 친단다. 수고를 오늘날 터키의 이스탄불로 옮긴 것이야. 그러면서 그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사 콘스탄티노플이라 지었단다. 콘스탄티노플이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요충지로 좋은 지역이지만, 그래도 로마는 로마여야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렇게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로마로 갈리는 원인도 제공하게 된단다. 동로마 제국을 다른 말로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한단다.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이곳에 여러 건축물을 짓게 되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란다.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투스의 이시도르스라는 과학자들이 설계를 해서, 상당히 과학적인 설계로 지었는데, 그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6세기에 다시 재건하였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나중에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무너지면서, 이 소피아 성당은 모스크로 개조되었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고 하는구나.


2.

비잔티움 제국 레오 3세 황제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을 느끼고, 제국을 개혁하려고 했단다. 종교를 형상화한 이미지를 모두 없애라는 것이었어. 그게 개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황제라는 권력으로 교회 안의 모든 형상과 이미지를 제거하라고 했대. 예수의 상도 없애고, 그림도 없애고 말이야. 교리를 무척 좁게 해석한 성경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단다.

이에 서로마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는 레오 3세 황제의 이런 개혁을 반대했단다. 그레고리우스 2세는 포교 활동을 위해서는 형상이나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이 둘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기독교는 동서로 분열이 되어,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정교회로 나뉘게 된단다. 정교회가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오늘날에도 러시아와 그리스의 국교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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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11세기 무렵 기독교가 동서로 분열하며 서쪽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가톨릭이, 동쪽에는 비잔티움 제국을 중심으로 정교회가 세워집니다. 가톨릭은 교황이, 정교회는 총대주교가 대표하게 되었죠. 이렇게 분열한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했는데, 이름에도 그 주장이 드러나 있습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단어는 보편성은, 정교회를 가리키는 오서독스(Orthodox)는 정통을 의미하거든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정교회는 지금도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국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 규모의 기독교 종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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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에서 형상과 이미지를 제한하다 보니 미술을 쇠퇴하게 되었고, 로마 가톨릭은 형상과 이미지를 허용해서 미술의 발전이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한 황제의 이런 정책에 미술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구나. 그레고리우스 2세도 레오 3세의 의견을 따랐다면, 미켈라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도 많이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면서,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융성과 함께 쇠퇴했단다. 게르만족은 기근과 전쟁 그리고 훈족의 위협을 피해 이주하게 되는데, 그들이 이주한 곳이 서로마의 영역이었단다. 앵글족과 색슨족은 영국으로 이동하여 정착했고, 반달족은 북아프리카로 이동했고, 고트족은 남부 유럽으로, 프랑크족은 오늘날 프랑스 지역으로 이동을 했어. 그들은 로마에 널리 퍼져 있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는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기독교 신앙이 융합시켰단다. 그러면서 속세를 등지고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사들도 나타났는데, 수도사들이 생활하는 수도원은 중세 미술을 만들고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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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대 로마 제국이 망하고 암흑기에 빠져든 서유럽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왕이 등장하면서, 안정을 되찾게 된단다. 그가 왕이 된 시기는 8세기 말부터 9세기까지인데, 이때 이미 그리스 로마 부흥 운동도 주도했다고 하는구나. 잘 알려진 15세기 르네상스보다 한참 빠른 시기에 그리스 로마 부흥 운동을 해서 이것을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도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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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보통 르네상스라고 하면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15~16세기의 르네상스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르네상스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바로 8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 이어진 카롤링거 르네상스입니다. 이 시기에 드디어 본격적인 중세를 망라할 사회제도, 기독교 교리, 중세적 감수성 전체가 선명해집니다. 더 나아가 자취를 감추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유산들이 복원되기 시작했고요. 초기 기독교 시대의 혼란을 넘어 서유럽 세계의 질서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중세의 암흑기가 거의 끝나간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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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취약한 아빠는 샤를마뉴 왕을 처음 들어봤는데, 샤를마뉴는 오늘날까지 오랫동안 유럽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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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샤를마뉴가 사랑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샤를마뉴가 화려한 로마시가 아니라 소박한 북쪽의 고향 땅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교황에게서 로마 황제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했지만 샤를마뉴는 평생 로마 시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 거점에서 나라를 통치하다가 지금의 독일 아헨에 수도를 정한 후로는 쭉 그곳에 머물렀죠. 샤를마뉴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부흥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던 거예요. 샤를마뉴 치세에 게르만 문화와 그리스 로마 문화, 그리고 기독교가 융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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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3권의 이야기란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6권까지 나왔는데, 6권이 끝인데, 더 나오는 것인지 잘 모르겠구나. 6권짜지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 미술 초보자들을 위해 쉽게 서양미술사를 잘 적은 시리즈인 것 같구나. 이 시리즈를 읽고 나면 곰브리치의 깨알 같은 크기의 글자로 된 <서양미술사>도 읽어볼 수 있을까?


PS:

책의 첫 문장 : 이번 강의는 주로 로마제국이 멸망해가는 혼란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책의 끝 문장 : 다음 강의에서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중세 사람들이 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중세 미술을 본격적으로 탐험해 보겠습니다.



아무로 높고 강력한 파도라도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 슈테판 츠바이크
- P36

네, 다른 말로 하면 삶에 철학적 깊이가 생겼다고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부분이 중세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입니다. 중세는 흔히 암흑시대니 뭐니 해서 역사가 후퇴한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면적으로 아주 깊은 성찰을 했던 시기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듯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답하는 시기이기도 했고요. 또 앞으로 보겠지만 신은 어떤 존재여야 하고 신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끝없이 탐구하는 과정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 P90

그래서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분쟁의 땅이기도 합니다. 뒤 페이지 지도를 보세요. 일단 이 도시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구역이 있고, 여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이 사는 지역도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왔던 소수 민족입니다. 이렇게 사방 1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지역 안에 각자 이곳이 자기 종교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옹다옹 모여 있으니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겠죠. - P133

그래서 일반적으로 서로마가 멸망한 476년을 고대 로마제국이 멸망하며 중세가 시작된 때라고 합니다. 물로 동로마는 로마라는 이름을 유지한 채 콘스탄티노플의 단단한 방벽 뒤에서 1000년을 더 살아남긴 했지요. 그러나 살아남은 동로마를 고대 로마제국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고대 로마제국의 중심이 이탈리아 반도였다면 동로마제국의 중심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소아시아 지역이거든요. 당연히 동방 문화권이고요.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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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4 0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어서 사서 쌓아두고 잇는데 빨리 읽어야겠네요. ㅎㅎ

bookholic 2021-02-14 11:02   좋아요 0 | URL
얼른얼른 펼치세요~~^^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