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과학은 게임이다.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는 현실의 게임. 하나의 그림을 조심스럽게 수천 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뒤, 잘라진
조각들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그림을 다시 완성할 때 이 퍼즐게임은 끝난다. 이 게임에서 당신의 상대는
신이다. 신은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의 규칙들도 만들어냈다. 이
규칙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규칙의 절반은 당신 스스로 발견하거나 유추해내야 한다. 실험은 날을 세운 검이다. 이 검을 휘둘러 어둠의 악령들을 몰아내거나
아니면 치욕스럽게 몰락해야 한다. 신이 얼마나 많은 규칙들을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규칙들이 인간의 게으름 때문에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해법은 당신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 게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당신은 당신과 신 사이에 놓여 있는 상상의 한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상상의 한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76)
한 번은 리포터가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성공을 위한 공식이 존재할까요?”
“있고말고요.”
“어떤 겁니까?” 리포터는
다시 물었다.
“성공을 A라고 한다면
공식은 A=X+Y+Z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X는 일이고, Y는 유희입니다.”
“그럼 Z는 뭐죠?”
아인슈타인은 웃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79)
아인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가장 많았던 사고실험으로는 1935년에 발표된 ‘EPR역설’이라는
것이 있다(EPR은 아인슈타인의 이니셜과 프린스턴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두 과학자 포돌스키와 로젠의
이니셜로 이루어진 명칭이다). 자신의 가설을 입증할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진 순수한 사고실험인
EPR역설을 통해서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던 양자물리학의 모순을 완전히 입증했노라고
주장했다(사실 양자물리학이 생겨나게 된 데에는 아인슈타인의 공헌이 적지 않다).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을 통해서 강력하게 옹호했던 양자역학은 우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물리적 법칙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친구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EPR역설은 양자역학의 이런 근본적인 모순을 밝혀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보어와 그의 추종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이상적 사고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맹비난했다.
(111)
지난 수천 년 동안 수학은 가지가 아무렇게나 뻗어나와 마구 뒤엉켜버린 나무처럼 무질서하게 성장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아랍, 인도 등지에서의 발견과 그 뒤를 이은 근대 서양에서의 진보
등으로 수학은 수천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로 바뀌었다.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수학은 인류가 가진 가장 객관적이며 가장 광범위하게 발전된 학문적 도구인데도(실제로
매일같이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학을 사용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 무한한 다양성 내부에 혹시
썩은 씨앗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곰팡이가 피어 그 계산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115)
괴델이 1931년에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수학자에 불과했다. <수학원리와 그와 연관된 형식적으로 결정불가능한 명제들에 대하여 I>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그의 논문은 힐베르트의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거기서 괴델은 ‘수학원리’에 참이면서 동시에
증명이 불가능한 ‘결정 불가능’한 진술들이 존재할 수 있을
분만 아니라, 이런 결정 불가능성이 필연적으로 모든 공리체계는 물론 현존하는 그리고 앞으로 존재하게
될 모든 종류의 수학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모든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것과는 반대로 수학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없이 ‘불완전’했다.
수학이 세계를 총체적으로 표현한다거나 철학의 모순들로부터 자유롭다는 낭만적인 생각들은 괴델의 간단한 논증을 통해
단칼에 궤멸되었다.
(116)
괴델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학문, 언어, 정신 등 모든 시스템 안에 참인 진술이 존재하지만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항상
증명 불가능한 허점이 발견되고 흰개미처럼 우리의 확신을 모조리 갉아먹는 모순된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보어 계열의 양자이론을 통해서 물리학이 완벽하게 결정론적인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면, 괴델은
수학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확실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괴델 덕택에 진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것이 되었다.
(243)
그러면 악마는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에 사악한 걸까? 이 물음은 조금
더 복잡하다. 악마는 순전히 자족적인 쾌락을 위해서 사방에 독을 뿌리는 걸까? 아니면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일까? 이 점에서 이론들은 서로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악마의 의도가 창조의 계획을 어지럽히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악마의 임무는 혼란을 조장하고, 우주를 혼돈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악마는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엔트로피의 군주다. 그는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악마는 왜 그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죽음에 빠뜨리려고 애쓰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자기가 그의 경쟁자 못지않게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어떤 악령학자들의 생각은 물론 이와 다르다. 사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악하다. 그에게 어떤 동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가 ‘완전히’ 사악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지배자가 되려는
그의 소망에는 어떤 납득할 만한 논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며, 따라서 최후의 심판 때 적어도 그의 오만은
어느 정도 용서가 될 테니까. 반대로 악마가 이유가 없는 맹목적인 사악함을 지녔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이성적이라는
절대적인 공포와 마주치게 된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는 지옥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연도 지배한다고
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물론 첫 번째 이론의 화신, 즉
이류의 악당들이다. 그들은 목적에 따라 행동했고, 스스로
정당성을 확신했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믿음 속에서 눈을 감았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기껏해야 이단자로 단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클링조르는?
(247)
“그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현대 독일 과학의 역사에 정통하지. 그 대표적인 인물들에서부터 발전과정의 부침과 비극까지 모두 알고 있어. 왜냐하면
그가 바로 현대 독일 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니까. 그는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 짓기 힘든 인물로 친구와
적들이 모두 존경할 뿐만 아니라 의심할 바 없는 고귀한 도덕성까지 갖추고 있지. 내 생각에 그는 우리에게
매우 도움이 될 거야. 우리의 판단기분 자체를 바꾸어 놓을걸. 그도
이젠 늙고 허약한 남자에 불과하지만, 난 그가 우리 일에 틀림없이 도움을 줄 거라고 확신해.”
“아인슈타인을 제외하면 교수님의 설명에 부합되는 인물은 단 한 사람밖에
없어요. 막스 플랑크! 그런데 지금 몇 살이나 됐죠? 한 백 살?”
(258)
“그럼 교수님께서는 과학을 종교의 대체물로 보시는 겁니까?”
“신앙심은 회의론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해. 과학적 연구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과학의 사원 입구에 ‘너는
믿어야만 하느니라’라고 써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소. 우리
과학자들은 결코 믿음을 포기할 수 없지. 거듭된 실험의 결과를 놓고 우리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찾는 법칙을
떠올려야 하는 거요. 그리고 가설을 세워 그것이 일정한 형체를 갖도록 만들어야 해.”
(260)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과학이 연구해야 할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것은 또한 과학이 풀어야 할 비밀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말씀인가요?”
“과학의 법칙에만 충실하다면 맞는 말이오. 당신이 이 세계의 어떤 영역을 연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그런 믿음을 통해 그리로 나아갈 수 있지. 물론 그것이 잘못된 걸음이라 거기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과학자들에게 흔하디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야. 무언가 어둠을 밝히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계속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소. 위대한
발견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