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아직 세수도 못 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이해해야 한다.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 양자 역학이다. 이쯤 되면 양자 역학이 궁금해질 법도 한데.

(29)

전자는 크기가 거의 없을 만큼 작기 때문에, 서울시만한 공간 안에 농구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도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다른 모든 물질도 마찬가지다. 재물에 욕심을 갖지 마시라. 모두 비어 있는 것이다.

(31)

결국 원자를 이해하려면 전자의 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무거운 원자핵은 가만히 있고, 전자가 그 주위를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시 서울시만한 원자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부산에서부터 원자를 향해 접근한다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전자다. 농구공 크기의 원자핵은 사대문 안까지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전자가 당신을 싫어해서 밀어낸다면 원자핵을 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 원자들끼리 만났을 때에도 먼저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의 전자다. 전자들끼리는 서로 미워한다. 밀어낸다는 말이다. 따라서 원자핵끼리 만나기는 힘들다. 나중에 보겠지만, 언제나 서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함께하기도 하다. 원자가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존재할 수 없다.

(37)

이것으로 양자 역학의 핵심은 다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를 분들이 대부분이리라. 그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물리학자들도 처음에 어리둥절해 했으니까. 사실 이제부터 질문이 터져 나와야 정상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확률이라는 개념이 나와야 하는 것일까? 전자가 정말로 2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가나? 하나의 전자가 둘로 쪼개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인가? 모두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앞으로 하나하나 짚어 볼 것이다. 일단 여기서는 전자라 확률의 파동이라는 것이 원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만 이야기하자. 이 모든 것은 원자를 이해하려고 시작한 것이니까.

(65)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경험뿐이다. 과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관되게 들려주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으니, 바로 경험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우주는 팽창하며, 생명은 진화한다. 빛의 이중성은 경험과 직관의 빈약한 근거를 다시 한번 보여 준다.

(67)

정상 상태는 불연속적이다. 쉽게 말해서 전자의 원운동 궤도가 공간적으로 띄엄띄엄하게 존재한다. 양자 역학이 원래 띄엄띄엄함의 학문이라 그 자체는 그래 놀랍지 않다. 문제는 띄엄띄엄한 궤도들 사이를 전자가 이동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오직 정상 상태의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웃한 두 궤도를 넘나들 때, 그 사이에 공간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야. 태양계로 예를 들자면 지구 궤도에 있던 전자가 사라져서 화성 궤도에 짠 하고 나타나야 한다. 이런 운동은 기존의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역시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양자 도약이라 부른다. 빛의 입자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가?

(78-79)

플랑크가 씨 뿌리고 아인슈타인이 키운 이중성은 드 브로이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슈뢰딩거가 수확한다. 콤프턴 실험으로 빛의 입자성이라는 미친 생각이 갑자기 상식이 된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이제 루이 드 브로이(192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재)는 거침없이 질문한다. “전자는 입자인가?” 슈뢰딩거는 아예 전자의 파동 방정식을 만든다. 보어가 발견한 정상 상태와 양자 도약의 광맥은 하이젠베르크가 개발한다. 하이젠베르크가 만든 행렬 역학은 정상 상태를 구하는 수학적 방법을 제공한다. 그 이론에는 양자 도약이 자동 내장되어 있다.

(81)

파동이면서 입자다. 하나의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전자가 도약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표현이 등장한다.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도 직관과 맞지 않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반면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입자가 파동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자 도약 하는 전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 역학은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106)

왜 빛으로 측정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빛이 아닌 다른 물체, 예를 들어 전자를 이용해서 전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도 있다. 전자 현미경이 그 예다. 이 경우도 똑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전자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운동량과 파장이 드 브로이의 공식으로 기술된다. 전자 현미경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전자의 파장을 작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전자의 운동량이 커야 한다. 운동량이 큰 전자는 충돌 시 큰 충격을 주어 측정당하는 전자의 운동량을 크게 교란한다.

(108)

보어는 더 나아가 문제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있다고 지적했다. 상보적인 두 개념은 일상에서는 분리되어 보인다. 우리의 언어는 입자파동과 같이 이들을 분리된 상태로 기술할 뿐이다. 문제는 전자가 이중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어휘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 부재의 문제다.

(114)

과학의 역사는 인간의 상식이나 경험이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보여 준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지구상의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보잘것없는 암석 덩어리 같은 것이며, 우주는 138억 년 전 폭발하며 생겨났다. 일견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사실이 옳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 과학이다. 과학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상식조차 의심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의 핵심은 합리적 의심이다. 허나 의심 전문가인 과학자들조차 상식의 덫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직관 때문이다.

(129)

만약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 수 없다면 확률을 피할 수 없다. 상태를 결정하기 위해 뉴턴 역학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모두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던질 때 우리는 확률을 생각한다. 각 면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 이것은 우리가 주사위의 초기 상태를 정확히 모른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사위의 초기 상태를 왜 모른단 말인가? 주사위는 손바닥 위의 어느 위치에 정지해 있다. 따라서 웬만한 물리학자라면 주사위의 궤적을 계산하여 어느 면이 나올지 예측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사위 던지기는 완벽히 무작위적인 과정은 아니다. 잼 바른 빵은 항상 잼 바른 면으로 떨어진다는 머피의 법칙은 빵의 낙하 운동으로부터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것은 뉴턴의 고전 역학이 결정론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결국 주사위 던지를 확률로 다루는 것은 우리가 게으르거나 물리를 잘 몰라서다.

(130)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것이 왜 불가능할까? 고양이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고양이를 보아야 한다. 본다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번 겪은 일이지만, 양자 역학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당연한 것을 수도 없이 다시 되짚어야 한다. 본다는 것은 빛이 고양이에 충돌해서 튕겨 나와 그 일부가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양자 역학적으로 빛은 입자이기도 하다. 빛에 맞으면 충격을 받는다는 말이다. 당신이나 고양이같이 큰 물체는 빛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전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전자같이 작은 입자는 빛에 맞으면 휘청거린다.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싶으면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야 하는데, 파장이 짧을수록 전자가 받는 충격량이 커진다. 충격은 운동량을 변화시킨다.

(161)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확인한다. 이른 아침이라면 형광등부터 켜야 한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화학 섬유 옷을 입고, 유전 공학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며 거리로 나선다. GPS를 이용한 네비게이터가 길을 안내한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집어 내밀자 점원이 레이저로 바코드를 읽는다. 자성을 이용한 신용 카드로 결제를 하고, 동작 감지 자동문을 지나 회사로 들어선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여 세계 각지에서 온 이메일을 훑어본다. 이렇게 또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양자 역학이 없다면 이 글의 내용 중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170)                                                                                                    

인간과 같은 다세포 생물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반응성이 강한 산소를 이용하여 이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을 호흡이라 한다. 원자력이 위험하지만 덕분에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산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 단세포 생물의 단계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분자들은 대개 혈액에 섞여 그냥 이동되지만, 산소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에 실어 이동시킨다. 위험물 특별 호송이라 할 만하다. 실수로 산소가 빠져나가 몸속을 돌아다니면 치명적인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산소와 헤모글로빈의 결합, 산소의 에너지 대사 과정 모두가 양자 역학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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