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프리마 스콜라 알라 에스트’, 이
문장은 직역하자면 “첫 수업은 희다”인데, 그것은 곧 “첫 수업은 휴강이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은 로마 시대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 첫날 하는 말입니다. 이 시대의 학교는 로마 후기까지 공립 기관도, 의무교육 기관도 아니었습니다. 로마인의 교육은 중세의 교육보다 더 단순해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언어와 문화 차원에서 가르쳤어요.
(39-40)
오늘날 거의 모든 유럽어의 모언어로 알고 라틴어는 세계 언어 분포상 인도 유럽어계에 속합니다. 이 사실을 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의 눈이 다시 한 번 휘둥그레집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틴어가 직접적으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등에 영향을 주었고, 영어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라틴어가 아시아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인도 유럽어계에 속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학생들이 놀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실제로 라틴어는 인도
유럽어의 영향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그리스어, 켈트어, 고대 게르만어와 더불어 서구어를 형성하는 이탈리아어군의 영향을 받은 언어에 해당합니다.
(55)
“언어는 공부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언어의 습득적, 역사적 성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는 언어의 목적 때문입니다. 언어는
그 자체의 학습이 목적이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서의 목적이 강합니다. 앞의 강의에서 말했듯이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틀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 점을 자꾸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85)
그런데 ‘하비투스’라는 말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이 명사를 살펴보면 ‘습관’이라는 뜻 외에도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바치고 난 뒤 오전 노동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기 전 낮 기도를 바쳤어요. 점심식사 뒤에는 잠깐
휴식을 취한 뒤에 오후 노동을 하고 저녁식사 전에 저녁 기도를 바쳤고요. 저녁식사가 끝나면 잠깐의 휴식
뒤에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끝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일괄적으로 잠자리에
들었고요. 그래서 수도자들이 입는 옷 ‘하비투스’에서 매일 똑 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한다는 의미에서 ‘습관’이라는 뜻이 파생하게 된 덥니다.
(87)
그렇습니다. 삶이 그런 것인데도 사람들은 종종 착각해요. 안정적인 삶,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요. 이것은 착각입니다. “지금 사정이 여러모로
안 좋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이 일을 혹은 공부를 할 수 없어. 나중에 좀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본격적으로 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은 잘 오지 않아요. 아니,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왔다고 하더라도 이미 필요가 없거나
늦을지도 모르고요.
(117)
이럴 때면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매듭을 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가보는 연습을 해보라고요. 공부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이렇게 어려운 라틴어를 공부하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과연 몇 퍼센트의 사람이 라틴어를 배우겠습니까? 그걸 생각해보고 자부심을 가지세요”라고 말해줍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140-141)
말이 나온 김에 로마의 인사법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로마인은 인사할 때 상대가
한 명이면 ‘살베(Salve)!’ 또는 ‘아베(Ave)!’라고 인사하고 여러 명일 경우는 ‘살베테(Salvete)’라고 인사했습니다. 그 뜻은 모두 ‘안녕하세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아베 마리아(Ave Maria)’라는 것도 로마인의 인사법으로 ‘안녕하세요,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로마인은
편지를 쓸 때 사용한 것처럼 헤어질 때에는 한 명에게는 ‘발레(Vale)’,
여러 명에게는 ‘발레테(Valete)’라고 인사했고, 그 뜻은 모두 ‘안녕히 계세요’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유럽어 가운데 로마인이 사용한 이 인사말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스페인어입니다. 스페인어로 ‘발레(vale)’는
‘좋아, 됐어!’라는
의미로 일상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데 ‘안녕’이라는 작별인사의
의미도 있습니다.
(144)
“그대가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로마인의 편지 인사말을 통해 생각해봅니다. 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는 그들의 인사가 문득 마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내가 잘 살 수 있다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요즘 우리의 삶이 위태롭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사실 우리의 사고가 어느새 그렇게 변해버린 건 사람들의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낼 여유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157)
Si vis vitam, para mortem.
시 비스 비탐, 파라 모르템.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161)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카르페(carpe)’란
말은 ‘카르포(carpo, 덩굴이나 과실을 따다, 추수하다)’라는 동사의 명령형입니다. 과실을 수확하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고되고 힘들지만, 한 해 동안
땀을 흘린 농부에게 추수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일 겁니다. 그래서 ‘카르포’ 동사에 ‘즐기다, 누리다’란 의미가 더해져 ‘카르페
디엠(carpe diem)’, 곧 ‘오늘 하루를 즐겨라’라는 말이 됐습니다. 시의 문맥상 ‘내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숱한 의역을 거쳐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으로 정착되었는데, 주목할 건 이 말이 쾌락주의 사조의 주요
표제어가 되었다는 겁니다.
(266)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아우구스티누스의 <페르시아 사람들을 위한 요한 서간 강해>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사막에서의 경험을 통해 어떤 비난을
받든 중단했던 공부를 마치기로 결심했고 다시 로마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죽을 뻔했던 타클라마칸
사막 한복판에서 제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율리우스 캐사르의
이 말이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라.(Alea iacta est)!”
(274)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딘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제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282)
Letum nom omnia finit.
레툼 논 옴니아 피니트.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툼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