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긴 소설이었다.

나는 소설을 항상 즐겼고, 인기있는 작품, 화제작, 베스트셀럴, 고런 애들에게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작품도 제목부터 눈에 띄었지만 도서관에서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관심만 갖고 있다가 빌려야할 책이 있는 먼 도서관에 이 책까지 있게 되어 너무나 반갑게 찾아 읽게 되었다. ... 그런데 인문학 도서관은 정말 너무 가기가 힘이 든다. 멀고 교통도 너무 안 좋다. 왜 도서관을 저기 구석에 지었지? 교통도 안 좋고, 주차도 힘든 곳을...

암튼, 깜짝 놀랐다. 두께가 ... 벽돌책인줄...

그에 비해 물론 술술 읽히기는 하지만 양이 많아 재미는 미루어 두더라도 읽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기호 님의 소설은 뭘 읽었나 찾아보니 누가 봐도 연애소설’... 하나 읽었네. 암튼 소설은 우선 재미지다.

문체가... 천명관 님 고래’, ‘나의 아저씨 브루스 리같은 느낌.. 뭔가 해학적이고 골계미가 있는 듯.

 

이시봉은 강아지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주변에 반려동물에 무한한 사랑과 기쁨을 느끼며 사는 이들이 많지만 한번도 키운 적도 없고,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보기만 할 뿐 선뜻 다가가지도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으니 강아지에 대한 사랑과 애잔함이 넘쳐 흘렀다. 나 또한 이러니 전국의 반려인들은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

 

줄거리- 한량 같은 백수 생활을 하는 이시습과 함께 사는 강아지 '이시봉'은 비록 몰골은 꼬질꼬질하지만, 존재 자체로 명랑함을 잃지 않는 비숑 프리제다. 어느 날 비숑 전문 브리딩 업체 '앙시앙 하우스'가 나타나 이시봉이 유럽 왕실의 고귀한 혈통인 '비숑의 왕'이라며 거액의 보상금과 호화로운 케어를 제안한다.

주인공 이시습은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방황하는 20대 청년으로, 자신의 삶조차 버거워 이시봉을 더 나은 환경으로 보내주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이시봉의 이름에 얽힌 한국의 노동 현장 비극과 시습의 아버지, 그리고 동료였던 '인간 이시봉'의 사연을 조명한다. 또한, 앙시앙 하우스의 정채민 대표는 프랑스 유학 시절 겪었던 엇갈린 사랑과 욕망의 역사를 들려주며 비숑 프리제의 혈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00년대 스페인 왕정 시대의 마누엘 고도이 총리와 그가 키우던 개들의 잔혹한 역사까지 거침없이 확장된다.

이 방대한 서사는 결국 인간이 자신의 목적이나 감정을 투사하기 위해 동물의 삶을 어떻게 이용하고 희생시켜 왔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하지만 시습은 이 모든 사연 끝에, 반려견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혈통이나 시설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진실한 관계임을 깨닫는다. 소설은 이시봉을 되찾으려는 시습의 여정을 통해, 투쟁 없는 사랑의 가치와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굉장히 두꺼웠지만 흥미진진하고, 비숑 프리제의 말도 안 되는 긴 역사서술도 교차되면서 흥미롭고, 얽혀있는 인간들의 사연들도 그야말로 다채롭고 이채롭던 이야기 마당이 여러개 펼쳐지는 신명나는 소설이다. 즐거운 독서엿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 이어준 다섯 가지 기적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지개 곶의 찻집은 한 때 내 인생 책이었다.

그 작가 님 책. 이후 몇 개는 실망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의 애 작가로 저장해 두었기에 이 책도 망설임 없이 펼쳤다. 작가 님은 최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작가, 책 얘기는 그냥 좋아하고 힐링소설 매니아... 이 책을 좋아할 요소가 많지.

 

책을 읽기 시작하고 왜... 이제야 읽었는지... 눈물이 났다. 따뜻하고 맑아지는 눈물이다. 오랜만이다. 이 따뜻하고 마음이 예뻐질 것 같은 순간은 오랜만이라 그냥 감사하고 행복했다.

 

다섯 인물의 삶이 교차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빚어낸 이 작품의 중심에는 또한 사요나라, 도그마라는 책이 있는데, 이 소설 속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등장인물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이자 아픈 마음을 감싸 안는 포근한 담요가 되어, 다섯 주인공의 삶을 조금씩 엮어나간다.

첫 번째 주인공은 편집자 쓰야마 나오. 과거에 스즈모토라는 작가의 데뷔작을 읽고 위로받은 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제 동일한 저자의 신작을 세상에 내놓으려 분투한다. 두 번째 주인공은 작가 스즈모토 마사미. 데뷔작의 성공 이후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잃어버린 그는 딸 마이를 위해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세 번째는 북디자이너 아오야마 데쓰야.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는 아내와 함께 마지막 작품을 디자인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네 번째는 서점 직원 시라카와 코코미. 어린 시절부터 가슴속 오래된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그녀는 한 청년을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독자 가라타 가즈나리.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던 그가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 펼쳐진다.

 

이들 다섯 주인공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는 기적의 문장은 이렇다. “내 인생은 비를 피하는 곳이 아니야. 폭우 속으로 뛰어들어 흠뻑 젖는 것을 즐기면서 마음껏 노는 곳이야. 너도 사실은 그러고 싶은 거잖아?” 이야기 말미에 도달한 독자는 이들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하며, 각자의 폭우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사요나라, 도그마라는 제목에는 자신을 옭아매던 오래된 신념들과 작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비를 피하지 않고 폭우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처럼, 우리도 때로는 단단하게 굳어버린 생각들과 이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상 책 속에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사요나라, 도그마책이 이어준 다섯 가지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각자의 도그마와 작별 인사를 건네는 모리사와 아키오의 이 소설이 곧 사요나라, 도그마일 수 있는 것이다.

 

... 책을 덮고 리뷰를 쓰는 순간.. 다시 책이 보고 싶다.

너무 착하고 예쁜 사람들이 서로 교차도 하고 이야기 속에서 주연과 조연으로 나오면서 펼쳐지는 5개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공감이 되어서 읽은 내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책이 기적일 수 있다.

나에게도 여러번 기적으로 찾아왔던 고마운 책들이 있다.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만들고 책을 나누는 모든 이들에게 기적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를...

 

일상 속에 기적같은 순간이 때때로 찾아들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지개란 말은 언제 들어도 아련하고 따뜻하고.. 웬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단어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은 읽고 나서 보니 큰 선물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자그마하고 가벼워서 참 좋았고.. 이야기들이... 몇 개 이어지는데...에쓰코님과 절름발이 개가 있는 무지개 그림이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말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아껴읽고 싶었던 예쁜 책이다.

 

1장 봄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

암으로 아내와 엄마를 잃게 된 아빠와 어린 딸이 장례식 이후에 온 연휴에 무지개를 찾아 여행을 떠나다 우연히 조그만 바닷가 찻집에 들어간다. 그 찻집엔 인상좋은 할머니 에쓰코와 절름발이 개가 있고 어느 곳보다 맛있는 커피와 치유의 음악이 있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아픔을 나누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것이 이 책을 여는 첫 이야기 꼭지였는데... 너무 .... 좋았다. ~안 하다고 할까? 책 속에 나왔던 네 살배기 어린 딸 노조미가 즐겨 읽는다는 사랑의 우치미밋치라는 그림책을 나도 하나 갖고 싶었다. 행복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아기토끼는 엄마토끼에게 말한데..“행복의 두근두근, 여기 있어.” 그러면....엄마토끼는 울 아기의 두근두근이 그대로 전달되어 엄마도 같이 행복해졌어.”라고 한다고 ... 읽는 나도 그들의 두근두근이 전달되어서 그냥... 행복했졌거든.

 

책속에서....

아빠.” 노조미는 오늘 보였던 미소 중 최고로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담고 있었다. “. 드디어 찾았네.” 노조미는 의자에서 쿵 하고 내려와, 주문을 받으러 온 초로의 여성 뒤를 빙 돌아 내 옆에 섰다. 환히 웃으며 아빠하고 부른다. 그리고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행복의 두근두근, 여기 있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로의 여성에게 눈짓으로 잠깐 실례합니다라는 뜻을 전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웅크리고 앉다. 그리고 노조미의 가슴에 귀를 댔다. 두근 두근 두근 ……. 자그마한 심장이 깡충깡충 뛰며 경쾌한 음색을 연주하고 있었다. “노조미의 두근두근이 그대로 전달되어 아빠도 같이 행복해졌어.”

 

2장 여름 걸즈 온 더 비치” (Girls On The Beach)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대학 4학년 이마이즈미 겐. 오토바이 여행 중, 도움을 받기 위해 들른 찻집에서 에쓰코와 그녀의 조카 고지 그리고 화가지망생 미도리를 통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 고심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 드디어 꿈을 찾고, 싱그러운 연인까지 만나게 된다.

노래: 비치 보이즈(Beach Boys) 서핑 사파리(Surfin'Safari), 걸즈 온 더 비치(Girls On The Beach)

 

3장 가을 더 프레이어” (The Prayer)

버블 붕괴와 리먼 브라더스 쇼크 때문에 빚도 지고 살 길이 막막한 칼갈이가 까페를 털러 온다. '프레이어'를 들으며 기도하는 사람같다는 에쓰코 할머니의 말과 침낭의 포근함으로 그 하룻밤이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남겨진 봉투 하나와 다시 꿈꾸는 희망.

 

4장 겨울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

15년간 에쓰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에쓰코를 사랑하기에 그녀에게 은근히 청혼을 하는 의미로 틀어주기를 희망했던 <러브 미 텐더>.

그리고 그가 에쓰코에게 남기는 선물. 천체 망원경과 달 나라의 작은 땅.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사랑은 한 사람은 곶에서, 한 사람은 배 위에서 떠나 보내게 되지만, 그것이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가슴이 아픈 사랑이야기 인 것이다.

 

5장 봄 땡큐 포 더 뮤직” (Thank You For The Music)

밴드를 만들고 싶은 에쓰코 할머니의 조카 고지에게 '땡큐 포 더 뮤직'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어준 매개인 음악에 대한 감사다. 아름답다.

 

6장 여름 곶과 바람과 파도소리

에쓰코가 왜 이곳에 정착하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남편이 남긴 마지막 작품인 저녁놀에 물든 바다와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에쓰코 할머니의 꿈은 "품고 있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된(p.111)" 무지개였다. 그림과 같은 그런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병으로 남편을 일찍 잃고 남편이 그린 그림 속의 풍경을 보고 싶어 까페를 차린다. 몸을 다쳐 피투성이가 된 하얀 개 고타로와 한 가족이 되고, 고지의 가족들이 2층에 살며 손녀들을 보는 기쁨이 무엇인지도 안다. 비록 다니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독사의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워하지만, 무지개 빛을 보고 싶은 마음이 퇴색될까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것을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쯤 너무나 감동적으로 잘 읽었던 이 책 덕분에 모리사와 아키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많은 책을 찾아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항상 이 책은 내 맘 속에 힐링소설 분야 최고 또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새로운 버전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마당에 뒤늦게 리뷰를 남겨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몬드로 만난 손원평 작가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책도 얇고 이야기들도 짧아서 금방 읽힌다.

 

표제인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이번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문장이다. 그것은 온전한 사과도 미숙한 변명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낙오와 상처에 가담했으면서도 시스템의 탓으로 그 책임을 교묘히 떠넘기는 태도가 만연해진 시대를 상징하는 말에 가깝다. 작가는 이 문장을 정면에 내세워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어떤 말로 설득하며 살아가는지를, 그 말들이 서로의 하루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매몰찬 느낌, 서늘한 인물들, 아니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비정한 현실, 그런 상황들이 좀 서글퍼진다.

 

당신의 손끝 .... 문화센터에서 일하는 미술 강사 효원과 부유한 수강생 주영의 관계를 그린다. 효원은 자신을 열렬히 신뢰하고 응원하는 주영 덕분에 폐강 직전의 강좌를 지키고, ‘자신만의 화실이라는 꿈에 다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친밀하다고 믿었던 둘의 관계는 계약과 소비의 논리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효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 생각한 것이 실은 허약한 이해관계였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나의 손끝만 보고 있는 화실의 주인 할아버지에게 절망을 안겨 드려 아득하지만 다시 그런일 없는 것처럼 일자리를 구하는 그녀. 


<태양 아래 반짝이는>‘는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가난과 실패, 빚과 곰팡이 슨 옥탑방의 기억까지도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새하얗게 표백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투숙객의 삶을 흉내 내고 그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듯한 착각에 빠질수록 그가 맞닥뜨리는 것은 계급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더 깊은 상처와 모욕뿐이다.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착각이었다.


<피아노>‘혜심은 공부방을 정리하며 한때 낭만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를 처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제자 준용과 실랑이를 벌이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마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본다. 몇 달 째 등록을 하지 않는 아이, 오지마라고 해도 오는 아이, 뭔가 매몰찬 선생님이 좀 섭섭했다. 결론은 나쁘지 않지만.


<그 아이> 영하의 새벽, 명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인물의 사투를 통해 사치품의 가치 앞에서 무력하게 압도되는 인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아이는 명품~!


<익명의 마왕으로부터> 늘 패배하도록 예정된 마왕의 목소리를 빌려 정해진 역할과 운명에 저항하려는 욕망을 기묘한 유머와 함께 펼쳐 보인다. 진짜 짧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유령의 집> 창업의 꿈이 폐허가 된 자리에서 두 형제의 비극을 그린다. 예정된 패배와 이미 도래한 붕괴를 보여주며 세계가 인물에게 남기는 상처를 환기한다.


<모자이크> 인물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집된 아름다움만을 SNS에 올리며 선택받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가지각색의 파편을 서툴게 이어 붙인 모자이크된 정체성으로 귀결될 뿐이다. 작가는 이 허상의 실체를 냉정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해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는 이들의 시린 민낯을 또렷하게 조망한다. 편집된 모습만 보여지는 인물... 그 사람의 정체성은 이제 본인도 모르겠지?


<조망> 높은 곳에 올라선 수하가 폭우 끝에 침몰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통해 파국의 풍경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서늘한 해방감이 스미는 역설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 큰 비로 모든 걸 잃은 뒤 이상한 안정을 느낀 수하축제날 폭우 속의 도시 침몰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이 좀 무서웠다. 그 도시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사람들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통행증은 마스크>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시기를 배경으로, 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취급하며 손쉽게 심판하는 사회를 경멸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수습기자의 하루를 그린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딱 코로나 시국이었다. 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딸과 깍 사이> 사무실의 기계적이고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사소한 균열이 불러오는 파문을 그리며, 효율의 논리 아래 가려져 있던 인간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작품은 가장 따뜻한 편이다. 나는 소설집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와닿았고 좋았다.

 

10편의 작품들은 각각 개성이 넘치고 읽기가 편하다.

작년 안녕이라고 그랬어’(김애란)소설집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과 유사하다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 때 그 작품의 해설에서 작가님을 사회학자라고 표현하셨다. 이 책을 읽으니 손원평 작가 님이야말로 정말 사회학자 같다. 공교롭게도 작가 소개를 보니 정말 작가 님이 사회학과와 철학과를 전공하셨다고 되어 있네. 지금 현실을 반영한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극적이지 않고 과하지도 않고 비루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담백하게 담아내신 것 같다. 그래서 읽기에 좋은 글, 생각 거리도 있는 좋은 글이다.

 

선명하게 담아낸 동시대의 감각

단숨에 읽히되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지는 열편의 이야기

출판사에서 책 소개 문구로 내세운 내용이 너무 적절하다. (일 잘하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매 떡볶이 레시피 위픽
윤자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픽시리즈 읽기~!

... 위픽으로 보면 3번째 나온 정말 초기작이다.

이 시리즈의 제법 많은 편을 보았지만, 정말 대부분 너무 재미있고 의미있다. 다채로운 작가들의 재기 발랄한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짧은 시간 읽어내며 얻게 되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그야말로 최고다!

 

기대하며 펼친 이번 책..

아직도 떡볶이를 좋아하니?’ ...여행스케치의 그런 노래가 있었다. 친구가 예전에 그랬다. 나중에 이 노래 가사가 들리면 니 생각이 날 것 같아. 그렇다. 아직도 떡볶이 좋아한다. 하긴 대한민국 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떡볶이가 아니겠나.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지. 위픽도 좋아하고 떡볶이도 좋아하고 레시피까지 좋아하는 내가 안 좋아할 수 없는 이야기

 

기대를 하고 펼쳤는데, ~~말 재미있었다.

뭐야 이렇게 매력적이고 입에 딱딱 붙으면서 유쾌한고 맛있는 이야기라니.

 

<책 소개글> ‘잠시 들어갔다 와라. 그럼 이 조직은 네 것이야.’ 교도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고급 차를 타고 고급 옷을 입고 부하들의 인사를 받는 삶이 기다릴 줄 알았으나, 16년이라는 세월에 조직은 사라져버렸다. 돌아갈 곳을 잃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40년 전통 할매 떡볶이에서 일을 돕게 된 기철은 매일 같은 시간에 떡볶이집을 찾아오는 중학생 상혁을 마주하게 된다. 상혁은 멍하니 백열등만 쳐다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리거나 이따금 높은음으로 뜻 모를 소리를 반복하는 이상한 놈이었지만 멍청하게 짓지도 않은 죄목으로 16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와 키오스크도 쓸 줄 모르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이 말하는 이상한 놈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상혁은 자폐 스펙트럼은 맞지만 아픈 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알고 퍼즐 조각을 놀랍도록 잘 맞추는 아이였다.

이상하지 않은데 이상한 놈이 되어버린 둘은 기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쓰러진 기철의 어머니를 상혁이 도와준 일을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상혁이 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오지 않고 어머니는 다시 한번 가슴을 쥐고 쓰러지는데, 기철은 상혁과 40년 전통의 할매 떡볶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탈락한 기철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된 상혁은 서로를 구하며 따뜻한 우정을 확인한다.

 

이상한 놈 전과자 안기철, 이상한 아이 상혁이, 이상하게 정스럽고 따뜻한 할매 떡볶이 할머니...

서로 이상한 사람이 만나 이상하게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내는 이 가게에 나도 가고 싶다.

최고의 떡볶이 레시피 외우기 장인 상혁이 덕분에 살아나는 할매 떡볶이...나도 너무 먹고 싶다.

 

그 옛날 그렇게 동네마다 곳곳마다 있던 떡볶이 가게는 모두 사라지고 정말 추억과 이야기만 남아 아쉬운 요즘, 전통의 맛을 지켜가는 이런 곳이 그립다. 잘 없어서 더 그립다.

 

중간중간 나오는 레시피도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아니다. 떡볶이는 사 먹어야 맛있다. 그것도 길에서...

따뜻하고 웃음 가득 담으며 읽은 글,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차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소설이다.

이만 총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