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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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지개란 말은 언제 들어도 아련하고 따뜻하고.. 웬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단어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은 읽고 나서 보니 큰 선물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자그마하고 가벼워서 참 좋았고.. 이야기들이... 몇 개 이어지는데...에쓰코님과 절름발이 개가 있는 무지개 그림이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말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아껴읽고 싶었던 예쁜 책이다.

 

1장 봄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

암으로 아내와 엄마를 잃게 된 아빠와 어린 딸이 장례식 이후에 온 연휴에 무지개를 찾아 여행을 떠나다 우연히 조그만 바닷가 찻집에 들어간다. 그 찻집엔 인상좋은 할머니 에쓰코와 절름발이 개가 있고 어느 곳보다 맛있는 커피와 치유의 음악이 있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아픔을 나누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것이 이 책을 여는 첫 이야기 꼭지였는데... 너무 .... 좋았다. ~안 하다고 할까? 책 속에 나왔던 네 살배기 어린 딸 노조미가 즐겨 읽는다는 사랑의 우치미밋치라는 그림책을 나도 하나 갖고 싶었다. 행복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아기토끼는 엄마토끼에게 말한데..“행복의 두근두근, 여기 있어.” 그러면....엄마토끼는 울 아기의 두근두근이 그대로 전달되어 엄마도 같이 행복해졌어.”라고 한다고 ... 읽는 나도 그들의 두근두근이 전달되어서 그냥... 행복했졌거든.

 

책속에서....

아빠.” 노조미는 오늘 보였던 미소 중 최고로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담고 있었다. “. 드디어 찾았네.” 노조미는 의자에서 쿵 하고 내려와, 주문을 받으러 온 초로의 여성 뒤를 빙 돌아 내 옆에 섰다. 환히 웃으며 아빠하고 부른다. 그리고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행복의 두근두근, 여기 있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로의 여성에게 눈짓으로 잠깐 실례합니다라는 뜻을 전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웅크리고 앉다. 그리고 노조미의 가슴에 귀를 댔다. 두근 두근 두근 ……. 자그마한 심장이 깡충깡충 뛰며 경쾌한 음색을 연주하고 있었다. “노조미의 두근두근이 그대로 전달되어 아빠도 같이 행복해졌어.”

 

2장 여름 걸즈 온 더 비치” (Girls On The Beach)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대학 4학년 이마이즈미 겐. 오토바이 여행 중, 도움을 받기 위해 들른 찻집에서 에쓰코와 그녀의 조카 고지 그리고 화가지망생 미도리를 통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에 대해 고심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 드디어 꿈을 찾고, 싱그러운 연인까지 만나게 된다.

노래: 비치 보이즈(Beach Boys) 서핑 사파리(Surfin'Safari), 걸즈 온 더 비치(Girls On The Beach)

 

3장 가을 더 프레이어” (The Prayer)

버블 붕괴와 리먼 브라더스 쇼크 때문에 빚도 지고 살 길이 막막한 칼갈이가 까페를 털러 온다. '프레이어'를 들으며 기도하는 사람같다는 에쓰코 할머니의 말과 침낭의 포근함으로 그 하룻밤이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남겨진 봉투 하나와 다시 꿈꾸는 희망.

 

4장 겨울 러브 미 텐더” (Love Me Tender)

15년간 에쓰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에쓰코를 사랑하기에 그녀에게 은근히 청혼을 하는 의미로 틀어주기를 희망했던 <러브 미 텐더>.

그리고 그가 에쓰코에게 남기는 선물. 천체 망원경과 달 나라의 작은 땅.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사랑은 한 사람은 곶에서, 한 사람은 배 위에서 떠나 보내게 되지만, 그것이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가슴이 아픈 사랑이야기 인 것이다.

 

5장 봄 땡큐 포 더 뮤직” (Thank You For The Music)

밴드를 만들고 싶은 에쓰코 할머니의 조카 고지에게 '땡큐 포 더 뮤직'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어준 매개인 음악에 대한 감사다. 아름답다.

 

6장 여름 곶과 바람과 파도소리

에쓰코가 왜 이곳에 정착하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의 남편이 남긴 마지막 작품인 저녁놀에 물든 바다와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에쓰코 할머니의 꿈은 "품고 있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된(p.111)" 무지개였다. 그림과 같은 그런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병으로 남편을 일찍 잃고 남편이 그린 그림 속의 풍경을 보고 싶어 까페를 차린다. 몸을 다쳐 피투성이가 된 하얀 개 고타로와 한 가족이 되고, 고지의 가족들이 2층에 살며 손녀들을 보는 기쁨이 무엇인지도 안다. 비록 다니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독사의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워하지만, 무지개 빛을 보고 싶은 마음이 퇴색될까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것을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쯤 너무나 감동적으로 잘 읽었던 이 책 덕분에 모리사와 아키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많은 책을 찾아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항상 이 책은 내 맘 속에 힐링소설 분야 최고 또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새로운 버전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마당에 뒤늦게 리뷰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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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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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로 만난 손원평 작가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책도 얇고 이야기들도 짧아서 금방 읽힌다.

 

표제인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이번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문장이다. 그것은 온전한 사과도 미숙한 변명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낙오와 상처에 가담했으면서도 시스템의 탓으로 그 책임을 교묘히 떠넘기는 태도가 만연해진 시대를 상징하는 말에 가깝다. 작가는 이 문장을 정면에 내세워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어떤 말로 설득하며 살아가는지를, 그 말들이 서로의 하루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매몰찬 느낌, 서늘한 인물들, 아니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비정한 현실, 그런 상황들이 좀 서글퍼진다.

 

당신의 손끝 .... 문화센터에서 일하는 미술 강사 효원과 부유한 수강생 주영의 관계를 그린다. 효원은 자신을 열렬히 신뢰하고 응원하는 주영 덕분에 폐강 직전의 강좌를 지키고, ‘자신만의 화실이라는 꿈에 다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친밀하다고 믿었던 둘의 관계는 계약과 소비의 논리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효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 생각한 것이 실은 허약한 이해관계였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나의 손끝만 보고 있는 화실의 주인 할아버지에게 절망을 안겨 드려 아득하지만 다시 그런일 없는 것처럼 일자리를 구하는 그녀. 


<태양 아래 반짝이는>‘는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가난과 실패, 빚과 곰팡이 슨 옥탑방의 기억까지도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새하얗게 표백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투숙객의 삶을 흉내 내고 그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듯한 착각에 빠질수록 그가 맞닥뜨리는 것은 계급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더 깊은 상처와 모욕뿐이다.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착각이었다.


<피아노>‘혜심은 공부방을 정리하며 한때 낭만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를 처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제자 준용과 실랑이를 벌이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마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본다. 몇 달 째 등록을 하지 않는 아이, 오지마라고 해도 오는 아이, 뭔가 매몰찬 선생님이 좀 섭섭했다. 결론은 나쁘지 않지만.


<그 아이> 영하의 새벽, 명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인물의 사투를 통해 사치품의 가치 앞에서 무력하게 압도되는 인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아이는 명품~!


<익명의 마왕으로부터> 늘 패배하도록 예정된 마왕의 목소리를 빌려 정해진 역할과 운명에 저항하려는 욕망을 기묘한 유머와 함께 펼쳐 보인다. 진짜 짧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유령의 집> 창업의 꿈이 폐허가 된 자리에서 두 형제의 비극을 그린다. 예정된 패배와 이미 도래한 붕괴를 보여주며 세계가 인물에게 남기는 상처를 환기한다.


<모자이크> 인물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집된 아름다움만을 SNS에 올리며 선택받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가지각색의 파편을 서툴게 이어 붙인 모자이크된 정체성으로 귀결될 뿐이다. 작가는 이 허상의 실체를 냉정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해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는 이들의 시린 민낯을 또렷하게 조망한다. 편집된 모습만 보여지는 인물... 그 사람의 정체성은 이제 본인도 모르겠지?


<조망> 높은 곳에 올라선 수하가 폭우 끝에 침몰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통해 파국의 풍경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서늘한 해방감이 스미는 역설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 큰 비로 모든 걸 잃은 뒤 이상한 안정을 느낀 수하축제날 폭우 속의 도시 침몰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이 좀 무서웠다. 그 도시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사람들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통행증은 마스크>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시기를 배경으로, 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취급하며 손쉽게 심판하는 사회를 경멸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수습기자의 하루를 그린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딱 코로나 시국이었다. 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딸과 깍 사이> 사무실의 기계적이고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사소한 균열이 불러오는 파문을 그리며, 효율의 논리 아래 가려져 있던 인간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작품은 가장 따뜻한 편이다. 나는 소설집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와닿았고 좋았다.

 

10편의 작품들은 각각 개성이 넘치고 읽기가 편하다.

작년 안녕이라고 그랬어’(김애란)소설집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과 유사하다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 때 그 작품의 해설에서 작가님을 사회학자라고 표현하셨다. 이 책을 읽으니 손원평 작가 님이야말로 정말 사회학자 같다. 공교롭게도 작가 소개를 보니 정말 작가 님이 사회학과와 철학과를 전공하셨다고 되어 있네. 지금 현실을 반영한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극적이지 않고 과하지도 않고 비루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담백하게 담아내신 것 같다. 그래서 읽기에 좋은 글, 생각 거리도 있는 좋은 글이다.

 

선명하게 담아낸 동시대의 감각

단숨에 읽히되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지는 열편의 이야기

출판사에서 책 소개 문구로 내세운 내용이 너무 적절하다. (일 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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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떡볶이 레시피 위픽
윤자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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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픽시리즈 읽기~!

... 위픽으로 보면 3번째 나온 정말 초기작이다.

이 시리즈의 제법 많은 편을 보았지만, 정말 대부분 너무 재미있고 의미있다. 다채로운 작가들의 재기 발랄한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짧은 시간 읽어내며 얻게 되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그야말로 최고다!

 

기대하며 펼친 이번 책..

아직도 떡볶이를 좋아하니?’ ...여행스케치의 그런 노래가 있었다. 친구가 예전에 그랬다. 나중에 이 노래 가사가 들리면 니 생각이 날 것 같아. 그렇다. 아직도 떡볶이 좋아한다. 하긴 대한민국 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떡볶이가 아니겠나.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지. 위픽도 좋아하고 떡볶이도 좋아하고 레시피까지 좋아하는 내가 안 좋아할 수 없는 이야기

 

기대를 하고 펼쳤는데, ~~말 재미있었다.

뭐야 이렇게 매력적이고 입에 딱딱 붙으면서 유쾌한고 맛있는 이야기라니.

 

<책 소개글> ‘잠시 들어갔다 와라. 그럼 이 조직은 네 것이야.’ 교도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고급 차를 타고 고급 옷을 입고 부하들의 인사를 받는 삶이 기다릴 줄 알았으나, 16년이라는 세월에 조직은 사라져버렸다. 돌아갈 곳을 잃고 어머니가 운영하는 40년 전통 할매 떡볶이에서 일을 돕게 된 기철은 매일 같은 시간에 떡볶이집을 찾아오는 중학생 상혁을 마주하게 된다. 상혁은 멍하니 백열등만 쳐다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리거나 이따금 높은음으로 뜻 모를 소리를 반복하는 이상한 놈이었지만 멍청하게 짓지도 않은 죄목으로 16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와 키오스크도 쓸 줄 모르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이 말하는 이상한 놈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상혁은 자폐 스펙트럼은 맞지만 아픈 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알고 퍼즐 조각을 놀랍도록 잘 맞추는 아이였다.

이상하지 않은데 이상한 놈이 되어버린 둘은 기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쓰러진 기철의 어머니를 상혁이 도와준 일을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상혁이 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오지 않고 어머니는 다시 한번 가슴을 쥐고 쓰러지는데, 기철은 상혁과 40년 전통의 할매 떡볶이를 지켜낼 수 있을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탈락한 기철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된 상혁은 서로를 구하며 따뜻한 우정을 확인한다.

 

이상한 놈 전과자 안기철, 이상한 아이 상혁이, 이상하게 정스럽고 따뜻한 할매 떡볶이 할머니...

서로 이상한 사람이 만나 이상하게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내는 이 가게에 나도 가고 싶다.

최고의 떡볶이 레시피 외우기 장인 상혁이 덕분에 살아나는 할매 떡볶이...나도 너무 먹고 싶다.

 

그 옛날 그렇게 동네마다 곳곳마다 있던 떡볶이 가게는 모두 사라지고 정말 추억과 이야기만 남아 아쉬운 요즘, 전통의 맛을 지켜가는 이런 곳이 그립다. 잘 없어서 더 그립다.

 

중간중간 나오는 레시피도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아니다. 떡볶이는 사 먹어야 맛있다. 그것도 길에서...

따뜻하고 웃음 가득 담으며 읽은 글,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차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소설이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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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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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우와 링과>를 보고 문장이 너무 좋아서 작가 님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여름은 고작 계절>은 너무 인기 많은 책이어서 어렵게 책을 구해서 겨우 읽게 되었는데, 읽기까지가 쉽지 않았기에 받자마자 바로 펼쳐 들었고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린 책이다.

 

... 글들이 너무 좋다. 밑줄 긋다가 모든 책에 밑줄을 그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인덱스 붙이다 너무 빼곡해버렸다는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글들.

 

<출판사 리뷰>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환상이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지던 2000년대, 열 살 제니는 부모님의 결정으로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이민하게 된다. 백인 아이들은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모질기만 하고, 제니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깎고 마모시켜 적응하고 성장해나간다. 필사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친구들 사이를 맴돌며 가까스로 손바닥만 한 자기 자리를 만들어낸 어느 여름, 한국에서 이민 온 한나가 나타난다.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길 요구하는 한나. 제니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한나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한심하게 여긴다.

한나의 등장으로 제니는 자신이 몹시 미워했던 백인 아이들과 점점 비슷해져간다.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한나와 가까워지는 것은 곧 무리에서 다시 한번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춤을 추듯 백인의 몸짓과 말을 흉내 내며 한나를 고립시키려 하지만, 한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너처럼 영어 잘하고 싶다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다며 제니에게 다가온다.

냉소와 순수, 동경과 질투가 뒤엉킨 채 시간이 흐르고, 제니와 한나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는 동안 찾아온 세 번째 여름.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백인 여자아이들이 초대한 호숫가 모임에 가게 된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단 한 사람만이 호수를 빠져나온다.

여름은 고작 계절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서러움을 사랑과 연대의 감각”, 우정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고, 무리 지어 다니기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손을 거침없이 놓아버릴 수도 있었던 사춘기는 제니가 살던 미국의 작은 소도시와 닮았다. 고작 계절일 뿐인 여름에서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 간직했던 한나처럼, “터무니없는 기쁨과 괴물 같은 고통을 함께 안겨주던 지나가버린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려본다. 우리를 파괴했던 외로움과, 그럼에도 우리를 파멸에서 구해낸 사랑과 우정을 다시 한번 불러낸다. 그리고 여전히 햇빛 한 점 없는 동굴을 헤매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자. 한국인과 미국인,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하자. 선택지를 벗어나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를 지우고 천국도 지옥도 없는 곳으로 함께 가자. 이것이 제니가 긴 반성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는 말이다.

 

마음에 맞는 좋은 구절이 많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너무 조마조마해서, 걱정이 되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작부터 자신을 빌런으로 얘기하고 반성문이라고 했기에 결론이 정해진 것 같아서 ...

끝을 알고 봤지만 그래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하며 보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으니까...

 

이 작가 님은 나보다 한참 어린데...

나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전학조차 가본 적이 없는데..

제니의 이야기를 그녀의 속마음을 왜 이렇게 하나같이 다 알 것 같을까?

청소년기를 지난지가 얼마인데, 아이였던 시절이 까마득한데도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했다.

다 알 것 같은 마음...

이게 바로 작가 님의 힘이겠지.

 

너무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

친구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왜 사람들은 누군가를 꼭 괴롭힐까?

그런 못된 사람들은 왜 어디에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곳이 있고,

아닌걸 알면서도 외면하면 안 되었지만 나 또한 외면받기 싫어서 외면했던 많은 순간들...

씩씩하게, 살기 위해서 영어를 통째로 외우고 노력하는 제니,

축구부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자신을 다져가는 아이들

너무 반짝이고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거기에 끼고 싶은 마음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서 진심과 다르게 틱틱거리던 모습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마음

나쁜 줄 알면서도 똑같이 따라 하고 있는 괴물같은 모습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다시는 되풀이되는 순간들

이렇게 고민하고 아프지만 내가 나에게만 소중하다는 진실

터무니없는 기쁨과 괴물 같은 고통을 함께 주었던 그때의 친구

 

마음이 아리고 짠했지만 공감하고 아파하고 응원하면서 보게 된 이야기..

 

참 좋은 소설이었다.

많이 흔들고 많은 생각을 남기고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어린 시절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난다.

다들 잘 살고 있기를... 오늘 니 생각이 났어. 너의 안온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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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리커버, 양장)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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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북클럽]

 

혼모노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클럽 창비 미션으로 급하게 책을 읽었다.

급하게 읽기도 했고, 바쁜 시즌이기도 했고 내가 정신이 없어서인지 처음에 내용 파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리뷰를 당장 쓰지 못 했다. 이후 작가 님의 다른 작품들이 너무 좋았고, 이 책 또한 오래도록 베스트셀러로 남으면서 이 책은 나에게 열패감을 안긴다. 누구에게 말을 못 했지만 나는 썩 좋지 않았거든.

 

그러나 이번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되어서 1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 하나하나 읽어 나가는데 ... 이게 이런 이야기였어? , 생각할 거리가 굉장히 많은데... 다시 읽어보니 독서모임 책으로 참 좋은 이야기들이다. 뭔가 결론이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굉장히 다양한 소재, 다양한 전개는 시의성도 적절하고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7편의 단편... 이제 보니 하나도 버릴게 없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화자 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김곤을 좋아하는 소위 ”(12) 팬들의 모임 길티 클럽의 회원이다. 김곤은 과거에 저지른 어느 사건으로 대중에게 윤리적 질타를 받고 있지만, 길티 클럽의 회원들은 그 사건을 덮어놓고 쉬쉬하는 것이 진짜팬의 역할이라 여긴다. ‘역시 진짜가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사건을 부정하지만, 정작 김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자 자기 안의 무언가 터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훗날 방문한 치앙마이의 한 동물원에서 호랑이 만지기체험을 하던 중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이처럼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팬덤 문화를 통해 길티 플레저라 불리는 이율배반적 욕망을 핍진하게 다뤄내는 한편 우리가 손쉽게 ’(진짜)으로 여기는 것들의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나도 한 때 좋아했던 유명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누구에게 말은 못 하고 안타깝고 괜히 부끄럽고 속상했던 기억이 들고 했다.

 

스무드는 세계적인 미술가 제프의 에이전트이자 재미 한인 3세인 듀이가 난생처음 한국을 방문해 겪게 된 하루 동안의 일을 한편의 블랙코미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한국을 뱀술이나 개고기를 파는 상점이 즐비한 우범지대”(69)로 여길 만큼 무지했던, ‘진짜미국인보다도 더 미국인 같”(69)은 그는 제프의 작품 전시를 위해 찾은 한국에서 길을 헤매다 우연히 성조기와 타이극기를 든”(84) 이들의 행렬 속으로 섞여들어간다. 축제”(86)의 현장에서 따스하고 온정이 넘치는 노인들을 마주하며 그는 한국에 유대와 소속감을 느끼게 되지만, 조건 없는 온정을 나누던 노인이 광화문 광장을 일컬어 이승만 광장이라 부르는 순간 불안도 결핍도 매끈하게 깎여나”(82)가 구()의 형태를 띤 제프의 미술품처럼 소설을 즐기고 있던 우리는 마음 한편에서부터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태극기 부대, 뭔가 갑갑하면서 쉽게 이야기를 풀기 힘든 세대 간의 갈등을 이렇게 풀어내는 작가 님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표제작 혼모노의 화자인 30년 차 박수무당 문수는 어느 날 신령으로 모시고 있던 장수할멈이 자신에게서 떠나갔음을 깨닫는다. 때마침 앞집으로 이사 온 스무살 남짓의 신애기할멈이 넌 너무 늙었다”(145)더라며 자신에게 왔노라 말하고, 이는 자신의 신앙이 진짜라고 믿고 있던 문수에게 믿음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다가온다. 문수는 가짜무당으로나마 살아가려 진짜인 척 분투하지만, 모형 작두를 구하는 와중에도 선무당이나 하는”(122) ‘오늘의 운세란 만큼은 맡지 않으려 하고,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120)며 조소하는 신애기를 염오하면서도 그 집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마음을 쓰는 그는 진짜가 무엇이고, 그것은 정말 가짜와 분리된 자리에 따로 존재하는지”(해설, 양경언) 자꾸만 자문하게 된다.

무당, 신이 떠난 30년 된 무당은 이제 무당이 아닌가?... ‘장수할멈나쁜데... 색다른 소재와 멋드러진 전개가 표제작이 될만큼 뛰어난 작품인 것 같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남영동 대공분실을 바탕으로 그토록 잔악무도한 건물을 설계한 이는 누구인가를 일종의 추적 다큐멘터리처럼 다뤄낸 팩션이다. 읽는데 좀 인간이 무서웠다. 합리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잔악무도한 설계, 주어진 일이라면 거기에서 가치 판단 없이 효율만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맞을까, 과연 인간적인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다.

 

우호적 감정지역 재생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인물들이 아이디얼한”(211) 뜻을 품고 귀촌한 이들과 만나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게 되는 , 수경, 알렉스... 뭔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을까. 씁쓸한 뒷맛을 안긴다.

 

잉태기임신한 자식의 원정 출산을 앞두고 며느리와 시부가 적나라한 욕망의 다툼을 벌이는 세태소설로 이런 며느리와 시부 관계는 처음 봐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더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인물들, 그래도 그들의 부가 많이 부럽던데.

 

메탈고등학교 시절 메탈 밴드를 함께했던 세 친구가 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애틋하게 풀어냈는데...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의 매니아인 내게는 애틋하고 정감있게 여겨져서 이 작품도 참 좋았다.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모두 진짜가짜의 경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혼모노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번에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제목이다. ‘혼모노란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는 단어 本物’(ほんもの)의 음차 표기로, 한때 인터넷상에서 진상이나 오타쿠를 조롱하는 신조어로 사용되며 널리 알려졌다. 작가가 한 인터뷰를 통해 본디 긍정적인 뜻을 지닌 이 단어가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는 것처럼 거짓일지라도 다수가 믿으면 진실이 되어버리는 지금의 시대상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시 읽으며 새롭게 의미를 되새겨보았던 독서. 성해나 작가님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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