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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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로 만난 손원평 작가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책도 얇고 이야기들도 짧아서 금방 읽힌다.

 

표제인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이번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문장이다. 그것은 온전한 사과도 미숙한 변명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낙오와 상처에 가담했으면서도 시스템의 탓으로 그 책임을 교묘히 떠넘기는 태도가 만연해진 시대를 상징하는 말에 가깝다. 작가는 이 문장을 정면에 내세워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어떤 말로 설득하며 살아가는지를, 그 말들이 서로의 하루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매몰찬 느낌, 서늘한 인물들, 아니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비정한 현실, 그런 상황들이 좀 서글퍼진다.

 

당신의 손끝 .... 문화센터에서 일하는 미술 강사 효원과 부유한 수강생 주영의 관계를 그린다. 효원은 자신을 열렬히 신뢰하고 응원하는 주영 덕분에 폐강 직전의 강좌를 지키고, ‘자신만의 화실이라는 꿈에 다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친밀하다고 믿었던 둘의 관계는 계약과 소비의 논리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효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라 생각한 것이 실은 허약한 이해관계였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나의 손끝만 보고 있는 화실의 주인 할아버지에게 절망을 안겨 드려 아득하지만 다시 그런일 없는 것처럼 일자리를 구하는 그녀. 


<태양 아래 반짝이는>‘는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가난과 실패, 빚과 곰팡이 슨 옥탑방의 기억까지도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 새하얗게 표백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투숙객의 삶을 흉내 내고 그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듯한 착각에 빠질수록 그가 맞닥뜨리는 것은 계급의 경계가 만들어내는 더 깊은 상처와 모욕뿐이다.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착각이었다.


<피아노>‘혜심은 공부방을 정리하며 한때 낭만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를 처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제자 준용과 실랑이를 벌이며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마음의 가치를 다시 돌아본다. 몇 달 째 등록을 하지 않는 아이, 오지마라고 해도 오는 아이, 뭔가 매몰찬 선생님이 좀 섭섭했다. 결론은 나쁘지 않지만.


<그 아이> 영하의 새벽, 명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에 나선 인물의 사투를 통해 사치품의 가치 앞에서 무력하게 압도되는 인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아이는 명품~!


<익명의 마왕으로부터> 늘 패배하도록 예정된 마왕의 목소리를 빌려 정해진 역할과 운명에 저항하려는 욕망을 기묘한 유머와 함께 펼쳐 보인다. 진짜 짧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유령의 집> 창업의 꿈이 폐허가 된 자리에서 두 형제의 비극을 그린다. 예정된 패배와 이미 도래한 붕괴를 보여주며 세계가 인물에게 남기는 상처를 환기한다.


<모자이크> 인물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편집된 아름다움만을 SNS에 올리며 선택받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가지각색의 파편을 서툴게 이어 붙인 모자이크된 정체성으로 귀결될 뿐이다. 작가는 이 허상의 실체를 냉정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해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는 이들의 시린 민낯을 또렷하게 조망한다. 편집된 모습만 보여지는 인물... 그 사람의 정체성은 이제 본인도 모르겠지?


<조망> 높은 곳에 올라선 수하가 폭우 끝에 침몰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통해 파국의 풍경 앞에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서늘한 해방감이 스미는 역설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 큰 비로 모든 걸 잃은 뒤 이상한 안정을 느낀 수하축제날 폭우 속의 도시 침몰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이 좀 무서웠다. 그 도시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사람들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통행증은 마스크>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시기를 배경으로, 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취급하며 손쉽게 심판하는 사회를 경멸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수습기자의 하루를 그린다.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딱 코로나 시국이었다. 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딸과 깍 사이> 사무실의 기계적이고 무심한 일상 속에서 사소한 균열이 불러오는 파문을 그리며, 효율의 논리 아래 가려져 있던 인간적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작품은 가장 따뜻한 편이다. 나는 소설집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와닿았고 좋았다.

 

10편의 작품들은 각각 개성이 넘치고 읽기가 편하다.

작년 안녕이라고 그랬어’(김애란)소설집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느꼈던 느낌과 유사하다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 때 그 작품의 해설에서 작가님을 사회학자라고 표현하셨다. 이 책을 읽으니 손원평 작가 님이야말로 정말 사회학자 같다. 공교롭게도 작가 소개를 보니 정말 작가 님이 사회학과와 철학과를 전공하셨다고 되어 있네. 지금 현실을 반영한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극적이지 않고 과하지도 않고 비루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담백하게 담아내신 것 같다. 그래서 읽기에 좋은 글, 생각 거리도 있는 좋은 글이다.

 

선명하게 담아낸 동시대의 감각

단숨에 읽히되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지는 열편의 이야기

출판사에서 책 소개 문구로 내세운 내용이 너무 적절하다. (일 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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