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물욕 먼슬리에세이 1
신예희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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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지음

 

제목을 봤을 때부터... 이거 내 이야기같아서... 아주 끌렸다.

 

베스트셀러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따와 제목을 지었는지 싶어.... 일부러 이거 보려고 그 책을 미리 읽었다. (당시에는 아주 금방 쉽게 읽으면서도 좋은 평을 안 썼었는데... 그 뒤 다른 우리나라 소설 책들을 읽고 다시 그 책을 생각해보니... 그만큼 술술 읽히게 잘 쓴 작품도 드물었다. 다시 높은 평을 해주고 싶다(, 내가 뭐라고... 하등 상관 없겠지만 나 나름 구력높은 소설 덕후로서 글을 못 써도 엄청 많이 읽었기에 유느님이 탑백귀라고 하듯이 나도 나름 소설 잼난건 잘 본다고 말하면 안 될까?)....작가님 훌륭한 솜씨로 다양한 작품 많이 써주세요.)

 

책은 아주 작고 얇다. 표지도 상콤하다. 읽기에 부담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다.

 

쇼핑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지만... 쇼핑중독자의 변명이 아니었고 아주 현명한 소비자이면서 배울 점이 많은 야무진 쇼퍼 님의 사이다 같은 쇼핑에 대한 이유, 나름의 철학, 그리고 똑똑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그래... 내가 쇼핑한 이유...괜히 가지고 있던 죄책감에 면죄부를 주는 멋진 말... (그래..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어!.. 막힌 속이 뻥 뚫리는 이야기들...)

 

p.11~ 13 (프롤로그... 오늘도 돈지랄의 역사를 쓴다.)

 

이 단어는 오랫동안 나쁜 의미로 쓰였다. 착한 소비, 현명한 소비의 반대말로 통했다. 온 세상이 내가 내 돈 쓰는 것에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무지하게 애쓴다. 헛돈 쓰지 마라, 낭비하지 마라, 니 한 몸 편하자고 쓸데없는 거 사지 마라, 그거 다 돈지랄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좋은 않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듣다 보면 정말 그런가 싶고, 슬슬 믿게 된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도 굳이 입을 열고 소리 내어 더 크게 말해야겠다. 돈지랄이 얼마나 재밌는데요, 얼마나 달콤한데요, 얼마나 신나는데요. 나는 그렇게 돈지랄이란 단어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돈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쓴다는 거다. 그건 남에게나 나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은 싫지만,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내 몸뚱이의 쾌적함과 내 마음의 충족감. 이 두 가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나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영영 모를 수도 있다.

......

그렇게 헛돈을 쓴 덕분에, 낭비한 덕분에 진짜를 찾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고, 좋은 게 있으면 권하고 싶다. 함께 깔깔 웃으며 돈지랄의 역사를 계속 쓰고 싶다.

 

--------첫 프로롤그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내 속을 뻥 뚫어줬다.

아끼면 똥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랄, 시간을 아끼고 돈을 쓴다. 결국은, 우선순위, 절대라는 말은 절대....... 등 주옥같은 명언들이 쏟아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저렇게 써놓은 걸 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스트... 나도 그거에 대한 동경이 있고 신박한 정리를 보면서 반성의 시간들을 보내다가 괜히 찔려 혼자 이래저래 정리도 해보지만 나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고 (명품, 보석, 보물.. 돈 되는 거는 눈 씻고 봐도 없는데... 특히 이사갈 때 이삿짐 센터에서 난색을 하는 무거운 책...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작품은 사줘야.. 출판업계도 돌아가는 건데...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 딱 있는 것도 아니니.. 빨리 읽고 싶어서 사는 건데... 그리고 돈 안되는 컵과 그릇.. 왜 이리 좋은 걸까? 그리고 옷.... 맨날 입는 스타일만 입는데.. 살이 쪘다 빠졌다... 은근히 기본 옷들이 유행 탄다.... 아까워 버리지도 못 하고... 되도록 많이 남주고 버리고 하는데.. 요즘 왜 이리 옷이 싼거야.. 패션업계도 밥 먹고 사셔야지.... 그리고 나는 사는게 참 좋고 손이 크고 남에게 나눠주는 기쁨이 넘 크다...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좋은 거 많이 사서 가족, 친구 나눠 주는게 그렇게 나쁜 거냐고..) 정리를 하다가도 또 새 것들을 사줘야 경제가 돌아가야지 하는.. 애국심에...나는 아주 맥시멀리스트 자체다. 근데.. 그 미니멀리스트의 이야기도 아주 깔끔하게 있다.

 

p.101~

곤도 마리에 여사의 쇼핑몰... 엄청 비싸다네...

하긴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돈이 꽤 있어야 한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 사는 데다, 어차피 집도 너무 작고 좁아 물건을 놔둘 데가 없어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는 농담도 있다. 그건 그저, 머니가 너무 미니멀하게 있어서 그런 거고(눈물)...

 

사실 미니멀리스트란 좋다는 걸 두루두루 써본 다음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딱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다. 돈도 있어야 하고 여유도 있어야 한다.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라는게 다이소 꿀템만 착착 골라 구비해놓는 인생은 아니니까.

........ 화장품이든 음식이든 옷이든 공연이든 여행이든 무엇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안다면, 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지 안다면, 과거의 내가 그만큼 돈을 쓰고 똥도 밟으면서 어렵사리 알아낸 덕분이다.

 

드렁큰 에디터라는 곳에서 한 달에 한 권씩 만나는 먼슬리에세이 시리즈를 기획하여 나온 첫 주자인 이 책은 그 중에서 시즌1 [욕망]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물욕을 다룬 책이다.

나름 남보다는 책을 좀 읽는 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나마도 소설이고 또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읽어오다 보니 모르는 작가들이 너무 많고 좋은 글도 참 많이 놓치고 사는 것 같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걸 느꼈다. 이 작가 님이 왜 이 시리즈의 첫 작가로 뽑히셨는지 알 수 있을 만큼 글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책도 여러 권 쓰셨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 여행에 관한 글을 쓰셨네...내가 넘 낯을 가리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글을 읽어왔구나.. 반성했다. 덕분에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찾아보며 살아야지... 물론, 그러면 또 쇼핑에 헛돈은 쓰다가 자기에게 맞는 상품을 찾아내는 것 같은 과정을 거쳐가겠지만.. 그러면서 나에게 딱 맞는 상품을 만나듯 맞는 작가를 몇 명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해볼만한 투자아니겠는가?)

에필로그... 욕망이 나를 움직인다.

마지막까지 공감가는 말들이 많았다.

 

(70년대 중반 둘째 딸, 욕구, 욕망, 욕심이 나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내 몸뚱이와 내 멘탈의 쾌적함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도 내일도 좋은 것을 욕심내며, 기쁘게 지르겠습니다.)

 

암튼, 행복한 독서였고, 명쾌한 작가 님 글.. 답답하면 찾아봐야지.

그리고 즐겁고 행복하게 나도 기쁘게 지르며 경제를 살리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이 단어는 오랫동안 나쁜 의미로 쓰였다. 착한 소비, 현명한 소비의 반대말로 통했다. 온 세상이 내가 내 돈 쓰는 것에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무지하게 애쓴다. 헛돈 쓰지 마라, 낭비하지 마라, 니 한 몸 편하자고 쓸데없는 거 사지 마라, 그거 다 돈지랄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좋은 않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듣다 보면 정말 그런가 싶고, 슬슬 믿게 된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도 굳이 입을 열고 소리 내어 더 크게 말해야겠다. 돈지랄이 얼마나 재밌는데요, 얼마나 달콤한데요, 얼마나 신나는데요. 나는 그렇게 돈지랄이란 단어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돈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쓴다는 거다. 그건 남에게나 나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은 싫지만,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내 몸뚱이의 쾌적함과 내 마음의 충족감. 이 두 가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나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영영 모를 수도 있다.

......

그렇게 헛돈을 쓴 덕분에, 낭비한 덕분에 진짜를 찾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싶고, 좋은 게 있으면 권하고 싶다. 함께 깔깔 웃으며 돈지랄의 역사를 계속 쓰고 싶다.
- P11

곤도 마리에 여사의 쇼핑몰... 엄청 비싸다네...

하긴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돈이 꽤 있어야 한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 사는 데다, 어차피 집도 너무 작고 좁아 물건을 놔둘 데가 없어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는 농담도 있다. 그건 그저, 머니가 너무 미니멀하게 있어서 그런 거고(눈물)...



사실 미니멀리스트란 좋다는 걸 두루두루 써본 다음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딱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다. 돈도 있어야 하고 여유도 있어야 한다.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라는게 다이소 꿀템만 착착 골라 구비해놓는 인생은 아니니까.

........ 화장품이든 음식이든 옷이든 공연이든 여행이든 무엇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안다면, 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지 안다면, 과거의 내가 그만큼 돈을 쓰고 똥도 밟으면서 어렵사리 알아낸 덕분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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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솜에게 반하면 - 제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6
허진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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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솜에게 반하면

 

허진희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대상

 

청소년 문학... 나 좋아해. 우선 읽기가 편하고... 애들 이야기는 다 좋더라고.

우울한 작품들을 본 뒤라 뭔가 생기발랄한 청춘물을 읽고 싶었고 그래서 펼친 책... 결론... 정말 잘 했다. 역시... 작품이 재미있어야지.

발랄하고 유쾌하고 나름 교훈도 있었던 따뜻한 학원물, 성장물, 나름의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참 귀엽고 예쁜 책이다.

 

등장 인물들도 다 귀엽다.

 

1 애들... 2학기 뭔가 예사롭지 않은 전학생 독고솜이 전학온다.

탐정 서율무... 주변 아이들을 주의깊게 살펴 보며 사건들이 생기면 멋지게 해결하는 탐정을 꿈꾸는 따뜻하고 귀여운 명탐정... 독고솜이 난처할 때 먼저 솜이야하고 다가서는 아이

마녀 독고솜... 진짜 마녀 맞다. 저주도 하고, 청소가 취미이며 고양이 띄우기가 특기인 평범하지않은 탐정의 옆자리.

여왕 단태희... 항상 왕의 자리에 군림하는 자신의 위세를 뽐내며 주변 사람을 휘두르는 아이, 천방지축이었던 7살 엄마로부터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독고솜을 아주 싫어함.

정보통 여왕 꼬봉 박선희.... 모르는게 없고 말도 많고 태희의 심복, 오른팔

은영미... 얌전하고 다정하고 사려깊은 아이지만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

사연이 있는 서율무의 아빠와 고모, 함께 사는 외할머니와 엄마.. 등 가족으로부터 듬뿍 사랑받고 사는 귀염둥이 율무...

 

암튼 여기에는 등장인물이 아주 많지는 않고 적당히 있는데 나름 다 캐릭터가 확실하다.

이야기는 명료했고 전개는 시원하며 넘 즐겁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납득이 가고.... 암튼 나쁜 사람들은 왜 부모가 될까? 부모 자격증이 있으면 좋으련만... 하긴 어디 부모 뿐이랴...... 어찌 하면 좋을까?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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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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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집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정말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정말 충격적으로 읽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그 작가는 젊은 작가인데 정말 요즘 스타일의 글이 아니고 좀 예전 느낌의 글을 쓴다. 엄청 한자한자 정성스럽게... 감각적이고 발랄하고 통통 튀는 감성적인 요즘의 글들이 아닌 정말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려서 생각하게 하고 많은 여운이 남는... 그런 글을 쓰는 특별한 작가였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많이 궁금했다. 바로 읽어볼 수도 있었지만 작년에 사둔 책이 아직 책장에 꽂혀 있었고.... 나름 아껴두었다 읽었다.

.... 역시 글은 정말 잘 쓰는 것 같다. 어떤 작품이든지 허투루 쓰지 않고 정말 되새기고 생각해보고 감정을 쑤~욱 건드리는 것 같은....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좋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좋은 문구들이 많아서 적어놓고 싶고.. 다시금 새기고픈 부분들이 참 많았지만.... 이 책 전체에 흐르는 십대 이십대...작가가 지나온 미성년의 시간이 스며 있다는 이 글들 어린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 한량없는 슬픔과 외로움, 스쳐지나가는 우정과 사랑, 상실의 감각, 관계망 속 미세한 균열, 여성주의, 영원하지 못 하는 감정의 불안정성.... 암튼 이런 이야기들의 모음이라서 그런지 .... 좋아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이었지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고 물론, 비슷한 작품만 모은 소설집이겠지만 계속 비슷한 자조랄까, 자아비판이랄까, 후회랄까, 미련이랄까, 상실한 뒤의 공허.... 등이 전반적으로 있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다음 작품은 다를까? 아무리 글을 잘 쓰셔도 내 정서랑은 안 맞아서.... 다음에는 다른 이야기도, 다른 소재도, 다른 분위기의 글을 기대해본다.

 

[그 여름].....이경과 수이.....첫 사랑, 그 기쁨과 불안정성....가슴에 많이 남았다.

[601, 602]... 남존여비.... 나 어릴 때 시절이 그랬더랬다.  그 때 나도 속상한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에도 본 적없는 극단적 효진이네 집..짜증났다.

[지나가는 밤]... 너무 다른 자매 윤희, 주희....그래도 그녀들에게는 둘 뿐..젤 임팩트가 없다.

[모래로 지은 집] 모래, 공무, 나비... 너무나 다른 고교 익명동호회 통신 친구.... 셋의 우정과 사랑... 발랄한 청춘 드라마를 바랬던 건 나의 욕심이었다. 좋은 문구들이 많았고 그냥 그냥 읽어버리기 아까운 글이었다.

[고백] 수사가 된 종은에게 고백한 미주의 이야기... 고교 친구 미주, 주나, 진희.....여기도 세친구... 발랄한 청춘 드라마는 이 작가 님의 글에서 바라지 말자. ... 마음이 아팠다.

[손길]...신혼부부 삼촌 집에서 어린 시절 살았던 혜인... 헤어지고 한참 만에 만나는 숙모....사람들은 왜 이리 염치가 없을까? 너네는 뭐가 그리 잘났냐고.. 따지고 싶고.....숙모랑 혜인은 다시 관계를 형성하면 좋으련만...

[아치디에서] 아일랜드에 무작정 사랑찾아 날아온 백수 브라질 청년 랄도와 한국에서 날아온 말을 돌보는 하민의 아일랜드 시골 아치디에서의 만남,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이야기.... 참 상처입은 사람도 많고 이해 안 되는 상황도 많고... 남자다움의 희생양 랄도와 한국에서 여자라서 딸이라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병원에서 혹사 당하는 그런 일들... 이 또한 짜증이 넘 나더라...

   

암튼, 이 작품의 글귀들은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특히 모래로 지은 집

 

...이경은 자신의 기만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 거짓말이 비겁함이 아니라 세심하고 사려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려라니. 지금의 이경은 생각한다. 배려라니. 그 거짓말은 수이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이경은 몰랐다. p.52

 

왜 병든 사람들이 가족을 만드는 걸까. p.109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고등학생 공무는 천리안 동호회에 그렇게 썼었다. 그 문장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p.121

 

모든 건 다 변한대.” 모래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시간이 가면 다 변한다고. 영원한 건 없다는 말 있잖아. 그런데 너희를 만나고 그 말이 싫어졌어. 왜 변해야 돼? 왜 지나야 돼? 공무 사진처럼 그냥 어느 순간에 그대로 남고 싶기도 했어.”p.131

 

나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 어쩌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알리바이로 아무 짓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p. 156

 

나비는 세상 모든 이름 없는 고양이들의 이름이라고. 그냥 길 가는 고양이에게 나비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들이 좋아서 나비라고 했다고. 화를 내면서, 악을 쓰면서 나비야, 나비야, 하진 않잖아, 라고. 그래서 나도 너를 부를 때 나비야, 나비야, 하고 어쩐지 다정하게 불렀던 것 같아. 넌 이름 없는 고양이들에게서 너를 봤을까.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배가 고파서 쓰레기봉투를 뜯는, 이름 없는 고양이라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하기도 하는 그 길가의 애들에게서 너를 봤을까. p.176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간다.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난 종종 떠올렸어. 영원히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생각했어. 그 꾸준함을 상상했어.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려보면 쓸쓸해지더라.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서. 그래도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 다행이구나.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거지. 영원할 순 없겠지만.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 p.179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므로 마음껏 다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p. 180

 

당시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공포는 그때부터 본격적을 커졌던 것 같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도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p. 181~182

 

 

 

...이경은 자신의 기만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 거짓말이 비겁함이 아니라 세심하고 사려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려라니. 지금의 이경은 생각한다. 배려라니. 그 거짓말은 수이를 위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고 위선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이경은 몰랐다.
- P52

왜 병든 사람들이 가족을 만드는 걸까. - P109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고등학생 공무는 천리안 동호회에 그렇게 썼었다. 그 문장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 P121

"모든 건 다 변한대." 모래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시간이 가면 다 변한다고. 영원한 건 없다는 말 있잖아. 그런데 너희를 만나고 그 말이 싫어졌어. 왜 변해야 돼? 왜 지나야 돼? 공무 사진처럼 그냥 어느 순간에 그대로 남고 싶기도 했어." - P131

나는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 어쩌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알리바이로 아무 짓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 P156

나비는 세상 모든 이름 없는 고양이들의 이름이라고. 그냥 길 가는 고양이에게 나비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들이 좋아서 나비라고 했다고. 화를 내면서, 악을 쓰면서 나비야, 나비야, 하진 않잖아, 라고. 그래서 나도 너를 부를 때 나비야, 나비야, 하고 어쩐지 다정하게 불렀던 것 같아. 넌 이름 없는 고양이들에게서 너를 봤을까.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배가 고파서 쓰레기봉투를 뜯는, 이름 없는 고양이라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하기도 하는 그 길가의 애들에게서 너를 봤을까. - P176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간다.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난 종종 떠올렸어. 영원히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생각했어. 그 꾸준함을 상상했어.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려보면 쓸쓸해지더라.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서. 그래도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 다행이구나.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거지. 영원할 순 없겠지만.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
- P179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므로 마음껏 다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 P180

당시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공포는 그때부터 본격적을 커졌던 것 같다.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도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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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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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몇 년 전, 이금이 작가 님 거기, 내가 가면 안 되요?’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거기 인물의 인생사가 반전의 반전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우리 아픈 역사가 묻혀 있어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야기가 술술 넘어갔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 이 책은 제목부터 끌렸다.

얼마 전 정세랑 님의 시선으로부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거기에도 하와이 이민사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그 때 만났던 따뜻하고 열심히 살던 분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았지만 궁금했었다.

 

이 작가 님을 좋게 기억하고 있고 신간 소식을 자주 훑어 보는데 이 책 소개해 놓은 곳에 보니 하와이 이민사... 사진신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안 볼 수가 없었다.

 

아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만난 책.... 오랜만에 책 보면서 눈물 콧물까지 흘려 가며 출근해서 자야하는데 조금만 더 읽어야지...하다 새벽까지 읽다보니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눈뜨기가 민망하고 뭐 안 좋은 일 있었던 사람같이 푸석해서 출근을 했었다. (이런 때의 마스크란...참 감사한 아이템이다.) ... 너무 재미있고 이상하게 가슴이 벅찬 느낌의 책이었다. 내가 읽었던 예전 전작보다 훨씬 비극성이 덜 하고 그래도 따뜻함이 많이 남는 글이었다.

 

이 책의 시기는... 1917년으로 시작한다. 김해 근처 어진말이라는 한 마을에서 3명의 사진신부가 고베를 거쳐 하와이로 떠나게 된다. 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강버들은 가난한 강훈장 댁의 딸이다. 말이 양반이지 8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더욱 가난하여 어머니 삯바느질을 함께 도와가며 살고 있는 그녀는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남동생 3명이 있다. 한 때 신식학교에도 다닌 적이 있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어려운 집안일만 돕고 있다. 가난한 집에 포와(여기서 하와이)로 시집 가면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모든 것을 덮어놓고 포와로 가길 마음 먹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본 자신의 신랑 서태완이 남자답고 비교적 젊고 지주라니 더욱 끌린다. 버들의 단짝이자 이웃 친구인 홍주는 소장사로 부자가 된 안부자집 터울지는 막내 고명딸이다. 보통학교도 다 졸업했던 그녀는 마산 양반 집안에 시집을 가지만 시집 간 지 두달만에 과부가 되어 돌아온다. 버들이 포와로 시집 간다는 얘기를 들은 홍주와 홍주 엄마가 막무가내로 조선에서 사는 것보다 새로운 기회가 있는 포와로 같이 가게 된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나았기에 둘은 부푼 꿈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리고 한 명 더 송화... 송화는 그 동네 무당 할머니 금화의 손녀 딸이다. 금화에게는 이쁘고 실성한 옥화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아비도 모르고 낳은 딸이 송화이다. 항상 송화를 데리고 다녔던 옥화에게 돌팔매질을 안 한 어진말 아이가 없었단다. ‘사진신부’... 사실 포와에 대한 과대광고가 많았지만 제 살던 곳에서 살지 못 하고 다른 곳에 시집 가려고 마음 먹었던 그녀들의 사정이 없을 수 없었다. 의병의 딸 버들, 과부 홍주, 무당 손녀까지.. 그래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꿈을 안고 일본에서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시절 그녀들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거기서 그녀들은 사진도 찍고( 사진신부 3명의 사진을 보고 작가 님이 이 이야기를 펼칠 생각을 하셨다닌 감회가 나름 새롭다.) 쇼핑도 한다. 그리고 도착한 포와.... 부풀었던 환상과 기대는 무참이 박살 나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 된다. 후회하고 절망하고 원망할 시간도 없이 바쁜 삶이. . 우선 기본적으로 버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른 신부들은 대부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버들은 젊은 편에 속하는 태완을 만난다. 살갑지 않은 태완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절망에 빠지지만 그래도 좋아지는 삶... 다 같이 포와에 사진신부로 왔지만 사는 곳은 멀고 서로 사는 것도 바빠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가까이 살던 송화에게조차 연락하기 쉽지 않은 그녀가 우연히 송화 소식을 듣는데 늙은 할배에게 시집 가 맞고 살던 송화를 구출해 온다. 새롭게 근처에 살면서 송화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던 그녀....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도 나라 잃은 민족, 심지어 해외에서 살고 있던 그들에겐 해준거 없는 조국이지만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지 없는 살림에서 나라를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선다. 그러나 거기서도 노선이 나뉜다. 박용만파와 이승만파...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파인데 버들의 남편 태완은 박용만파... 살던 농장을 옮기고 새롭게 점포를 내면서 남편 태완은 가정을 돌보기보다는 조국 독립에 목숨을 걸고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하는 이는 버들이다. 먹고 사는 일도 힘든데 파도 나누어져 외롭게 살아야하고 친구들끼리도 반목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그럼에도 각자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가운데... 홍주, 버들, 송화가 함께 세탁소를 해나가는 상황이 온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고...

 

처음 제목에서 예상한 것처럼 그녀들의 아이 이야기... (진주)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예상되는 부분이었지만...좋았다.)

 

정말 많이 울었다. 여자들의 삶이 팍팍해서 울었고, 나라 잃은 이들의 설움이 느껴져 울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거 없는 조국을 위해 나서는 그들의 뜨거움에 울었고, 여자는 안 되는게 너무나 많던게 속상해서 울었고, 그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그녀들의 억척스러움에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해서 울었고, 어려운 와중에도 서로를 살게 하는 그녀들의 우정이 빛나고 아름다워서 감동해서도 울었다.

 

중간 중간 적어놓고 싶은 문구가 많았다.

   

버들보다 세 살 많은 오빠는 그해 김해로 나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던 오빠는 길에서 행인들을 괴롭히는 순사에게 대들었다 말발굽에 채어 세상을 떠났다. 버들은 어머니가 오빠를 묻고 온 날 밤 오열하며 홍주 어머니에게 하던 이야기를 기억했다.

"나라님도 몬 이기는 왜놈을 우찌 이긴단 말입니꺼. 애들 아부지 그레 죽고, 내 아들마저 죽인 놈들이지만도 내는 왜놈들 미워도, 원망도 안 할 깁니더. 남은 아들한테 원수 갚으라고도 안 할 기라예."

자식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게 윤 씨 목표였다. 그 뒤 윤 씨는 강 훈장이나 아들의 죽음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 P37

"내는 조선이 웬수다. 힘없는 나라 때민에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은 기라. 포와는 조선이 아이니까네 지킬 나라도 없을 거 아이가. 거 가서는 오로지 느그 생각만 하면서 신랑캉 얼라 놓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그라. 그기 오직 내 소원이다." - P38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무당편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우리 불쌍한 송화도 포와 보내 주이소. 거 가서 여염집 색시 맨키로 남편 사랑 받고 자식 키워 가메 살게 해 주이소. 그레만 해 주면 내 죽어서도 은혜 잊지 않고 부산 아지매 아들네 식구 잘되게 해 달라꼬 빌겄습니더."
- P56

"조선 독립도 중요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다 아입니꺼. 농장 일을 이레 밀쳐 놓고 다니면 우짭니꺼? 곧 얼라도 나올 긴데예. 재성 아주버이 보기 미안타 아입니꺼."

"조국의 독립을 이루는 거이 자식을 위한 일 아니갔어. 내레 나 위해서 이러간? 자식한테 당당한 아바지 될라고 이러는 거이야.
- P202

"내사 마 조선에 돌아갈 맘 없다. 여서 내 딸들 맘껏 핵교 보내고 자유껏 살 기다. 조선한테 쥐뿔 받은 기 없지만서도내가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고향 떠난 우리한테는 조선이 친정인 기라. 친정이 든든해야 남이 깔보지 몬한다 아이가. 일본인 노동자들이 툭하면 파업하는 기 우째서겄노. 힘센 즈그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어가 노동자들이 하올레하고 맞짱 뜰 수 있는 기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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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 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8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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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이 작품을 처음 볼 때부터 작품 소개 표지 때문에 읽었다. 이 작품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현대 미스터리물에서는 익숙한 연쇄살인과 기억상실 등을 시대소설의 틀 안에서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내면 봄은 꼭 찾아온다는 의미를 담아 제목도 [세상의 봄]이라 붙였습니다.”라고는 글을...

 

사실 여기에 아동학대, 유괴, 납치, 연쇄살인, 변태적 성행위, 주술, 호수에 떠오른 백골, 일족의 몰살.... 등이 나와서 처참하고 끔찍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시작할 때 해피엔딩이라는 작가 님의 말씀만 믿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암튼 시종일관 일이 술술 풀려 나가고 그다지 고구마가 없는 전개라 그런지 소재의 잔인성에 비해 읽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 덕분에 알게 된 말도 안 되는 충성심(... 답답해), 일가와 일문들과의 갈등, 가게마와리와 틈새 등의 첩보활동, 가면을 쓰던 유흥가에서의 행태, 복수를 향한 집념, 그래도 일본은 이혼을 할 수 있었고 재혼도 종종 했구나(조선이 그 점에서는 젤 답답했네).. 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기는 표지도 ()에서 등 돌리던 선남 선녀가 ()에서는 마주 보는 구도가 된다는 특이점이 있고.다....(결말의 암시랄까?)..

암튼 여러 가지 사건들이 해결이 되었지만..... 아무리 그래도억울하게 잡혀가고 죽었던 사람들이 되살아 나지는 못 하고, 과거의 상처, 행위들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못 하니까...

앞으로 좋은 일들만 함께 있길~

멋진 작은 나리.. 너무 큰 상처가 있지만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고(그 안에 사랑스러운 고토네... 항상 고마웠어.)

현명하고 똘똘한... 다키... 뭔가 다음편에 미타마쿠리 하는 버전 나올 거 같음.

시로타 의원...유능하고 마음 좋은 의원님.

다지마 한주로... 유쾌하고 믿음직한 무사.

스즈... ‘온도님의 큰 불로 화상을 입어 얼굴과 몸에 흉터가 있지만 아름다운 아이

시게... 여자 말 장수, 잠깐 나왔지만 참 멋졌지.

(암튼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왔지만 인물들이 다 개성있고 매력있고 사랑스럽다. 반면, 악인들은 정말 밉다. 악독하다.... 좀 더 고통받고 죽어야하는데.. 아쉽다.)

 

마지막에 인물관계도가 있어 너무 좋다. 왜 요즘은 작품에 작품 후기나 작가의 말.. (머리말) 등이 없을까.. 조금 아쉽지만 인물관계도로 달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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