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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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몇 년 전, 이금이 작가 님 거기, 내가 가면 안 되요?’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거기 인물의 인생사가 반전의 반전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우리 아픈 역사가 묻혀 있어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야기가 술술 넘어갔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 이 책은 제목부터 끌렸다.

얼마 전 정세랑 님의 시선으로부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거기에도 하와이 이민사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그 때 만났던 따뜻하고 열심히 살던 분들의 이야기가 많지 않았지만 궁금했었다.

 

이 작가 님을 좋게 기억하고 있고 신간 소식을 자주 훑어 보는데 이 책 소개해 놓은 곳에 보니 하와이 이민사... 사진신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안 볼 수가 없었다.

 

아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만난 책.... 오랜만에 책 보면서 눈물 콧물까지 흘려 가며 출근해서 자야하는데 조금만 더 읽어야지...하다 새벽까지 읽다보니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눈뜨기가 민망하고 뭐 안 좋은 일 있었던 사람같이 푸석해서 출근을 했었다. (이런 때의 마스크란...참 감사한 아이템이다.) ... 너무 재미있고 이상하게 가슴이 벅찬 느낌의 책이었다. 내가 읽었던 예전 전작보다 훨씬 비극성이 덜 하고 그래도 따뜻함이 많이 남는 글이었다.

 

이 책의 시기는... 1917년으로 시작한다. 김해 근처 어진말이라는 한 마을에서 3명의 사진신부가 고베를 거쳐 하와이로 떠나게 된다. 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강버들은 가난한 강훈장 댁의 딸이다. 말이 양반이지 8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더욱 가난하여 어머니 삯바느질을 함께 도와가며 살고 있는 그녀는 위로는 오빠, 아래로는 남동생 3명이 있다. 한 때 신식학교에도 다닌 적이 있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어려운 집안일만 돕고 있다. 가난한 집에 포와(여기서 하와이)로 시집 가면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모든 것을 덮어놓고 포와로 가길 마음 먹었다. 게다가 사진으로 본 자신의 신랑 서태완이 남자답고 비교적 젊고 지주라니 더욱 끌린다. 버들의 단짝이자 이웃 친구인 홍주는 소장사로 부자가 된 안부자집 터울지는 막내 고명딸이다. 보통학교도 다 졸업했던 그녀는 마산 양반 집안에 시집을 가지만 시집 간 지 두달만에 과부가 되어 돌아온다. 버들이 포와로 시집 간다는 얘기를 들은 홍주와 홍주 엄마가 막무가내로 조선에서 사는 것보다 새로운 기회가 있는 포와로 같이 가게 된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나았기에 둘은 부푼 꿈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리고 한 명 더 송화... 송화는 그 동네 무당 할머니 금화의 손녀 딸이다. 금화에게는 이쁘고 실성한 옥화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아비도 모르고 낳은 딸이 송화이다. 항상 송화를 데리고 다녔던 옥화에게 돌팔매질을 안 한 어진말 아이가 없었단다. ‘사진신부’... 사실 포와에 대한 과대광고가 많았지만 제 살던 곳에서 살지 못 하고 다른 곳에 시집 가려고 마음 먹었던 그녀들의 사정이 없을 수 없었다. 의병의 딸 버들, 과부 홍주, 무당 손녀까지.. 그래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꿈을 안고 일본에서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시절 그녀들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거기서 그녀들은 사진도 찍고( 사진신부 3명의 사진을 보고 작가 님이 이 이야기를 펼칠 생각을 하셨다닌 감회가 나름 새롭다.) 쇼핑도 한다. 그리고 도착한 포와.... 부풀었던 환상과 기대는 무참이 박살 나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 된다. 후회하고 절망하고 원망할 시간도 없이 바쁜 삶이. . 우선 기본적으로 버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른 신부들은 대부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버들은 젊은 편에 속하는 태완을 만난다. 살갑지 않은 태완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절망에 빠지지만 그래도 좋아지는 삶... 다 같이 포와에 사진신부로 왔지만 사는 곳은 멀고 서로 사는 것도 바빠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가까이 살던 송화에게조차 연락하기 쉽지 않은 그녀가 우연히 송화 소식을 듣는데 늙은 할배에게 시집 가 맞고 살던 송화를 구출해 온다. 새롭게 근처에 살면서 송화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던 그녀....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도 나라 잃은 민족, 심지어 해외에서 살고 있던 그들에겐 해준거 없는 조국이지만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지 없는 살림에서 나라를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선다. 그러나 거기서도 노선이 나뉜다. 박용만파와 이승만파...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파인데 버들의 남편 태완은 박용만파... 살던 농장을 옮기고 새롭게 점포를 내면서 남편 태완은 가정을 돌보기보다는 조국 독립에 목숨을 걸고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하는 이는 버들이다. 먹고 사는 일도 힘든데 파도 나누어져 외롭게 살아야하고 친구들끼리도 반목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그럼에도 각자 가슴 아픈 사연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가운데... 홍주, 버들, 송화가 함께 세탁소를 해나가는 상황이 온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고...

 

처음 제목에서 예상한 것처럼 그녀들의 아이 이야기... (진주)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예상되는 부분이었지만...좋았다.)

 

정말 많이 울었다. 여자들의 삶이 팍팍해서 울었고, 나라 잃은 이들의 설움이 느껴져 울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거 없는 조국을 위해 나서는 그들의 뜨거움에 울었고, 여자는 안 되는게 너무나 많던게 속상해서 울었고, 그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그녀들의 억척스러움에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해서 울었고, 어려운 와중에도 서로를 살게 하는 그녀들의 우정이 빛나고 아름다워서 감동해서도 울었다.

 

중간 중간 적어놓고 싶은 문구가 많았다.

   

버들보다 세 살 많은 오빠는 그해 김해로 나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던 오빠는 길에서 행인들을 괴롭히는 순사에게 대들었다 말발굽에 채어 세상을 떠났다. 버들은 어머니가 오빠를 묻고 온 날 밤 오열하며 홍주 어머니에게 하던 이야기를 기억했다.

"나라님도 몬 이기는 왜놈을 우찌 이긴단 말입니꺼. 애들 아부지 그레 죽고, 내 아들마저 죽인 놈들이지만도 내는 왜놈들 미워도, 원망도 안 할 깁니더. 남은 아들한테 원수 갚으라고도 안 할 기라예."

자식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게 윤 씨 목표였다. 그 뒤 윤 씨는 강 훈장이나 아들의 죽음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 P37

"내는 조선이 웬수다. 힘없는 나라 때민에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은 기라. 포와는 조선이 아이니까네 지킬 나라도 없을 거 아이가. 거 가서는 오로지 느그 생각만 하면서 신랑캉 얼라 놓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그라. 그기 오직 내 소원이다." - P38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무당편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우리 불쌍한 송화도 포와 보내 주이소. 거 가서 여염집 색시 맨키로 남편 사랑 받고 자식 키워 가메 살게 해 주이소. 그레만 해 주면 내 죽어서도 은혜 잊지 않고 부산 아지매 아들네 식구 잘되게 해 달라꼬 빌겄습니더."
- P56

"조선 독립도 중요하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다 아입니꺼. 농장 일을 이레 밀쳐 놓고 다니면 우짭니꺼? 곧 얼라도 나올 긴데예. 재성 아주버이 보기 미안타 아입니꺼."

"조국의 독립을 이루는 거이 자식을 위한 일 아니갔어. 내레 나 위해서 이러간? 자식한테 당당한 아바지 될라고 이러는 거이야.
- P202

"내사 마 조선에 돌아갈 맘 없다. 여서 내 딸들 맘껏 핵교 보내고 자유껏 살 기다. 조선한테 쥐뿔 받은 기 없지만서도내가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고향 떠난 우리한테는 조선이 친정인 기라. 친정이 든든해야 남이 깔보지 몬한다 아이가. 일본인 노동자들이 툭하면 파업하는 기 우째서겄노. 힘센 즈그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어가 노동자들이 하올레하고 맞짱 뜰 수 있는 기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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