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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극히 '자음과 모음'스러운 책이다. 그 동안 이 출판사 책에 얼마나 빠져 지냈던가. 아직도 [오즈의 닥터]의 아련함이 남아있다. 소설 매니아인 내게 [오즈의 닥터]는 충격이었다. 여느 소설들이 2차원 평면이라면 그 소설은 내게 3D 안경을 쓰고 봐야 할 '상상 그 이상의'의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 접한 자모 소설들은 어땠는가!
[브로컬리 평원의 혈투]는 신선하다. 내가 지금 열심히 두들기는 노트북이 나의 주인인가 싶고(브로컬리 평원의 혈투), 하늘이 갑자기 쩍 갈라져 동전비가 쏟아질 것 같으며(동전 마술), 옆에 있는 오빠가 로봇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인터넷에서 만들었던 인간관계가 혹시 A가 만든 D인가 싶고, 나는 B가 만든 E가 아닌가 싶다. D와 E는 결국 해피엔딩이지만.(A,B,C,D,E & F)
장르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동전 마술'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 'A,B,C,D,E & F' '메리 고 라운드' '호텔' '죽음과 세금' '소유권'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여우골' '정원사' '성녀, 걷다' '안개 바다' '디북'까지 13개의 단편이 묶여있다. 재기 발랄하지만 다소 무겁고 우울하다. 사회 계층에 대한 시각이 그렇고, 북한에 대한 표현이 그렇다. 그래서 이 듀나라는 저자에 대해 '우리를 둘러싼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369p)'라고 평하나보다.
단편 모음이라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은 생각보다 적다. 뻔하진 않지만 엄청난 파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육식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밀감'의 파격을 따라가다 지쳐 나가떨어진 느낌.
선물 받아 읽은 책이라 '예쁜' 서평 써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글은 이미 삐딱할데로 삐딱해졌다. 아,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있다! 책을 덮으면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어쩌다 나온 책이란 말인가'라며 회한에 잠길 쯤, 이 저자의 홈페이지를 찾아가봤다. 소설, 영화평론, 문화 비평 다 방면에서 활동 중이라는 이 저자의 글, 소설 말고 그냥 글! 짜릿하다. 소름이 돋는다. 최근에 봤던 영화 평을 읽으며 어쩜 이렇게 내가 느낀 바를 잘 정리해놨나 싶었다. 뜬금없이 내 얘기로 돌아오자면, 이 저자처럼 끊임없이 문화를 즐기면서 글을 쓰고 싶다. 책은 둘째치고 저자가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