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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채근담 - 마음의 사색
한용운 지음, 성각 스님 옮김 / 부글북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菜劤(채근)은 '나무 뿌리'이며, 譚(담)은 '이야기'를 뜻한다. 송나라 때 왕신민이 '사람이 항상 나무 뿌리를 씹어 먹고 사는 것처럼 생을 견디어 갈 수 있으면 곧 백 가지 일을 가히 이루리라(5p)'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머리 말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quick, fast를 추구하는 요즘 세상과 참 많이 다르다. '나무 뿌리를 씹듯, 참고 인내하며 만들어가는 삶'이라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채근담]에는 세 종류의 책이 있다. 명나라 때 홍자성이 지은 것과 청나라 때의 홍응명, 그리고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책. 이번에 손에 든 것은 한용운 선생님의 채근담이었다. 총 5분의 구성으로 '마음의 사색, 지혜의 연못, 거울 속의 나, 시간의 여유, 삶의 고통을 이기는 법'이 다뤄져 있다.
마음의 사색 편 중 '사람을 사귈 때는 나중에 가서 쉽게 멀어지는 것보다 처음 만날 때 친해지기 쉽지 않은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처음이 더디더라도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 가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알아 온 시간이 그 사람에 대한 감정과 비례하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요즘, 이 말이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또한, 위 구절과 대구를 이룬 말이 있다. '일을 함에 있어서 나중에 가서 힘들여 지켜내기 보다는 다소 서툴게 하더라도 처음에 신중한 것이 낫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 애쓰던 때가 있었다. 이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의 족쇄가 되었고 훗날 이 때의 업무 성과물들은 아마추어가 프로를 흉내낸 작품에 불과했었다.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한 문장 한 문장이 심장과 뇌를 건드려 나를 단련시킨다. 마음이 투명해지도록 심장 주변 곁가지들을 잘라주고, 머리가 맑아지도록 근심, 걱정으로 어두워진 뇌를 정화시킨다. 책을 구경하러 들어간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채근담'은 '꼭 소유해야 하는 책'이라고 적어놓은 글을 보았다. 괜한 말이 아니구나.
조선 시대 박지원은 척독이라는 짧은 글로 자신의 뜻을 폈다고 했던가? 서평을 쓰더라도 500자 이상이어야 통과되고 책을 만들더라도 그림 없이 활자가 몇 자 이상 채워져야 한다는 '글'에 대한 법칙이 난무하는 요즘, 문장 하나로 가슴을 울리는 尺讀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글, 그 글이 바로 [채근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