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이윤학

둥근 소나무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입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다물고 있는 입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고 오는 칼.

목을 치고 몸을 토막 내고

꼬치를 치고,

지느러미를 다듬고 오는 칼.

그 순간마다 소나무 몸통은

날이 상하지 않도록

칼을 받아주는 것이었다.

토막 난 생선들에게

접시나 쟁반 역할을 하는 도마.

둥글게 파여 품이 되는 도마.

칼에게 모든 걸 맞추려는 도마.

나이테를 잘게 끊어버리는 도마.

일을 마친 생선가게 여자는

세제를 풀어 도마 위를

물질로 닦고 있었다.

칼은 엎어놓은 도마 위에

툭 튀어나온 배를 내놓고

차갑고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

떼어 낼래야 뗄 수 없는 칼과 도마의 관계가 살벌하고도 극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싱싱한 고등어나 동태 한마리가 토막져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제목이 '짝사랑'이라니!  그래, 영혼을 앗겨버린 사랑하는 자의 모습과 칼의 온갖 난도질을 다 받아주는 도마의 형상이 무어 다르랴.  사랑에서는 여차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는 법. 가해자는 저렇게 '툭 튀어나온 배를 내놓고/차갑고 뻣뻣하게 누워'있고 피해자는 그 뻣뻣함뿐만 아니라 뻔뻔함까지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한다. 도마에게서  밀당(밀고 당기는 법)을 모르는 불구의 짝사랑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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