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제작 늑대9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의 공간적 배경은 몽골이다. 작가가 몽골에 체류하면서 쓴 작품들이라고 한다. 나는 여러 작품들 중 늑대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늑대의 속성을 빌어 자본주의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이곳에 실린 작품들 중 단연 으뜸이다. 문체 형식 의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것이 없다.

 

늑대는 어쩌면 악령이 숨을 불어넣어 태어난 짐승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맹수들처럼 주린 배만 채우고 물러나면 족하나 늑대는 천성이 그러지를 못합니다. 하룻밤에도 수백 마리 양들의 숨통을 끊어놓습니다. 살생을 즐기는 이빨을 갖고 나지 않았다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살아 숨 쉬는 일만으로도 죄업을 늘리는 짐승. 그러니 불법으로도 구제할 방도가 없습니다. 큰 입 가진 이 짐승은 분명 인연의 모순이며 혼돈 그 자체입니다” - 42

 

입의 크기로 말한다면 자본의 입을 당한 것이 무엇이 있겠나. 사회주의 체제가 막을 내리고 이제 막 자본주의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몽골 땅에서 자본의 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어느 것도 없다. 도시에는 물론 도른 고비에도 아스팔트가 자본주의의 혓바닥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혀가 길어질수록 초원은 먹힐 것이고 자본은 몸을 부풀릴 것이다. 자본은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끝내는 인간마저 집어 삼킬 것이다. 작품속에는 이러한 과정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 동성애까지 더해 밀도 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챕터 마다 각기 다른 화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문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자가 모두 다르다. 특히 마지막 한 챕터(챕터라는 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달리 무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에서는 한 문단마다 화자를 달리 하면서 소설을 마무리 짓고 있다. 심지어 그믐밤에 죽은 늑대까지도 화자다. 꼼꼼히 읽지 않으면 정말 헛갈리지만 화자가 누구인지를 새기면서 읽으면 작가가 얼마나 이 작품을 공들여 썼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몽골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읽으니 책의 내용이 돋을새김 되는 기분이다. 막막했던 초원의 풍경이 그려지고 그들의 옷차림, 음식, 잠자리 등이 더욱 선명해졌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입체감이 느껴진다.

 

물론 이런 생각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고 그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가마쿠라에 다녀왔을 때 이미 경험을 했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소세키 문학관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고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발코니에 오래 서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가져야하는 배경지식은 대체 얼마나 되어야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나 보는 만큼 안다는 말은 둘 다 옳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