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창비시선 40
곽재구 지음 / 창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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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뻐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시를 쓰는 꿈을 꾼 적이 있는가? 그것도 최소 3회를 연작으로 시쓰는 꿈을 꾼 적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 나는 없다. 몇 번 꿈 속에서 시를 받아 적은 적은 있다. 그러나 세 번을 연이어 같은 내용의 꿈을 꾼 적은 맹세코 없다. 꿈속의 시는 얼마나 아름답고 힘이 있고 절절하던가? 그러나 깨고나면 시는 '나 잡아봐라~' 는 슬로우 비디오처럼 생각 속을 날아다닐 뿐 단 한 줄도 잡히지 않는다.
꿈 속에서 시인을 만난 적도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고,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계신 분도 있다. 전날 그분들의 시를 읽었던 것도 아니어서 깨고나면 꿈을 더듬으며 의미를 생각해보곤 한다. 시에 끄달리면서도 엉뚱한 데 한눈 팔고 있는 무의식의 발로려니 여긴다.
곽재구 시인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이며 시적 자질에 대해 물을 때 저 질문을 한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큰 시인이 될거라고 열심히 쓰라고 한단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라는 얘기겠지. 저 기준이라면 난 시인이 되기는 글렀다.
​그런데 연작 꿈이 가능한가? 결정적인 순간에 꿈에서 깨면 아쉬움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계속 꿈을 꾸어보려고 애쓴 적도 있다. 한두번 잘렸던 꿈이 연결되기도 했던 것 같다. 매순간, 그러니까 하루 86400초를 온통 시 생각에 젖어있기를 10년쯤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루 열편씩 천일 동안 천편의 시를 쓴다면 그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86400초니 1000편이니 하는 양적이 문제는 아니니라.
곽재구 시인은 1981년, 전남대 4학년 재학중일때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1980년대를 흔히들 '전두환과 노태우의 시대', '시의 시대'라고 부른다. 백골단이 군화발로 우루루 달려 들어와 강의실에 사과탄을 던지던 시대, 눈물 콧물 기침으로 범벅이 되어 뛰쳐나오는 학생들을 운동장에 꿇어 앉히고 막무가내로 후려치며 지명수배자를 찾아내던 시대. 당시 '오월'은 금기어였다고 한다. 그런 시대에 시인은 이창동, 김진경, 고광헌, 이영진 등과 함께 '오월시 동인'이었다. 금기어를 동인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내 건 것도, 당시의 동인들이 모두 문화 각 영역에서 자기몫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하다. 김춘수, 강은교 등이 모더니즘의 시를 쓰던 시대에 이들은 리얼리즘의 시를 썼다. 특히 곽재구 시인의 시 <박득세>, <김득구>, <조경님> 등은 청소부, 권투선수, 버스 안내양의 실명이고, 유곽촌이었던 '대인동'이라는 지명을 제목으로한 연작 <대인동> 시리즈에는 시인에 의해 비로소 빛나는 하층민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1983년 초판본이 인쇄된 80년대의 시 『사평역에서』가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시대적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나 또 같은 상황이라는 맥락 때문일 것이다. 3,40년 전의 시에서 한 시인이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과 시대를 얼마나 넓고 깊게 사랑했는가, 셀로판지 처럼 얇고 투명한 서정으로 폭압의 시대를 어떻게 건너왔는가를 살피는 기회였다.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또 얼마나 멀리있는가.
지옥여행으로 바뀌어버린 수학여행, 바늘구멍도 아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총리 후보들, 말년 병장의 총기난사, 일본 자위대의 활동폭 확대 등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다. 어느 시인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했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이 사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시대는 여전하다.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장이 토수 배관광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송이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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