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 강렬하고 아름다운 매혹의 춤 살림지식총서 313
배수경 지음 / 살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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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와 관련하여 찾아본 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탱고의 역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둣가에 대거 유입된 유럽 이민자들이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해 처음 시작했다는 것, 유럽으로 수출되었다가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었다는 것, 처음엔 음악만 있었지만 가사가 생겨나고 클래식 음악과 접목하면서 지금의 탱고로 변화해왔다는 것, 다른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반도네온이라는 독특한 악기가 있다는 것 등이다.

 

탱고는 흔히들 춤의 성격에 따라 클래식 탱고, 누에보 탱고로 나누기도 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장르의 춤이 아니라 무엇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클래식 탱고는 클로징 아브라소를 통해 음악과 파트너와의 컨넥션을 중시한다. 반면 누에보 탱고는 클로징 아브라소로는 불가능한 화려하고 역동적인 동작을 구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두 사람이 일정정도 거리를 둔 오픈 아브라소여야만 가능하다.

 

아브라소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밀롱게로 스타일, 살롱탱고, 콘티넨탈 혹은 유로피안 탱고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밀롱게로 스타일은 두 사람이 가슴을 아주 밀착시킨 상태로 춤을 춘다. 이 스타일은 음악과 파트너에게 집중하므로 파트너와의 교감이나 춤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살롱탱고는 한쪽 가슴은 밀착하고 다른 쪽은 오픈한 상태를 말하고 콘티넨탈 혹은 유로피안 탱고는 가슴을 밀착하지 않은 상태로 춤을 추는 것 같다.

탱고의 역사나 분류, 구성요소 외에도 배수경의 책에는 다른 책들과는 좀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그것은 탱고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열정의 춤, 조용한 내면의 춤, 예술적 감성의 춤, 즉흥적이고 창조적인 춤, 책임이 따르는 춤, 무한히 발전하는 춤, 말 없는 교감의 춤, 낭만의 춤, 3분간의 연애, 합일의 춤, 자신을 수양하는 춤

 

열거한 11가지는 탱고에 대한 저자의 정의다. 저자의 모든 정의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음료의 광고처럼 내게는 아직 2프로가 부족하다. 부족한 2프로는 뭘까. 나는 틈나는 대로 탱고에 대한 동영상을 찾아보고, 탱고에 관한 책을 읽고, 탱고음악으로 샤워를 하다시피 지내면서 탱고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까 궁리하고 있다. 궁리할수록 매혹적이면서도 당혹스러운 것이 탱고다.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탱고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친구 따라 밀롱가에 갔다가 배우게 되었다는 사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시작했다는 사람, 살사와 같은 다른 춤들을 배우다가 춤의 종착처럼 탱고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사람 등 사람들의 동기는 평범하고 다양했다.

 

또 나는 그들에게 왜 탱고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탱고와의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왜 탱고와의 사랑에 빠져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꼭 알아야하느냐고 되묻거나 그것을 궁금해 하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냥 좋으니까 한다는 그들의 말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진실한 답이었다. 그들은 즐거운 일에 열정을 다해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탱고에 빠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 덧붙인다면 아마도 무언가로부터 도피하려는 몸짓이기도 할 것이고 결핍된 것을 충족시키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오랜 동안 허우적거리고 있는 언어의 진창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춤은 이성으로부터, 언어로부터 얼마나 멀고 자유로운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는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주인공 그루누이가 등장한다. 파리의 지저분한 생선가게 좌판에서 생선을 손질하던 칼로 탯줄이 잘려 쓰레기통에 버려지고도 용케 살아난 그에게는 체취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저주 받았다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건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고 변별할 수 있는 후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향수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바람이나 구름, 냇물조차 가지고 있는 냄새를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없는 체취를 가장 매혹적인 향기로 채우고 싶은 욕망. 어쩌면 나도 내게 결핍된 것을 탱고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따스함, 웃음, 향기로움, 자유로움, 아름다움, 몰입, 신명....... 끝없이 나열되는 결핍들이 허기진 이빨을 세우고 달려드는 것 같다.

 

탱고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춤이다. 혼자 하는 일에 익숙하고 혼자 있지 못해 안달하는 내게 어쩌면 탱고는 함께 하는 일의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알려주려고 하는 걸까? 고요한 시간, 혼자 떠올려 보는 내 모습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팔랑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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