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부터 6일까지 서울에서는 “2013 서울 탱고 페스티벌”이 열렸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국제적인 행사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세 쌍의 마에스트로가 왔고 많은 외국인들이 오직 춤을 추기 위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날아들었다. 뉴질랜드, 하와이, 대만, 베이징, 일본, 홍콩 등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그들에게 서울 탱고 페스티벌이 상당히 인기 있는 행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얼마나 나이를 먹었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아무런 편견 없이 오직 탱고라는 세계 공용어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밤을 새워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마에스트로들의 모든 동작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웠다. 공연을 하거나 강습을 할 때 그들은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고 때문에 얼굴에서는 행복한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춤이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쪽쪽 소리가 나게 입맞춤을 하고, 엉덩이나 따귀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해서 보는 이들도 즐거웠다. 세 쌍의 마에스트로들은 성격이 모두 달라보였다. 시골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중후하면서도 친근한 호르헤와 마리아 (Jorge Dispari &Maria del Carmen Romero), 춤은 물론이려니와 몸매며 얼굴까지 아름답고 우아한 하비에르와 노엘리아(Javier Rodriguez &Noelia Barsi), 귀여운 악동 커플 같은 옥타비오와 꼬리나(Octavio Fernandez &Corina Herrera). 그들의 춤은 그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호르헤의 강습 두 개(Milonga con Traspie, Giro Combination)와, 하비에르의 강습 두 개(Milonga con Traspie, Adornos)를 들었다. 예민하면서도 상냥하고 섬세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하비에르는 밀롱가를 출 때는 탱고를 잊어버리라는 말로 두 춤의 변별성을 확실히 해주었다.
마에스트로들 중 가장 연장자인 호르헤 디스파리 (Jorge Dispari)는 살사나 재즈의 동작이 탱고에 묻어나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그가 한 말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어릴 때 누구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며 놀았다는 것, 그때는 틀린다는 것을 몰랐으며 설사 틀렸다고 해도 즐거웠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은 틀릴까봐 걱정되어 즐기지도 못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네 차례의 강습과 두 번의 밀롱가에 참여하면서 나는 체력적 한계와 더불어 노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슨 수영을 독립운동 하듯이 하느냐고 말하던 수영코치도 떠올랐고, 자기는 도저히 가르칠 수 없으니 다른 사람한테 배우라던 스키 코치, 도대체 몇 남자를 상대해야 직성이 풀리겠냐며 내가 포핸드로 공을 받아내는 동안 팔굽혀 펴기를 몇 개씩 하던 스쿼시 강사도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노는 일을 절체절명의 일을 하듯이 해왔던 것 같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사는 세계를 반영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세대였던 것이다. 개인의 욕망이나 쾌락보다 역사적 사명이 우선이라고 배웠고, 몸을 쓰는 일을 경멸하는 정신적 우월주의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즈음 잘 노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파트너가 설명을 듣는 동안 쿠션을 껴안고 춤을 추는 사람, 음악이 흘러나오면 온몸으로 반응하며 흥겨워 하는 사람, 동작 하나하나가 분명하고 단정한 사람, 춤추고 있는 동안 얼굴이 행복으로 물드는 사람. 이렇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은 목련이 벙글 듯이 사랑스러움으로 뻐근해진다. 아마도 나는 오래 이런 사람의 주위를 공전할 것이다.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명왕성처럼 춥고 어두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