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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소세키의 1906년 도 작품인 『도련님』은 한 청년의 사회생활 입문기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하녀인 기요의 보살핌으로 자란 도련님은 좌충우돌 막무가내로 아니꼬운 꼴을 못보고 입에 발린 소리 못하고 보이는 대로 믿는 대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도련님은 시골 촌구석의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에 수학교사로 부임한다. 도련님이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학교선생들과 학생, 그리고 하숙집 주인이 전부다. 하지만 그곳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교묘한 언술로 사람들을 이간질 하는 사람, 쥐꼬리만 한 권력에 빌붙어 아부하는 사람,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사람 등등이 다 모여 있다. 도련님은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에게 각각의 별명을 붙여준다.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 셔츠, 영어는 끝물 호박, 수학은 거센 바람, 미술은 떠버리 등. 도련님에게는 사람들의 원래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도련님은 오직 자신이 지은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르고 꼭 그 이름만큼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런 틈새에서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귀 얇고 성질 급한 도련님의 하루하루는 순탄치 못하다. 오직 그가 의지하는 것은 성품이 대쪽 같다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어주는 기요뿐이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도 더 전에 일본의 작은 마을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이 흘렀지만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또 그만큼 소세키의 인물창조가 성공적이라는 얘기도 되겠다.
소세키는 그의 직업이 교사였던 경험 때문인지 유난히 교사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많이 등장시킨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하거나 본받고 싶은 인물들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사상은 어떤 것일까? 소세키는 바람직한 교사상을 내세워 독자를 계몽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교사도 교사이기 이전에 욕망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의 입을 빌려 얘기하는 교육정신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여전히 실천이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는 『도련님』은 못된 인간들을 혼내준다는 내용을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권선징악을 내용으로 하는 고대소설의 변형 같은 이 소설은 가볍게 읽힌다. 그래서 소세키식 유머(?)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놓치기 쉽다. 내가 『도련님』에서 관심 있었던 부분은 물고기를 낚고 난 후의 도련님의 태도다. 물고기를 잡은 손이 미끄덩거리자 비위가 뒤틀렸다거나, 바닷물로 박박 씻고 난 후에도 가시지 않는 비린내에서 정내미가 뚝 떨어져 다시는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그는 흔들리는 배에 벌러덩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하는 일이 낚시보다 훨씬 더 좋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된다.
무슨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자기도 쥐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스스로를 해군 제독에 비유하면서 쥐가 출현할 온갖 가능성을 타진하고 섬멸작전까지 세우지만 결국 쥐 두 마리의 동시출현에 혼쭐이 나 끝내 쥐잡기를 포기한 고양이. 이것은 소세키의 성정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이 아닐까. 일본이 청일전쟁에 승리하고 제국주의의 발을 내딛기 시작할 무렵 소세키는 이런 일본의 국민이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뉘앙스가 작품 곳곳에 배어있다. 그런 그가 사실은 쥐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까지 읽은 소세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들 중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은 그가 가진 불교적 세계관, 소세키에 있어서의 명명행위, 소세키식 유머 등이다. 다음 작품들에서도 이와 같은 단초들이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