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이즈에 대한 기본상식조차 없는 내게 자신이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 HIV) 감염자라는 것을 알려온 사람이 있었다. 재능과 끼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까탈스럽기는 했지만, 덜렁거리는 나와는 달리 섬세함도 만만찮아서 더러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는 감기에 걸리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반인보다 심하게 앓았다. 그러나 직장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가끔씩 그의 히스테리가 극에 달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나는 그렇게도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냐고 쏘아 붙이기도 했다.

곁에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의 아픔은 육체적인 아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왜 자신이 이런 병을 앓아야하는지 또는 남들이 알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하는 것을 더 고통스러워했다. 차라리 암이라도 걸렸으면 말이라도 속 시원히 할 수 있지 혼자서만 속앓이를 해야 하는 상황도 그를 못 견디게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수잔 손택이 얘기하듯이 질병을 무슨 천벌로 생각하거나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함정에 빠진 사람은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건강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 뿐이었다. 육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고통만큼 확실한 자기 것은 없는 법이니 그의 고통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늘 이방인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도 뜬금없이 그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통해 그의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 병은 자랑하라는 옛말이 있지만 그는 내게 자랑은커녕 죽을 때까지 비밀에 부쳐야할 천형을 짊어지게 했다.

『푸른 알약』은 에이즈에 걸린 여자와 그녀의 아이를 사랑하는 만화가의 이야기이다. 에이즈는 혈액이나 애액을 통해 감염되므로 젊은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을 온갖 위험을 안고 있는 질병 덩어리로 보는 여자, 그녀의 병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솟구치는 성적 욕망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남자. 그들 사이에 동거하고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 이들의 삼각관계는 어떻게 진행될까? 질병에 대한 은유의 함정에서 빠져나온 그들과 동행하는 푸른 알약이 그들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