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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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열네 살 때 수도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7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치고 신경과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시계공장에서 실습을 하기도 하고 서점에서 책 거래 견습공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46년, 69세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그의 작품이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지만 헤세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가 짧은 시간 몸담았던 수도원에서의 방황과 고통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헤세는 한스 기벤라트라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섬세한 소년으로 형상화된다. 일찍 어머니를 잃고 속물적인 내면을 지닌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한스는 아버지는 물론이려니와 학교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마을의 수재다. 한스는 뛰어난 인재들만 골라 뽑는 주 시험에 당당하게 2등으로 합격하여 아버지의 자부심을 충족시키고 모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포룸, 아테네,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 등 그 이름만으로도 로마나 그리스의 환영이 되살아나올 것만 같은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수도원에서 한스는 헬라스 방을 배정받아 유별난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중에서도 한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이올린과 시에 능했지만, 선생들로부터는 '불만에 가득 찬 혁명적인 인물'로 낙인찍힌 헤르만 하일너였다. 예술이 가진 불온한 상상력의 소유자인 하일너와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한스의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원인모를 두통에 시달리며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끝내는 신경쇠약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증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는다. 한스는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아, 나는 피곤합니다/아, 나는 지쳤습니다/지갑에는 돈 한 푼 없고,/주머니에도 없습니다."라는 라틴어 시구를 주절거리곤 했다. 이 노래를 들은 아버지는 아들의 증세를 정신박약의 불치병으로 받아들인다. 한스는 다른 마을에서 온 엠마에게 사랑을 느끼고 잠시나마 활기를 되찾아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기계공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곧 엠마의 사랑이 단순한 유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또 대장장이의 푸른 작업복을 입자 그동안 공부를 위해 자신이 흘린 땀과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한스에게는 고민이나 사랑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좋아하던 낚시나 수영, 토끼 기르기, 숲 속의 산책 등을 함께 할 친구도 없었다. 오직 라틴어와 역사, 그리스어와 시험만을 알고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한스에게 위로자의 가면을 쓰고 찾아온 것은 죽음의 유령이었다. 차가운 달빛이 비치는 가을밤. 한스는 위로자가 이끄는 대로 검푸른 강물위로 떠내려갔다.

아름답고 영민한 한 소년을 이렇게 일찍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누구인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으로부터 멀리 두고, 이성 친구는커녕 교내에서 친구를 사귈 시간조차 없이 학업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헤세는 부모의 세속적인 욕망과 국가 교육의 문제, 그리고 국가로부터 받은 직무를 합법적으로 수행하는 교사 등에 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의 세속적 욕망과 제도교육의 수레바퀴에 깔려죽은 한 소년을 위한 진혼곡에 다름 아닌 이 책은 1906년 출간되었는데 그로부터 100년도 더 넘게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내가 학교를 다니던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고등학교의 필독 도서 목록에 버젓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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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선생의 의무와 그가 국가로부터 받은 직무는 어린 소년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의 조야한 정력과 욕망을 길들임과 동시에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다. 또한 그 아이에게 국가적으로 공인된 절제의 평화로운 이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72

인간은 미지의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며,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원시림의 나무를 베고, 깨끗이 치우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하듯이 학교 또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을 깨부수고, 굴복시키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학교의 사명은 정부가 승인한 기본 원칙에 따라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일원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잠재된 개성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병영에서의 주도면밀한 군기(軍紀)를 통하여 극도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72

 

국가나 학교가 해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보다 귀중하고 심오한 젊은이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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