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는 실험 중 액체질소 폭발로 얼굴을 잃었다. 검붉은 거머리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흉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붕대복면을 하고 생활을 한다. 그러나 얼굴을 감추고자 한 붕대복면은 오히려 자신을 더 잘 드러내는 형국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그를 괴물 대하듯 한다. 일상적인 소통도 점점 멀어져 마침내는 가장 가까운 아내조차도 초급 외국어를 더듬거리는 듯 아주 기본적인 말 이외에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남자는 이전과 같은 타인과의 소통이 그리웠고 그 대안으로 가면을 생각하게 된다.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욕망과 치밀한 계획은 성공한다. 가면을 완성한 사내는 자신의 성공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면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확인한 남자는 자기 가면의 완결성을 증명하기 위해 가면의 얼굴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타인인 자기 아내를 유혹한다. 
 

인간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일까? 가지고 태어난 맨얼굴 외에 또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도 이러한 질문이 아베 코보가 『타인의 얼굴』을 쓰게 된 동기가 아닐까 싶다. 이미 『모래의 여자』에서 문명화의 정도는 피부의 청결도에 있다거나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면 틀림없이 피부에 있을 것이라던 저자의 생각은 『타인의 얼굴』에서 더욱 심화 확장된다.

플라스틱 인공기관에 대한 기사를 보고 찾아간 전문가의 입을 통해 저자는 “얼굴이라는 것은 결국 표정을 말하는 것이고, 표정이라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주는 통로라고”말한다. 결국 가면을 갖는 것은 타인과 연결되는 두 개의 통로를 갖게 되는 셈이다. 하나의 신체에 두 개의 얼굴. 물론 관리가 잘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면의 얼굴에 아내가 너무나도 쉽게 유혹 당하자 사내는 그만 가면의 얼굴에 심한 질투심을 느끼며 가면의 얼굴과 붕대복면의 분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남자는 가면을 만들게 된 과정 그리고 그 가면을 쓰고 아내를 유혹한 사실 등을 노트에 모두 적어 자신이 정해놓은 장소에 두고 아내를 부른다. 그리고 노트를 읽은 아내와의 화해를 기다린다.

가면, 복면, 탈 등 이름도 용도도 다양한 모든 가면을 통틀어 말할 수 있는 기본 속성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만들어내는 얼굴이 아니라 상대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얼굴...... 스스로 선택한 표정이 아니라 상대방에 의해서 선택된 표정”이다. 노트를 읽은 아내의 귀가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시간은 불안하게 두근거린다. 기다리다 못해 다시 찾아간 곳에 아내는 없고 대신 아내의 메모가 기다리고 있다.

“가면은 가면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알림으로써 가면을 쓰고 있는 의미도 있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여자의 화장인들 결코 화장임을 숨기려고 들지는 않습니다. 결국 가면이 나빴던 것이 아니고 당신이 가면 다루는 법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아내는 처음부터 그가 가면의 얼굴을 한 남편임을 알아보았고 그런 남편의 행위에까지 연민을 느껴 가면놀이에 동참했지만 부정한 아내로 자신을 몰아가는 남편의 유치한 가면놀이 방식에 화해의 가면놀이까지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처럼 얼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도 없었던 것 같다. 성형수술로 가공된 얼굴이 부끄럽다기보다는 많은 돈을 들일수록 자랑스럽게 또 당당하게 떠벌릴 수 있는 시대다. 1960년대에 발표된『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와 함께 아베 코보의 실종삼부작이라 불리는 『타인의 얼굴』은 당시보다도 비주얼시대라는 지금의 현실에 더 밀착된 소설이다. 『모래의 여자』에서 모래의 불모성이 건조함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유동성에 있다는 것을 진단한 저자는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현대사회의 유동성 속에서 얼굴의 의미에 내포된 존재의 위태로움, 타자성 등을 되짚어보게 해준다. 『불타버린 지도』에서 어떻게 그의 사상이 전개될지 몹시 궁금한데 책을 구할 수가 없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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