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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호러의 왕’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이 대부분 공포영화 쪽인 모양이다.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에 대책 없이 놀라기 싫다. 영화내용과는 상관없이 관객들이 지르는 비명소리에 놀라는 것도 짜증난다. 영화관을 혼자 즐겨찾기 하는 나로서는 공포 앞에 스스로 투신하는 일이 멜로영화를 보고 혼자 눈물짓는 것보다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보고나서도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아니 그냥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하자. 공포영화를 보고 싸늘해진 손을 잡아줄 사람이나 무섭다고 파고들 가슴이 옆에 없노라고. 이런 나도 <미져리>와 <쇼생크 탈출>은 재미있게 보았다. 물론 집에서 보았지만.
그것이 공포든 유머든 책을 읽게 만들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스티븐 킹의 글에는 사람을 유혹하는 무언가가 있다. 원제가 On Writing인 이 책의 제목이 『유혹하는 글쓰기』가 된 것도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작가가 소설가인 까닭으로 ‘스티븐 킹의 창작론’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자전적 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소설처럼 잘 읽히고 재미있다. 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이 아니다. 스티븐 킹 자신의 소설 쓰는 실제과정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이력서>라는 소제목을 가진 부분에는 병약한 어린 시절, 가난한 무명작가시절, 부와 명성을 함께 누리는 유명작가가 되기까지를 너무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놓았다. 그를 공포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드라이버 하나만으로도 작업이 가능한 곳에 무거운 연장통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목수에 작가를 비유한 <연장통>. 소설의 아이디어와 작업과정, 초고와 퇴고의 과정 그리고 출판 대리인을 선정하는 일까지 작가가 경험하는 창작의 모든 과정을 서술해둔 <창작론>에서 그는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주문을 잃지 않는다.
다독하라는 말은 나도 여러 선생님과 선배들에게서 또 모든 창작관련 책에서 귓구멍과 눈에 굳은살이 박일 지경으로 듣고 보았다. 그런데 대체 많다는 것이 얼마 만큼이란 말이냐. 분량에 대한 스티븐 킹의 대답은 너무 간단해서 허무하다.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결과에 대한 그의 답은 많이 읽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적나라하게 현실적인 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고 ‘읽으면 읽을수록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작에 대해 스티븐 킹은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정말 뭐든지 좋다. 단, 진실만을 말해야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소설의 소임은 거짓의 거미줄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지, 돈벌이를 위해 지적인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방법은 통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문학적 우수성에 끌려 소설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그는 플롯보다는 직관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해주는 탁월한 묘사에 집중한다. 그는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고 ‘그리고 가장 귀중한 교훈들은 스스로 찾아 익혀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작가는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묻고 ‘정신 감응’이라고 답한다. 책읽기란 무엇인가고 물으니 그 또한 정신감응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와 책읽기란 이음동의어다. 그러나 감응이 그렇게 쉬운 일이더냐. 더구나 육체적 감응도 아니고 정신적 감응이라니. 나는 등허리에 들어간 머리카락 한 올에도 온 신경다발이 한쪽으로 쏠리는 몸뚱어리를 가졌지만 석고를 들이부은 듯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정신도 지녔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굳어가는 내 정신에 피뢰침을 꽂고 스티븐 킹의 유머와 진실의 전류를 흐르게 한다. 이 정도면 육체적 정신적 감응을 한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