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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이불속에서 수면제 대용으로 펴들었던 책이었다. 아베 코보라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다.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과 비슷한 이름 때문인지 작가의 이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중남미의 작가로 연상했던 듯싶다. 두어 장 읽다보니 보르헤스나 마르케스의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책날개의 작가소개를 보니 ‘아베 기미후사’라는 본명을 가진 일본인 작가였다. 일본의 카프카라고 불린다는데 나는 처음 대하는 작가다. 작가가 어느 나라 사람이건 수면제인줄 알고 각성제를 털어 넣은 꼴이 되어버렸다.
니키 준페이라는 31세의 남자가 2박 3일의 여행을 떠났다가 행방불명되었다. 7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주인공이 사라지면 이야기가 끝나야겠지만 이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기차역에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현실세계에서 사라진 그남자는 어찌되었나? 이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의 여행목적은 곤충채집이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여 긴 라틴어학명과 함께 곤충도감에 자기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가 주목한 곳은 불모의 모래땅이었다. 그러나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으로 살아남은 변종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찾아간 곳은 기차로 반나절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어느 해안이었다. 사구의 능선을 따라 걷던 남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하룻밤 묵어갈 곳을 안내받는다. 그곳은 커다란 모래구덩이로 30대 초반의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
쏟아지는 모래 때문에 밥을 먹을 때도 우산을 쓰고 먹어야하는 곳. 온몸에 들러붙는 모래 때문에 옷을 입고 자는 것보다 알몸으로 자는 것이 훨씬 수월한 곳. 밤마다 모래를 퍼내고 물이나 때 지난 신문을 배급받는 곳, 구덩이 밖에서 줄사다리를 내려줘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곳에 자신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주인공은 깨닫는다. 그는 끊임없이 모래구덩이를 탈출할 계획을 세우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만만찮은 이일을 통해 그는 모래구덩이의 삶에 차츰 적응해간다. 마치 그가 찾아 나섰던 곤충의 변종처럼. 그는 스스로 불모의 모래땅에 가서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래에 적응하는 새로운 인간 종이 되어간다.
여자와 함께 구슬을 꿰는 부업을 해서 라디오를 구입하고, 유수장치를 연구하면서도 그는 도망갈 기회만을 노린다. 어느 날 여자가 하반신을 피로 물들이며 격통을 호소했을 때 구덩이 밖으로 나갈 기회가 찾아왔다. 반년 만에 새끼줄 사다리가 내려졌고 삼륜차는 여자를 싣고 떠났다. 아무도 그를 감시하지 않는다. 그는 돌아갈 곳도 목적지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도망을 미룬다. '벌이 없으면, 도망칠 재미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발명한 유수장치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한다.
실종신고 최고장과 판결문으로 소설은 끝난다. 현실 세계에서 이미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바람과 모래뿐인 사구에서 그는 물을 얻는 장치를 발명했다. 과연 니키 준페이는 모래의 여자와 사구에 남을까? 현실로 돌아올까? 작가는 니키 준페이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실세계도 아니고 모래세계도 아닌 경계에 채집해 두었다. 어느 환경에나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변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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