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이 30도가 넘었다고 한다. 반팔을 입고 나와서도 덥다고 아우성들이다. 바닷물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추운게냐. B4 용지만한 방석용 전기장판을 진종일 끼고 산다. 책상에 앉아있을 때는 무릎에 올렸다가 잠잘 때면 배위에도 올리고 등짝 밑에 깔기도 한다. 아무래도 마음에 고드름이 창궐한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 온기 결핍증이 말기에 이른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몸도 마음도 이렇게 추울 수는 없는 법이다. 어제는 너무 추워서 하마터면 전기장판의 플러그를 콧구멍에 꽂을 뻔 했다. 보일러공의 직업을 가진 시인의 시를 읽으면 좀 나아질까?



거미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 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면우의 「거미」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보면서 그는 자신의 생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약자의 편에 섰을 열아홉, 무모하리만큼 열정적이었을 스물아홉, 서른아홉을 뒤돌아본다. 지금은 그의 나이 마흔아홉. 정의나 열정보다 발등에 떨어진 삶의 불에 발목 잡힌 나이다. 비로소 그의 눈에 홀로 망을 짜고 기다리며 흔들리는 거미가 보인다. 흔들리는 것 또한 거미줄이 아니라 거미의 외로움이라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계약직 보일러공이라는 그는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다. 그는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자신이 잘못되면 안 되니까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덩치 큰 것을 이용하고 아예 자전거를 타든지 걸어 다니는 편을 택한다고 한다. 그의 시집 전편에 흐르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나를 반성하게 하고 순정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시인이 지펴주는 우리 생의 보일러 같은 그의 시들을 읽으며 나처럼 추운 모든 이들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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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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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1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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