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박홍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머리말은 “나는 셰익스피어가 싫다.”로 시작한다. 프롤로그는 “그래도 셰익스피어는 읽어야 한다.”로 시작된다. 두 문장 사이에 ‘왜?’ 혹은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이에 대한 답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물론 하나의 문장으로 답할 수 있다. 성질 급한 독자를 위해 저자는 책제목에 이미 첫 번째 질문의 답을 밝혀두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물론 ‘비판적으로’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들을 따라가 보는 일이다.

내게 셰익스피어는 액세서리였다. 남들이 다 장만하니까 나도 마지못해 마련한 교양의 액세서리. 그러나 한번도 나를 빛내는데 사용된 적 없는 무용지물의 액세서리. 민음사판 최종철의 번역본으로 마련했다가 최근 빨간 새 옷을 입은 김정환의 번역본으로 바꿔 읽었지만 여전히 셰익스피어는 내게 액세서리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형광펜의 밑줄로 빛나는 이 액세서리들을 가끔 꺼내 보면서 페르시아 카펫보다 현란한 말의 상찬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뿐. 나는 한번도 셰익스피어를 비판적으로 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비판은커녕 그의 작품 속에 난무하는 피비린내까지도 나는 아름다움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까칠녀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말에 지레 기가 죽어서였을까? 저자의 말처럼 셰익스피어를 경전처럼 모시는 분위기 탓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답보다 질문 그 자체이지만 돌이켜보면, 재미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고, 『오셀로』, 『햄릿』, 『맥베스』, 『베니스의 상인』 등,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우선 재미와 화려한 문장들로 나를 녹다운 시켜버렸었다. 황홀하게 나동그라져 있는 내게 박홍규는 찬물 한바가지를 야멸치게 끼얹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활동 시기는 영국의 식민지 활동 시기와 동일하다. 이 시기는 봉건주의에서 절대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시기이며, 공동사회로부터 이익사회로 가는 이행기였다. 절대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주권자인 왕에게 집중되었고,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억압하면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왕권신수설을 선전하였다. 이런 이데올로기 선전도구의 하나로 연극이 이용되었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당시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 연극은 정통성과 현실 권력 사이의 분열이 초래하는 위협을 보여주며, 절대주의 군주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좌를 찬탈하려는 반대세력을 비난하는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커다란 줄기에 인간 심리와 고뇌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재미를 더해준다.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의 조용한 시골인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의 탄생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궁금하신 분은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이용해 찾아볼 수 있다. 아무래도 나는 요즈음 이 프로그램 때문에 너무 신나하고 있는 것 같다-셰익스피어는 8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이었다. 그는 18세에 자신보다 8살 연상인 여자와 결혼하여 21세에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권력의 비호를 받는 ‘장관극단’의 대주주이자 공동경영자였고 부동산 투자가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사치품이라고 세금이 붙던 난로가 열개나 있는 집에서 살았고 2000명이나 들어갈 수 있는 ‘지구극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개인사적 이력으로만 그를 제국주의자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오델로』는 전통적으로 가정의 비극을 다루면서 의처증으로 인한 치정의 연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도 터부시되는 흑인남성과 백인여성의 위험한 사랑을 주제로 해서  흑인에 대한 차별을 다루고 있다고 본다. 그가 오델로를 흑인차별로 보는 이유는 단지 피부색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해 타인의 감언이설에 속아 백인 아내를 죽이는 오델로의 인간상이 바로 흑인멸시의 이야기 그 자체’라는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을 유대인에 대한 차별로, 『맥베스』를 왕위찬탈의 쿠데타로 지목한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은 당대의 영국과 스페인이라는 제국주의 세력간의 갈등으로, 『햄릿』은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의 복수를 은유한 것이라는 혐의를 둔다.

저자가 머리말과 나오는 말에서 반복해서 밝혀 둔 것처럼 이 책의 집필 의도는 셰익스피어를 무조건 제국주의자로 매도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동안 만연해 있는 맹목의 안개를 걷고 새로운 비판의 눈으로도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들고 다니는 것도 남사스러워 책꽂이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교양의 액세서리들을 애용할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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