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악셀 하케 지음, 조원규 옮김, 토마스 마테우스 뮐러 그림 / 북라인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책상위에 작은 쇼핑백 하나가 있었다. 속에는  예쁘지도 않은 포장지로 싼 작은 상자가 하나 들었는데  도무지 내용물이 짐작되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뜯어보니 아로나민 골드라는 약이었다(이거 약 맞나?). 내 책상을 함께 쓰면서 3개월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자기부서로 돌아간 신입사원이 내게 보여준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약이다. 약 먹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아프고 만다. 그런데 치료약도 아닌 무슨 자양강장제라니! 이름부터 느끼해서 먹기도 전에 속이 더부룩하다.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이 약을 처치하기 위해(그 친구가 이글을 볼까 두렵다) 나는 회유와 설득과 협박을 자행해야했다. 나만 건강해지는 건 죄악이다 팀원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 자네는 너무 많이 먹지마, 아내가 출산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부작용 생기면 워쪄, 내가 성질도 드러운데 거기다 건강하기까지 해봐라 니가 얼마나 고달프겠니 등등. 사무실 직원들한테 모두 반강제로 먹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효 때문이 아니라 그 약으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 때문에 모두 즐거웠던 것 같다. 우리 삶에서는 아로나민 골드보다 함께 웃었던 기억들이 훨씬 더 삶의 에너지로 작동된다. 악셀 하케의 글은 이런 웃음을 준다. 너무나 사소해서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상사들을 소재로 상상력과 과장과 유머를 곁들여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의 식탁을 차려낸다. '커튼을 달다가 미친 사내', '오크초크착 씨와의 만남', '물 상자를 나르는 시지프', '왜?', '식탁다리 같은 내 인생', '진드기에 물려죽은 남자', '모기와의 전쟁' 등. 처음엔 그냥 웃겨서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니 새삼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내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그리고 집안의 오래 묵은 냉장고가 전부이다시피 한  하케의 일상을 짬짬이 들여다보노라면 그 반대편엔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늘 심각한 척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요즈음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오면 ‘맨 날 그날이 그날이지 머’ 또는 ‘콧구멍이 뚫렸으니 숨쉬고 살지’같은 말들은 이제 쓰지 말아야겠다.  사실 우리 삶은 정말 유치할 만큼 사사로운 것들의 연속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케의 되받아치는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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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8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09-03-0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는 절판이라고 나오는데 저는 동네 서점에 부탁해서 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