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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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프로이드의 이론을 통해 오이디푸스를 먼저 접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의 성적 결합을 꿈꾼다는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그의 이론은 인간의 발달단계를 설명하는 데에도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내게 주입되었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 내게 메타 텍스트가 되어 버린 까닭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가끔 나는 나의 침착한 글쓰기가 지겨울 때가 있다. 오늘도 그렇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Kreutzer"를 들으며 식은 커피로 입술을 적시며 껌벅이는 커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던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조화로움마저 짜증이 난다. 바이올린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부분만을 골라 듣고 싶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리필이 되지 않는 커피도 싫다. 거기다가 쉬지 않고 껌뻑거리는 커서는 말 안 듣고 깐죽거리는 애들 같다. 이런 날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같은 종류의 책 부분 부분을 골라 읽으면서 소파 위를 뒹굴면 제격이련만. 
 

 

이렇게 온 신경이 짜증으로 부풀어올라있는 상황에서 오이디푸스를 읽으니 폭발직전까지 다다랐다. 아무 죄도 없는 오이디푸스에게 저주를 퍼붓고 뒷다마나 까는 그리스 신들의 쪼잔함에 치를 떨다가, 그리스 신을 꼭 닮아있는 내 주위의 인간들을 떠올리며 저주를 퍼붓다가, 비극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그리스 작가들을 싸잡아 욕하다가, 카타르시스 어쩌구를 떠들어대던 아리스 할아범을 비웃다가 결국 제 성질에 겨워 제 풀에 나가떨어졌다.

녹다운 되고, 카운트다운도 끝난지 며칠이 지나서야 이 글을 쓴다. 오이디푸스가 안쓰럽기 때문이다. 아니 인간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안쓰럽기 때문이다. 반인반수의 스핑크스가 내는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맞힌 것은 오이디푸스였고 그 답은 인간이었다. 스핑크스의 답을 맞힌 오이디푸스에게 또 하나의 질문이 놓여있다. 라이오스 왕을 죽인 범인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의 답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이 비극의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이다.

오이디푸스의 답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둘과 딸 둘을 둔 자기 자신이다. 이런 저주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 소포클레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일까. 내가 욕을 퍼부었던 그리스의 신들도 결국은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니 그리스인들은 애초에 신의 구원 같은 것은 믿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신이란, 지들은 하고 싶은 대로 온갖 파렴치한 행동은 다하고 인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구원 같은 게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으냐고 쌩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들이다. 그리스인의 잔인한 인간관에 무릎을 꿇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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