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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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 종합병원의 지하실에는 신경과가 있다. 신경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는 몹시 뚱뚱한 중년으로 살갗이 흰 바다표범 같고 스모 선수가 어울리는 용모를 지녔다. 그는 가슴이 크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상당히 육감적인 간호사 마유미와 함께 일한다. 그녀는 환자가 찾아오면 가슴의 계곡을 훤히 드러내놓고 비타민 주사를 놓는데, 의사 이라부는 이 주사 놓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흥분된다고 하면서 몹시 즐긴다. 주사를 놓는 일 외의 시간은 소리내서 껌을 씹거나 벤치에 드러누워 책이나 뒤적이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신경과를 찾는 환자들은 다양하다. 젓가락, 이쑤시개, 연필, 심지어 꽁치대가리만 봐도 식은땀을 흘리고 현기증을 일으키는 선단공포증을 앓는 야쿠자 중간보스, 신일본 서커스에 입단한지 10년, 공중그네 플라이어가 된지 7년으로 최고자리를 지켜왔지만 최근 캐치미스를 하는 공중그네사, 장인이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장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제멋대로 손이 움직이는 정신과 의사, 프로입단 10년째 베테랑 3루수임에도 송구를 두려워하는 야구선수, 작가로 데뷔한지 8년째로 나름 인정받는 작가이지만 새로운 작품을 쓸 때마다 언젠가 한번 써먹은 듯한 이야기 때문에 더 이상 작품을 쓸 수 없는 여류작가 등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직업은 다양하지만 일종의 직업병을 치료하는 이라부의 처방은 간단하다.

그의 첫 번째 처방은 도저히 간호사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마유미를 시켜 젖가슴의 계곡을 다 보여주면서 비타민 주사를 놓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라부 자신이 직접 환자들의 세계에 간섭하는 것인데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부분에 있다. 이라부는 야쿠자의 다른 조직과의 분규를 해결하는데 정체불명의 거물 청부인처럼 변장하고 나가거나, 표범무늬 무대의상을 입고 공중그네 쇼를 하거나,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병원장의 가발을 벗기는데 앞장선다. 송구 공포증으로 찾아온 환자에게는 눈빛을 반짝이며 “하자, 하자, 캐치볼 하자.”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마유미짜~앙, 잠시 휴진이야.”를 외친다. 그러면 벤치 한쪽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잡지를 팔랑팔랑 넘기면서 “올 사람도 없어요.”라고 외치는 간호사. 두 사람은 찰떡궁합처럼 보인다. 여성 작가가 찾아오자 그는 단박에 소설을 써내고는 “해냈어, 나도 작가라구. 이제부터 인세 생활이야.”를 외치는 이라부. 환자를 치료한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에 급급한 의사.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를 찾아왔던 환자들은 모두 이 의사를 어처구니 없어하면서도 정상인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이 엉터리 같은 의사를 통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환자들은 모두 자기 직종에서 10여년을 전문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대세계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간다. 이런 세계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살기위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욕망을 돌볼 여유가 없다. 이렇게 억압된 욕망들이 병이라는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한 후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남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하게 된다. 작가는 이라부라는 신경과 의사를 통해 이 세상에는 자신만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이 세상을 크게 오염시키지도 않으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쩌면 작가는 이라부라는 신경과 의사를 빌어 이 세상을 웃음 바이러스로 전염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껏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허름한 병원 건물 지하실의 이라부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온 것 같은 만족감이 들기 때문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이런 유쾌한 소설을 읽어주어 체내에 웃음 바이러스가 번지는 느낌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늘 이 소설을 끼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읽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환자가 될 수도 없으니 주변을 휘돌아 이라부를 닮은 사람을 하나쯤 찾아두면 평생 가슴 뻐근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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