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에밀 아자르는 로맹가리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두개의 이름 외에도 뤼시엥 브륄라르, 포스코 시니발디 등의 가명으로도 작품을 발표했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가리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1980년 그의 나이 66세, 입안에 권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후 유서처럼 남긴 글에서 밝혀졌다. 로맹가리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로 끝난다. 그가 자신을 완전하게 표현한 것은 두개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권총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국적으로 자라난 로맹가리는 2차 세계대전 때에는 공군 비행사로 참전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는 것만으로도 평범 이상의 삶이었지만 두 번의 결혼(일곱 살 연상녀와 첫 번째 결혼, 그가 45세 되던 해 24세 연하인 영화배우 진 세버그와의 두 번째 결혼), 두개의 이름, 두 번의 콩쿠르상 수상 등 작가로서, 남자로서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전쟁이나 결혼, 콩쿠르상 수상 등이 그의 의도는 아니었겠으나 두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만은 그의 자발적 의지였다. 그가 발표한 소설 『유럽의 교육』에 대한 사르트르의 언급은 젊은 비행사였던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로맹가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그의 작품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로맹가리는 사람들이 특히 비평가들이 만들어 놓은 로맹가리라는 고정된 이미지가 싫었고, 그 이미지와 작품의 본질 사이에는 모순이 많다고 느꼈다. 그는 결국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쓰게 되었는데 이 이름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 콩쿠르 상을 수상하게 된다. 콩쿠르 상은 한번 수상한 사람에게는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는 이미 『하늘의 뿌리』라는 소설로 콩쿠르 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그는 오촌 조카인 폴 파블로비치를 내세워 수상을 거절하는 편지를 쓰지만 거절당했다.

자기 앞에 생을 두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생이 놓여있는지 모른 채로 살아간다. 『자기 앞의 생』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은 10살 소년 모모에 의해서 기술된다. 이제 막 자기의 생을 시작하려는 모모 곁에는 그러나 삶보다  죽음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더 많다. 모모는 서너 살 경부터 창녀의 자식을 돌봐주며 받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로자라는 유태인 여자와 살고 있다. 로자는 구십오 킬로나 되는 체중에 늙고 병들었으며 프랑스의 빈민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에 산다.  유태인인 그녀는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적이 있었고 이때의 경험으로부터 그녀는 평생 동안 자유롭지 못하다.

아랍인이며 회교도인 모모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양탄자 행상을 하면서 전 세계를 떠돌던 경험과, 빅토르 위고의 독서 경험으로 모모에게 이야기의 상대가 되어주는 하밀 할아버지, 여장 남자로 몸을 팔아 모모와 로자의 삶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룰라, 위급할 때마다 도움을 주는 유태인 의사 카츠 선생님, 11년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가 아들을 찾아왔지만 확인조차 못하고 그 아들이 보는 앞에서 생을 마감한 모모의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 등등. 모두들 상처투성이에 가난뱅이지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전쟁, 종교, 가난 등 그들 앞에 놓인 삶의 조건들은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도 향기로운 것도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난 뭘 하기에 너무 어려본 적이 한번도 없잖아요.”라고 외치는 모모의 말이 가슴을 친다. 그 나이에는 몰라야 마땅한 것들을 너무 많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로자의 몸에서 더이상 생명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식물인간이 되어 세계기록을 세울 수 없다’는  로자의 말에 따라 모모는 건물 지하실 일명 ‘유태인 동굴’속으로 로자를 데리고 간다. 그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고 모모는 그녀의 썩어가는 몸에 향수를 몇 병씩 통째로 뿌리며 또 허물어져가는 그녀의 얼굴에 울긋불긋 화장을 하면서 삼 주일을 함께 보낸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이나, 소설의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를 읽으며 나는 처음 소설을 읽으며 울었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 그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파리 빈민가 뒷골목의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면서  에밀 아자르가 내장을 다 끌어내듯 건져올린 말, ‘사랑해야 한다.’   열네살 모모의 생이 낳은 이 처절한 결론에 목이 메이지 않을 사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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