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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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눈동냥한 적 있었다. 문장을 곱씹으며 돌이켜보니 나는 부모가 원하는 딸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시어머니와 남편이 원하는 아내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욕망만큼 완벽한 딸, 며느리, 아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이 나의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다. 생의 가을에 들어서야 라캉의 저 말에 가슴을 베인 나는 내 방식대로 저 말을 이해해버렸고, 그때부터 나는 삶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나의 불편을 자초하지 않았고 나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양보를 정당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불편해지고 불행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누군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목수정. 당차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여성이다. 자신을 옥죄는 제도와 관습의 끈을 모두 끊어버리고 프랑스로 떠난 그녀는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고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문화, 예술, 정치, 사회 등 많은 부분을 우리의 문화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녀는 문화와 예술이 한 사회를 지탱하는 커다란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문화정책이라는 제도적 뒷받침을 위한 대안 모색에 나선다.

 

 

 제도권을 벗어났지만 그 제도권 속에서만 수정 혹은 수립이 가능한 문화정책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곳은 민주노동당이었다. 인기몰이 공약보다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진정성에 승부를 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이 그녀의 선택 이유였다. 문화정책 연구원이라는 그녀의 직업은 그러나 이곳에서 크게 펼쳐볼 사이도 없이 좌절되고 그녀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녀가 신념과 열정으로 뚫기에는 아직도 너무 두꺼운 벽이 이 사회일반에 포진해 있고 야들야들한 그녀의 상상력들을 담아내기에는 정치집단이 너무 경직되어있다.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이 그녀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그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선택한 자유에 날개를, 그녀가 선택한 사랑에 달콤한 향기를 재충전하기 바라는 마음 크다. 그런데 왜 이 나라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만한 장소가 되지 못하는가.

그녀는 프랑스와 대한민국이라는 지리적 국경을 넘나들고 제도, 관습 등 보이지 않는 문화적 국경도 넘나든다. 사랑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그녀의 당당한 이런 월경(越境)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살아보기는 커녕 아직 가보지도 못한 프랑스라는 나라와의 문화적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기술, 자본주의의 세계화 시대에 자신의 삶과 영혼을 세계의 무대에서 옹골차게 펼쳐 보이며  문화의 세계화에 앞장선 이 여성에게 따뜻한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발칙한 상상력과 정치적 소신을 가진 제2의 목수정 같은 이 나라의 당찬 여성들 모두에게도.


덧붙여, 글 중에 그녀가 다니던 여학교 화장실의 낙서 이야기가 나온다. “슬픔은 공기 중에 있고, 나는 호흡을 멈출 수가 없다.” 그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랑의 슬픔, 혹은 실연의 슬픔에 온몸을 떨면서 이 한 줄의 문장을 적었을 것’이라고 썼다. 이 문장은 누군가의 화장실 낙서이기도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에 나오는 주인공의 고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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