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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기 위해 그의 전작들을 먼저 읽고 있는 중이다. 절판되어 없는 <가면의 고백>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가면의 고백>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언어의 맛을 워낙 세게 맛본 탓인지 <파도소리>는 간이 덜된 음식을 먹는듯 했다. 인간의 삶에서 욕망이 제거되면 이런 맛이 나는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둘레가 4백미터도 되지 않는 조그만 우타섬에서 신지와 하쓰에의 사랑을 그린 <파도소리>는 바닷가 풍경을 그린 한편의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스 소설 <다프니스와 크로에>를 읽고 그리스 시대의 이상을 일본에도 이식시키고 싶은 의도로 이 소설은 씌여졌다고 미시마는 밝히고 있다.
'이상'이라는 것이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갈구하는 것이라면 그리스 시대에 미시마가 살고 있고, 이 소설이 쓰여진 1954년은 어떤 의미에서 같은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파도소리>에서 그려내는 주인공은 그리스 조각상 같은 아름다운 몸을 가졌지만 지적 호기심이나 지식같은 것은 아예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절제할 줄 안다. 혼전 성교가 금지되어있다는 도덕이 그들을 그 욕망으로부터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적 아름다움과 선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도덕적 질서에 잘 순응하는 인간상을 <파도소리>에 그려낸 미시마 유키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언어의 진창을 뒤굴었던 <가면의 고백>에서의 미시마 유키오. 할복자살하는 자신의 운명을 그려낸 <우국>의 미시마 유키오. 어떤 모습이 가장 그의 실제의 모습에 가까운지 모르겠지만 이 낱낱의 모습이 또한 모두 그의 모습인것 같다.
이 책은 '책세상'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문고판이다. 오늘 문득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어 찾아보니 <파도소리>외에도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귀향>이 있다. 책꽂이 앞에 서서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과 얼핏 비교해보니 나는 왠지 이 '책세상'의 문고판이 훨씬 마음에 든다. 표지의 색감도 민음사 판보다 깊이있고 표지에 작가의 사진을 실어 놓아 작가와 작품을 연결짓는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는 번역자와 작가와의 가상 인터뷰를 실어놓았는데 작가의 사상을 엿볼 수 있어 여간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민음사판에서 자주 보이던 오탈자도 이 책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민음사판에 비해 훨씬 문학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