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올김 / 동방미디어 / 1996년 11월
평점 :
품절


 

 

서울에도 해마다 여름이면 게이 퍼레이드가 있다. 올해도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남장여자 혹은 여장남자의 게이 퍼레이드를 보았다. 이들 중 일부는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는 표시로 손목에 빨간 리본을 달고 있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커밍아웃을 했지만 널리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이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퍼레이드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행사들을 통해 성적 소수자에 대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들의 성적취향은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래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남자로 태어날 것인가 여자로 태어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동성애자가 될 것인가 이성애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성장하면서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아야했고 또 받아들여야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커밍아웃까지 한 이들의 삶은 훨씬 당당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워 보이는 반면, 그렇지 못한 많은 이들이 이중의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더러 보게된다.

『가면의 고백』은 이런 동성애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유약한 몸을 지녔다. 나는 마술계의 왕좌를 차지했던 여자 서양마술사, 클레오파트라 등을 동경하면서 여장(女裝)에 빠지며 미칠 듯한 기쁨을 느낀다. 열세 살이 된 나는 어느 날, 아버지의 서재에서 구이도 레니의 <성 세바스찬>을 보고 최초의 수음을 한다. 이차성징이 나타나는 중학교시절 그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오우미라는 학생에게서 강렬한 사랑을 경험한다. 오우미는 나와는 비교가 안 되게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조숙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런 오우미의 겨드랑이에 난 검은 숲과도 같은 체모를 보며 강한 질투심과 아픈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이후 나는 동정을 떼기 위해 사창가를 찾아도 보고 이성과의 사랑에 빠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성에게서는 아무런 감정도 성적 충동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확인해야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성을 사랑하고 싶은 정신과 동성을 통해서만 성적 충동을 느낄 수 있는 육체와의 갈등 속에서 주인공은  지성이 결여된 야만스러워 보이는 수컷 같은 남자에게서만 성적 충동을 느끼는 자신을 확인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저자의 말>에 “이 소설은 나의 섹슈얼리스이며, 가능한 한 정확하게 쓰려고 애쓴 성적(性的)인 자서전이다. 앞부분은 자기 분석에 의한 성 도착과 사디즘의 연구에 바쳐졌고, 뒷부분은 세상에 다시없이 기묘한 아르망스적 연애의 고백과 그 길고도 치열한 회한의 서술로 채워졌다.”라고 적어두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자전적 소설이 되는 셈인데 어디에서도 그가 동성애자라는 얘기는 보지 못했다. 소설 속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그는  결혼도 했고 아들도 둔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살아간 셈이다. 그 가면은 너무나 철저해서 그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동경해마지 않던 죽음을 스스로 택해 흰 장갑을 끼고 오른쪽 옆구리에 칼을 찔러넣어 왼쪽까지 좌악 그어 할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할복은 실패했고 그의 동료는 두번이나 그의 머리를 베어야 했다.  그가 남긴 『가면의 고백』, 어디까지가 가면이고 어디까지가 고백이란 말인가?

 

책을 읽는 내내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오버랩 되었다. 바르트는 “사랑에 대해 쓰고자 하는 것은 언어의 진창과 대결하고자 함”이라고 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동성애에 대한 글은 언어의 진창을 뒹굴면서도 참담하도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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