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두번째 만나는 일본의 소설가다.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실용서로 처음 만났고, 우연히 헌 책방에서 『문명의 우울』을 발견했다. 책 제목에서 현대문명을 바라보는 소설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집으로 가져오는데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하드커버의, 옮긴이의 말까지 다 합쳐도 130여쪽도 안되는 작은 책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발행되는 『Voice』라는 월간지에 연재된 「寫眞抄」라는 에세이를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寫眞抄」의 편집인의 의도가 재미있다. 편집부에서 매월 이삼십장 정도의 사진을 작가에게 보내고, 작가는 거의 직감적으로 사진을 골라내고 그 사진의 기사조차 읽지 않고 느낀대로 글을 쓰는 방법이었다.

 편집자의 의도는 재미있지만 작가에게는 무모한 글쓰기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작가의 말대로 자신이 선택한 사진에 대한 기사조차 읽지 않고 글을 써야한다면 상당한 위험을 무릎써야 할 것같다. 사진과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사건이 물위에 기름 뜨듯 따로 놀 수도 있을 것이고, 사진이 요구하는 사건의 핵심에 다다르지 못하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런 편집진의 의도를 알았다.  그래서 책의 차례와 글을 대강 다시 훑으면서 이 글을 쓸 때 작가는 무슨 사진을 보았을까를 거꾸로 상상해보았다. 거기에는 영화 포스터도 있고, 게임기의 광고, 낙서, 9.11테러, 장기이식, 휴대전화 등 현대문명을 지칭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면서 작가의 역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가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그것이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에게만 그치지 않고 소설가로, 일본사회로, 그리고 현대사회로 확장되고 있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작가의 세계인식이라는 것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그것들을 자기만의 어법으로 다시 쓰는 능력 등은 눈여겨 보야할 것이었다. 작가는 도시 아이들의 목에 걸려 있는 열쇠에서 "작은 금속제의 부재" 혹은 "그 아이들 집의 공허"를 읽어내고, 장기이식이라는 의료기술의 진보를 보면서 인간이 죽으면 그것들을 분해하여 새로 이용한다는 발상에 대해 그는 "인체의 리사이클"이라는 말과 함께 어디까지가 "인간 자신"인가를 묻기도한다. "어쩌면 인간을 자신이라는 통일된 성 안에 가두어두는 것은 윤곽이라는 극히 단순한 것뿐일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말은 곱씹어보게된다. 문명은 그것의 빛으로 그늘을 감추지만 『문명의 우울』은 빛과 그늘을 함께 보게 해준다.  

 소설가의 소설은 읽지 않고 에둘러 가고 있다. 그의 작품을 독서 목록에 추가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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