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9월을 가장 좋아한다. 모기에게 뜯기고 금속성의 매미 울음소리가 톱질해놓은 백야처럼 얇은 여름잠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깊은 하늘과 상큼한 바람이 있는 9월이 오면 차렵이불로 몸을 감고 비로소 잠다운 잠을 잘 수 있다. 고단한 육체와 어지러운 영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자는, 잠 다운 잠 말이다. 이렇게 잠을 자고나면 나는 신선한 뽕잎을 먹고 넉 잠자는 누에처럼 고운 실을 뽑을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근지럽기까지 하다.

내가 깊은 잠에 빠졌던 2002년 9월, 아룬다티 로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페에서 “9월이여, 오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그녀는 미국인에게 끔찍한 기념일이 있는 9월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등이 민간항공기와 폭탄을 이용한 공격을 받았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주범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9월은 미국인에게만 끔찍한 것이 아니다. 왜 하필 9월 11일이었을까? 세계의 9월은 시간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1922년 9월 11일 영국정부는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탁통치를 발표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에서는 CIA의 지원 아래 감행된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를 통해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켰다. 1990년 9월 11일 조지 부시는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선포했다.

아무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의 9월은 그러나 교묘하게 ‘보이지 않는 주먹을 가진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에 의해 주물러졌다. 이 모든 배후에는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번져가고 있는 미국의 세계화의 논리가 작동되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나라가 없고 전쟁의 핵심 주역은 바로 미국이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의 소설가다. 그녀의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이 미국에서 출판되면서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그녀에게 소설가라는 이름과 함께 활동가라는 이름 하나를 더 붙여주었다.  소설의 성공으로 1년여간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후 인도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비판하는 글, 댐건설 문제 등에 근본적인 비판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소설가로서 혹은 활동가로서 요구하는 모든 공적 정보나 공적 설명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것은 인도의 오래된 브라만적 본능 때문이다. 카스트제도로 알려진 이 신분제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4계급으로 나누어지고, 이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달리트(불가촉천민) 계급이 하나 더 있다. 최상의 지배계급인 브라만은 제사를 지내거나 베다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베다힌두의 처세훈에는 달리트(불가촉천민)가 경전의 일부라도 엿들었다면 그의 귀에 납을 녹여 부어야한다고 쓰여 있다니 그들의 신분차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 하다. 

인도는 거대 댐 건설국이다. 인도사람들에게 대형 댐은 굶주림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구이며 결코 의심해서는 안되는 하나의 신앙이다. 그러나 댐 건설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국제적 부패가 작동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이 미국을 겨냥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인도는 세계의 축도이다. 카스트 시스템 안에서 인도정부를 향한, 또 인도 너머의 미국을 향한 용기 있는 발언들을 공유하기 위해 나는 9월의 달디 단 잠을 헌납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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