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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세미나에서 들었던 한 시인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외국의 자연과학 서적에는 다양하게 詩들이 인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현재의 문단이 사회의 문제들을 빗겨나 있다는 말로 들었다. 곱씹어 보아야할 이 말은 일차적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문인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상대적이기도 하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빼어나지만 타학문과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의 부재가 원인이기도 할 터이다.
프롤로그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짧지만 강렬한 스냅숏처럼 보여’준 기형도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직선들의 대한민국』또한 그런 책이 되기를 바란다는 우석훈은 기형도의 ‘짧고 날카롭고 문학적 감수성이 가득한 문장 대신에 나는 수다스러움으로, 관광버스 춤을 추는 여행 가이드의 어수선함으로 지겹게 만들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여두었다.
우선 반가웠다. 경제학자의 책에 기형도의 산문집이 등장하고, 이상의 <오감도>가 인용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 음악, 미술 등 각 예술장르가 골고루 언급되고 있다. 그가 얘기하는 ‘수다스러움’을 한 꼭지 옮겨보면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상상력, 특히 예술적 상상력은 모두 도시 미학의 찬가 안에 갇혀버렸다. 물론 한국은 여전히 높은 도시빈민 비율을 나타내지만, 기이하게도 도시 빈민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노동운동에서 소설을 쓰고 싶어 도망쳐 온 공지영은 분당 아파트에 갇혔다. 가장 먼저 생태시학을 주장했던 김지하는 일산의 오피스텔에서 더 이상 상상력을 발동하지 못한다. 1990년대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작가 김영하는 2007년 다시 고시원에 갇혔고, ‘압구정동’에 갇혀 있던 유하 감독은 2006년 여전히 ‘비열한 거리’에 갇혀 있다. 수많은 드라마 PD들은 여의도에서 청담동 사이의 88도로 안에 갇혀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예술혼을 갖추고 싶던 건축가들은 테헤란로에 갇혀 있다. 도시 빈민 미학의 진실성이 은폐되고 각색되는 동안 도시 미학이 만개한 2000년대의 미술계는 삼성그룹의 용인창고에 갇히고, 조각예술은 홍대와 대학로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강남역 사거리에서 봉인되었고, 음악은 증발되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전국에 모세혈관처럼 흩어진 만홧가게를 통해 꿈틀거리던 만화는 인터넷 한구석에서 숨만 겨우 헐떡거리는 시대가 되었다.
우석훈이 우리사회의 당면문제 즉 청계천, 대운하, 아파트 문화 등을 얘기하는 동안 나는 그의 수다스러움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했다. 동아일보 앞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청계천에 물이 흐르고 물고기를 방류하면 사람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청계천의 구조상 비가 올 때마다 많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은 모른다. 나도 몰랐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청계천을 ‘수도꼭지’ 또는 ‘어항’이라고 부른단다. ‘청계천은 생태복원도 아닐뿐더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도시 조경 사업에 불과하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전문가들의 직무유기 같은 것을 떠올렸다.
포항, 울산, 새만금 사업등 연안지역개발에서 시작된 한국경제는 이제 대운하로 대표되는 내륙개발로 돌아섰다. 대운하 건설에 대한 찬반 양측의 입장과 국토 생태라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채롭게 문제를 검토하는 시각을 갖게 해준다. 낙동강축의 식수문제, 전력생산과 홍수관리의 관점에서 해온 그동안의 물 관리정책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문제 등 전문가적 시각이 필요한 사안을 접해볼 수도 있다.
아파트 문화로 대표되는 도시건설의 문제 또한 만만치 않다. 고층 건물의 숲을 통과하면서 변화해가는 사람들의 정서, 아토피로 대표되는 각종질환 등. 건설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석훈이 드러내는 한국사회의 문제들은 그의 말을 빌리면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우석훈이 누군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 이 많은 문제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특정 정치가도 건축가도 아니다. 그것의 책임은 바로 우리 개개인이 느끼는 미적 감수성에 있다. 바로 우리의 미학이 문제다.
『88만원 세대』, 그가 해제를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이어 『직선들의 대한민국』을 읽으면서 나는 갑자기 이 여름을 잘 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80 골골”이라며 나를 위로했던 의사의 말은 아무래도 수정되어야할 것 같다. 첩첩이 쌓여가는 문제들을 접하면서 눅눅한 습기가 온몸을 친친 감아오는 이 여름, 나는 마치 두엄더미 하나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수다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오지랖으로 싼 두엄더미. 나는 우석훈이 던져준 두엄더미를 통해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읽는다.
어차피 나도 우석훈처럼 가늘고 오래 살아야한다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에 대해, 그리고 그 대상에 보내는 열광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생태미학에는 예술가들의 몫이 할당되어있다. 이 시대에 예술 그것도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 경제학자의 글에 문학이 언급되고 시가 인용된다고 좋아라하던 마음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깔려 죽어버렸다. 그렇지만 그가 던져준 두엄더미는 꼬물거리는 무수한 생명체의 보고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