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7월 2일 개성에 다녀왔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내 몸 상태는 날씨만큼이나 꾸물꾸물 했다. 현대아산의 직원들이 안내를 맡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개성관광객들의 연령층이 높은 탓인지 출입국관리소의 분위기는 시외버스터미널 같았다. 북측 안내원 두명의 안내를 받으며 개성공단을 지나 나무 없는 산들을 구비돌아 송악산에 다다랐다. 박연폭포, 관음사를 비와 땀으로 돌아내려와서야 내 몸은 정상모드로 돌아왔다.

오가며 접한 북한 주민이나 안내원, 군인들의 모습이 아직 내 맘속에 남아있다. 그들은 모두 까무잡잡한 피부에 여위고 왜소했지만 표정은 송악산에 흐르던 개울물만큼이나 맑았다. 특히 군인들은 나이가 무척 어려보였고 상대적으로 큰 모자탓에 장난감 병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북한은 초등학교과정이 4년이고 중학교과정이 6년이라고 했다. 그리곤 바로 군대에 가거나 전문대 혹은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모양이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갔다면 그들의 나이는 17,8세 일것이다.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북한에는 괴물의 형상을 한 빨갱이가 산다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런 내가 북한에서 보고 느낀 것은 어느 오지 마을에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고 온 것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그들은 전해주었다. 비록 하루일정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측 안내원들과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돌아와 이 책을 찾아 읽게까지 되었다. 핵 폐기문제,탈북자 문제, 자주통일, 옥수수 5만톤지원에 대한 거부 등 많은 사안들이 있었지만 도대체 사람이 그것도 두어시간이면 다다를 곳에 사는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 것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해야만했기 때문이다.
 
장 지글러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세계 각지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접해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아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세계지도를 책의 앞부분에 펼쳐놓고 바라보면 기아의 문제로 언급되는 나라들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집중되어있다. 북반구의 부의 축적과 남반구의 아사자의 수는 반비례하고 있는 셈이다. 60억의 세계인구가 생산하는 식량은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양만큼인데도 하루에 10만명이상이 굶어죽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이 어린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곡물사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 갖추어진 '피드 롯'에서 미국의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톤에 달하는데 8억 5000만의 인간이 심각한 기아상태이거나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린다.(1999년 한해 통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대한 장 지글러의 대답은 다양하다. 자연도태설이라는 사이비 신화를 신봉하는 자들, 자연재해, 정치부패, 시장가격 조작, 전쟁, 신식민지주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은 단지 그것하나만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따라서 한가지 처방책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배후에는 아귀들린 자본시장의 욕망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칠레 대통령 아옌데와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와의 관계가 그렇고,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와 프랑스의 일부세력과의 경우도 그렇다.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시족도 마찬가지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100년만의 대홍수라는 1995년의 재해로 인한 논과 관개시설의 파괴, 연이은 가뭄 등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강제집단화정책으로 몰락해버린 농목축업, 지배층의 독식등 다양한 이유를 들고 있다. 나는 제3자의 이런 객관적 보고앞에서 몹시 마음이 불편하다. 북한에 지원하던 원조를 갑자기 끊어버린 소련의 행각 등 아마도 이 책에 서술되지 않은 또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푸른 비닐장화를 신고 개성시내를 걸어가던 아이의 가느다란 팔과 다리가 떠오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유난히 덜 젖은 북측안내원에게 비결이 뭐냐고 묻던 내게 자기는 몸이 가늘어서 빗줄기사이로 마구 지나다닌다던 농담이 새삼스레 아프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거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은 그르지 않다. 책을 읽은 것이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데 나는 민들레 홀씨만큼의 역할도 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나는 또 밥상머리에 앉아 모래알을 씹을 것이고 밥과 국을 남기는 가족들한테 신경질만 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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