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열정
수잔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이후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수잔 손택을 처음 만난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만났던 것은 확실하고, 김수영의 시와 산문들에서 만났던 것도 확실한데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허긴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에게 마음두고 있었던 것이 언제부터였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얼마전 김수영을 다시 읽으면서 몇장 되지 않는 그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본 적 있다. 언제나 런닝셔츠 차림인 그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어 얼굴을 찌그러뜨린채  45도 정도 위로 시선을 두고있다. 그가 저렇게 응시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늘 궁금해지곤 한다. 그곳은 김수영이 지향하던 곳이지만 어디라고 딱히 규정되지 않는 곳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의 포즈가 손택의 시선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애써 그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배치해보지만 그들의 시선은 늘 어긋나고 단 한번의 눈 깜빡임도 없이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곳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인물사진 


 『은유로서의 질병』으로 손택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채로 『타인의 고통』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읽다가 이책의 전작에 해당하는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을 알게되었다.나는 차근차근 탐독하고 싶은 마음에 『타인의 고통』을 접고 『사진에 관하여』를 준비하면서 그녀의 또 다른 책 『우울한 열정』을 함께 구입하게 되었다. 결국 가장먼저 읽게 된 책이 되어버렸다. 내가 읽다가만 『사진에 관하여』의 표지는 아래 왼쪽의 것인데 최근 것은 손택의 얼굴을 표지모델로 삼았다. 그녀의 책 대부분이 그녀의 얼굴을 표지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소설가, 극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온 그녀의 수많은 이력들 중에서 문학평론가로서의 그녀의 모습과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우울한 열정』은 "Under the Sign of Saturn(토성의 영향아래)"라는 발터 벤야민에 관한 에세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손택이 선택한 7명의 예술가들에 관한 에세이가 실려있다. 발터 벤야민이나 롤랑 바르트는 내게도 친숙한 이름이지만 폴 굿맨, 레니 리펜슈탈,지버베르크,엘리아스 카네티, 앙토냉 아르토 등은 손택을 통해 처음 접하게된 인물들이다. 그녀의 각 인물들에 대한 열정과 예술작품에 대한 냉철한 비판으로 인해 나는 친숙한 인물에게서는 더욱 친밀함을, 낯선 인물들에게서는 호기심과 함께 객관적 시선을 갖게 되었다.

"나는 폴 굿맨을 읽으면서 힘을 얻었다. 생존해 있거나 사망한 작가들 중에서, 나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의 가치를 정립하게 해준 작가, 그리고 그 사람의 글을 내글을 평가하는 판단 기준으로 삼은 작가가 몇 명 있는데 그는 그 중 한 사람이다." 20여년 동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미국 작가로 존재했던 폴 굿맨의 부고를 접한 수잔이 그에 대해 쓴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폴 굿맨은 시, 희곡, 소설뿐만아니라 사회비평, 문학비평 등 지적 전문분야에 관한 책까지 썼다고 한다. 수잔은 그를 미국의 사르트르이고 장 콕토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20여년동안 폴 굿맨의 책 대부분이 다 갖추어지지 않은 집에서는 한 번도 산적이 없다는 수잔의 고백을 듣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녀의 행복이 부럽다. 누군가 그녀를 우상으로 삼아 그녀의 책을 모두 갖춘 집에서 살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미 그런것을 알수 없는 곳에 있다. 폴 굿맨의 작품은 아직 번역이 안된 것인지 검색되는 것이 없어서 이 또한 안타깝다.

<매혹적인 파시즘>이라는 레니 리펜슈탈에 관한 글은 냉철하다. 리펜슈탈의 나치 전력에 대해 조목 조목 짚어가는 수잔은 그녀의 그런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만든 영화『의지의 승리』나 누바족의 사진이 실린 책 『누바족의 최후』가 아름답다고 한다. 그것은 그녀가 나치즘의 무시무시한 선전선동가여서가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움을 병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파시스트 미학은 절제,복종적 행동,과장된 노력,고통의 인내 등에 대한 몰두에서 나오며 이를 정당화한다. 겉보기에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기중심주의와 복종심을 동시에 종용한다. 지배와 복종의 관계는 독특한 볼거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공식 공산주의 예술의 무성적 경건함과 대조적으로 나치 예술은 외설적이며 동시에 이상주의적이다. 유토피아적 미학(육체적 완벽함, 생물학적으로 부여받은 정체성)은 이상주의적 에로티시즘을 뜻한다. 섹슈얼리티는 지도자의 매혹과 추종자의 기쁨으로 변환된다. 파시스트적 이상은 성적 에너지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정신적 힘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등 섹슈얼리티가 파시즘과 관계 맺고 있는 파시스트 미학에 대한 수잔의 통찰은 경청해두어야할 것이다.  

 <바르트를 추억하며>역시 바르트가 예순네살로 사망한 후에 수잔이 쓴 글이다. 수잔은 바르트의 작업 전체를 결국은 '자기 묘사'라는 엄청나게 복잡한 기획으로 보고 있다. 동성애자였던 바르트는 수잔의 말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자의 관심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랑의 단상』이 그랬고,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가 그랬다. 하지만 『현대의 신화』나 사진에 관한 글에서는 좀 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토성의 영향아래>라는 제목의 벤야민에 관한 글은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이다. 중세 생리학에서는 피,점액,황담즙,흑담즙등 의 체액의 배합정도가 사람의 성격과 체질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배합의 정도에 따라 쾌활, 냉담, 다혈, 그리고 우울 등의 기질이 나타난다고 했다.벤야민은 스스로 자신을 우울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전통적인 점성술 개념을 끌어와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으로 정의했다. 벤야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토성적 기질을 모두 자신의 연구과제에 투입했으며 그의 기질이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다. 

토성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어떠한지, 토성적 기질을 가진 사람을 어떤 성향을 띠는지 벤야민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의 작품들과 관련짓고 있다. 철학자이면서 뛰어난 문예 이론가인 벤야민이 점성술을 끌어들이는 것도 재미있지만 점성술에 나타나는 우울증적 기질을 너무나 잘 이용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꼼꼼이 다시 읽어야할 부분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번역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껄끄러운 번역때문에 몇번씩 다시 읽어야했던 문장들이 많다. 수잔의 작품들은 번역한 사람이 각양각색이다. 그만큼 수잔이 관심둔 분야가 다양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30페이지의 에세이를 쓰기 위해 수천 페이지를 써야했고 매 페이지마다 30-40개의 초고가 필요했다는 수잔의 글을 완벽하게 번역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번역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책 읽는 즐거움에 번역이 거는 딴지를 부록으로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번역만으로도 충분이 고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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