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이후에 역사서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만화책을 역사책 운운하면 역사학자들의 노여움을 살지 모르겠다. 만화라고 했지만 이 책을 그냥 만화라고 부르는 것은 고우영에 대한 또 십팔사략에 대한 모독이다. 학습만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교과서적인 냄새가 나고 그 내용이나 그림이 너무 애로틱하고 적나라하다.

사마천의 '사기'를 필두로 중국 각 시대의 정사로 꼽히는 18가지의 역사서를 간추렸다는 이 만화책을 중국의 어떤 연표보다도 나는 요긴하게 쓰고 있다. 방대한 중국사를 개괄하는데도 좋고, 시대별로 되어있어서 필요한 부분만 빼어보기도 좋다. 또 흔히 쓰이는 사자성어들에 대한 유래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 명절에 제사를 끝내고 나면 온 집안의 사내들이 한권씩 붙잡고 몸을 포갠 채 읽고 있는 모습은 가히 볼만하다. 다들 빌려달라고들 하지만 가보를 빌려주는 사람 봤냐고 이책만은 집에 올때만 보라고 할만큼 아끼기도 하는 책이다.

만화책은 아니지만 이덕일의 책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MBC 드라마 '이산'을 보면서 함께 읽어두고 싶어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1.2권과 함께 구입을 했다. 암기과목에 젬병인 나는 늘 역사과목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곤 했다. 고려와 조선의 토지제도도 그렇고 벼슬이름 역시 내게는 외계인의 언어처럼 낯설기만 했던 것 같다. 당쟁이니 파벌이니 하는 것 역시 손사래를 치며 외면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에서 놓여난 다음에는 좀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소화되지 않는 음식마냥 역사는 내게 더부룩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가끔 역사드라마를 보면 저 내용들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답답한 적이 더러 있었다. 최근 드라마 "이산"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참에 아예 드라마를 핑계삼아 역사공부도 좀 해두자는 심정으로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다가 마침 이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상당한 견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역사는 늘 지배자의 기록이었고, 일명 '바보사'로 통칭되는 『바로 보는 우리역사』씨리즈가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한동안 인기몰이를 하기도 했었다. 기록하는 사람이 지배자이거나 민중이거나 편파적이기는 매한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중도의 입장을 견지하는 역사서들이 새롭게 출간되는 모양이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당시의 정사인 『 영조실록』과 사도세자의 아내이고 드라마 주인공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양팔저울로 삼고 있다. 사도세자의 아내이면서도 남편을 정신병자로 몰아간 여인의 기록인『한중록』과 문무의 양면을 고루 갖춘 어쩌면 성군의 자질을 지녔을지도 모를 세자의 모습을 기록한 『영조실록』의 간극. 저자 이덕일은 이 간극을 메우는데 골몰하고 있다. 519년간 (1392-1910) 이어온 조선왕조에서 83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50년이 넘는 가장 긴 기간동안 왕좌를 지켰던 영조라는 한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 여름날 뒤주에 갇혀 8일동안 물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노론의 제물로 받쳐진 사도세자. 오직 자신의 권력만을 지키기 위해 정의도 도의도 인륜도 무시했던 노론.소론 인사들. 그런 당파싸움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려야했던 여인들의 모습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의 원한을 푸는 일을 자신의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세번의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한 자신의 믿어지지 않는 행운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설가가 아닌 역사학자의 글을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다만 아쉽다면, 물론 이 책의 취지와는 다른내용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정조 시대의 긍정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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