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다보면 파농의 다양한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 그는 싸르트르, 마르크스, 키에르케고르, 프로이드, 융 등 많은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듯싶다. 때문에 흑인의 백인에 대한 심리적 열등의식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1장 <흑인과 언어>에서 파농은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앙틸레스에 사는 흑인들은 불어를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백인화의 정도를 인정받는다. 각 언어는 하나의 세계와 문화를 반영한다. 백인이 되고자 하는 앙띨레스 흑인들은 언어라는 문화적 도구를 보다 완벽하게 지배함으로써만 보다 백인에 가까워질 수 있다.(피진, 크레올)

2장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3장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에서 파농은 사랑의 문제를 다룬다. 마요테 카페시아라는 흑인 여성이 체험적인 자서전 『나는 마르티니크 여자입니다』를 썼다. 파농은 이 책을 “부패에 대한 찬미를 담고 있는 싸구려 상품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텍스트로 삼아 백인 남성에 대한 유색인 여성(흑인여성)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다. 유색인 여성은 자신과 자신의 자손이 좀 더 표백화 되기 위해 파란 눈과 금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남성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흑인 여성들에게 만연해 있는 이 백인 선호는 흑인 여성이 백인 세계로의 입성을 꿈꾸는 이유가 오직 열등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는 열등감의 노예가 된 흑인뿐만 아니라 우월감의 노예가 된 백인도 포함한다고 파농은 진단한다.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에 관한 분석 또한 이성간의 사랑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흑인성을 벗어 버리려는 몸부림으로 분석해낸다. 

4장 <식민지 민중의 의존 콤플렉스>는 마노니의 책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 식민주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대한 비판적 읽기이다. 흑인들의 열등 콤플렉스는 식민주의보다 선행한다거나 인종차별이 경제적 상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마노니의 견해이다. 이에 대해 파농은 싸르트르를 인용한다. “유태인들이라는 이름은 유태인들 스스로가 지칭한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지정해 준 이름이다. 이것이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아야할 진실이다. …유태인들을 창조한 사람은 바로 반유대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등한 대상을 조작해낸 장본인은 바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는 것이 파농의 견해다. 또 “경제적 배타성은 그 무엇보다도 경쟁에 대한 공포와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백인 프롤레타리아들의 보호, 그리고 그들이 현재의 생활수준 이하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욕망으로부터 추동한 것(113쪽)”이라고 밝힌다.

5장, 6장에서 파농은 "흑인은 백인과의 관계에서만 흑인"이라는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룬다. 또 프로이드나 아들러, 융조차도 자신들의 연구에 흑인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것이 흑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인종차별에 대해 파농은 유태인과 흑인을 비교한다. 유태인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박해 받는 이유는 그가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하고 권력의 요직을 독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데 반해 흑인에 대한 공포증의 모든 것은 생식기 층위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유태인이 지적인 위험을 상징하듯이 흑인은 생물학적 위험을 상징한다.

파농은 그의 논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론과 텍스트를 인용한다. 어떤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객관적 진술을 할 수 없음을 밝히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감정적인 언어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흑인들이 자신의 검은 피부를 부정하고 하얀 가면, 즉 백인에 대한 선망 혹은 백인에 대한 동일시의 표상으로서의 하얀 가면을 쓰더라도 자신의 검은 피부를 부정할 수 없음으로서 생기는 정신병리에 대한 의견들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얼마 전 아프리카로 장기 여행을 떠나는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들과 농담들이 오가던 자리였다. 나는 그가 돌아올 때 ‘쿤타킨테 같은 아프리카 남자’를 선물로 데려오기를 주문했고,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농담이 친구들에게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파농의 책을 읽는 내내 이 농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체 나는 저 농담 속에 어떤 뜻을 담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성적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떻게 해서 흑인에 대한 성적 환상이 심어졌을까? 또 어떻게 이런 개인의 성적 환상이 함께 자리했던 친구들에게 완전히 공유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백인 아니 아메리칸에 대한 열등의식 혹은 의존적 심리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일까? 잠복하고 있던 그 바이러스들이 아프리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세력확장을 시도했던 것이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