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수산나 타마로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접했던 이탈리아 작가들을 찾아보았다. 이탈리아 작가와는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던 듯 싶다. 오래전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작품을 읽었던 듯 싶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도 이탈리아 작가였다. 이탈리아에 뛰어난 작가가 없는 탓인지 작품번역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마로의 소설은 여러권 번역이 되어 있는 듯 하다. 고려원에서 나왔던 『아니마 문디』가 인디북에서 『나는 깊은 바다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나본데 여력이 되는대로 읽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둔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읽었다. 말이 생긴이래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을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진부함이 단단히 한몫했고, 그것이 어떤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내게 아무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표지의 글자체나 디자인, 색깔까지도 그렇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선입견은 타마로의 첫작품에서부터 뒷통수를 맞았다. 맞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뒷통수라니.... 

 

타마로의 단편소설을 묶은 『어떤 사랑』에는 다섯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대부분 일기형식이나 편지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작중인물과의 거리감 없이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재미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면 단지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버림받은 어린이나 유태인 할머니, 미혼모 등이다. 타마로는 자신의 소설속 주인공들을 그들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성적, 육체적, 인종적 폭력앞에 아무런 저항도하지 않고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인물들로 그려낸다. 그러나 이런 폭력은 주인공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야금야금 갉아먹어 그들을 10대의 미혼모로, 정신병자로, 살인자로 만들어간다. 이런 과정을 그리는 타마로의 문장은 너무나 간결해서 끔찍하다. 너무나 냉담해서 가슴이 얼어붙을것 같지만 오히려 더운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표제작 <어떤 사랑>의 주인공 베스나는 열살이고 언청이다. 언청이 입 때문에 시집도 보낼 수 없을 아이를 부모는 스노타이어 2개를 받고 팔아버렸다. 베스나는 인류가 만든 직업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소매치기 훈련을 받는다. 베스나는 아침이면 거리로 풀려나 일을 하고 저녁이면 수하물처럼 트럭에 실려 돌아오곤한다. 누구나 외면하는 베스나에게 흰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나 햇볕같은 친절로 그녀를 데려다 먹이고, 씻기고, 침대에 눕히고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베스나는 꿈을 꾼다. 엄마 고양이의 따뜻한 혀가 아이의 몸을 앞뒤로 닦아주는 꿈을.

나흘을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집에서 보내고 나왔을 때, 늘 베스나를 태우러 오던 자동차는 더이상 오지 않았고 함께 일하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소매치기를 하다 경찰에 잡힌 베스나는 자기의 뱃속에 아기가 자라고 있는것을 알게된다. 

 타마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유괴범들은 허리우드의 유괴범들과는 상당부분 대조적이다. 허리우드 영화속에 등장하는 피납자는 납치범들보다 필요이상으로 똑똑하다. 납치에 대한 증오심은 커녕 자신의 납치 상황을 무서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쪽으로 만들어버린다. 때문에 영화자체가 오락영화로 변하고만다. 반면 타마로 소설 속 피납자는 아무런 저항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이거나 장애아이다. 이같은 주인공의 설정은 타마로가 납치나 유괴의 비인도성을 말하는 방법인 동시에 이런 비인도적인 범죄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이책을 펴낸 '자음과 모음'이라는 출판사에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출판대행사와 독점계약을 맺은 모양인데 불편함을 금할 수 없다. 오역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오류들이 너무나 많다. 대충 파악한 문장의 오탈자가 12군데나 된다. 267쪽 분량의 소설 한권에 이정도라면 1차 교정도 보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이탈리아의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가 겨우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모양인데 골라볼 수도 없는 상황때문에 다음작품 읽기가 더욱 곤혹스러워진다. 출판사 이름이 '자음과 모음'이 아니었으면 덜 흥분되었을까 혼자 운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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